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사실 글을 쓸까 말까 한참 망설였습니다. 이미 pH-1과 맨스티어의 싸움이 아니라 힙합팬과 힙합을 까려는 사람들의 진영갈등이 된 지금, 한낱 리스너인 제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쓸모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제가 하고 싶은 얘기이고, 제가 좋아하는 힙합과 힙합엘이의 모습이 그리워서라도 남깁니다.
사실 엄청나게 화가 나거나 씁쓸하진 않습니다. 국내 힙합이 5년 이내, 10년 이내에 망한다고 해도 저는 그저 그때까지 나오지 않을 프랭크 오션의 신보와 벌쳐스 2,3나 기다리며 음악에 대한 애정을 쌓아가면 그만입니다. 국내 힙합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한지 3년 됐고, 국내힙합에 대한 각별한 프라이드나 소속감은 없습니다. 제 귀에 좋은 음악이 좋을 뿐입니다.
때문에 이번을 포함한 최근 몇개월간의 맨스티어를 둘러싼 논란에 관해 저는 관조적인 시각으로 그저 팝콘이나 뜯으며 바라봤습니다. 솔직히 맨스티어의 몇몇 스킷들은 웃긴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최근 들어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들(과 그의 구독자들)의 행보가 점점 과격해지고 일종의 광기를 띄게 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뷰티풀너드 댓글창에는 힙합을 향한 조롱을 넘어 혐오까지 다다른 모습들이 종종 보입니다.
"힙찔이들 긁? 웃기려고 만들었는데 걍 웃어라ㅋㅋㅋㅋ"
멋 없는 래퍼들 라이브에서 후까시 잡고 ㅈㄹ하는거 조롱? 네 그럴 수 있죠.
현실에서는 사회부적응자 쩌리들이 가사에서는 갱스터고 플레이어인 척 하는거 조롱? 네 합당합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맨스티어의 영상들은 '조롱'이지 일침이 아닙니다.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지다며, 돈과 인기에 현혹되지 말고 진실된 메시지와 감정을 음악에 담으라는 일침이 아니라
대안 없이 그저 희화화하고 조리돌림하며 낄낄대는 조롱이요.
그게 비도덕적이고 나쁜 짓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힙합의 이미지가 대마 걸린 식케이, 고소당한 블랙넛, 가사에 헛소리하는 언에듀라면
그건 전적으로 래퍼들 잘못이고 사회적으로 욕 먹고 놀림당해도 사실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영양가 없는 단순 조롱에 화 냈다고 "너희들이 잘못한 건데 왜 발끈해"라고 답하는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비난 또는 비판을 했으면 그것을 납득시킬 수 있는 제3의 방향이 있어야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그럼 뷰너가 돈 벌겠다고 힙합 구원자라도 해야되냐 ㅄ아?ㅋㅋㅋㅋㅋ"
아니요, 그럴 필요 없죠. 그런데 적어도 한 장르 전체가 점점 침몰하는 배가 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발악하고 소리치는 이들까지 무시하지는 말자구요.
"지금 뷰너가 힙합 망친다고 얘기하는데 뷰너가 대체 뭘 했음??"
좀 비약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맨스티어와 그의 팬층은 지금까지 쌓여온 힙합의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의 고착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어떠한 외국인 유튜버가, '한국인의 삶'이라며 한 한국인 학생의 학교생활을 페이크 다큐로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주인공은 학교에 가면 별 이유 없이 왕따와 폭력을 당하며, 학교의 다른 친구들은 전부 문신팔토시에 형광 반바지 입은 양아치들입니다.
학교에서 나와 백화점에 들어갔더니 매장마다 같잖게 갑질하는 손님들뿐입니다.
그리고 영상의 댓글창에는 "역시 강약약강 ㅈ되는 대한민국ㅋㅋㅋㅋ" "이게 ㅈ한민국 현실이다"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한국인이 발끈하며 모든 대한민국 학생들이 이렇지 않다 하면 "긁? 코미딘데 부들거리네" "근데 팩트잖아" 이럽니다.
