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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so2000의 90년대 순례 #2

title: Kendrick Lamar (4)Alonso20002024.09.15 14:12조회 수 169추천수 6댓글 3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3584869377

 

한국 대중가요에 있어 1990년대는 큰 변혁의 시대였다. 민주화와 자유화는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표현의 폭을 더더욱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며, IMF 구제금융 전까지 하늘 높이 치솟던 대한민국의 경제는 이 거대한 자유 위에서 창작의 불꽃을 부채질했다. 힙합, 컨템퍼러리 알앤비 등의 새 시도들이 세계의 트렌드와 대중가요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갔으며, 그 사이로 '케이팝'이라는, 세상을 뒤덮을 거목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필자는 이 자리를 빌려, 씨앗에서 자라난 열매 중 제일 제 입맛에 잘 맞던 일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순서에도 딱히 기준은 없으며,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한 시대의 단편들을 이 순례길에 아로새기고자 한다.

 

1. 정글스토리 OST - 신해철 (1996. 05. 18.)

신해철은 영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타 매체와의 타이 업 작업이 꽤나 잦았던 아티스트였다. 그의 음악이 들어간 작품들이 작품성으로나 흥행 측면으로나 영 신통치는 않았지만, 음악만큼은 대부분 호평을 이끌어냈다. OST 앨범의 흥행 덕에 영화 제작사보다 오히려 투자사가 이득을 봤다는 영화 '정글 스토리'의 사례를 보자. 정작 영화의 주연인 윤도현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김세황, 이수용 등 N.EX.T의 세션맨들부터 신해철이 프로듀스했던 전람회의 김동률, 베테랑 색소폰 연주자인 이정식 등 호화로운 스태프들이 신해철의 진두지휘에 따라 각자의 자리에서 맹활약한다. 김동률이 현악 편곡, 혹은 피아노 연주를 통해 앨범에 클래식한 면모를 가미한다면, 김세황의 완벽한 기타 리프를 위시한 세션맨들의 활약은 앨범이 록 앨범으로서 지녀야 하는 날카로운 맛을 극대화 한다. 상술한 스태프들의 도움을 거쳐 한국 헤비 메탈의효시 격인 산울림의 원곡을 인더스트리얼 록으로 개조시키는가 하면, 하드 록, 훵크 풍의 해학송부터 복고풍의 소프트 록, 심지어는 록과 일렉트로니카의 혼합까지 오가는 신해철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은 언제봐도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그 위에 아로새겨진 갈등과 절망, 풍자와 회상의 서사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영화요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 역량의 정점에 달해있던 '신해철 사단'이었기에 가능한, 당대 한국 록을 상징하는 명작이다.

 

2. The Third Wave - 015B (1992. 08.)

공일오비가 지닌 한국 대중음악사적 가치는 프로듀서가 전면적으로 대중앞에 서서 활동한 거의 첫번째 케이스라는 데 있다. 정석원의 주도 하에 무한궤도 시절의 동료를 세션으로 활용하고, 보컬은 각 곡의 특성에 맞춰 객원을 투입한다는 그들의 음악적 콘셉트는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이는 90년대에 3번에 걸친 밀리언셀러 달성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났다. <The Third Wave>는 공일오비의 전성기 시절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위치에 있다. 1990년대로 넘어오며 해외와의 교류가 더욱 본격화 되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과 기성세대와의 간극이 서서히 대두되던 시절이었다. 공일오비는 앨빈 토플러의 저서에서 인용한 <The Third Wave>라는 제목을 통해 이러한 시대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음악에 담아내고자 했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연애관, 물질적인 풍토, 환경 문제 등 X세대들이 공감할 만한 다양한 주제가 등장했고, 이는 정석원이 설계한 세련된 프로덕션을 통해 그 파괴력이 증폭되었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에서 하우스를 도입하는가 하면, 레게("수필과 자동차"), 힙합("다음 세상을 기약하며")을 위시한 블랙 뮤직의 요소 또한 반영하여 다양한 사운드적 실험을 시도하였다. 이는 곡 전체가 인간의 목소리로만 구성된 환상적인 아카펠라 넘버 "적 녹색인생"에서 정점을 찍는다.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 "널 기다리며", "5월 12일" 등 기존의 팝 발라드적인 부분에서도 그 예기가 날카롭다. 윤종신, 박선주, 김태우, 이장우, 박영렬 등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내노라하는 젊은 플레이어들의 훌륭한 퍼포먼스도 놓칠 수 없는 지점이다. 한 시대, 한 세대를 상징할 자격이 충분한, 훌륭한 팝 앨범이다.

