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그.알: Ray Charles - The Genius Hits The Road (1960)
* <그.알(그해의 알앤비)>은 류희성 에디터가 연재하는 장기 시리즈입니다. 1960년부터 2015년까지, 해당연도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아티스트와 앨범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알앤비/소울의 역사를 모두 꿰뚫을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레이 찰스(Ray Charles)는 1950년대, 논란과 히트를 거듭하며 모두가 주목하는 거물급 스타였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애틀랜틱 레코즈(Atlantic Records)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접근한 것은 ABC-파라마운트 레코즈(ABC-Paramount Records)였다. 당대 메이저 레이블은 대개 방송국 소속이었는데, ABC-파라마운트 레코즈도 그에 대표주자 격이었다. 레이블은 레이 찰스에게 5만 달러라는 엄청난 계약금은 물론, 독립 레이블인 애틀랜틱 레코즈에선 꿈꿀 수도 없던 높은 로열티를 제시했다. 마스터테입의 소유권까지 얹어줬다. 당시에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애틀랜틱 레코즈에 대한 고마움과 정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유혹이 이를 앞질렀다. 애틀랜틱 레코즈의 임원진도 자신들이 치르기엔 버거운 조건을 제안받은 레이 찰스를 보내줬다.
레이 찰스가 애틀랜틱 레코즈 시절에 앞세웠던 것은 가스펠 번안곡과 신곡이었다. 가스펠을 이성에 대한 애가로 개사한 번안곡은 신성모독이라며 비난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화제의 인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가 ABC-파라마운트 레코즈에서 선택한 것은 번안곡도, 신곡도 아니었다. 과거의 팝 명곡을 개사하지 않고 불렀다. 막 고른 건 아니고 선곡에 규칙이 있었다. 앨라배마("Alabamy Bound")나 조지아("Georgia On My Mind") 같은 주부터 테네시 주의 도시 채터누가(“Chattanooga Choo Choo"), 뉴올리언스의 베이신 거리("Basin Street Blues")까지, 미국의 여러 지명이 들어간 곡만을 선곡했다. 자신의 별명인 천재를 활용한 제목인 'The Genius Hits The Road (천재, 길을 나서다)'부터 이미 앨범의 컨셉이 명확했었다. 커버 아트워크에는 곡 제목으로 이정표를 만들어 삽입했다.
앨범은 30년대에 유행했던 재즈 빅밴드 사운드를 표방한다. 관악기들의 빵빵 터지는 사운드에 레이 찰스도 재즈 크루닝 창법과 블루스의 걸걸한 톤을 조화시킨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를 존경했던 것으로 잘 알려졌는데, 이 영향도 곳곳에서 드러난다(애틀랜틱 레코즈 시절 초기에는 냇 킹 콜 모창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걸걸한 톤 때문에 매끄럽게 미끄러지듯 노래했던 냇 킹 콜과는 질감이 전혀 달랐지만, 냇 킹 콜을 의식한다는 건 편곡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Moonlight In Vermont"와 ”Georgia In My Mind"에선 현악 오케스트라를 사용했다. 냇 킹 콜이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처럼 당대 최고의 재즈/팝 스타 가수들이 즐겨 사용한 편성이다. 레이 찰스 역시 이런 부분을 원했던 것 같고, ABC-파라마운트 레코즈의 빵빵한 자금력을 앞세워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었다. “Moonlight In Vermont"와 "Georgia In My Mind", "Basin Street Blues"가 재즈 가수들이 애창하는 스탠더드 곡인 것도 선곡에 유효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레이 찰스는 평생 재즈 뮤지션이란 꿈을 가지고 살았었다. 현악 오케스트라 반주에 아름답게 노래한 “Georgia On My Mind"가 빌보드 팝 차트 1위를 기록하자, 그의 갈망은 더 커졌다. 다행히 ABC-파라마운트 레코즈 산하에는 임펄스 레코즈(Impulse! Records)라는 재즈 전문 레이블이 있었고, 이곳에서 레이 찰스는 재즈 음악가로서의 꿈을 어느 정도는 펼칠 수 있었다. [The Genius Hits The Road] 발매 이듬해인 1961년에는 임펄스 레코즈에서 [Genius + Soul = Jazz]라는 재즈 앨범과 재즈 가수 베티 카터(Betty Carter)가 피아노 반주를 맡은 듀엣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재즈 앨범을 종종 녹음했다. 물론, 그 앨범들은 다른 알앤비/소울 앨범에 비하면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의 열정과는 달리 재즈는 비인기 장르였고, 대중음악가란 이미지가 강한 그는 재즈 마니아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에게 재즈는 자기만족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랬던 1961년, 레이 찰스는 조지아 주 오거스타에서의 공연을 예정했었다. 조지아 찬양가 “Georgia On My Mind"로 슈퍼스타가 된 그는 동향의 팬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던 중 어느 흑인 대학생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의 공연 좌석이 인종에 따라 분리되어 있으며, 흑인들은 무대에서 가장 먼 발코니석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이 찰스는 항의의 의미로 공연을 취소했다. 공연 기획자의 고소로 757달러를 물어야 했지만, 그대로 감행했다. 때는 공민권 운동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60년대였다. 그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 <레이>에선 이 사건으로 인해 레이 찰스가 조지아 주에서 공연이 금지된 것으로 나온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후에도 공연을 했다. 1979년 3월 7일, 조지아 주는 인권 문제 수용의 의미로 레이 찰스에게 주의회에서 "Georgia On My Mind"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조지아 주는 그해 4월 24일, ”Georgia On My Mind"를 조지아 주 공식 주가로 채택했다.
70년대 끝자락에서 울려 퍼진 "Georgia On My Mind"는 60년대 소울 음악 씬을 호령했던 그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했다. 비록 전성기가 끝까지 이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는 사망한 2004년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성기의 시작점에는 [The Genius Hits The Road]가 자리했다. 레이 찰스의 커리어적인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이 앨범은 둔탁했던 리듬앤블루스, 알앤비가 상대적으로 매끈하고 세련된 음악인 소울로 변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글 | 류희성
혹시 앨범 단위로는 어떤게 괜찮은지 여쭤봐도 될까여
영화보시면서 차분히 곡마다 앨범 찾아가면서 들으니까 달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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