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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뷰] 부드럽고 기계적으로, 극한을 위해

title: MF DOOM (2)hoditeusli2024.10.09 15:07조회 수 750추천수 14댓글 19

Soft Machine - Third (1970)

앨범을 들으면서 썼기에 그렇게 읽어 주시면 잘 이해되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기억하는 한 최초의 앨범이자 최고의 앨범이다.

음악을 판단하고 곡을 쓸 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태양이다.
드럼, 베이스, 키보드, 색소폰의 화학 반응이 여전히 내 음악의 전부이다.

 

https://youtu.be/CThW2cK2OuU?si=-90RyD6kz1PepMdv

앨범은 잡음으로 시작하면서 라이브 음원의 짜깁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키보드가 유려한 춤을 춘다. 그리고 강한 천둥이 친다.

즉흥 연주 속에서 그나마 인식하기 쉬운 색소폰마저 비명 직전의 신음을 낸다.
정교하게 고장난 연주들이 이끄는 긴장은 드럼의 인도에 따라 Facelift의 선율로 이어진다.

 

멀어지는 박자감으로 천천히 올라오는 선율은 원시적인 아우라를 지닌다.

이따금 들어오는 기묘한 활력의 리듬을 통해 아직까지는 Third에서 캔터베리 신의 잔상을 느낄 수 있다.

테이프 기법의 질감이 생생할 정도로 음울한 소리가 가장 뚜렷해진 순간, 장면이 전환된다.

 

키보드와 색소폰의 멜로디가 질주한다. 베이스와 드럼이 그들의 배경이 되며 곡을 유지한다.

기교적이고 꼬이지 않은 것이 없는 파트에서 온전히 유지되는 것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모티프이다.

관악기들의 외침이 잦아들며 짧은 페이드 인 구간이 분위기를 전환한다.

좌우 채널에서 속도만 다른 같은 음원을 재생하는, 기본적이지만 효과적인 테이프 기법이다.

다시 원래 악기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며 파트를 마무리짓는다.

 

곡이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공허한 공간 속에서 한 사람이 플루트로 노래한다.
플루트의 솔로를 중심으로 악기들은 다시금 단단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인트로의 솔로 부분이 마치 악기의 일원인 양 자리를 차지해 온다.
색소폰이 점점 강해진다.
점점 강해진다.

 

드럼의 섬세함, 베이스의 유연함, 키보드의 다시 시선에 들어올 때쯤이면 소리가 잦아든다.

다시금 선율이 요동친다. 그리고 테이프가 되감긴다.

 

Facelift는 앨범의 방향성을 지시하는 인트로이기보다는 그룹이 앞으로 보여줄 음악과 노이즈가 가득했던 60년대 시절을 절충해 선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https://youtu.be/-MQMEV01VrI?si=dtPSO4tGYpMHYaRs

베이스와 드럼으로 시작하며, Slightly All the Time은 더욱 재즈에 가까운 트랙임이 드러난다.

왼쪽에 키보드, 오른쪽에 드럼을 둔 믹싱은 모두가 복잡한 리듬을 연주하는 이러한 곡들에 참으로 알맞다.
재즈 락과 프로그레시브 락에 걸친 구성은 유동적인 동시에 변칙적이다.

이는 멜로디의 절묘한 리듬 배분,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같은 박력의 드럼으로 구체화된다.

색소폰은 쉴 새 없이 유령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갑자기 장면이 전환된다.

 

키보드와 왜곡된 베이스의 그루브 위, 플루트와 색소폰, 그리고 심장처럼 약동하는 드럼이 공간을 만든다.
밖의 시간도 허용하지 않는 듯한 정교한 음향 속에서 빠져나오자, 또다시 어두운 선율이 기다린다.
클라리넷이 선율을 보완하며, 색소폰의 다채로운 질감은 진정으로 한 음 한 음에 집중하게 한다.

키보드가 솔로를 시작한다. 음색과 리듬 모두 기계적이라 이전 주자와 대조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뜨겁다.


환상과도 같은 솔로는 순풍처럼 들이닥친 새로운 파트에 녹아든다.

키보드와 드럼의 리듬이 더욱 단순해지며 베이스도 서정적인 공간에 완벽히 합류한다.

오르간 소리가 더해지며 더욱 시간이 불명확해진다.

불현듯 암막이 걷히며 모두가 바쁘게 발을 맞추고 있음을 깨닫는다.
마지막 고성이 울린다. 모두가 하나의 선율에 집중한다. 이윽고 폭발한다.

첫 번째 LP는 이렇게 끝난다. 노이즈의 파편을 보여준 첫 번째 면에 이어 두 번째 면은 사이키델릭한 공간을 끊임없이 세우고 부수며 생명력을 유지한다. 기계적이면서 유기적이다.

 

 

https://youtu.be/Lntleb5zsFw?si=SV1lnscEWiWyzlbF

Moon in June의 음색은 제목만큼이나 부드럽게 시작한다.

처음으로 보컬이 등장하며 키보드와 오르간이 Robert Wyatt의 목소리와 함께한다.

채널에서도 곡 구성에서도 중심에 놓인 드럼은 믿기 힘든 정확성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렇지만 이전 LP의 두 곡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과 복잡성을 띤다.

 

멜로디는 통일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자유롭게 활보한다.

그만큼의 공간이 확보되어 있으면서도 지루해지지 않는다.

