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알려진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해체는 지난 30년간 탄생했던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충격을 안겼을 것이다. 1990년대의 댄스 플로어를 즐겼던 이들부터 2000년대 그들의 전성기를 목격했던 이들, “Get Lucky”를 통해 넘실대는 그루브를 접했던 이들, 위켄드(The Weeknd)의 목소리와 함께 미래적인 사운드에 압도되었던 이들까지도 말이다.
앞선 말처럼, 다프트 펑크의 해체에 대한 아쉬움은 단지 한 세대만의 감정이 아니다. 동시에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에 묶여있지도 않다. 2007년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부름에 응한 이후,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흑인음악 씬의 주역들과 함께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활약을 펼친 덕분이다. 그 업적을 함께 추억하기 위해, 다프트 펑크와 흑인음악 뮤지션들이 맞닿았던 대표적인 순간들을 정리했다.
칸예 웨스트와 “Stronger” (2007)
2000년대 중후반, 힙합 음악은 일렉트로닉 장르의 음악적 요소와 결합하며 변모를 꾀했다. 그리고 이 움직임의 출발점에는 칸예 웨스트의 세 번째 정규 앨범 [Graduation]이 있었다. 앞선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소울 샘플 기반의 사운드로 찬사를 받았던 그는 당대 가장 주목 받는 무기였던 오토튠, 하우스 사운드 등을 끌어들이며 전혀 다른 힙합의 모양새를 깎아냈다. 그랬던 칸예 웨스트가 [Graduation]의 얼굴로 내세웠던 트랙 “Stronger”는 다프트 펑크의 유산과 맞닿아 있었다.
https://youtu.be/PsO6ZnUZI0g
2001년 발매되며 다프트 펑크의 위상을 드높였던 트랙 중 하나인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가 칸예 웨스트의 편곡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힙합 음악으로 재탄생한 것. 하우스 장르의 원곡에서 보컬 샘플을 가져온 뒤, 칸예 웨스트는 더욱 공격적인 드럼, 휘몰아치는 신스음과 냉담한 랩을 얹어냈다. “Stronger”는 각종 차트의 정상에 오르며 대중을 매료했고, 이후 2000년대 후반 ‘힙 하우스’, 혹은 ‘일렉트로합’이라 불린 힙합 음악의 새로운 시류가 만들어지도록 도왔다.
칸예 웨스트는 “Stronger”의 구성을 70번 이상 갈아엎으면서도 원곡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생각에 낙담했지만, 다프트 펑크는 그의 재창조물을 접한 뒤 큰 기쁨을 표했다. 이후 다프트 펑크는 “Stronger”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후 제50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서 선보인 칸예 웨스트의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함께 클라이맥스를 꾸미기도 했다. 당시 만들어진 칸예 웨스트와 다프트 펑크의 연결고리는 이후 이루어질 정식적인 협업의 초석이 되었다.
퍼렐 윌리엄스, 나일 로저스와 [Random Access Memories] (2013)
선구자라는 평가와는 조금 안 어울릴 수 있지만, 다프트 펑크는 ‘정통 일렉트로닉 음악’답지 않은 음악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어 왔다. 아마추어 밴드의 일원으로 시작되었던 둘의 음악은 기존의 하우스 음악보다 더욱 팝적인 색채를 띄고 있었고, 보다 다채로운 사운드를 품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 덕에 둘은 타 장르의 뮤지션들과 어우러지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실제로, 2005년 작 [Human After All]과 2013년 작 [Random Access Memories]는 각각 록 사운드와 디스코/훵크 사운드가 다프트 펑크 특유의 감성과 융화된 프로젝트다.
https://youtu.be/NF-kLy44Hls
이 중 [Random Access Memories]는 ‘올해의 앨범상’을 포함한 총 다섯 개의 그래미 어워즈 트로피를 획득하며 평단의 사랑을, 그리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차지한 앨범이다. 본작을 통해 다프트 펑크는 조르조 모로더(Giorgio Moroder), 판다 베어(Panda Bear), 줄리안 카사블랑카스(Julian Casablancas),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 등 각 장르의 거장을 초대하며 디스코, 일렉트로닉, 훵크, 프로그레시브 록 등의 장르를 한데 아울렀다. 그중 다프트 펑크는 2010년 N.E.R.D.의 싱글 “Hypnotize U”로 한 차례 협업했던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디스코/훵크 그룹 시크(Chic)의 프론트맨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와 함께한 트랙 “Get Lucky”를 내세우며 디스코적인 테마를 앨범의 핵심 콘셉트로 선택했다.
