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재즈x힙합 ⑤ Guru - Guru's Jazzmatazz, Vol. 1
* '재즈x힙합'은 재즈 매거진 <월간 재즈피플>과 <힙합엘이>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기획 연재입니다. 본 기사는 <월간 재즈피플> 2017년 1월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갱스타의 탄생
1970년대에 태동한 힙합은 80년대 중반에 들어서 빠르게 상승곡선을 탔다. 보스턴 출신 MC 케이시 E(MC Keithy E)는 그 중심에 서길 희망하는 이 중 하나였다. 무작정 뉴욕을 향했다. 보스턴에는 이렇다 할 힙합 씬이 없었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힙합의 발원지이자 중심지인 뉴욕에서 활동해야 했다. 물론, 뉴욕이라고 해서 아주 대단한 건 아니었다.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었지만, 당시 힙합 씬은 지금과는 달랐다. 힙합으로 큰 돈을 벌 수 없었다. MC 케이시 E 역시 그런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가 바란 것은 라디오나 파티에서 DJ들이 자신의 곡을 재생하는 것 정도였다. 그는 돈을 벌 수단이 아닌, 예술으로서 힙합을 대했다.
그는 허술하게나마 녹음한 데모 테입을 여기저기 돌리고 다녔다. 음반사는 물론, 레코드 샵에도 비치해두었다. 그리곤 누군가 그걸 듣고 자신에게 연락하길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러던 중 와일드 피치 레코즈(Wild Pitch Records)에서 연락이 왔다. 1980년대 중반 몇몇 유명 래퍼를 보유하고 있던 레이블이었다. 이 레이블은 그에게 프로듀서와 팀을 꾸리길 제안했다. 45 킹(The 45 King)을 비롯한 몇몇 프로듀서와 함께하게 해줬고, 팀 이름은 갱스타(Gang Starr)로 결정됐다. MC 케이시 E도 스테이지네임을 구루(Guru)로 변경했다. 힌두교, 불교, 시크교 등의 동양 종교에서 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종교적인 교육자를 의미하는 구루를 이름으로 삼으면서 단순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래퍼 그 이상의 의미를 담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갱스타는 곡을 발표하긴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함께했던 프로듀서들은 팀을 떠나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갱스타에 남기로 한 것은 구루뿐이었다. 이후 함께할 프로듀서를 물색하던 도중 만난 것은 DJ 프리미어(DJ Premier)였다. 휴스턴 출신의 DJ 프리미어는 텍사스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DJ로 활동하며 나름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던 터였다. 이들은 재즈와 소울/훵크 같은 고전 장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 빠르게 어울릴 수 있었다. 이때부터 구루와 DJ 프리미어는 갱스타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갱스타가 1989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No More Mr. Nice Guy]는 이들의 관심사가 집약된 앨범이다. 재즈, 소울/훵크 곡을 샘플링해서 곡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Minifest"에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색소폰)의 "A Night In Tunisia"가, "DJ Premier In Deep Concentration"에는 아마드 자말(Ahmad Jamal)의 "The Awakening"이 사용됐다. 역시 눈에 바로 들어오는 곡은 제목부터 노골적인 "Jazz Music"이다. 이 곡에서 구루는 재즈를 두고 “대적할 상대가 없었던 음악”이라고 말하며 각 벌스의 끝에 “이게 재즈 음악이야”라는 가사를 덧붙인다. 그는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해 스윙, 비밥까지 재즈의 고전 장르를 훑는다. 시대별로 대표 뮤지션을 언급하며 존경심을 표하기도 한다-젤리 롤 모턴(Jelly Roll Morton), 조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이상 뉴올리언스 재즈), 베니 굿맨(Benny Goodman),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이상 스윙),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이상 비밥). 스윙과 비밥 사이에는 레스터 영(Lester Young)과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이름도 가사에 등장한다. 가사만큼이나 만족감을 주는 것은 프로덕션이었다. 램지 루이스(Ramsey Lewis)의 "Les Fleur" 도입부에 등장하는 건반 소리를 샘플링했지만, DJ 프리미어의 손을 거치며 원곡의 차분함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훵키하게 재탄생한 경우도 있었다.
이듬해인 1990년, 갱스타는 영화 <Mo Better Blues>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한다. 본 영화의 감독 스파이크 리(Spike Lee)가 구루가 나온 모어하우스 대학의 동문인 점, 사운드트랙 앨범에 담긴 알앤비/팝 지향적인 재즈 사운드에 갱스타의 음악이 잘 맞았던 점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들이 만든 "Jazz Thing"이란 곡에는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Light Blue"와 "Pannoica", 찰리 파커의 "Out Of Nowhere", 루이 암스트롱의 "Mahogany Hall Stomp", 듀크 엘링턴의 "Upper Manhattan Medical Group"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갱스타는 자신들의 곡인 "Jazz Music"의 일부를 은근슬쩍 끼워 넣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 곡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사용됐다.
