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
노트북과 차음이 잘 되는 헤드폰 하나
어둡지 않고 흐릿한 하늘에 내리는 오후 열 한시의 이슬비
아무도 없는 복도
- (일요일 학교 자습 시간, 사람도 없거니와 대부분 교실 안에 있을 때를 노린다)
공부를 빌미로 세상과 단절된 고등학교 삼학년의 고독함, 스트레스와 약간의 우울증
ACT. 1 [ ~ 0: 00 ]
숨막히는 교실에서 빠져나와 스탠딩 책상 한 개 있는 복도의 한 구석으로 간다.
위장용 인터넷 강의 창을 띄우고 조심스레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를 들어간다.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이 없는지 주위를 살핀다.
스피커 볼륨을 귀가 아프지 않은 선에서 최대로 조정한다.
음악을 재생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347vCib_lMs
ACT. 2 [ 0 : 00 ~ 3 : 44 ]
기타 소리가 반겨준다.
창문을 살짝 열어 습기와 약간의 차가움을 머금은 공기를 들이마신다.
내리는 비와 경치를 바라본다.
울긋불긋해지기 시작한 나무들과 아직은 싱그러운 잔디, 급식실과 기숙사, 오늘따라 푸른 뒷산의 경치.
이내 눈을 감는다.
비가 타닥이는 소리와 황홀한 음악이 섞이는 것을 느낀다.
마음을 울리는 반주 사이에 프린스의 목소리가 그 한 가운데를 찌른다.
답답하면서도 공허한 가슴의 구멍 속으로 오랜만에 영혼을 채운다.
몸에 전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약간의 짜릿함을 뒤로한 채 클라이맥스가 오기 전까지 최대한 몸에 환희를 돋운다.
이윽고 기타 솔로가 시작된다.
눈을 뜬다.
ACT. 3 [ 3 : 45 ~ 7 : 00 ]
쨍하게 울리는 기타와 함께 환하게 퍼지는 빛이 눈과 귀를 강타한다.
아까 느꼈던 전율이 우스워질 정도로 짜릿한 기분이 든다.
좀 전까지 우중충하던 나와 그 배경이 일순간 맑아짐을 느낀다.
분명 아무런 색도 없을 비가 다채로운 색으로 내리는 것만 같다.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것 같다는 고독감조차 이 순간 만큼은 특별해진다.
분명 이 감정은 나밖에 느끼지 못할 거다,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조금 어린 마음 속에 환희는 계속된다.
ACT. 4 [ 7 : 00 ~ 8 : 41 ]
결말을 향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기타와 함께 고양된 기분을 정리한다.
처음보다 약해진 빗줄기에서 보랏빛의 이미지가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테다.
주위를 살핀다.
다행이 아무도 없던 것 같다.
연주가 끝날 때 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ACT. 5 [ epilogue ]
노트북과 헤드폰을 정리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삭막한 교실은 아직 꿉꿉하지만 비를 잔뜩 머금어서 그런지 조금 쾌적해진 듯 하다.
- 9월 끝 어느 날에 조금 센치했던 한 학생의 이야기
80년대 g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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