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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 2017.03.28.
기획사: ILLIONARE RECORDS
1. Reborn
2. Ambition and Vision (Feat. Beenzino, 창모, 김효은, Hash Swan, The Quiett)
3. Rollercoaster (Feat. 조원선)
4. Hiphop Lover
5. Plus 82 (Feat. Bryan Cha$e)
6. WTF (Who The Fuck)
7. 워럽 (Feat. 김효은)
8. In My Whip (Feat. Jay Park, Superbee, The Quiett)
9. On&On (Feat. 이하이)
10. Money Dance (Bonus Track) (Feat. B-Free, Bryan Cha$e, Okasian)
11. 1LL Recognize 1LL (Bonus Track)
12. Beverly 1lls Remix (Feat. The Quiett) (Bonus Track)
13. 1llusion Remix (Feat. The Quiett, 김효은, CHANGMO, Hash Swan) (Bonus Track)
도끼는 어찌 보면 한국 힙합에서 가장 전형적인 아티스트였다. 푹 눌러쓴 스냅백에 선글라스, 금빛 체인과 고급 시계를 고수한 채, 펜트하우스에 자신의 지폐 뭉치들을 전시하고 온갖 외제차를 모는 성공한 삶을 탄탄한 발성과 라이밍으로 말할 줄 아는, 다시 말해 한국 힙합에서 누구보다 스웨거를 영리하게 구사해 낼 줄 아는 MC였기 때문이다. 불공정 계약과 초졸, 트레일러 박스에서 한국 힙합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레이블의 사장, 수많은 작업물과 롤스로이스에 이르는, '허슬'이라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의 견실한 바이오그래피는 그의 스웨거에 거대한 설득력을 부여했다. 그의 전형성과 깊이는 그가 일리네어 레코즈라는 역사적인 소수 정예를 한국 힙합의 상징적인 집단으로 키워낸 원동력이었으나, 이에는 한계 또한 존재했다. 쉴 새 없이 발매된 작품들에서 줄기차게 외쳐댔던 성공이 이제는 한국 힙합의 클리셰가 되고 말았고, 과잉된 셀프 프로듀싱과 타이트한 랩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도끼는 이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커리어가 안정되고 산하 레이블인 앰비션 뮤직을 통해 신예들과의 교류를 시험하게 된 만큼 변화의 계기는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Reborn>이라는 앨범의 탄생은 사실 의도된 바는 아니었다. 자신의 생일마다 기념 싱글을 즐겨 냈던 도끼는 2017년에도 어김없이 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당시 블랙 뮤직 씬 내외를 오가며 입지가 확고해지던 프로듀서 듀오인 그루비룸에게 프로듀싱을 의뢰하였고, 그루비룸은 10개가량의 비트를 도끼에게 보냈다. 비트를 선정하던 중 싱글로 시작된 기획은 보낸 비트의 거의 대부분을 투입한 비정규 앨범으로 발전하여 1달 내로 10곡을 전부 녹음하겠다는,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계획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우연과 급조의 산물은 도끼의 커리어에서 가장 음악적으로 균형이 맞춰진 동시에 수준 높은 결과물로 돌아왔다. 그루비룸이 지닌 블랙 뮤직 다방면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이를 탁월한 기술과 장르적 진정성으로 받아친 도끼의 화답이 놀라운 순간을 빚어낸 것이다.