Wyatt의 빼곡한 드럼뿐 아니라 그만이 할 수 있는 팝의 형태가 제시되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특이한 덕분에 모든 선율의 중심이 되는 악기이다.

건반에 트릴을 넣듯, 목과 체내의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성적 욕망을 가사로 풀어내며 베이스 솔로, 오르간으로 만드는 노이즈, 흥얼거림까지 동원해 표현한다.

말 그대로 절정의 순간이 끝난 후 분위기는 급변한다. 그는 고향을 떠나 뉴욕 도시로 왔다.

고향 웨스트 덜위치를 그리워하지만 뉴욕의 좋은 삶도 충분히 만끽하고 있는 상황의 딜레마인 것이다.

 

(곡의 내용을 이어가기 직전 짤막하게 들어가는 파트에서 그는 시간이 있다며 청자를 불러세운다.

음악이 배경 음악도 아닌 배경 소음으로 쓰이는 상황에 대해 마치 불평하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그는 불평하는 게 아니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이런 건 그저 여가일 뿐이잖아?)

 

보컬이 다시 열정적으로 변하며 사랑을 나눴던 여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예전의 사랑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멀리 나아간다.

그녀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달리기 경주를 하듯 그녀를 앞지르고 이기고 있다.

각 보컬의 마지막 파트에선 "Remember how distance tells us lies"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모든 악기가 가라앉으며 노랫말도 사그라든다.

 

곧이어 강렬한 베이스가 날뛰다가 키보드의 신경질적인 솔로가 잇따른다.

보컬도 가세하며 격렬한 긴장을 만들고, 베이스는 목 아래까지 올라온 듯 치솟는다.

왜곡된 보컬과 함께 모든 악기가 리듬을 잃어가며 무너지는 와중에도 드럼은 멈추지 않고 달린다.

음향의 난장판 속에서 드럼은 베이스와 함께 성공적으로 착지한다.

 

쓸쓸하게도 느껴지는 멜로디를 더듬으며 악기들은 드론이나 앰비언트를 자아낸다.

무형의 사이키델릭 속에서 SF, 민속적인 즉흥 연주가 뒤섞이며 무언가 다가온다.

보컬은 Kevin Ayers의 노랫말을 빌려 마지막으로 노래한다.

저음의 바다에서 허덕이는 건반에게 완전히 지배당한 채, 드럼의 쇳소리로 곡이 끝난다. 

 

Moon in June은 그들이 만든 마지막 노래이다. 더 이상의 보컬은 역사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드러머이자 보컬인 Robert Wyatt가 주도한 만큼 캔터베리 신의 핵심과 비전을 모두 담았다.

그리고 웨스트 덜위치에서 뉴욕으로 왔다는 이야기나 음악에 대한 의견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 등을 보면 그의 자전적인 곡임은 명확하다.

Wyatt의 뒤틀린 팝 구조를 비롯한 독창성은 그의 솔로 시기 Rock Bottom (1974)을 비록한 작품을 통해 빛을 발한다.

 

 

https://youtu.be/X9O2lg1Jd6s?si=SI1vZduYZTWXSVb-

전 곡의 아웃트로에서 잠시 보였던 겹쳐지는 건반이 Out-Bloody-Rageous를 조용히 시작한다.

앞선 3곡 모두 이처럼 편안하게 인트로를 시작하진 않았다.

상당히 긴 음정들 속에서 멜로디를 기다리던 다음 순간, 어쿠스틱 피아노가 박력 있게 코드를 가져온다.

 

지금까지 중 가장 활기찬 선율을 선보이며, 관악기들은 화려한 피날레처럼 함성을 지른다.

동시에 전체적인 연주는 지금까지 중 가장 복잡하게 시작하고, 교묘한 리듬의 기교가 훤히 보인다.

그리고 키보드가 치고 들어오며 날카로운 솔로를 날린다. 이제 매 마디마다 드럼 필이 멈추지 않는다.

키보드 솔로는 항상 그래왔듯, 쏜살같이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음을 날것 그대로 내던진다.

순식간에 솔로는 모티브의 일부로 흘러들고, 관악기가 다시 자랑스럽게 소리친다.

모든 것이 암전된다.

인트로로 돌아왔다.

 

시간 감각이 초기화된 후, 어쿠스틱 피아노가 계산된 소리를 출력한다.

관악기, 베이스, 키보드, 드럼이 순차적으로 다시 입장한다.

색소폰은 여전히 감정과 이성을 교차하는 연주를 이뤄낸다.

점점 부드러운 선율이 새롭게 떠오르며 모든 악기가 여기에 리듬을 더한다.
폴리리듬 혹은 폴리미터, 변박이 난무한 끝에 마침내, 색소폰의 숨소리가 들리며 아웃트로로 빠져든다.
2번째 LP의 마지막 면은 그 안에서 수미상관을 이루며 끝난다.

 

그들은 모든 것을 바쳐 의식을 치르듯 광적으로 연주했고, 지성을 담아 록과 재즈의 한계를 한없이 밀어냈다.

밴드명 Soft Machine은 인체를 뜻한다. 그들이 탄생시킨 부드러운 기계는 인간과 기술 어느 한 쪽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당당하게 그 이름을 내걸 수 있다.

 

 

--

아마도 제가 살면서 처음 앨범으로 들은 곡들이고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니까, 언젠가는 제 감상 정도는 남겨보려 했는데 이벤트가 기회가 됐네요
이벤트 주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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