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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nn Branca - The Ascension

title: [로고] Wu-Tang Clan예리2024.12.07 16:31조회 수 347추천수 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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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nn Branca - The Ascension


첫만남에선 그가 요리사인 줄 알았다. 단순히 취미 영역에서만 즐긴다고 했다. 이렇게 진심인데 왜 요리사를 안 하는 걸까. 본업을 잊을 지경이었다.


유튜브에 이름 석 자를 검색했다. 특이한 이름도 아니었지만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몇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멀끔한 차림새였다. 실물과 똑같았다.


“아. 아침에 먹는 사과요. 비타민 C나 식이섬유는 물론이고, 케르세틴이나 다양한 항산화 성분들이 풍부해서요. 대신 주의해야해요. 위장이 민감하다면 산 성분이 복통이나 속쓰림을 일으키거든요. 계란은 언제나 합격이에요. 계란 먹고 몸 나빠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죠? 굳이 삶은 계란이 아니어도 되고요. 스크램블로 먹든 빵에 계란 물을 입히든요. 개인적으로는 그릭 요거트나 오트밀을 추천해요. 당연히 그릭 요거트는 무가당 제품이어야겠고, 오트밀은 말로만 들어봤을지 몰라도...”


“아시겠지만 스테이크 요리는 고기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되죠. 우선 지방층, 그러니까 마블링의 분포가 중요해요. 두께도요. 이제는 시즈닝이나 레스팅 단계까지 고려해야할 분석 과정이 시작되는 법이에요.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해요. 팬 위에 올라가면 다시 끄집어낼 수 없어요. 완성된 스테이크의 디테일한 육질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있기에 모든 계산을 잘 수행해줘야...”


요리보다는 건강이었다. 남에게 하는 요리를 두고 보자면 제 밥상은 개밥이었다. 점심은 늘 블루베리 샐러드와 토마토 아보카도 토스트 도시락. 포장된 캐슈넛과 피스타치오. 플라스틱 용기 속 조각난 오이와 파프리카. 텀블러는 셋. 케일즙. 히비스커스차. 물.


과장이 없었다. 그는 모든 식사와 음료를 만들어 먹었다. 음식의 배달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일과 계획에는 장보기 두 시간과 요리 두 시간이 필요했다.


주기율표나 세계 나라들의 수도 이름마냥 영양 성분들의 명칭을 외워댔다. 주마다 집 앞에는 택배 아닌 장물이 오갔다. 최선의 주방을 차려내기 위해 급여의 절반을 태워댔다. 뒤틀린 엥겔지수였다.


"혹시 다음 주에 시간 괜찮으세요?


그런 그가 담대한 모험을 떠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고 집에서 해결할 수 없단다. 셀프로 자택에 묶인 식사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고심 끝에 시작하는 맛집 탐방이라 했다. 들리기로는 맛집이 아닌 연구실이었다.


거기에 날 초대했다. 그 위대하고 영예로우신 탐구에 나를 끼워줬음이 감사한 일일지 고민했다. 큰일이었다.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결론은 어느덧 콩깍지에 씌여버린 뒤였다.




2주 동안 익숙해진 일과였다. 한 시간 반의 귀갓길. 만족스럽게 즐긴 뒤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도슨트의 시간이었다. 그는 운전대를 잡는 순간에도 지난 식사의 여운을 남기려 노력했다. 몰래 휴대폰을 보는 실력만 늘어났다. 그러던 참이었다. 일상적일 뻔한 식사 자리였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어요?"


뜬금 없는 질문이었다. 기억이 맞다면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음악 취향을 자랑한 적이 없다. 순전한 궁금증일까 고민했다.


"너무 많아서 못 셀 것 같은데요. 음악은 제 오랜 취미거든요."

"진짜요? 대단해요. 음악 잘 아는 분들 진짜 멋있던데."


아무렴. 당신의 집착스러운 식이요법만큼 대단하실까 싶었다. 삶이 의식식식주인 당신의 의중을 도통 알 수 없었다. 제 말거리가 떨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야말로 내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기 때문일까. 빈틈없이 떠들어대는 라디오 주파수를 꺼트렸다. 차곡차곡 채워댄 뱃속을 소화시켰다. 무얼 꺼내볼까 고민했다. 끝나기 전 재빠른 목소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면, 클래식 음악같은 거 좋아하세요?"


으흠. 삼 초 정도. 말을 삼키고 대답했다.


"아뇨. 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평소에도 즐기기에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가볍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이 좋아요. 예를 들자면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다이애나 로즈, 아니면 스티비 원더 같은...“


눈동자에 꽂히는 눈빛. 다시 말을 삼켰다.