 

3. 우(愚) - 윤종신 (1996. 04.)

발라드만큼 한국인에게 친숙한 장르도 드물것이다. 수많은 발라더가 가요계를 거쳤지만 이 중 윤종신의 음악은 특별하다. 대중들이 쉽사리 공감할만한 인간적이고 궁상맞은 가사와 페르소나, 이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견고하고 명료한 보컬은 그를 단숨에 한국 가요계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격상시켰다. '중견'이라는 타이틀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나왔던 <우(愚)>는 이러한 윤종신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사내가 여인을 만나 사랑을 키우다 외압에 의해 좌절하고 미련에 괴로워하다 결국 포기하고 새 인연을 찾는 앨범의 서사는 윤종신의 섬세한 필력에 힘입어 하나의 뚜렷한 테마로 다가온다. 사운드적으로도 차별화된 부분이 돋보인다. 015B의 뒤를 이어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던 윤종신은 이때만 해도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에 가까웠던 유희열과 접촉했고, 그는 다채로운 시도로 이에 화답했다. 조규찬의 코러스가 돋보이는 두왑("환생") 부터 프로그레시브 락("여자친구"), MGR의 세련된 터치가 가해진 뉴잭스윙("의지")과 댄스("Club에서")로 이어지는 밝고 다양한 사운드는 한창 사랑의 달콤함에 물들어 가던 청년의 마음을 여실히 대변해 준다. 반면 사랑이 깨지고 미련에 허덕이는 후반부는 재지한 편곡과 더불어 이병우의 음울한 기타 연주로 화자의 쓸쓸함과 그리움을 배가시키며 일관적인 무드를 유지한다. 다양성으로 보나, 앨범의 뚜렷한 서사로 보나, 여지없는 90년대 한국 발라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4. Are You Ready? - 클론 (1996. 5. 1.)

김창환, 그리고 라인음향은 90년대 초중반 한국 대중가요의 정점에 있었다. 신승훈, 김건모 등 기라성 같은 슈퍼스타들이 이들의 손을 거쳐 전국을 휩쓸던 시절이었다. 클론은 이 라인음향의 전성기 끝자락에 위치한 팀이다. 비록 후발주자에 가까웠지만, 서울의 댄스 클럽들을 풍미하며 뛰어난 댄서로 소문난데다, 현진영과 와와로서의 활동 경험까지 탑재된 구준엽과 강원래의 내공은 여타 댄스 그룹을 능히 상회할 만 했다. 다만, 이 두 사람의 보컬 퍼포먼스에 있어 의구심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김창환은 박미경의 음반에서 선제적으로 시도한 일렉트로니카 및 힙합적 접근을 통해 이들의 단점을 상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정글의 박진감을 이식한 “꿍따리샤바라”는 1996년 최고의 히트 송으로 등극했고, 일렉트로 하우스를 가져온 “난!”도 지금까지 사랑받는 댄스 넘버이다. 여기에 “나는 왜 이런걸까”, “이대로 멈출 수 없어” 까지 아우르는 전자적인 넘버들이 앨범 곳곳에서 빛난다. 힙합의 영향도 상당히 짙다. “널 포기한 이유”, “사랑+거짓말=끝” 등 뉴 잭 스윙 넘버들은 물론, 상당히 노골적인 붐뱁인 “다 잘못됐어”, 레이 백 된 리듬과 멜로딕한 접근이 돋보이는 “영화처럼”은 클론과 김창환이 힙합에 대해서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를 토대로 클론의 음악은 대만 등 해외에서도 인기를 모았고, 그렇게 이들은 한류(韓流)의 첫머리 중 하나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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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title: Kendrick Lamar (4)Alonso2000글쓴이
    9.15 14:13

    https://khlhomofficial.wixsite.com/hausofmatters

     

    * 본 리뷰는 HAUS OF MATTERS #11, #13, #15, #16에 각각 수록되어 있습니다.

  • 9.15 14:1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9.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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