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무대 위의 언성 히어로, 하이프맨
힙합을 갓 접했던 학창시절, 에미넴(Eminem)의 라이브 공연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었다. 분명 에미넴은 백인 솔로 아티스트라고 주변에서 주워들었는데, 그의 퍼포먼스에는 늘 다른 흑인 청년이 같이 등장하였다. 당시엔 힙합에 문외한인 시기였기 때문에 ‘에미넴이 그룹이었나 봐’라는 귀여운 오해를 했지만, 알고 보니 그 흑인 청년은 지금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에미넴의 음악적 동반자, D12의 프루프(Proof)였다. 당시 그는 에미넴과의 많은 투어와 무대에 동반하며, 환상적인 조력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금부터 다루고자 하는 글은 프루프와 같은 ‘명품 조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들을 통틀어 하이프맨(Hype Man)이라 부른다.

하이프맨이라는 용어에 대해 간단하게 정의해보자면, 무대의 기본적인 백업 랩과 애드립을 담당하여, 공연장의 분위기를 증폭시키는 래퍼를 뜻한다. 호흡 조절과 악센트가 필요한 부분마다 더블링을 쳐주고, 마디 사이사이에 "Yes, Uhhh", "Come On", "Put Your Hands Up"과 같은 추임새를 넣어 호응 유도를 하는 등, 공연의 공간과 여백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한다. 고로 실력 있는 하이프맨이라면 멈추지 않는 에너지, 적절한 애드립, 강력한 목소리, 전체적인 가사 숙지, 메인 공연자와의 호흡 등 많은 기본적인 역량과 자질을 골고루 갖추어야 한다. 하이프맨은 홀로 무대를 채워야 하는 솔로 아티스트들에게는 특히 필수적인 존재이며, ‘헬퍼’의 역할을 넘어 성공적인 공연과 라이브를 책임지는 ‘숨은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슬로터하우스(Slaughterhouse)의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Royce Da 5'9")이 한 인터뷰를 살펴보면 하이프맨이 얼마나 필수적인 존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정말 실력 있는 하이프맨, 키드 비셔스(Kid Vicious)랑 같이 공연하러 다녀, 내가 숨이 찰 것 같으면 미리 알고 도와주고,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지. 나 혼자 무대에 오를 때면, DJ가 애드리브를 해서 도와주기도 하고, 내가 랩 하는 벌스 대부분이 플로우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편이라서, 하이프맨의 도움이 필요하지. 키드 비셔스가 정말 잘해준 덕분에 공연은 늘 성공적이야.”(<How To Rap> 발췌)
현재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많은 래퍼도 그 커리어의 도입을 하이프맨으로 시작하였다. 뉴욕의 왕 제이지(JAY Z)는 제즈오(Jaz-O)와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의 하이프맨으로 활약하며 실력을 키워나갔고, TDE(Top Dawg Entertainment)의 스쿨보이 큐(Schoolboy Q) 역시, 그의 동료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하이프맨으로 씬에 발을 들였다. 국내의 경우를 살펴보아도, 일리네어 레코즈(Illionaire Records)의 수장 도끼(Dok2)는 조PD의 하이프맨으로, 하이라이트 레코즈(Hi-Lite Records)의 비프리(B-Free) 역시, 당시 같은 도깨비즈(Dokkebeez) 크루였던 리오 케이코아(Leo Kekoa)의 하이프맨으로 커리어의 기본기를 다졌다. 이처럼 하이프맨은 단지 부수적인 ‘서브’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씬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이며, 래퍼로서의 기본 역량을 다질 수 있는 잠재적인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하이프맨은 힙합 음악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어떤 저명한 하이프맨들이 씬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그들이 어떠한 커리어를 쌓아왔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Flavor Flav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플레이버 플래브(Flavor Flav)는 가장 대표적인 하이프맨이라고 할 수 있다. 목에 시계를 걸고 다니는 기이한 패션 스타일로 더욱 유명한 그는, 하이프맨 리스트에서 절대 뺄 수 없는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그는 특별한 랩 스킬, 리리시스트로서의 역량, 메인 아티스트로서의 실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당시 최고의 레이블이라 할 수 있는, 데프 잼(Def Jam Records)과 당당히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전설적인 랩 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한 일원으로 힙합 음악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물론 당시 데프 잼의 임원이었던 릭 루빈(Rick Rubin)은 플레이버 플래브의 한정된 역할에 대해 회의를 품고, 척 디(Chuck D)와의 단독 계약을 원했지만, 완강한 척 디의 의사로 인해 둘은 함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플레이버 플래브는 척 디의 거칠고 공격적인 랩 스타일과 상반되는 다소 코믹적인 이미지와 에너제틱한 보이스를 기반으로 곡 중간중간의 공간을 적절히 메웠고, 무대에서는 특유의 화법으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둘의 찰떡궁합으로 인해 퍼블릭 에너미의 정규 2집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은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획득하였다. 플레이버 플래브는 그들의 3집 앨범, [Fear Of A Black Planet]의 싱글 “911 Is A Joke”를 통해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기도 했고, 2006년에는 첫 솔로 커리어 [Hollywood]를 발표하며 한정적이었던 역할에서 벗어나, 주도적인 뮤지션의 역량을 뽐내기도 하였다.

