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6년을 빛낸(?) 흑인음악 아티스트들
매번 하는 식상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2016년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다사다난하고 별에 별일이 있는 해였다. 특히나 한국 기준으로 치면 유독 안 좋은 일이 많았던 것만 같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계속되고, 새로운 음악은 계속해서 나온다. 어느덧 붉은 닭의 해인 2017년이 밝았고, 이미 많은 매체에서 지나간 2016년을 정리하는 결산을 내놓았다. 힙합엘이도 심플하게 정리해봤다. 정리할 겸사겸사 2016년을 여러모로 빛낸(?) 흑인음악 아티스트를 다시 한번 이야기해본다.
올해의 화석 - A Tribe Called Quest
매년 3월 초가 되면, 대학교 고학번 학생들을 조롱하는 짤이 SNS를 도배한다. 과거에는 눈치 없는 복학생이 비판의 표적이었다면, 이제는 고학번 학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동조하며 자조하는 고학번 피해망상증 환자와 눈치 없는 복학생을 누가 반기겠는가. 반면,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는 그 정도 수준에서 논할 수 없는 팀이다. 무려 18년 만에 복학한 '화석왕'이다. 그들이 휴학할 당시에 태어난 아이가 수능을 봤다.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뀔 동안 음악이 거의 바뀌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제대로 화석이다. 트레이드마크인 재즈 샘플링도 그대로고, 목소리나 래핑도 90년대 스타일까지도 그대로다. 말하자면 구닥다리인데, 과거에 느꼈던 쾌감도 그대로라 뭐라 지적질할 구석이 없다. 외려 찬사를 보낼 뿐이다. 그래서 쥐라기공원의 티라노사우루스가 그 모습 그대로 귀환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멤버 파이프 독(Phife Dawg)이 작업 도중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고,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Ali Shaheed Muhammad)는 다른 작업 때문에 참여하지는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마냥 반갑기만 하다.
올해의 자매 - Beyonce & Solange
한 해를 돌이켜보면, 2016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아티스트가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냈던 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자매는 비욘세(Beyonce)와 솔란지(Solange), 놀스(Knowles) 자매였다. 둘은 각각 자신의 앨범인 [Lemonade]와 [A Seat at the Table]을 내놓으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프리칸-아메리칸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단순히 현실을 냉정하게 이야기하려고만 들지 않고 작품 안에서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해 나가며 희망을 제시했다. 더욱이 기록적이었던 건 두 앨범이 차례로 빌보드 차트 1위를 달성하며 같은 해에 자매가 차트 정상을 점한 최초의 사례였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들이 내면에 얽혀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체화하고, 다양한 장르를 섞어 멋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는 본질 그 자체다. 아마 당분간은 이보다 더 화려하게 한 해를 채울 수 있는 자매는 없지 않을까 싶다.
올해의 짐승남 – Desiigner
요즘은 2PM이 흥하던 시절만큼 ‘짐승남’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요즘 들어서도 종종 몸이 좋은 사람을 보고 ‘짐승남’이라 일컬을 때가 있다. 하지만 힙합엘이에서 선정한 올해의 짐승남은 그 의미와는 다르게 말그대로 들짐승을 연상케 하는 이로 선정했다. 쿼드러플 플래티넘(4x Platinum)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킹갓제네럴루키' 디자이너(Desiigner)다. ‘쁠르르르르르르라!’, ‘긲! 긲! 긲! 긲!’ 같은 사실상 의성어에 가까운 그가 내는 소리는 이게 과연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인지를 의심케 한다. 도대체 ‘쁠르르르르르르라!’를 어떻게 그렇게 길게 낼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디자이너의 추임새는 처음 들었을 때 인간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또한, 굵직굵직한 목소리는 이러한 본능적인 추임새를 더욱 날 것의 느낌이 나도록 했다. 게다가 최대 히트 싱글의 제목마저 하필이면 “Panda”라니… 이쯤 되면 올해의 짐승남임을 부정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충분히 그럴듯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여러 비디오 클립에서 볼 수 있는 동공, 콧구멍, 입이 확장 될때 디자이너의 미친X… 아니 동물 같은 표정은 도저히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볼 때면 야생 동물이 날뛰는 것만 같아 순간 포획하고 싶어진다. 그러니 가끔 성이 나고 짜증이 폭발할 것만 같을 때는 <2016 XXL Freshmen Cyper>나 [New English] 속 디자이너의 동물적인 랩을 들으며 함께 방구석에서 폴짝폴짝 뛰고 머리를 흔들어보길 바란다. 의외로 스트레스 해소에 제격이다.
