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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도 아닌 ‘그냥’ 음악 또는 그냥 ‘음악’, JUST MUSIC - <파급효과>

title: Dropout Bear (2004)Writersglock2024.05.16 20:39조회 수 817추천수 5댓글 2

https://drive.google.com/file/d/1cqBqhG5n3kwH6n38QQAQwAzrUtA9PzX6/view?usp=drivesdk


* 해당 리뷰는 양질의 디자인과 함께 H.O.M #12에서 읽으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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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임금을 숙(熟)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고 한다. 숙과 홀은 수시로 혼돈의 땅에서 서로 함께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치밀하고 은근히 잘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보답할 생각으로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일곱 구멍(七孔)이 있어서 그것으로써 보고 듣고 먹고 호흡을 하는데 그만은 유독 없다. 시험삼아 그것을 뚫어주자"
매일같이 한 구멍씩 뚫었더니 칠일 만에 혼돈이 죽어버렸다.

 - 장자 내편 응제왕 중에서


 흘러 넘친 재능은 주위를 충격으로 휩쓸고 수많은 사람들을 씬의 중심으로 끌어당겼으며, 그 함선에 같이 올라탄 이들은 치켜든 손바닥의 물결 사이에서 목소리 높여 추앙 받았다. 빠르게 번져나간 영향력은 정체되어가던 씬의 영토를 다시 확장하는데 크게 일조했으며, 공연장에서는 쏟아지는 소나기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무아지경으로 뛰어놀았다. 폭발하는 광기와 혼돈의 에너지는 그들의 음악을 듣는 모든 이들을 매료시켰다. 그 해 이들이 일으킨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천재를 자칭하는 한 사람이 서 있었고, 그와 동료들은 그날 이후부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붉은색 점으로 씬 한가운데에 남았다. 이처럼 한때 찬란히 한국 힙합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사람들이기에, 각자의 이유로 뿔뿔이 흩어져버린 이들의 현재가 더욱 더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씁쓸한 마음과 함께 이번에 가져온 클래식은 전무후무한 혼돈의 집단으로 남을 레이블 JUST MUSIC의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파급효과>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 레이블 시대’는 HI-LITE와 VMC, 1LLIONAIRE RECORDS 그리고 JUST MUSIC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상당한 퀄리티의 레이블 컴필레이션이 우후죽순 쏟아졌고, 그 앨범들에는 각 레이블들의 특징과 방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중 가장 독특한 레이블 컴필레이션을 꼽아보라면 단연 <파급효과>가 될 것이다. 일단 JUST MUSIC이라는 집단 자체가 앞선 문단에서 ‘혼돈’이라는 수식어를 썼을 정도로 독특한 집단이었다. 씬의 이슈메이커인 스윙스를 주축으로 <치명적인 앨범II>와 <육감적인 앨범>으로 소위 ‘감성힙합’의 기조를 이어가던 기리보이, 믹스테잎 <Go So Yello>로 씬의 핫루키로 떠오른 씨잼, Jiggy Fellaz 크루 활동 등 씬에서 10년도 넘도록 활동한 베테랑 바스코, 김좆키, MC 기형아 등으로 커뮤니티에서 꽤나 화제를 모았던 블랙넛, 마찬가지로 커뮤니티에서 조금씩 인지도를 쌓고 활동하던 천재노창까지. 멤버 하나하나만 놓고 본다면 여기에 도대체 어떤 맥락이 존재하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무맥락의 맥락’이 오히려 이들의 강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마치 용병 부대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조합은 조금씩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혼돈의 앙상블을 한데 모아 지휘한 이가 바로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 천재노창이었다.