Mr. Porter
과거 D12시절, 콘 아티스(Kon Artis)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미스터 포터(Mr. Porter)는 현재 에미넴의 하이프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재작년에 이뤄진 에미넴의 내한공연이나, SNL(Saturday Night Live)의 무대 등, 미스터 포터는 에미넴의 투어와 공연에 어김없이 참여하며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던 프루프의 사망 이후, 미스터 포터는 에미넴의 하이프맨으로 활약하게 됐다. 그는 안정적인 톤과 자연스러운 호흡을 기반으로 다양한 랩 스타일을 구사하는 에미넴의 스킬을 더욱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미스터 포터는 하이프맨으로도 활약하고 있으나, 이전부터 프로듀서로서 높은 명성을 획득한 아티스트이다. 그는 50 센트(50 Cent)의 "P.I.M.P.",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의 "They're Out To Get Me", 스눕 독(Snoop Dogg)의 "My Own Way"와 같은 히트곡들을 빚어낸 실력파 프로듀서이다. 또한, 에미넴의 솔로 데뷔앨범 [Infinite]부터 <8 Mile> OST 앨범, [The Eminem Show], [Recovery], 배드 미츠 이블(Bad Meets Evil)의 [Hell: The Sequel]까지 참여하며, 그야말로 에미넴이 있는 곳엔 미스터 포터가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많은 협업을 이루어왔다. 서로 래퍼와 프로듀서로서 높은 명성과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희로애락을 같이 겪어온 그들의 우정과 의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Tony Yayo
에미넴에게 미스터 포터가 있다면 50 센트에게는 토니 야요(Tony Yayo)가 있다. 지유닛(G-Unit)의 초창기 멤버로서, 현재는 지유닛의 로컬 레이블인 지유닛 필리(G-Unit Philly)의 수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토니 야요는 50 센트의 성공에 있어, 묵묵히 서포터즈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총기소지 혐의로 인한 감옥생활 때문에 정작 본인은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50 센트의 공연과 무대에 동반하며 하이프맨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 정확한 발음과 깔끔한 랩을 근간으로 하는 토니 야요는, 50 센트의 거칠고 탁한 보이스를 돋보이게 하였고 자연스러운 공연장 분위기를 이끌어 냈다. 동향 출신의 토니 야요는 50 센트에게 있어 가장 신뢰가 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게임(Game)과 영 벅(Young Buck)의 다소 지저분한 이별, 50 센트의 커리어 하향세 등 다소 다사다난한 지유닛의 행보에 토니 야요는 늘 함께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지유닛의 EP 앨범, [The Beauty Of Independence]까지 참여하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토니 야요는 개인적으로도 2005년 데뷔 앨범 [Thoughts Of A Predicate Felon]과 "Pass The Patron", "Haters"등의 싱글을 발표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도 꾸준히 표현해내고 있다.

