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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이념/해석] 13. 책상

title: 아링낑낑 (2)Nonlan2017.07.01 16:34조회 수 1067추천수 6댓글 2


자각몽의 세 번째 장면입니다. 이 곡의 첫 마디는 ‘침대’ 벌스 1의 “목소리 듣고 싶지 않아 / 전화기 뜨겁다고 / 끄고 자러 갈래”와 연결됩니다. 손에 쥔 전화기가 ‘어느새’ 차가워졌다는 표현을 통해 전 여자친구와의 통화를 끝낸 그의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통화가 끝났는데도 핸드폰 식을 때까지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차갑네 – 유리 – 새빨간 얼굴 - 화’로 옮아가는 심상의 전환이 인상적입니다. 이와 유사한 연결이 후반부에 한 번 더 등장합니다. “창밖에 해가 떴네 환하게 새빨갛게 / 나 자신한테 화가 난 채”에서 ‘해 - 환하게 – 새빨갛게 - 화’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환한 해’는 다시 한 번 14번 트랙 ‘제자리’의 따스한 느낌의 곡 분위기로 연결됩니다.

 

사실 이 표현상의 대비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 앨범의 서사 자체가 “세상한테 화가 난” 김태균이 “나 자신한테 화가 난” 김태균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죠. 그는 많은 사건을 겪었습니다. ‘책상’에서는 ‘떳떳’했던 그를 무너뜨린 여러가지 상처의 흔적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고함 소리가 울려퍼지네 방문 밖에”는 이미 ‘붉은 융단’, ‘입장’, ‘이제는 떳떳하다’ 등에서 언급된 가정불화에 대한 암시입니다. “돈은 마치 모세 같지 / 너와 나 사이도 물 같았지”는 ‘침대’에서 언급된 그녀와의 관계가 돈으로 인해 손상됐다는 그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자 화를 쏟아내 글 안에 / 담아내야만 해 음악 안에” 같은 경우 ‘쇼미더머니’로 실패를 맛본 그가 다른 랩퍼들에 대한 열등감, 그것이 폭력적으로 분출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떳떳하다’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음악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본격적인 ‘경쟁’으로 바뀌는 계기가 살짝 언급됩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지 / 열등감을 가진 뒤엔 이건 경쟁이었지”가 바로 그 대목이죠. 키워드는 ‘열등감’입니다. 그 열등감을 털어내는 방법이란 “보여주고 증명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면서 “자신에게 떳떳이 살기 위해 쉬는 날 없이”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런 수련의 과정 끝에 드디어 열등감을 극복하고 이 길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이제는 제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됐어 / 두 발을 내밀어 두꺼운 이불 안에서 / 새로운 날 맞이해봐 준비된 내 모습”에 환호로 답해달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책상’에 이르러서는 ‘조용히 방문을 잠근 뒤에 주먹을 꽉 쥔채 자리에 앉아 내게 삿대질해대는 다른 랩퍼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긍정이나 희망 같은 얘기 따위는 없는, 그저 화를 쏟아낼 뿐인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Recontrol’을 뜻하는 듯 합니다. 이 곡의 가사가 인용되고 있으니까 당연한 얘깁니다. ([녹색이념]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시간대가 2002년부터 2013년 까지라고 하는 인터뷰의 내용에 따르면 키스 에이프의 인터뷰 내용을 디스한 ‘Come Back Home’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스윙스로 시작해 개코-이센스로 끝난 컨트롤 대란에서 테이크원만이 유일한 생존자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그 곡에 대한 평가와 파급력은 대단했습니다. 그가 이 곡을 쓰게 된 것은 예전과 똑같이 ‘열등감’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상’의 “지금 여기 앉아있는 건 어떤 열등감 때문이지 / 그건 내게 삿대질해대는 다른 랩퍼들이지”라는 표현과, ‘이제는 떳떳하다’의 “열등감을 가진 뒤엔 이건 경쟁이었지 (…) 자신에게 떳떳이 살기 위해 쉬는 날 없이”라는 표현의 ‘열등감’은 단어는 같지만 맥락이 다릅니다. 그는 지금 ‘내 자신에게 화가 나’있는 상태가 아니라 ‘세상한테 화가 난’ 상태인 것입니다.
 