이전까지의 ‘차가운 로봇’ 이미지와 달리, 두 뮤지션과 함께 합주하는 비주얼을 선보이며 디스코 음악 특유의 경쾌하고 활기찬 느낌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이후, 다프트 펑크는 제5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퍼렐 윌리엄스와 나일 로저스, 그리고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함께 매쉬업 무대를 꾸몄다. 그들의 명곡 “Le Freak”, “Another Star”와 자신들의 대표곡이 연결되며 넘실대는 그루브를 선사한 이 장면은 다프트 펑크의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자, 그들과 흑인음악이 가장 밀접하게 맞닿은 순간이기도 하다. 한편, 다프트 펑크는 퍼렐 윌리엄스의 두 번째 정규 앨범 [G I R L]의 수록곡 “Gust of Wind”에 참여하며 또 하나의 디스코 트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칸예 웨스트와 다시 한 번, [Yeezus] (2013)
2013년 5월 발매된 [Random Access Memories]가 한창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던 와중, 불과 한 달 뒤 칸예 웨스트의 [Yeezus]가 세상에 등장했다. 전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의 지향점을 정반대로 뒤집은 듯했던 본작은 ‘뺄셈의 미학’에 극도로 집착한 듯한 미니멀하고 실험적인 프로덕션으로 순식간에 음악 애호가들을 매료시켰다. 한순간에 나누게 된 스포트라이트였지만, 다프트 펑크가 아쉬워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Yeezus] 역시 그들의 손을 거친 덕에 완성될 수 있었던 음반이기 때문이다. 다프트 펑크는 [Yeezus]의 수록곡 중 네 개의 트랙에 참여했다.
https://youtu.be/q604eed4ad0
그중 초반의 세 트랙이기도 한 “On Sight”, “Black Skinhead”, “I Am a God”은 새로움으로 가득 찬 앨범 속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트랙들로 여겨졌다. [Random Access Memories]에서 선보인 따뜻한 연주와 딴 판인 무자비하고 날 선 사운드는 다프트 펑크의 공격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듯했다. 실제로 한 평론가는 “On Sight”을 두고 “누군가는 분명 다프트 펑크에게서 [Random Access Memories] 대신 바랐을 음악”이라고 비유했다. 다르게 말하면, 칸예 웨스트의 [Yeezus]는 힙합 씬과 일렉트로닉 씬의 권위자인 두 팀이 서로의 장르를 끌어안으며 가장 큰 화학 작용을 만들어낸 앨범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칸예 웨스트가 [Yeezus]를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찾은 인물은 다프트 펑크였다고 한다. 그들은 이내 첫 협업물로 “Black Skinhead”를 만들어냈는데, 밝혀진 바로는 이 곡의 드럼 사운드 역시 [Random Access Memories]를 위해 녹음해뒀지만 사용되지 않았던 재료였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어쩌면 다프트 펑크는 지금껏 쌓아두었던 가장 날것의 재료들을 끌어모아 [Yeezus]의 초석을 쌓아올렸던 건 아닐까. “On Sight”의 초장부터 등장하는 귀가 찢어질 듯한 파열음, “Black Skinhead”에서 울려 퍼지는 본능적인 드럼과 “I Am a God”와 “Send It Up”에서 선보여진 긴장감 넘치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까지 말이다.
위켄드와 함께 장식한 마지막, [Starboy] (2016)
몇 년 뒤 2016년, 다프트 펑크는 위켄드와 함께 작업한 싱글 “Starboy”의 발매를 알렸다. 당시 두 번째 정규 앨범 [Beauty Behind the Madness]의 대성공을 통해 팝/알앤비 씬의 새로운 얼굴로 떠올랐던 위켄드는 차기작 [Starboy]를 통해 본격적인 팝스타로서의 발돋움을 꾀했는데, 이를 위해서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운드보다 더욱 댄서블하고 날 선 사운드를 찾아내고자 했다. 그런 그에게 다프트 펑크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내 위켄드는 친분이 있던 멤버 기마누엘 드 오멩크리스토(Guy-Manuel de Homem-Christo)에게 연락을 취했고, 프랑스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들은 “I Feel It Coming”와 “Starboy” 초기 버전을 완성해냈다.
