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아티스트가 해외 투어를 다니거나, 코첼라(Coachella) 같은 유명 해외 뮤직 페스티벌이 있을 때, 한국 사람들은 손가락만 쪽쪽 빨아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래퍼들은 아직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로 껴있는 한국만 오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니 한국의 힙합 팬들이 5년도 더 된 에미넴(Eminem)의 내한 공연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거나, 딱 8년 전 이맘때쯤 동해안 낙산해수욕장으로 내한을 왔던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고깃집 수트 인증샷 같은 건 다신 없을 일이라고 말할 만도 하다. 시간이 지나도 그 순간들이 꾸준히 언급되는 건, 아마 거장에 가까운 아티스트를 공연장에서 직접 영접(?)한다는 게 얼마나 강렬한 경험인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018년 여름, 우리는 또다시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King Kendrick',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한국에 온 것이다.
본격적인 공연 후기에 들어가기 전, 이번 내한 공연은 한마디로 땀과 함께한 공연이었다. 더워서 흐르는 땀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선, 이제는 힙합을 넘어 팝 음악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아는 켄드릭 라마이기에 티켓팅부터 무척 치열했다. 몇 년 사이에 엄청난 거물이 된 그가 두 번 세 번 한국에 올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티켓팅은 대학교 수강 신청을 방불케 했다. 그 엄청난 속도에 밀려 진땀 흘려가며 좋은 자리를 공략했지만, R 구역에 실패한 S 구역 관람자, 혹은 리셀러들의 횡포로 S 구역조차 실패한 모든 이에게 위로를 전한다. 티켓을 구했을지라도 무시무시한(?) 공연 일시가 또 한 번 제대로 땀을 빼게 했다. 공연일은 7월 30일, 평일에 심지어 월요일이었다. 아마 이 공연 때문에 휴가를 미루거나, 학원 수업, 알바 시간을 빼거나, 회사에 연차를 낸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여름 더위가 절정이다 못해 1994년 여름을 회자하게 하는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외출하는 순간 불가마에 들어온 듯한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숨이 턱턱 막혔지만, 그조차도 켄드릭 라마를 보기 위한 관객들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이렇게 이번 켄드릭 라마 내한 공연은 땀으로 범벅된 공연이었다.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어쨌든 그 모든 땀과 노력이 한 데 모여 좋은 에너지를 이루어냈기에 공연이 인명 사고 같은 큰 일 없이 잘 마무리된 게 아닐까.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4 KENDRICK LAMAR.> 셋리스트
DNA.
ELEMENT.
King Kunta
Big Shot
Goosebumps
Collard Greens
Swimming Pools (Drank)
Backseat Freestyle
LOYALTY.
Money Trees
XXX.
m.A.A.d city
LOVE.
Bitch, Don't Kill My Vibe
Alright
HUMBLE.
All Th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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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what the f**k is up?!
공연 예정 시각은 8시, 입장 시작 시각은 그보다 한참 이른 6시 30분부터였다. 그런데도 많은 관객이 공연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입장하지 않고 공연장 밖에 있었다. 모두 지연 입장 줄로 따로 입장해야 했다. 아마 다들 대기 장소였던 주 경기장에서 엉망이 되어버린 줄, 옆 사람과 뒷사람의 따뜻한(?) 숨결로 극한의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입장하며 제공 받은 생수 페트병이 미지근하다 못해 뜨거워졌을 정도니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괜하게 상상해서 기분 나빠지지 말자.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오로지 한국에서 켄드릭 라마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라이브 공연을 본다는 기대감만으로 자연과 인간이 주는 고초와 시험을 버텨냈다. 그리고 8시 정각이 되자 신속히 공연장인 보조경기장으로 움직여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첫 곡을 놓칠까 봐 잰걸음으로 S 구역에 진입하는 찰나, 익숙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I got, I got, I got, I got"
첫 곡으로 "DNA."를 부르며 켄드릭 라마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Loyalty, got royalty"를 이어 외치며 인파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다음 가사인 "inside my DNA"부터는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R석과 S석이라는 신분 격차(?)도, 켄드릭 라마에게 완전히 다가갈 수 없게 하는 바리케이트도 없어졌다. 하나 되어 미쳐 버렸을 뿐이다. 라이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녹음된 앨범과 똑같은 선명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로 깔린 밴드셋의 드럼 소리를 상기하고 나서야 지금 내가 듣는 소리들이 모두 라이브라는 걸 실감했다. 가사 중에 'DNA'가 나올 때마다 다 같이 더블링을 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고, 그 분위기 그대로 "ELEMENT."까지 이어가며 스타트를 끊었다. 그제야 켄드릭 라마가 한국 팬들을 향해 첫 운을 뗐다.