그 화가 향하는 곳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이며, 폭력성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피해의식으로 인한 방어기제 같아보이기도 하죠. 그의 내면의 기준은 이미 무너져 외부의 사건들을 버텨내기에 급급한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의 공백을 인정할 수 없는 그의 심리는 “자 화를 쏟아내 글 안에 / 담아내야만 해 음악 안에”, “도대체 왜 따라 하지 다들 / 따라하기 전에 따라잡아 / 아무도 몰라봐 / 모두가 다 변했잖아” 같은 가사 속에서 느껴지는 의무감, 확신의 표현에서 드러납니다. 이 가사들 뒤에 ‘듯’, ‘척’과 같은 조사와 ‘숨기지’, ‘너무 무섭지’와 같은 단어를 통해 이것이 피해의식에 의한 방어기제임이 확정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살펴보죠.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방문 밖의 얼음 같은 분위기” 입니다. 방문 밖에 고함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은 아버지 때문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부모의 존재를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우선 ‘이제는 떳떳하다’에서 욕하고 싸우고 뺨을 맞고 망원동 옥탑방으로 도망가지만 여전히 용돈을 빌어 쓰며 부모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또한 그는 ‘책상’에서 “잠 못든 채 내 자린 똑같애 / 십 년이 지났어도 내 자린 똑같애”라며 자조합니다. 책상은 공부에 대한 부모의 강압이 실행되는 공간이자 그 부자유로부터의 탈출구인 음악적 고뇌가 이뤄지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십 년째 제자리인 그 ‘책상’이라는 소재는 자유와 부자유가 뒤섞이는 공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고함소리를 거부할 수 없는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하나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김태균은 작중 망원동 옥탑방 말고도 전 여자친구의 집에서의 생활도 중요하게 서술했습니다. “요리와 설거지 청소기까지 돌린 뒤에 / 소년과 소녀 둘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표현으로 보아 이곳은 부모님의 존재가 지워진 곳이죠. 강아지까지 입양하고 그를 ‘3개월 된 아이’로까지 인식하고 있는 점을 보아 부모로부터 독립해 그녀와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꿈꾸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자신 안에 상속된 아버지의 “용암 같은 피(‘책상’)”로 인해 독립적이라 믿었던 그 공간에서마저 부모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맙니다. 어차피 어디로 도망쳐도 부모의 흔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방문을 잠그는 일(‘입장’, ‘책상’)’ 뿐입니다. 그는 이제 완전히 무력화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나약해진 그는 힙합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더이상 발언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Recontrol’ 같은 곡은 사실 다른 랩퍼들에게 올바른 힙합에 대한 자기 신념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자신의 불안과 자기혐오를 감추기 위해서 그저 보이는 대로 주먹을 휘두를 뿐입니다. 그 주먹은 이제 다른 랩퍼들에서 애완견 베리로 향합니다. 강아지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권력도 없습니다. ‘보여줄 때’의 뮤직비디오에서 김태균이 목줄을 잡고 등장하는 그 작은 개가 베리라면 인간에게 위협적이지도 못합니다. 자기보다도 무기력한 존재에게 그는 주먹을 내지릅니다. 벽에 집어던집니다. 아무도 없는 방 안, 즉 ‘내면의 공간’에선 정의로운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힙합을 통해 그가 보여주려는 모습은 ‘강자 앞에서 강하고, 약자 앞에서 약한’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고 가짜입니다. 