재능의 집단적 폭발. 아마 이 앨범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보라면 가장 적합한 문장이 아닐까. <파급효과>는 천재노창이라는 젊은 프로듀서의 광기 어린 천재성이 참여진들의 재능을 재료로 빚어낸 명작이다. 레이블 컴필레이션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참여진 각각의 개성과 더불어 레이블이 지향하는 바를 청자들에게 확실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과 단체, 일관성과 다양성이라는 대치되는 특성들을 모두 드러내야 하기에 레이블 컴필레이션은 자칫하면 산만해지거나 완급조절에 실패하기 쉽다. 따라서 멤버 간의 개성 차이를 보정하고 레이블의 특색을 앞세워줄 수 있는 프로듀서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천재노창은 각자 다른 음악 세계를 가진 JUST MUSIC의 멤버들을 정말 훌륭하게 하나의 코스 요리로 묶어낸다. 팀 내 베테랑인 바스코에게 첫 곡 “인수인계”의 오프닝을 맡긴 것이나, “난 앞으로만“에서 사용된 제목에 걸맞는 웅장한 분위기의 소스들과 벌스의 주인이 바뀜에 따라 달라지는 비트, “Crowd”를 루키인 씨잼과 수장인 스윙스에게 오롯이 맡긴 것 등, 천재노창의 프로듀싱은 참여진의 개성과 레이블의 성격을 동시에 그리고 완벽히 드러내고 있다. 이에 더불어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천재노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이한 질감의 비트들은 앨범의 전반적인 통일감을 형성하고, 그 판 위에서 멤버들은 난장을 친다. 이처럼 하나하나 색이 강한 멤버들이 이질감 없이 서로 융화되는 데는 천재노창의 천재적인 감각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파급효과>가 명반 취급을 받는 이유가 천재노창의 프로듀싱 때문만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앨범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이들의 에너지는 앨범이 명반 반열에 오르게 만들어준 또 하나의 축이다. 거의 모든 곡의 벌스에서 리스너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전설적인 라인들을 찾아낼 수 있으며, 벌스 하나하나의 질은 그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짙은 응집력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집중력은 이 앨범에서 귀를 뗄 수 없게 만든다. 몇 가지 인상적인 벌스를 꼽아보자면 “더”와 “난 앞으로만”에서 씨잼의 벌스와 “Just”와 “파급효과”의 바스코, “Still Not Over II”와 “Rain Showers Remix”의 기리보이, “인수인계”와  “Rain Showers Remix”의 스윙스, “Still Not Over II”의 노창이 있다. 몇 개만 꼽은 것치고 좀 많아 보인다면, 아마 기분 탓이거나 이 앨범이 그만큼 좋은 앨범이라는 방증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음악”이라는 레이블명처럼, 이들은 ‘그냥 음악’으로 자신들을 충실히 보여준다. 아니, 정정하자면 ‘그냥’ 음악이 아닌 그냥 ‘음악’으로 자신들을 완전히 드러낸다. 자신들의 본질이 어디 있는지 공고히한 것이다.


JUST MUSIC의 멤버들은 <파급효과>의 발매 이후 다함께 <쇼미더머니 3>에 지원한다. 여기서 이들은 <파급효과>에 실은 자신들의 벌스를 최소 한 개 이상 대중들 앞에 선보이며, 이 중 바스코는 “파급효과”와 “더”의 벌스를 각각 더한 “파급효과 + 더”로 하드한 트랩 무대를 만들어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점차 커져 가던 힙합씬의 덩치를 폭발적으로 키웠다고 평가받는 <쇼미더머니 3>인 만큼, JUST MUSIC의 멤버들이 그 무대 위에서 활개를 치는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방송이 뜰 수록 레이블은 돈을 끌어모았고, 이른바 ‘시장’이란 것이 힙합씬 안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완전한 상업화는 이루지 못했을지언정, 당시 <쇼미더머니 3>의 성공은 <쇼미더머니>가 11개의 시즌까지 이어지게 했고, ‘언더그라운드’에 집중되어 있던 힙합씬이 파이를 키워 지금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씬의 대중화와 상업화를 견인하는데 JUST MUSIC과 <파급효과>는 전면부에 나서 있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들이 음악에 있어서는 전혀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힙합을 고스란히 TV에 드러내 보였고 그 매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바스코의 말처럼, 그 해 힙합의 부흥은 ‘그들의 벌스가 일으킨 파급효과’였다. 


 그리고 이들이 씬에 파문을 일으킨지 10년이 지난 지금, 불도저처럼 앞을 막는 모든 것을 밀어버리던 래퍼는 수십의 동료와 후배를 등에 업은 사장이 되었고, 패기롭게 씬에 붉은색 물감을 흩뿌렸던 젊은 아티스트는 어느새 대체 불가능의 베테랑이 되었다. 마초적인 행보와 음악을 보여주던 아버지는 한국 트랩씬의 대부가 되었고, 단단한 래핑을 보여주던 루키는 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감쪽같이 사라졌으며, 지질한 사랑노래를 열창하던 소년은 또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한 시대를 화려하게 풍미했던 JUST MUSIC은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간 지금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가 흐릿해졌다고 과거까지 부식되지는 않는다. 이들의 젊은 청춘과 패기가 그려진 팔레트는 씬의 역사라는 박물관에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걸려있다. 그 시절 만들어진 파동은 파장이 길어져 점점 붉어질지언정, 시간이라는 우주의 끝까지 계속해서 퍼져나갈 것이다. 그 이름은 계속해서 떠받들어질 것이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뜨겁게 맥동하는 핏빛 심장과도 같은 음악, 이건 다른 무엇도 아닌 ‘그냥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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