"Korea, what the f**k is up?!(한국, 씨X 잘 있었냐?!)"
고삐는 풀렸다. "King Kunta", 영화 <블랙 팬서>의 OST 앨범에 수록된 "Big Shot", 트래비스 스캇(Travi$ Scott)의 "goosebumps", 스쿨보이 큐(ScHoolboy Q)의 "Collard Greens"까지, 열기는 계속되었다. 땀 흘리며 대기하던 팬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에어컨 바람은 아니더라도 어떤 축복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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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PUT Y'ALL TO THE TEST
마치 이게 공연의 1부라는 듯이 비교적 최근 곡들을 선보이고 잠시 틈이 난 순간,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켄드릭 라마가 관객들을 향해 말했다.
"한국, 너희가 내 큰 팬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너희들을 한번 테스트 해보지."
테스트라니, 무슨 소린가 싶어 어리둥절한 관객들이 술렁였다. 조명 하나 켜지지 않은 암흑 상태, 수중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무겁고 어렴풋한 비트가 새어 나왔다. 어느새 6년 전 발매된 [good kid, m.A.A.d city]의 히트 싱글 "Swimming Pools (Drank)"의 인트로였다. 팬들은 직감적으로 'Pour Up'이 나올 걸 알아차리고선 곧바로 'Drank!'를 외쳤다. 켄드릭 라마와 관객과의 호흡은 죽 이어졌다. 테스트를 무난하게 통과하나 싶을 때쯤, 우리를 진짜 시험에 들게 한 건 그때부터였다. 곡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비트가 멈춘 것. 모두가 당황했지만, 켄드릭 라마는 침착하게 무대를 이어나갔다. 관객들의 "Drank!" 더블링도 다시 이어졌다. 이후로도 자잘한 음향 사고가 한 번 더 일어났었는데, 이렇게 되면 공연 운영팀은 이번 테스트에서 F일지도?
사실 이번 켄드릭 라마 내한 공연은 앞서 언급한 순간들 말고도 테스트 천지였다. 엄청난 폭염에도 함께 공연을 즐겼다는 것만으로 일단 테스트 하나를 통과한 느낌이었다. 실은 그보다는 지난 5월, 켄드릭 라마가 가사 속 'Ni**a'를 뱉은 관객을 제지한 해프닝에서 비롯된 엔워드(N-Word) 이슈가 굉장한 테스트였다. 관객 중 대부분이 가사에 들어 있는 엔워드를 외치기를 꺼렸었다. 해당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갑분싸'가 될 정도였다. '가사 중 일부분인데 꼭 그래야만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켄드릭 라마의 한국 팬들이 단지 그의 음악만 듣는 게 아니라 그의 행보와 이슈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지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켄드릭 라마는 공연 내내 자신이 캘리포니아에서 이곳까지 멀리 날라왔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과연 그는 10시간 넘게 장거리 비행해서야 오고 갈 수 있는 공간에서 자라온 방식이나 문화, 역사적으로 전혀 무관한 먼 대륙의 사람들이 자신을 이렇게나 관심 있게 지켜본다는 걸 알까? 그 마음과 마음을 알아주었으니 아마 다음 이 말을 남기고 떠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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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BE BACK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good kid, m.A.A.d city], [To Pimp a Butterfly], [DAMN.], 그리고 가장 최근인 <블랙 팬서> OST 앨범까지, 다양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최근 곡 위주로만 하면 아쉽겠다 싶기도 했지만, [good kid, m.A.A.d city]의 수록곡을 다섯 곡이나 했으니 기우였다. 특히, "Money Trees", "Bitch, Don't Kill My Vibe"에서는 유독 밴드셋이 인상적이었다. 앨범으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일렉 기타와 드럼 비트가 강조된 연주가 익숙한 전개를 깨 신선한 번외편처럼 다가왔다. 또, "XXX."를 부를 때는 곡 컨셉에 맞게 성조기 영상으로 시각적 요소도 제공하며 화려한 무대를 꾸몄었다. 앞서 말한 "Goosebumps", "Collard Greens" 같은 피처링 트랙을 듣는 것도 공연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사실 일본에서 먼저 진행되었던 <후지 락 페스티벌(FUJI ROCK FESTIVAL)>의 셋리스트를 보고서 한국도 똑같지 않을까 예상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많은 변화가 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앨범 외 곡을 약간 추가한 격이라 알게 모르게 받은 보너스라고 할 수 있겠다. 본심은 몰라도 아시아 투어를 돌며 으레 한국을 잠시 거쳐 가는 곳 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은 걸 거라고 보면 적절할까.