도끼의 머니 스웨거는 그가 한국 대중과의 큰 타협없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부분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물론 대중적인 러브 송도 꽤 있었고, 메인 스트림과의 교류도 잦았지만 그는 이에만 의존하지 않고 힙합의 영역 안에서 성실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이 과정에서 힙합에의 애정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성실하고 속임수 없이 정정당당히 이룬 성공이었기에, 그의 가사에 담긴 '허세'는 적어도 그 자신에게만큼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No.I.D와 J.U.S.T.I.C.E. League, Just Blaze에게서 영감을 받은 도입부의 장엄한 붐뱁 프로덕션과 함께 펼쳐지는 자부는 이러한 올곧은 신념에 기반해 있다. '잘나가는 rapper, 차가 많은 rapper 아닌 Rap 잘하는 rapper 또는 rapper다운 rapper.'라는 라인에서 드러나 듯, 도끼에게 부와 성공에 대한 자부는 되려 부차적인 것에 가까웠다. 당당한 태도와 실력으로 쟁취해낸 결과이기에 도끼의 브라가도시오에는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Reborn"의 육중한 피아노와 섬세한 스트링은 "Ambition and Vision"에서 보다 다채로운 변주, 그 위의 형제애와 야망으로 확장된다. 일리네어 레코즈의 3인방은 물론 앰비션 뮤직의 세 젊은 피까지 하나되어 외치는 각자의 다짐은 이들이 지닌 스웨깅 이상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가장 큰 증거이다. 빈지노가 시적으로 야망을 향한 시선을 낭송하면 창모와 김효은, 해쉬 스완이 연이어 각자의 개성으로 포부를 노래하고, 이를 더 콰이엇과 도끼가 갈무리하여 뚜렷하고 밝은 삶으로 완결짓는 전개는 그루비룸의 극적인 설계에 힘입어 앨범의 초반에 지워지지 않을 존재감을 새겨낸다.
도끼, 그리고 그의 동료들의 진정성의 기저에는 당연히 힙합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다. 아마 앨범에서 가장 명징한 제목을 지녔을 "Hiphop Lover"의 결연함에서 이는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소울 샘플과 피아노 소리에 힘입어 서정적으로 전개되는 붐뱁 프로덕션은 한 젊은 아티스트의 회고록에 있어 결연한 OST가 된다. 어려웠던 시절, 그는 그저 즐거움과 애정으로 음악을 만들고 팔았다. 어린 날 부터 그는 오랜 기간 이로써 꾸준함을 지켜왔으며, 그 꾸준함이 부유함으로 이어진 이후로도 그는 이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재미에서 비롯된 성실함으로 쟁취한 모든 것에 한점 부끄럼도 없으므로, 그는 자신 있게 성공과 이미지를 핑계로 힙합을 등진 이들에게 통렬하게 한마디 할 수 있다. '가끔 보면 아무도 힙합을 사랑하지 않아, 랩퍼들 조차도.' 대중성과 스펙트럼을 핑계로 장르적 정통성을 회피하는 이들, 힙합에 대한 애정없이 그저 수단으로 다가왔던 이들에게 도끼는 한없이 냉소적이고 단정적이다.
앨범의 중반에 위치한 2개의 트랩 넘버는 앨범에서 도끼의 시니컬하고 공격적인 부분이 가장 응축된 공간이다. 건실한 삶의 태도와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디스, 아마 Mike Will Made-It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전자음이 주가 되는 미니멀한 프로덕션을 공유하되, "Plus 82"의 낙차 큰 타격감과 "WTF (Who The Fuck)"의 날카로운 질주감으로 차별화되는 분위기를 도끼는 탁월한 비트 이해력으로 종횡하며 주름잡는다. 멜로디컬하고 반복적인 플로우 설계부터 정교한 라임 배치에 기반한 타이트함에 이르기까지, 이미 한국 힙합 최상위 권의 랩 테크니션으로 평가받고 있던 도끼임을 감안해도 <Reborn>에서의 도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 자신의 정점을 몇번이고 갱신해 낸다. 그루비룸이 선사하는 장르적으로 충만한 양질의 프로덕션과 도끼의 절륜한 퍼포먼스가 앨범의 가장 매끈하고 어두운 곳을 채우는 동안 브라이언 체이스의 몽환적인 훅으로 대표되는 게스트의 운용으로 부가적인 청각적 쾌감을 조성해내는 부분은 도끼가 지닌 영리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구간이다.