https://youtu.be/qFLhGq0060w
가면 뒤를 향한 궁금증으로부터 생겨난 다프트 펑크의 신비로움은 위켄드에게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위켄드는 [Beauty Behind the Madness]에서부터 뮤직비디오들을 통한 스토리텔링에 온 힘을 쏟았기 때문. 실제로, 첫 순서로 공개된 트랙 “Starboy”의 뮤직비디오는 지난 날의 ‘야자수(?) 위켄드’를 스스로 죽인 뒤 새롭게 등장하는 ‘스타보이’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때 이 스타보이의 저택에서 마치 위인처럼 그려진 다프트 펑크의 전신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이야기 안에서 마치 신화적인 존재처럼 다뤄지는 다프트 펑크는 이후 “I Feel It Coming”의 뮤직비디오에서 스타보이에게 새 생명을 선사한 장본인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다프트 펑크의 해체가 알려진 지금, “I Feel It Coming”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발매한 싱글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다프트 펑크의 지난 세 순간을 톺아본다면, 흑인음악 장르의 팬으로서 큰 감명을 받을 것이다. 하우스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전자음악으로 세상을 흔들었던 그들이 ‘디스코 폭파의 밤’으로 사그라들었던 디스코를 끌어안고 (그것도 그 디스코 폭파의 밤에 충격을 받았던 디스코 밴드 시크의 나일 로저스와 함께) 돌아오더니, [Yeezus]를 통해 힙합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 뒤 위켄드와 함께 2010년대 후반 팝 시장의 주된 흐름이었던 ‘디스코 리바이벌’에 방점을 찍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힙합/알앤비 장르의 팬들도 다프트 펑크의 다음 행보를 무척이나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지만, 아쉽게도 두 로봇은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나기로 선택했다.
다프트 펑크와 흑인음악의 연결고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다프트 펑크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그들의 이름을 널리 알린 앨범 [Discovery]부터가 디스코 황금기의 수많은 뮤지션의 음악을 샘플링하며 탄생한 음반이었다. 앨범의 대표곡 중 하나인 “One More Time”은 1970년대 후반 디스코 황금기에 활동한 뮤지션 에디 존스(Eddie Johns)의 트랙 “More Spell On You”를 샘플링했으며, 또 하나의 대표곡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역시 디스코/훵크 뮤지션 에드윈 버드송(Edwin Birdsong)의 “Cola Bottle Baby”를 잘라 붙이며 탄생했다.
이외에도 [Discovery]에는 리틀 앤서니 앤 더 임페리얼스(Little Anthony and the Imperials), 타바레스(Tavares), 로즈 로이스(Rose Royce), 메이즈(Maze) 등 과거 흑인음악 뮤지션들이 만들어낸 그루브가 잘라 붙여져 담겨 있다. 래퍼들 역시 200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듀오 중 하나였던 그들을 향한 관심을 감추지 않았었다.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는 2005년 싱글 “Touch It”을 통해 다프트 펑크의 “Technologic”을 샘플링했고, 다프트 펑크가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2010년도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에는 제이지(JAY-Z)와의 미발매 협업곡이 실릴 뻔하기도 했다.
https://youtu.be/ncnBz6A14i0
이렇듯 두 로봇이 쏘아 올렸던 주파수는 일렉트로닉 씬을 넘어, 각 시대의 팝 시장과 힙합/알앤비 애호가들에게까지 골고루 닿으며 그들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그들의 작업물은 때로는 가장 냉철하고 비인간적이었으며, 때로는 가장 따뜻하고 진심 어렸다. [Random Access Memories]로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할 때조차 ‘로봇 콘셉트’와 함께 침묵으로 초지일관했던 다프트 펑크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동시에 느껴진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다프트 펑크의 다음 행보를 목격할 수 없게 됐지만, 해체를 알리면서 공개한 영상 ‘Epilogue’를 보고 있으면 마치 두 로봇의 영화 같은 ‘음악사 정복기’를 이제서야 다 감상한 것 같은 후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정말이지, 갈 때마저 예술로 가는 그들이다.
https://youtu.be/DuDX6wNfjqc
Editor
snobbi
정리 정말 감사합니다!! 글 재밌게 잘 읽었어요
다펑 해체는 진짜 너무너무 아쉬우면서도 정말 갈때도 다펑처럼 가는구나 싶어서 또 대단하고.. 여러 감정이 동시에 듭니다.
안녕..다프트펑크...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펑은 정말 좋은 로봇들이었어요
3000만큼 사랑했다..
....ㅠ
너무 좋은 글이네요
하 해체 이유라도 발표해줬으면.....ㅠㅠ
블랙스킨헤드도 다펑 곡인줄은 몰랐네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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