다만, 중간 브레이크타임에 나온 영상은 조금 미스라면 미스였다. 최근 아시아를 타겟으로 하는 켄드릭 라마가 중국을 배경으로 쿵푸로 깨달음을 얻는 영상이었다. 알겠지만, 같은 동북아시아여도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많이 다르기에 내용이 한국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는 썩 어려운 편이었다. 그러기 어려웠겠지만, 좀 더 로컬라이징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기적인 아쉬움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래도 영상의 백미, 여의주를 얻고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짓는 미소천사 켄드릭 라마의 귀요미 페이스가 그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공연장에서 여느 남자 아이돌 그룹 '공방' 현장 못지않은 여성들의 환호를 들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8시 10분부터 1시간 동안 열심히 달려와 1시간 만에 끝난 공연. 진땀을 빼며 기다렸던 팬들의 마음을 달래기엔 너무나 짧았다. 그 마음을 아는 듯이 켄드릭 라마는 마지막으로 약속할 것이 있다며 한 단어씩 또박또박 외쳤다. 관객들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따라 했다.
I
WILL
BE
BACK!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켄드릭 라마의 약속과 함께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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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많고, 힘든 점도 많은 공연이었다. 그 와중에 같은 장소에서 켄드릭 라마와 교감했고, 그 경험은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 또 SNS 영상으로만 보면서 입맛을 다셔야 했던 '아링낑낑' 떼창을 한국에서 할 수 있을까? 설령 립서비스라고 할지라도 직접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몇 년이 지나서라도 다음 공연이 있었으면 한다. 그때는 땀도 덜 흘리고, 시험에 당하는 일도 덜 하고, 공연 그 자체를 더욱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즐길 수 있기를 고대한다.
쿵푸 케니는 요즘 켄드릭이 얼터이고로 밀고 있는터라 로컬라이징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 한국에 왔으면 태퀀 케니라도 해줬어야한다는 말씀이신지..? 저 대목만큼은 전혀 공감을 못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켄드릭 PRIDE. 불렀나요...? 나머지는 다 기억나는데...
공식적으로 배포된 셋리스트에는 "PRIDE."가 포함되어 있으나, 실제 공연시에 부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어 수정하였습니다. 혼란 드려서 죄송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쿵푸 케니는 요즘 켄드릭이 얼터이고로 밀고 있는터라 로컬라이징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 한국에 왔으면 태퀀 케니라도 해줬어야한다는 말씀이신지..? 저 대목만큼은 전혀 공감을 못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 생각
오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 읽었습니다..ㅋ
읽으면서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나네요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 ㅋ
잘 읽었습니다!! SiR 오프닝 소개가 없어서 다소 아쉬웠네요ㅎㅎ 재밌었는데
무튼 진짜 재밌었어요 한 이틀 지나니 힘들어서 더 재밌었던 기억인 것 같기도 하구요ㅎㄹ
아시아를 타겟... 이거 뭔소리하시는건지 이해가 잘 안가네요. damn 앨범의 컨셉이기때문에 그런 영상을 준비했다는걸로 충분한데 아시아를 타겟... 로컬라이징... 무슨 근거라도 있는 얘긴가요? 북미에서 콘서트할때도 똑같은 영상 재생하는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부 럽 다 !
관객들 가사 모르던 순간 많아서 켄드릭 당황 몇번한거같은데...
절레절레
쿵푸랑 아윌백은 어느나라 투어가서도 똑같이 해줍니다.
??ㅋㅋ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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