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TODAY
신인 래퍼들과 베테랑 래퍼들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할 수 있을까. 지난해, 멈블랩의 대표 주자 중 하나로 떠오른 릴 야티(Lil Yachty)는 '투팍(2Pac)과 비기(Biggie) 음악을 꼭 들을 필요 없다'고 발언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릴 펌(Lil Pump)과 제이콜(J. Cole) 사이에 있던 트러블이 이슈였다. 지금이야 화해(?)했다지만, 힙합 씬에서 가장 뜨거운 두 래퍼가 신구 문제로 비프를 치렀다는 사실은 이 같은 갈등이 앞으로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심지어 힙합 씬에 속해 있지 않은 NBA 플레이어 론조 볼(Lonzo Ball) 같은 선수들마저 ‘요즘엔 아무도 나스(Nas)의 음악을 듣지 않아. 진짜 힙합은 퓨처(Future)와 미고스(Migos)' 같은 발언을 해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같은 장소에 살지만, 두 층으로 나뉜 것 같다’는 조이너 루카스(Joyner Lucas)의 가사처럼, 어쩌면 힙합 씬은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베테랑들의 행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직접 훈계하려 하면 싸움만 커질 뿐이다. 훈계보다는 긍정적인 본보기가 되어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해야 한다. 그러니 개인마다 조금씩 견해 차이는 있겠으나, 베테랑 래퍼들이 단순히 신인들과 논쟁하기보다는 또 다른 신인을 발굴하고, 이끌어 주는 분위기가 씬에 형성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씬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더 넓게는 커뮤니티 전체를 위해서 행동하는 것도 베테랑의 도리이지 않을까 싶다. 비록 지금은 갈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지만, 그런 활동 하나하나가 머지않아 신세대와 구세대 사이 간격을 좁힐 거라 믿는다. 수가 많지는 않아도 여기 그 역할을 해내는 베테랑 래퍼들이 있다. 흑인 커뮤니티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때론 인권을 위해 공권력에 대항하며, 지역 후배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관록 넘치는 두 래퍼, 티아이(T.I.)와 스눕 독(Snoop Dogg)이다.
근래에 힙합을 접한 팬들에게는 티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과거 트랩 뮤직의 부흥을 이끈 래퍼, 혹은 남부 힙합의 왕, 그것도 아니면 한물간 래퍼쯤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티아이의 최근 작업물들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티스트로서 행보가 멈춰 있는 건 아니다. 마약 밀매와 중화기 소유 등 지난 과오를 뉘우치기라도 하듯, 그는 현재 흑인 인권을 위해 애쓰는 대표적인 아티스트이자 활동가로 거듭났다. 흑인 아이를 내세운 H&M 인종차별 사건 때도 가장 큰 목소리를 낸 게 티아이였다. ‘모든 아티스트와 한 문화에 대한 무례’라고 말하며 세계 최대 기업을 향해 쓴소리를 날렸었다. 그런가 하면, 앨턴 스털링(Alton Sterling), 필란도 카스틸(Philando Castile) 피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애틀랜타(Atlanta) 시위대에서 선두로 나섰었다. 두 흑인 남성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더 이상의 인종차별을 막기 위해 길거리로 뛰쳐 나와 시위대를 이끈 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도 더 게임(The Game)과 함께 LAPD의 과잉진압을 정면으로 맞선 적이 있다. 자신이 아무리 유명하고 돈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반면, 티아이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행동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 Hustle Gang (Feat. T.I., RaRa, Brandon Rossi, Tokyo Jetz, Trae Tha Truth, Young Dro) - Friends
사회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티아이는 현재 힙합 씬에서 자신이 주목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보다는 지역 신인 아티스트를 비롯해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힘쓰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운영해 온 레이블인 그랜드 허슬(Grand Hustle)의 색깔이 과거와 다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런던 재(London Jae), 라라(RaRa), 도쿄 제츠(Tokyo Jetz), 트랜스리(Translee). 모두 미국 힙합 씬에 정말 해박한 팬이 아니라면 익숙하지 않을 신진급으로, 지난 2년 사이에 티아이가 레이블로 영입한 아티스트들이다. 티아이는 이들과 함께 지난해 10월, 레이블 컴필레이션 앨범 [We Want Smoke]를 발표하기도 했다. 영 드로(Young Dro), 트래 다 트루스(Trae tha Truth) 등 비교적 베테랑 래퍼들이 지원사격하기도 했지만, 앨범은 이렇다 할 빅 네임이 없어 상업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열일곱 곡, 한 시간 이상의 러닝타임을 지닌 앨범의 실패가 아쉬울 수도 있지만, 티아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그 이후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신인들을 위해 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쯤이면 베테랑으로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긍정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Snoop Dogg