Memphis Bleek
겟 로 레코즈(Get Low Records)의 CEO이기도 한 멤피스 블릭(Memphis Bleek)은 제이지의 하이프맨으로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자란 둘은 죽마고우로 지냈고, 멤피스 블릭이 랩을 시작함에 제이지가 많은 도움을 주면서 친형제와 같은 관계를 유지해온다. 라카펠라 레코즈(Roc-A-Fella Records)와 계약한 첫 번째 아티스트였던 멤피스 블릭은 제이지의 데뷔앨범 [Reasonable Doubt]와 [Vol. 2... Hard Knock Life], [Vol. 3... Life And Times Of S. Carter], [The Blueprint 2: The Gift & The Curse] 등의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였고, 각종 투어와 공연을 돌면서 제이지와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펼쳤다. 멤피스 블릭은 제이지가 힙합계의 거장이 되고, 뉴욕의 왕관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 핵심적인 서포터즈였다. 또 그는 과거 나스(Nas)와 앨범 표절 문제로 디스를 주고받기도 하며, 힙합 역사상 최고의 비프라 할 수 있는 ‘제이지 VS 나스’의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멤피스 블릭은 앞선 다른 하이프맨들에 비해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결과물도 굉장히 많은 편이다. 오랜 활동경력에 걸맞게 13장의 믹스테입과 5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였으며, 그중에서 [Coming Of Age]와 [The Understanding] 등은 골드를 기록하며 상품성에서도 나름 괜찮은 결과를 창출하였다. 특히 [The Understanding]의 두 번째 싱글이었던 “Is That Your Chick (The Lost Verses)”는 제이지와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 트위스타(Twista)의 피처링에 힘입어 빌보드 랩 차트에서 7위에 오르는 등, 나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멤피스 블릭이라는 래퍼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Spliff Star
트리니다드(Trinidad) 출신의 스필리프 스타(Spliff Star)는 속사포 랩과 몰아치는 플로우로 유명한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의 하이프맨이다. 이 둘은 커리어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돈독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스필리프 스타는 버스타 라임즈의 1집 [The Coming]을 시작으로, "Make It Clap", "We Want In", “Turn It Up (Remix)/Fire It Up” 등 많은 곡에 힘을 더하였고, 각종 무대에 함께 서면서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버스타 라임즈가 설립한 플립모드 스쿼드(Flipmode Squad)라는 프로듀싱 크루에 같이 소속되어, 정규 앨범 [The Imperial]과 5장의 믹스테입을 발매하는 등, 많은 합작품을 선보였다. 스필리프 스타는 2001년, 버스타 라임즈가 독자적인 레이블 콘글로메리트 레코즈(Conglomerate Records)를 설립함에도 물신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등, 음악 내외적으로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둘은 무대 위에서 그야말로 찰떡궁합의 호흡을 선보인다. 친형제인 듯 친형제 아닌 닮은 외모와 오랜 기간 호흡이 느껴지는 무대매너, 유쾌한 이미지까지, 이들이 표출해내는 시너지는 굉장히 에너제틱하다. 특히 스필리프 스타는 무대 중간중간마다 비트박스와 스크래치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버스타 라임즈의 빠른 래핑에 뒤처지지 않는 유려한 플로우를 들려주기도 한다. 속사포 랩을 주 무기로 삼고 있는 버스타 라임즈에게 있어 스필리프 스타의 더블링과 백업 랩은 굉장히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스필리프 스타는 2008년, 자신의 풀렝스 앨범 [Contraband]를 페이퍼락 레코즈(Paperrock Records)를 통해 발표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 매력적인 결과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앞서 하이프맨의 정의, 역할, 대표 인물 등을 구구절절하게 살펴본 이유는 궁극적으로 단 하나다. 하이프맨이 가진 의미와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하이프맨은 그저 그런 백업 래퍼가 아니라, 힙합 음악이 구현되고, 표현됨에 있어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들에 대해 큰 관심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글로 인해, 조금이나마 ‘숨은 영웅’들의 가치가 주목받기를 바라본다.
글 | Beasel
그 부랄친구가 생각나는 글이군요. 잘봤습니다.
포터 티져나온지 3년이나 됐네요 ㅋㅋㅋㅋㅋ ㄱㄱㄲ
8분부터...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