이는 <Reborn>에서 가장 클래식한 접근을 보여주는 "워럽"에서 특히 빛난다. Scott Stoch를 연상시키는 묵직한 건반 운용에 팝적인 보이스 샘플을 곁들인, 고전적인 웨스트 코스트 넘버만큼 도끼와 김효은의 탄탄한 라이밍에 기반한 그루브 조성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곳도 드물 것이다. 앰비션 뮤직이라는, 일리네어 레코즈의 확장 플랜의 시작점인데다 도끼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어릴 적을 보는 듯한 힙합 외골수', 더군다나 당시 레이블에서 가장 과거지향적이며 정통적인 힙합을 추구하던 김효은이 예의 걸쭉한 로우 톤으로 랩을 툭툭 던지면 일리네어 3인방 중 제일 힙합 근본주의자라 할 만한 도끼의 하이 톤이 이를 정교한 라이밍으로 받아치고, 이렇게 완성된 자부와 성취가 어우러진 랩 티키타카가 그루비룸의 멋들어진 프로덕션으로 펼쳐지는 순간에 도끼가 지닌 스웨거와 허슬의 미학은 가장 맛있게 피어난다. 탄탄한 발성에 각잡힌 라이밍, 하이 톤과 로우 톤의 정교한 조화, 이에서 비롯되는 탁월한 그루브와 장르적 쾌감이 더해지니 리스너로서는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를 조금 더 트렌디하게 틀고 게스트 라인업을 확장하여 팝에 가깝게 발전시키면 <Reborn>의 후반을 흥겹게 채워내는 "In My Whip"이 등장하게 된다. 일리네어가 그간 해왔던 자동차에 대한 찬가이지만 "In My Whip"은 이중에서도 가장 밝고 가벼운 접근을 견지한다. 알앤비 코드와 경쾌한 플럭 사운드, 보이스 샘플의 배치로 Nic Nac 풍의 래칫을 가져온 청량한 프로덕션에 도끼는 자신과 가장 절친한 동료들을 초대해 한바탕 성공을 찬양한다. 가까운 친우인 박재범의 훅 메이킹은 예의 미려한 음색으로 여지없이 그루비룸의 경쾌한 비트에 스며들며, 그 사이로 같이 오랫동안 일리네어를 이끌어온 동업자 더 콰이엇과 머니 스웩, 허슬 등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놀라울 정도로 충실히 이어받은 후배인 수퍼비가 통통 튀는 조합이 자신들의 자동차에서 보내는 즐거운 한 시절을 말하는 풍경이 기꺼운 것은 이들의 노력이 멋진 삶을 자아냈고, 이를 누릴 자격이 충분함을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블랙뮤직 씬의 슈퍼스타들이 있어 완성된 빛나는 나날이다.
그럼에도, 이 분투와 즐거움이 교차하는 매일 가운데에도 고민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이미 많은 것을 가져도 더 많은 것이 탐이 난다. 이립이 가까워 지는 와중에 책임감은 쌓여간다. 그 사이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스스로의 주관과 신념을 관철해 내는 삶, 갈 수록 복잡해져 가는 와중에도 여유를 찾고 거듭나려 하는 삶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의 고민과 이를 꿰뚫어내는 태도를 앨범의 보컬들은 부드럽게 안아준다. 제목부터 게스트인 조원선에 대한 헌정이 물씬한 "Rollercoaster"를 보자. <Love & Life, The Album>에서 본격화된 알앤비적 접근은 애시드 재즈의 피부를 뒤집어 쓴 얼터너티브 알앤비로 본격화 되었으며, 부적응과 고민의 와중에도 초심을 지키려는 마음가짐은 타이트한 랩은 물론 보다 여유로워진 멜로디 메이킹으로 본격화되어 드러난다. 그루비룸이 이전에 <P.O.E.M.>의 여러 트랙들에서 보여준 바 있는, 재지하면서도 팝적인 감수성을 놓치지 않은 붐뱁 넘버인 "On & On"도 앨범의 클리셰적인 마무리로서 손색이 없다. 이하이의 고전적인 보컬이 빈티지한 프로덕션에 녹아든 것은 물론, 삶이 던지는 수많은 선택과 고민 사이에서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가려는 마음을 담담히 말하는 도끼의 진정성은 그간 그의 허슬을 지켜봐 온 이들에게 큰 울림이 된다. 초심을 지켜가며 투쟁과 노력을 이어온 끝에 물질적-정신적 성취를 이룩한 이 역전의 투사에게 잠시의 망중한은 허용되어 마땅할 권리이기 때문이리라.