”그런 음악들이 좋더라고요."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순진무구하던 눈빛이 제법 감상의 단계로 빠져들었다. 차창 너머에 꽂힌 타칭 요리사의 시선을 읽으려 애썼다. 그는 정성을 다해 음악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결과는 시원찮은 대답이었다.


“우와. 좋네요. 제가 듣기에는 조금 어렵지만, 진짜 좋은 음악이네요.”


어렵다니. 의도치 않았겠지만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답변이다. 역시 진짜 취향은 꺼낼 새도 없었다.


“정말 노래를 잘 부르는 분이신데, 너무 잘하셔서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아... 그래요?“


오랜 시간 깎아온 일화들이 떠올랐다. 불협화음도 기교도 예술성도 무엇 하나 용납하지 않는 예술 미식가들. 내 존재는 돌연변이였고 모두들 독특함을 용납하지 않았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삼백 삼천 삼만 곡들을 즐겨댔다. 오늘부로 사천 사만이었다.


”그럼 혹시 평소에는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

”저는... 음... 그냥 유명한 노래들 많이 들어요. 케이팝이나 발라드 같은 곡들이요. 편하게 즐기기 좋아서요.“


사실상 콕 집어 고른 한마디였다. 붕괴였다. 어렵고 부담스럽다니. 그게. 그건 취침곡인데 무슨 소리일까. 말을 꼭꼭 삼켰다. 


“사실 인스타그램을 엿본 적이 많거든요. 음반점이나 공연 페스티벌 같은 곳을 자주 가시길래 궁금했었는데, 제 상상보다 훨씬 음악을 잘 아시는 전문가셨네요. 저도 음악에 관심이 많거든요! 아직은 부족하지만.”


전문 요리사가 유아용 허들에 걸려 넘어졌다. 끔찍한 결론이었다. 심란해질 즈음 고개를 들이민 그가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좋았다는 건 정말이에요. 조금 어려울 뿐이에요. 아직은요. 또 들어볼게요.”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뒷말을 붙이지 못했다. 차에서 내린 뒤로는 실연당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잡생각이 길고 깊었다. 그리 특별한 상황도 아닌데. 오래 겪어온 일인데. 낯짝에 피폐함이 들어닥쳤다. 덕분에 계단을 오르며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요근래 가장 긴 귀가였다.




한 달이 지나갔다. 그와는 간혹 연락이 닿았다. 짧은 인연에 긴 후유증이었다. 대화거리는 여전했다. 뼈가 잘 붙기 위한 비법을 줄줄 늘어놓았다. 생물학 지식만 늘었다. 우유 열심히 마시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다친 다리로는 방문을 나서기조차 곤란했다. 일을 쉬고 잊던 배달 어플과 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플레이리스트들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청취 생활에 고통이 찾아왔다. 나와의 싸움만 길어졌다.


식어 빠진 오미자차를 홀짝였다. 공감과 이해는 조금 다른 영역이었다. 존중이라는 단어가 옳았다. 내가 왜 음악을 들었었나. 즐거우니까. 강요는 역시 강박이겠구나. 또한 욕심이구나. 여기까지 이르니 내 몫은 내 몫이고 네 몫은 에 몫이라는, 정상적인 시장논리에 도달했다. 부단히 열성적인 다른 애호가를 보며 느꼈다. 고민거리는 도루묵이었다.


레시피 대신 헤드폰을 꺼내들었다. 도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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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12.7 16:46

    처음 보는 앨범이네요

  • 12.7 17:04
    @따흙

    노웨이브 장르 최고존엄 명반입니다

  • 12.7 20:54

    브랑카 떴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일상적인 음악(물론 프록 말고)이 어렵다는 얘기 들었을 때 놀라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근데 자장가만큼 어려운 게 또 없고, 사람의 해괴/확고한 취향이 그걸 잘 담아내면 기적인 거죠

    그래서 그냥 갈 길 간다기 보단 거리를 두고 한 길을 가는구나 싶은 마음이에요

    (반대로 전 그다지 굿키드매드시티를 좋아하지 않아서 "아니 왜???"라는 소리 들었으니 쌤쌤 야호)

     

    남한테든 자기한테든 솔직해져야 존중도 제대로 해 먹는 걸까요

    전 언젠가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괴상한 음악 잘 아는 놈이라고 여겨지고 있는데, 반대로 언제든 음악 얘기 꺼낼 수 있으니 이것만큼 좋은 게 또 없어요

    제가 봐도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말이라 칭호라 느끼지 않는 걸 수도요

    (다만 좀 평범한 음악 추천해야 했을 때 "네가 어떻게???" 싶은 빈응은 묘하게 웃겼어요

    아니 그라인드코어하면서 덴파 듣는 사람이 그런 소릴 해!?)

  • 12.7 23:52

    기묘한 리뷰네요

  • 12.8 00:07

    이거도 곧 들을 수 있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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