올해의 간잽이 - Frank Ocean
간잽이 [명사]
1. 생선을 소금으로 절이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2. 슬쩍 기웃거리면서 간 보는 행위(ex: 나무를 자른다든지, 아니면 나무를 깎는다든지, 또 나무를 그냥 아주 그냥)를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속어
3. "......"(<Boys Don't Cry> 홈페이지에 링크된 [Endless] 라이브 영상 中)
올해의 자기계발서 - DJ Khaled
DJ 칼리드(DJ Khaled)는 속된 말로 개쩐다.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전진하며 자신뿐 아니라 타인마저도 일으켜 세운다. 당신이 헬스를 하다 힘이 부칠 때, DJ 칼리드가 옆에 있으면 "Another One!"을 외쳐준다. 삶에 힘이 부칠 때 당신은 똑똑하다고(You Smart), 당신은 충실하다며(You Loyal) 응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가 2016년에 가장 많이 한 말은 성공하는 방법(Key To Success)이었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라디오 <Othertone>에 출연해 성공하는 법을 핏대 높여 강의하고, 스냅챗과 인스타그램에 수십 개의 'Key To Success'를 올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 모든 게 새 앨범 [Major Key]를 위한 걸 줄이야. 하지만 그의 수많은 명언과 성공에 관한 이야기들은 [Major Key]란 앨범 대신 <DJ Khaled의 성공을 향한 열쇠>라는 제목의 자기계발서여도 절대 어색하지 않다. 그가 자기계발서를 내지 않는단 사실에 김난도, 한비야 등은 감사해야 한다.
올해의 한류 팬 - Lil Yachty
올해의 핫 루키 릴 야티(Lil Yachty)는 빅뱅(Big Bang)의 엄청난 팬이다. 미국의 래퍼가 어떤 경로로 빅뱅의 팬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향한 릴 야티의 마음만큼은 제법 뜨거운 것 같다. 얼마전 그는 빅뱅의 데뷔 10주년을 맞아 헌정 프리스타일 영상을 선보였다. 영상 속에서 릴 야티는 빅뱅 멤버들의 사진이 인쇄된 판넬을 세워놓고 랩을 하기 전에 각 멤버들과 인터뷰까지 진행하는 기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었다. 마이크를 든 그의 모습이 마치 어린 아이처럼 신나보이기까지 했다. 탑(TOP)과의 인터뷰에서는 ‘탑, 언제나 내 맘속 T.O.P.★’이라고 말하는 등 래퍼를 가장한 열성 VIP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어 “Bae Bae”, “Loser”, “Lollipop” 등 빅뱅의 대표곡을 노래방 반주에 맞춰 프리스타일로 소화하는데, 영락없는 빅뱅, 한류 팬의 모습이었다. 그런 릴 야티의 팬심을 기념하고자 그를 2016 올해의 한류 팬으로 선정했다. 아마 선정됐다는 사실을 알면 꽤나 좋아하지 않을까?
올해의 별똥별 - Prince
각 영역에서 아이콘과 같은 존재들이 떠난 2016년이었다. 팝에서는 프린스(Prince)와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가장 먼저 언급될 듯하다. 프린스는 데뷔 전에 이미 수십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천재 음악가였으며, 미네아폴리스 사운드라는 사조를 이끌며 1980년대를 풍미했다. 늘 음악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인물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창작욕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4월 21일,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나이는 57살에 불과했다. 불멸의 뱀파이어처럼 보이던 프린스였기에 프린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전 세계가 그의 죽음을 기렸다. 에펠탑을 비롯한 세계의 랜드마크들이 보랏빛으로 물들어졌다.
