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은 존재하는가?' 급속도로 발전한 학문과 수많은 생명의 비밀이 밝혀진 현재에 이르러서도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은 없다. 악마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삶이 극단적으로 힘들어지고 불행만이 자신을 따라온다 싶으면 신에게 구원을 청하거나 악마가 곁을 떠나기를 기도할 뿐이다. 분명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그 두 존재를 애써서 찾고 내쫓으려 한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도 정답이란 없을 그들의 존재 여부, 그렇다면 아티스트들은 과연 신과 악마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노래 안에 담아냈을까?
의심하다
Big K.R.I.T - Angels & Raury - Devil’s Whisper
"신도 사람들처럼 그저 세상을 TV처럼 보며, 좋아하는 부분만 되감기하며 시청하는 건가요?" 빅 크릿(Big K.R.I.T.)이 참여한 라우리(Raury)의 곡 "Forbbiden Knowledge" 속 가사 중 일부분이다. 두 아티스트는 지금 세상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각박하고 잔인하다는 공통된 생각을 하는 듯하다. 단, 각자의 곡에서는 신앙심을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쳐 놓은 바 있다. 우선, 빅 크릿의 “Angels”이다. 빅 크릿은 천사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신의 본성을 의심한다. 그는 암담한 자신의 현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신은 행복을 주지 않으며, 천사들도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을 것”이라며 하늘에 떠 있는 먹구름을 천사들이 뿜는 연기에 비유한다. 고된 삶을 견디고 있던 그에겐 신이 선한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반면, 빅 크릿과 같이 남부를 기반에 두고 음악을 시작한 라우리는 “Devil’s Whisper”에서 악마의 꼬드김을 노래한다. 초반부에서 악마가 그에게 하는 제안은 곡 제목처럼 전부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라우리는 연설을 방불케 하는 후반부 벌스와 코러스에서 이에 휩쓸지지 않으려 하며 악마에게서 도망치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악마에게 씌인 모습을 흰색 눈동자로 표현한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라우리의 눈동자 색깔은 화면에서 뚜렷하게 보이지 않으며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접하다
Khalid - Angels & XXXTENTACION - I spoke to the devil in miami, he said everything would be fine
우리는 주변에서 영적인 존재를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생각보다 쉽게 듣곤 한다. 보통은 이렇다 할 증거가 없고 당사자의 기억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쉽사리 무시당하곤 하나, 그들의 목소리에서 확신이 묻어날 때면 마냥 흘려듣기 어렵다. 우리들의 친구, 젊은 싱어 칼리드(Khalid) 또한 자신이 천사를 접했던 경험을 “Angels”에서 꽤나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칼리드는 본인 집의 ‘거실’에서 천사들을 만났던 경험을 노래한다. 심지어 그들의 향기까지 자세하게 떠올린다. 그는 이들에게 힘을 얻었기에 눈물을 닦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용기를 얻는 과정을 천사를 만났다고 표현했을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칼리드는 지니어스(Genius)를 통해 직접 곡 배경을 설명하며 천사를 만난 게 실제 경험임을 단언한다. "말 그대로(literally) 만질 수가 있었다"고.
한편, 텐타시온(XXXTENTACION)은 긴 제목의 무료 공개곡 “I spoke to the devil in miami, he said everything would be fine”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가사에 따르면, 악마가 그에게 “네가 원하는 것이 곧 네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네 영혼은 이미 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텐타시온은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범죄 행각들로 스스로 악한 이미지를 부풀렸다. 이후에는 앞으로 반성하고 선행할 것을 예고하고, 실제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고로 텐타시온이 세상을 떠난 지금, 우리는 그를 향한 뒤숭숭한 감정만 씻어내고 있을 뿐이다.
받아들이다
Chance the Rapper - Blessings & Gucci Mane - Dance with the Devil
20억 명이 넘는 이들이 믿는 종교답게, 기독교는 힙합 장르 안에서도 래퍼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신앙이다. '크리스찬 힙합'을 표방하며 커리어 전체를 신앙심 전파에 힘쓰는 래퍼들도 있을 정도다.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는 이들을 포함하고서도 자신의 신앙을 가장 파급력 있게 드러내는 래퍼 중 하나다. 실제로 그는 세 번째 믹스테입 [Coloring Book]에서 가스펠에 영향받은 사운드를 전체에 걸쳐 활용하며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이 믹스테입의 다섯 번째 트랙 “Blessings”는 그의 신앙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트랙이다. 찬송가를 연상케 하는 코러스가 이를 가장 명료하게 드러낸다. 챈스 더 래퍼는 각 벌스에서 신이 그에게 내려준 삶의 선물과 자신의 영향력과 책임감을 노래한다. '축복'이라는 주제는 아웃트로격은 동명의 곡 “Blessings (Reprise)”에서 다시금 등장해 대미를 장식한다.
그런가 하면, 구찌 메인(Gucci Mane)은 프로듀서 메트로 부민(Metro Boomin)과 함께한 앨범 [Droptopwop]의 수록곡 “Dance with the Devil”에서 악마를 선뜻 끌어안는다. 음산함이 묻어나는 비트 속에서 "악마와 느린 춤을 추며 히히덕거리고 있다"고 읊조리는 훅은 비트와 엉켜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구찌 메인은 이 곡은 물론, 다른 곳에서도 악마나 주술에 관한 무게 있는 메시지를 전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공장장에 가까운 작업량과 문신으로 뒤덮인 강렬한 그의 외모는 혹시 악마와 거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게 한다.
둔갑하다
Lil Peep - Angeldust & Danny Brown - Hell For It
음악 안에서, 특히 힙합의 범주에서 개개인의 캐릭터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아가 아티스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많은 래퍼가 자신을 무언가에 비유하며,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반응을 일으키는 아티스트들은 단숨에 유명세를 얻기도 한다. 릴 핍(Lil Peep)은 ‘이모(Emo) 힙합’이라는 음악적 정체성 속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정립했었다. 수많은 ‘릴 래퍼’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영역을 차지했던 아티스트였다. 그는 “Angeldust”라는 2분이 채 넘어가지 않는 곡 안에서 자신을 천사로 정의한바 있다. 쓸쓸한 기타 리프와 드럼만이 뒤를 받친다. “마이크를 통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고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려 있다. 릴 핍이 약물 중독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지금, 곡은 더욱 무겁게만 다가온다.
비슷한 시기,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은 [Atrocity Exibition]의 마지막 곡인 “Hell for It”에서 악마의 역할을 자처한다. 예전의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하대했던 이들에게 지옥을 보여주겠다며 외친다. 자신의 내면에서 튀어나온 악마를 등 뒤에 두고 있다는 가사는 그의 주장에 시각적인 이미지를 매칭시킨다. 공격적으로 토해내는 울분과 깨달음은 대니 브라운 특유의 목소리 톤, 그리고 싸이키델릭한 플로우와 맞물려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튀는 외모와 목소리가 우스꽝스러워 보였을 대니 브라운의 캐릭터는 앨범의 가장 마지막 순서에서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예고와 함께 강한 여운을 남기며 '장난스러운, 광기에 찬 악마'로 제대로 재정립한다.
CREDIT
Editor
snobbi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굿!잘읽고 가요!
요즘 신앙의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데 래퍼들의 생각을 쉽게 나열해주시니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텐타숑 저곡 마지막부분은 진ㅁ짜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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