힙합 씬의 대표적인 OG이자, 손꼽히는 크립스(Crips) 갱 래퍼인 스눕 독(Snoop Dogg). 그도 최근 활동가 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여러 인종차별 사건을 두고 흑인 커뮤니티를 위한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하곤 했는데, 대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향한 발언이 있다. 스눕 독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이제 진짜 내 집은 토론토’라며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했다. ‘트럼프를 위해 어떤 흑인 아티스트가 공연할지 지켜보자’는 경고성 다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나아가 도널드 트럼프의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을 비꼰 뉘양스의 EP [Make America Crip Again]을 발표했었는데, 수록곡 “M.A.C.A.”에서는 곡 전체를 할애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래퍼이기에 유명인으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을 음악 속 메시지로 전달한 것이다. 물론, 정치적 색깔, 성향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를 바라보는 태도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다만, 그간 도널드 트럼프가 흑인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해보면, 이 같은 설파는 오랜 기간 씬에서 활동해 온 흑인 아티스트로서 커뮤니티에 던질 수 있는 진언일지도 모른다. 외에도 스눕 독은 동료 아티스트라고도 할 수 있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었다. TMZ가 악마의 편집을 했다든지, 이후 해명이 있었다든지 뒷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한창 논란이었던 ‘노예 제도는 선택적이었다"는 발언의 반론이었다. ‘칸예 웨스트, 백인이 다 됐다’는 뉘양스의 코멘트를 남겼는데, 거리가 멀어질 수 있는 말이었음에도 거침없었다.
♬ Snoop Dogg - M.A.C.A.
여기까진 힙합/알앤비 아티스트라면 으레 할 수 있는 행동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 스눕 독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바로 더 게임과 함께 블러드(Bloods)와 크립스 갱단 간 평화 조약을 맺은 것이다. 블러드와 크립스 갱단은 과거부터 각종 범죄로 악명을 떨쳤고, 그들끼리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어두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블러드 대표로 나선 더 게임과 크립스 대표로 나선 스눕 독은 조약을 맺으며 최소한의 평화 기류를 이끌어냈다. 단, 실제 길거리의 속사정은 다를 수 있으나, 갱단의 OG이자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서 이 같은 조약을 이끈 건 그 자체로 박수받을 만했다. 뮤지션으로는 최근 음악보다 마리화나 사업에 집중하기도 하며, 앞날이 창창한 다른 플레이어들을 위해 자리를 넘겨주는 듯한 느낌도 준다. 2000년 발표한 [Tha Last Meal]이나 2004년 작 [R&G (Rhythm & Gangsta)], 2015년 작 [Bush] 등 종종 팝적인 요소가 묻어나는 앨범을 발매하곤 했지만, [Bush] 이후부터는 색깔을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 보다 자신의 철학이 깃든 음악을 한다고나 할까. 앨범 커버 아트워크부터 향수 어린 [Neva Left], 언젠가 가스펠 앨범을 내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된 [Bible of Love]가 대표적이다. [Bible of Love]는 빌보드 가스펠 앨범 차트에서 의외로 1위를 차지했었다. 그렇다고 최근작들이 대체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스눕 독은 지금 같은 행보를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마치 티아이가 씬에서 한발 물러나 신인들의 조력자 역할을 하듯, 스눕 독도 씬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개인의 철학과 씬의 다양성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CREDIT
Editor
Urban hippie
오랜만에 보는 좋은 피쳐네요 잘 읽었습니다!
두 래퍼 다 제가 좋아하는 래퍼네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