자기혐오와 폭력성이 극에 달한 그 순간, 그는 그가 ‘붉은 융단’에서 경계했던 악마의 존재를 발견합니다. “그들의 외눈에서 내 얼굴이 비쳐 / 우린 남을 통해서 자신을 투영해”라는 라인 기억나시는지요? 그는 자신 안에 들어와 있는 악마를 베리의 눈을 통해서 확인합니다. 죄다 성공에 눈멀어 왜곡된 상밖에 비추지 못하는 슬픈 세상이지만, 인간을 멍들게 하는 ‘돈’의 논리가 ‘동물’의 눈까지 타락시키지는 못한 것이죠. 베리의 눈은 인간의 눈과는 다르게 진실한 모습을 비춥니다. 베리는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악마를 쫓아내고 인간의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기 전에 회복시킵니다. 그는 베리(천사) 앞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 참회합니다. 베리는 ‘돈, 타락’과 ‘자연, 회복’의 이분법적 대비를 통해 두 가지 ‘녹색’의 테마를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이제 그는 ‘세상한테 화가 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화가 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방문을 닫아놓은 건 자기 자신입니다. 베리가 방 안에 오줌을 싼 것은 그가 베리를 방 안에 가둬놨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마저 베리를 탓했습니다. 하지만 ‘자각몽’에서 “가끔 우린 헤어질 이유를 찾아 헤메이는 것 같이”라는 라인을 참고할 수 있겠죠. 베리가 싸움의 중심이 된 것은 그저 이유를 위한 이유에 불과합니다. 이유가 없다면 그 싸움의 무의미를 견디기 힘들테니까요. 어쨌든 문제는 그가 마음의 문을 닫아놨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스스로 어그러진 인생의 적나라한 실체가 갑자기 거대한 고통의 해일이 되어 밀려옵니다. 그는 창 밖으로 몸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 때 창 밖에 해가 환하게, 사방으로 섬광을 흩뿌리며 떠오르고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똑같은 책상 앞에 / 똑같은 책상 앞에”라는 보컬 말이죠. "똑같은 장면이라면 오, 난 테잎을 뒤로 감지 않을래"라는, '막다른 길'과 '자각몽'에 걸쳐 표류하던 계시가 시련의 끝에서 제 맥락을 찾습니다. "시간을 돌리고 싶어 행복하지 않네"라는 라인과 정면 대치 합니다. 어차피 과거는 지나간 과거입니다. 테잎을 몇 번이고 뒤로 감아도 그 과거를 바꿀 수는 없죠. 즉, 테잎을 뒤로 감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라는 뜻의 계시로 완성됩니다. 그는 새빨갛게 자신에게 화가 난 채로 창밖에 환하게 뜬 해를 보면서 방문을 열고 나갈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제가 ‘입장’에서 “이제야 문을 열고 얘기를 시작해 정말 미안해”라는 라인을 설명하며 어쨌든 가족과의 첫 번째 대화 시도였다고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는 그 때처럼 제자리에 돌아왔습니다. 그 때처럼 똑같이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입장’에서 그렇듯, ‘책상’의 닫힌 문도 다음 트랙 ‘제자리’에서 결국 열립니다. 그러나 ‘입장’은 첫 번째 대화 시도였고, ‘제자리’는 두 번째 시도입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횡단하고, 반복은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같은 제자리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벗어나지 못한 제자리’가 아니라 ‘먼 길 돌아온 제 자리’입니다. 어긋난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제자리’에 돌아온 셈이죠. (그러니까 ‘책상 – 제자리’의 연결은 결코 쌩뚱맞지 않습니다.) 이제 자각몽을 통한 자기 최면은 끝났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의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시간이 왔습니다.
 
P.S) ‘베리’를 내면의 자아, ‘그녀’를 타인으로 놓고 해석해보죠. 베리를 때리는 것은 자기혐오가 됩니다. 그녀에게 나를 똑바로 들여봐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비춰보기 위한 최초의 타자를 찾는 것이기도 합니다.
P.S 2) “똑같은 책상 앞에” 대목에 쓰인 사운드는 모텟(Mo:tet)의 Twenty Twelve라는 곡의 5분 23초부터의 구간에 사용된 것과 유사합니다. 윤상의 음악적 실험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니 한 번 들어보시면 재밌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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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11.28 14:49
    오랜만에 녹념 듣다가 해석글 쓰신게 생각나 정주행하고 있는디... 여기서 모텟을 발견하게 될줄이야
  • title: 아링낑낑 (2)Nonlan글쓴이
    12.6 09:21
    @The Idea of Justice
    모텟 좋죠... 저도 간만에 언급된 김에 들어봐야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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