모든 한국인이 더 글로리나 DP의 악역들이 아닌 것처럼, 모든 래퍼들이 멋 없고 엠창인생 살지 않습니다.
스카이민혁이 지뢰계 여자친구 데리고 클럽 죽돌이짓 하진 않죠.
모든 집단이 그렇듯이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윗물이 있고
집단에 기대어 인생 던지는 찌꺼기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찌꺼기들의 만행 또한 전체가 안고 가야할 문제지만, 적어도 그들 때문에 전체가 더러운 물이라고 욕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맨스티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극대화하고 희화화해서 보여주는 이미지가 진실에 가까운 것처럼 포장하죠.
그리고 힙합의 자정작용이 실패해서, 저런 래퍼들이 대부분이라 너희들은 욕먹어도 싸다고 얘기합니다.
"개그맨 하나에 그렇게까지 될 장르였으면 애초에 장르가 ㅈ밥이었던 거잖아 그럼ㅋㅋㅋㅋ"
네 맞아요. 국내 힙합은 몇 번의 조리돌림과 사건사고면 깡그리 말살될 허약한 문화입니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기조와 규범에 완벽하게 반하는 음악이니까요.
애초에 절대 사회 주류가 될 수 없는 장르였고, 때문에 지금은 기형적인 전성기를 지나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걷는 중입니다.
그리고 맨스티어는 그 침몰하는 배에 뛰어들어 갑판에 구멍내는 중입니다.
맨스티어도 나름의 힙합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현 사태를 대한 것이라는 의견도 보았습니다.
pH-1의 디스를 맞디스곡으로 화답한 게 그 증거라고요.
20분짜리 조리돌림 컨텐츠로 안 만들었으니 다행이라고요.
복싱 경기를 하는데 관객 반응이 "야 그래도 평소 같으면 불알 걷어찰 놈인데 눈만 찌르네"면
그건 이미 그 대상을 선수로 안 보는 겁니다. 싸움꾼으로 보는거죠.
글이 좀 산만해졌는데,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뷰티풀너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힙합을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해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여기 힙합엘이 사람들이 pH-1 이센스한테 자아의탁한 힙찔이라서 화내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이 좋아한 힙합의 모습이 있는데, 힙합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는데
대중의 분노와 조롱에 의해서 부정적인 힙합의 모습들만 남는 것 같아서 화내는 겁니다.
그러니 양쪽 모두 서로를 향한 혐오와 분노를 잠깐 멈추고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나는 왜 힙합이 좋고, 나는 왜 힙합이 싫은가
그럼 전 드레이크 아동성애 떡밥이나 보러 가보겠습니다.
글 잘봤습니다. 생각 정리되고 좋은 글이였네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혐오와 분노로 발언하시는 분들 다
제가 생각하는 힙합의 범주에 속하시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ㅎㅎ
아 아동성애 떡밥같은 그런건 제 기준 힙합이 아닙니다.... 허슬 앤 플로우는 영화라서 좋아보이는 거지...
좋은 글이네요
힙합은 돈과 인기에 현혹되면 안되나요? 힙합이 뭐 스님인가요
현혹된다기보단 힙합만을 하면서 대중성까지 챙기거나 챙겼던 래퍼가 사실 별로 없죠
사실 이찬혁의 쇼미10벌스의 내용을 가져와서 몇년전 이찬혁 사태와 지금의 차이점을 말하려고 한건데, 명확하지 않았나 보네요.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씬에 범죄자가 많아도 너무 많아요.. 좀 이름날린 래퍼도 비율로 따져보면 과반수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솔직히 비와이말고 지금 맨스티어랑 떳떳하게 디스전 나갈만한 래퍼 자체가 거의 없는데.. 해봐야 한손에 꼽힐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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