올해의 TT - Travi$ Scott
혼란한 시국에 힘입어(?) 다시금 유행어가 된 어느 어르신의 말이 있다. '한 번만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어… 진짜 너무 불쌍해…', 식물 상태로 아직은 권좌에 앉아 있는 지금의 대통령을 향한 말이었다. 사실 이 말이 올바르게 쓰이려면 적어도 <레버넌트>로 오스카 상을 받기 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올해 힙합 씬으로 치면 트레비스 스캇(Travi$ Scott)이 그랬다. 그는 [Owl Pharaoh]를 발표하면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인 트랩을 프로덕션, 퍼포먼스 양쪽 측면에서 부흥시키고, 방법론을 다양하게 모색한 파이오니어 중 하나다. 그런 그가 올해 발표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Birds in the Trap Sing McKnight]은 원초적인 에너지만 잔뜩 담겨 있기보다는 미니멀함을 기반으로 잘 다듬어진 완성도 높은 아티스틱한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2월 열리는 제59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 힙합 부문 그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에 트레비스 스캇은 종종 거친 언행을 보였던 것과 달리 상처받았다는 말을 SNS에 남기며 후보 선정에 서운함을 표했었다. 물론, DJ 칼리드의 말처럼 그래미 어워즈의 전반적인 경향도 있고 하니 그의 앨범이 노미네이트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다만, 자신의 스타일을 집대성했다고도 볼 수 있는 앨범이 인정받지 못했으니 트레비스 스캇 입장에서는 아쉬울 만도 했다.
올해의 껄떡이 - 21 Savage
지난해 21 새비지(21 Savage)는 자신의 랩스킬보다 더 화려한 껄떡임을 보여줬었다. SNS를 통해 타이가(Tyga)의 여자친구인 카일리 제너(Kylie Jenner)에게 뜬금없는 사랑(?)을 표한 것이다. 아름다운 여성을 향한 래퍼들의 관심 표현이야 예전부터 흔히 있던 일이지만, 21 새비지의 경우에는 단순한 관심이라기엔 정도가 지나쳤다. 카일리 제너를 두고 “내가 먹어버릴 거야”라고 말하거나 그녀의 남자친구인 타이가를 공공연하게 무시해버리는 등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였다. 게다가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을 카일리 제너의 얼굴로 바꾸고, 그 얼굴에 자신의 나이프 타투를 그려 넣기도 하며 단순히 관심 있는 사람보다는 스토커에 가까운 느낌을 물씬 풍겼다. 이를 본 팬들도 역시나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이에 21 새비지는 그저 장난이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의 언행이 진심이었든, 장난이었든, 남이 먹던 밥, 그리고 이번 해프닝처럼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껄떡거리지 않는 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내년에는 이렇게 얼굴 붉힐 일이 없길 바라는 의미에서 21 새비지를 2016 올해의 껄떡이로 선정했다.
올해의 스타보이 - The Weeknd
일반적으로 누가 머리카락을 자르면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이때는 대부분 한숨과 함께 슬픈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위켄드(The Weeknd)의 대답은 "나는 머-멋진 스타보이니까"였다. [Beauty Behinds The Madness]의 성공 이후 [Starboy]에서 보인 위켄드의 모습은 이전에 자주 선보였던 음울함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말 그대로 그가 스타보이가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위켄드는 앨범 밖에서도 스타보이였다. 무대 위에서는 뛰어다니며 호응을 유도하고, 헤어진 애인 벨라 하디드(Bella Hadid)과 무대 위에서 만나도 활짝 웃는다. 스타가 된 이의 그 쿨함, 그 행복함. 당연히 그를 올해의 스타보이로 꼽을 수밖에 없었다.
.
.
.
.
.
.
.
.
.
Bonus: 올해의 초난강 - Gallant A.K.A. 갈란두 A.K.A. 갓란트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글 | 힙합엘이 매거진팀
이미지 | ATO
나는 머-멋진 스타보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