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리뷰는 H.O.M #19에서 멋진 디자인과 함께 읽어보실 수도 있습니다(갠적으로 진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에요)
https://drive.google.com/file/d/1gch2DQ29IqXBjoFS07DrGMpF6b0rdMfV/view?usp=drivesdk
우리 삶에는 온기가 필요하다. 특히 겨울엔 서로의 손을 맞잡고 품을 나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겨울이다.
전쟁터에서 기계가 사람을 죽인다. 가족을 잃은 사람은 혼자 남겨져 자살하거나 고독사한다. 냉소만 가득한 인터넷은 서로 편을 가르며 물어뜯기 바쁘다. 나의 행복을 과시하고 타인의 불행을 외면한다. 삶에 패배주의가 팽배해 미래를 생각지 못하고 현재의 욕망에 매여 산다. 피부가 약해 다른 이를 돕지 못하고 스스로 만든 동굴로 숨어든다. 정부는 소외된 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양극화된 경제는 계층 갈등을 부추긴다. 세상은 우리를 구하지 못하고 차디찬 황야와 같은 세상에서 인간은 점점 메말라간다.
그리고 여기, 씨피카가 피워놓은 모닥불이 하나 있다. 이런 얼어붙은 세계에서 우리에게 온기를 전해줄,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작은 장소가 있다. 마련된 자리는 모닥불을 둘러싸고 둥그렇게 오밀조밀하게 놓여있다. 앉으면 씨피카가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연결‘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 연쇄적인 만남과 헤어짐이 여러 갈래의 그물망을 만들고 인간은 그 그물망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점점 관계 사이의 진정성이 소멸되고 있는 요즘, 인간은 점점 고립되고 소외된다. 연결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 끊어진 연결망을 복구하려는 듯 씨피카는 계속해서 ‘당신‘에게 닿고자, 곁에 있고자 한다. 앨범은 마치 세레나데를 모아놓은 듯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표현들로 가득하다. 당신과의 첫만남은 “View”에서 시작된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기다리고 바라던 당신을 발견한 반가움과 설렘이 트랙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Little Drama”는 당신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시선이 사랑스러운 문장으로 쓰여있다. “Hand in Hand”에서는 소중한 이를 구원하는 방법이, “Brush”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세상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앨범과 동명의 곡인 “Bonfire”에는 계속되는 좌절에도 동료들의 목소리와 함께 견뎌내고 버텨내는 씨피카가 있다. “Heart Piece Collector”는 깨지고 조각난 이들의 마음을 기워 붙여 나가는 치유의 노래다. 그렇게 기워낸 마음들은 “Totem”이 되어 모두의 상처를 끌어안는다.
씨피카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좌절과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저 주저앉아 있지도 않다. 주위에 있는 사람과 함께, 노래를 듣는 당신과 함께 손을 부여잡고 등을 다독여가며 계속해서 일어서고 버텨낸다. 그 힘이 온기를 가진다. 모닥불은 사람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은 온기를 나눠가지며 하나가 되어간다. 모닥불의 온기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덥혀주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치유받고 위로받는다. <Bonfire>를 듣는 이는 씨피카의 숨김없이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상처를 꺼내보게 되고 보듬어보게 된다. 그게 이 앨범의 제목이 모닥불인 이유이고, 이 앨범을 들으면 치유받는 경험을 하게 되는 까닭이다.
앨범의 사운드는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눈에 띄는 지점은 장르의 다양성이다. 전자음악을 베이스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 팝, 엠비언트, 포크 등의 다양한 장르를 얹어 낸다. 특이한 점은 그렇게 다양한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앨범 전반에서 자연과 원시의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Bonfire>의 인스트루멘탈에서는 따뜻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아마도 가상악기가 아닌 직접 연주한 악기로 녹음한 것도 앨범의 이런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낸시보이도 특유의 전자적이면서도 깊이있는 사운드로 앨범 전체를 연결했다. 그 위에 얹어진 씨피카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앨범이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할 수 있었다.
온기는 생명을 살린다. 점점 차가워지는 세상에서 생명들은 얼어붙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함께 모여야 한다. 손을 맞잡고 깊게 끌어안아야 한다. 옛날 우리의 먼 선조들이 그랬듯이, 한데 모여 모닥불을 피우며 추위와 싸우고 고독을 이겨내야 한다. 씨피카는 하나의 모닥불을 피웠고, 불씨를 옮겨 담아 새로운 모닥불을 만들어야 하는 이들은 함께 불을 쬈던 우리다. 그렇게 옮겨간 불씨가 하나둘 늘어나다 보면 이 추운 겨울, 시린 세상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이 앨범을 들음으로써 당신도 그 온기를 받았으니, 생명을 살릴 불씨를 지녔으니 함께 또 다른 모닥불을 피워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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