구루가 꿈꿨던 새로운 재즈
이들의 2집 앨범 [Steps In The Arena]에선 재즈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후의 갱스타 앨범에서는 재즈가 계속해서 사용됐다. 구루는 자신이 하던 음악이 그리 대수로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갱스타의 음악에 재즈가 자주 사용되긴 했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단 존경심 때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에 재즈 랩이나 재즈 힙합이라는 식의 명칭을 붙이는 걸 꺼렸다. DJ 프리미어는 벨소리로도 비트를 만들 수 있다며, 재즈가 특별하게 사용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갱스타가 재즈에 대한 애착이 강한 건 사실이었지만, 큐팁(Q-Tip), 피트 락(Pete Rock),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 등 동시대 프로듀서들도 재즈를 활용한 힙합 비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구루는 재즈 랩이든, 갱스터 랩이든 자신의 삶에 밀착한 소리와 이야기를 담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며 특정한 장르나 스타일로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점을 피력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단순히 샘플링하는 것으론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꿈꿨던 것은 재즈 뮤지션과 힙합 뮤지션이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다만, DJ 프리미어가 곁에 있는 이상 작업은 샘플링 위주로 해야 했고, 그가 구상했던 음악은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90년대 초반, 구루는 솔로로 활동할 여유를 얻게 된다. 갱스타의 음악이 주목을 받자, DJ 프리미어의 비트를 받으려는 래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 DJ 프리미어가 타 래퍼들과 작업하는 틈에 구루도 자기 활동을 할 수 있었다.
♬ Guru - No Time To Play
구루는 프로젝트의 명칭을 고민했다. 재즈가 꼭 들어갔으면 하던 차에 재즈마타즈(Jazzmatazz)란 제목을 떠올렸다. 재즈와 요란한 행동이란 의미의 래즈마타즈(Razzmatazz)의 합성어인데, 이 래즈마타즈는 앞서 언급한 "Jazz Music"의 가사에 등장했던 단어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의 부제는 '힙합과 재즈의 실험적인 결합(An Experimental Fusion Of Hip-Hop And Jazz)'이었다. 재즈를 샘플링하거나, 힙합 비트에 재즈 연주자가 녹음을 한 경우는 있었지만, 재즈 연주자와 래퍼가 함께 스튜디오에서 인터플레이(Interplay: 연주자들이 상호작용하며 하는 연주)를 하며 녹음하는 경우는 없었으므로 결코 과장된 제목은 아니었다. 그는 이런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없는 게 아닙니다. 배움은 갈구하는 것이죠"라고 말하며 발전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음악의 실험적인 지향과 탄탄한 프로덕션과는 별개로 구루의 랩은 비판을 받았다. 억양의 강세를 조절하며 화려한 랩 플로우를 선보였던 동시대의 래퍼들과는 달리 구루는 모노톤으로 일관했다. 구조적으로도 변칙적인 구성으로 쾌감을 주기보다는 일정하게 흐르는 구성을 택한다. 라임도 단순하고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용되는 편이었다. 이렇다 보니 우탱 클랜(Wu-Tang Clan)의 [Enter The Wu-Tang(36 Chambers)] 등의 동시대 작품들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며 더욱 몰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가 이런 랩 스타일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물처럼 매끈하게 흐르는 랩 플로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령, "Down The Backstreets" 같은 곡에선 재즈 밴드가 연주하는 차분한 연주와 구루의 모노톤 랩이 견고하게 맞물린다. 연주자들의 악기 소리가 구루의 랩을 지탱하는 형태가 아니라, 구루의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로 조화하는 결과를 낸 셈이다.
구루는 앨범에서 <Mo Better Blues>에서 합작했던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를 비롯해 도널드 버드(Donald Byrd), 로니 조던(Ronny Jordan), 로니 리스턴 스미스(Lonnie Liston Smith), 로이 에이어스(Roy Ayers), 코트니 파인(Courtney Pine) 등 여러 재즈 스타를 대거 초빙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컨템포러리 재즈 뮤지션이거나 타 장르와의 조화에 개방적인 뮤지션이다. 물론, 모든 곡을 이들과 함께했던 건 아니다. 진 해리스(Gene Harris),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의 곡을 샘플링한 비트로 기반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서 재즈 뮤지션들과 협연을 펼쳤다.
앨범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는데, 푸른 색상과 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 어둑하게 촬영한 인물사진을 넣어 블루노트 레코즈(Blue Note Records)의 감각을 흉내 냈다. 커버 아트워크 속 사진에서 구루는 마이크를 앞에 두고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데, 이는 어둑하고 담배 연기 가득한 재즈 클럽 무대에 선 싱어를 연상하게 한다. 이런 설정에서 아트 블래키(Art Blakey)의 [The Freedom Rider]나 존 패튼(John Patton) [The Way I Feel]이 연상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4부까지 이어졌다. 물론, [Jazzmatazz, Vol. 2: The New Reality]까진 재즈 뮤지션들과의 협연을 가졌지만, 3집과 4집에선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Guru's Jazzmatazz, Vol. 1]에서 선보였던 재즈 뮤지션과 힙합 뮤지션의 협연이란 큰 의미는 점차 희미해진다. 2007년에 발표한 [Jazzmatazz, Vol. 4: The Hip Hop Jazz Messenger: Back to the Future]가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정규 앨범으로는 [Guru 8.0: Lost and Found]가 최종 작품이다. 그리고 2010년 4월 19일, 구루가 세상을 떠나며 그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가 선보인 재즈와 힙합의 융합은 후대 음악가들에게 두 음악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글 | 류희성
이미지 | ATO
Rest In Peace... GU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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