이후의 보너스 트랙들은 앨범 전반의 이야기를 도끼가 주도하는 프로듀싱으로 재해석해낸 것에 가깝다. 사실 이중 절반 정도가 이전에 도끼가 여러 채널을 통해 공개해 온, 또는 프로듀싱 해온 곡의 리믹스이기도 하거니와, 코홀트의 세 MC를 데려와 자신들의 금전적인 성공을 새끈하게 노래하는 "Money Dance"의 경우에는 타입 비트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끼의 프로듀싱이 이전에 비해 안정과 완급, 다양성을 갖추었다는 부분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덥스텝과 퓨처 베이스가 혼용된 EDM 프로덕션 위에 끝없는 정진을 노래하거나, 아디다스 광고 타이업으로 제작된 웨스트 코스트-붐뱁-트랩으로 룹이 계속 스위치되는 비트위에 동료들을 데려와 물질적 부를 전시하는 모습에는 변함없는 에티튜드와 더불어 짧은 분량 내로 음악적 다양성을 확보해내는 영리함이 돋보인다 할 수 있다. 랩에 한해서 살펴보아도 "Beverly 1lls Remix"에서 랩 스타일을 계속 바꿔가며 라이밍, 박자감, 텅 트위스팅 등 자신이 가능한 랩 스킬의 극한을 경신해내는 모습은 당시 도끼의 랩적인 역량이 천의무봉의 수준에 도달했음을 말해준다. 이것이 앨범 내내 반복되었다면 어느정도의 피로함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를 앨범의 디저트 격으로 한정지은 것은 앨범의 또 다른 주인공들인 그루비룸에 대한 존중은 물론 앨범 전체의 텐션을 조절하는데 있어서도 좋은 전략이 되었다.
<Reborn>에는 동시대 최고의 랩 스타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간의 고생으로 이룩한 성취와 그 이면의 고뇌, 이를 대중적으로, 동시에 다양하게 담아낼 줄 아는 유능한 프로듀서와의 호흡, 그 위의 탁월한 랩 스킬과 게스트와의 영민한 교류에 이르기 까지, 1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도끼가 빚어낸 결과물은 믿기 힘들정도로 균형이 잘 잡혀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꾸준함으로 인한 경험치? 이로서 그가 이룩해 낸 한국 힙합에서의 위치? 모두 답이 될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도끼가 지닌 한결같으며 올곧은 호연지기와 태도가 있다. 그 또한 인간인지라 고민하고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힙합을 아끼고 사랑하여 즐겼던 자신의 초심을 돌아보고, 한 레이블의 리더, 가족의 생계를 이끄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돌이키며 그는 신념을 꿋꿋히 지켜왔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가 잠시 한국을 떠나게 된 지금도 그 신념에는 빛이 바래지 않았다. LA에서도 그는 꾸준히 음악적 결과물들을 오랫동안 내놓았으며 때로는 국내 장르 씬과의 교류도 계속 유지해 왔다. 그가 한국 힙합에서 쌓아올린, 머니 스웨거와 허슬의 상징이라는 아이덴티티와 레거시가 있기에 그의 커리어는 끈질기게 펄떡이며 이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Reborn>이라는 결과물은 그가 지닌 가장 날 것의 감수성을 가장 정제된 형태로 영리하게 드러낸, 그가 지닌 상징성을 제일 뚜렷하게 대변해낸 작품으로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Best Track: Rollercoaster (Feat. 조원선), Hiphop Lover, 워럽 (Feat. 김효은), Beverly 1lls Remix (Feat. The Quiett) (Bonus Track)
https://drive.google.com/file/d/1Z9bgW3A_YrP5kk_1Q9U6Lr39h9_xpED_/view
본 리뷰는 HOM#25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좋은 글.
전 앰비션앤비젼이 제일 좋았어요
진심이 정말 가득 담긴 명반 중의 명반
랩 잘하는 래퍼, 프로듀싱 잘하는 프로듀서가 만난 아주 좋은 예 RE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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