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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JAŸ-Z - Reasonable Doubt 리뷰

title: BRAT온암2026.06.25 18:00조회 수 706추천수 17댓글 6

Reasonable Doubt.jpg

JAŸ-Z - Reasonable Doubt(1996)

 

https://youtu.be/DvTcUCeIJEc?si=x8p3wKtDyLX41y9r

인류의 역사는 폭력과 분리될 수 없다. 아무리 폭력을 온당치 못한 것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려 노력한다 한들, 폭력과 경쟁은 원시 시대부터 생물체에게 내재된 본능이다. 또한 생존의 증거인 육체 활동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다. 현생 인류에 이르러 폭력은 가장 흥미로운 특성을 취득하게 되었다. 문명화와 동시에 구시대적 폭력은 수를 줄이기 시작했고, 대신 잠재적 폭력이 나타나 더 합법적으로 오래 존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위계와 지위 앞에서는 더 이상 남성들이 주먹을 쥘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폭력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그것을 향한 동경으로서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 폐쇄적인 남성 커뮤니티에 갱스터 추종 세력이 형성된 것도 그다지 희귀한 일까지는 아니다. 제도적 인종차별과 경제적 고립은 곧 각종 범죄에 노출된 사회 풍조를 조성했고, 많은 이들이 크랙 코카인 가루에 굴복하거나 성공의 지름길로 향하는 편법을 허리춤 안에 쑤셔넣었다. 그토록 치열한 생존 경쟁의 역사와 깊게 연루된 힙합 문화에서 마초성이나 갱스터리즘을 분리하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다.

 

배틀 랩이 하드코어 랩으로, 하드코어 랩이 갱스터 랩으로 진화하기까지 — 랩은 비참한 현실을 더 사실적이거나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활발히 연구되었다. Slick Rick의 스토리텔링은 네오 리얼리즘과도 같았고, N.W.A의 랩에는 모자이크가 부재했다. 한편 랩 리릭시즘이 언제나 사실성을 중시하며 개발된 것은 아니었다. Kool G Rap은 DJ Polo와의 합작에서 일찍이부터 갱스터 범죄를 고급스럽게 묘사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Raekwon은 Ghostface Killah와 함께 G Rap의 화법을 마피오소로 장르화시켰다. 이토록 한껏 과장된 범죄 브랜드화의 근간에는 당연히도 마피아 범죄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다: 당시의 흑인 청년들은 마피아를 접한 적이 없다. Cosa Nostra가 절대적으로 득세하던 시절은 애진작에 지나있었고, X세대 흑인들이 자라난 슬럼은 이미 정부 정책과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한 차례 쓸고 지나간 폐허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고 자라난 마피아는 Al Capone이나 Lucky Luciano가 아닌 Tony Montana였다. 추후에 직접 밝혔듯이(‘Scarface the movie did more than Scarface the rapper to me’), JAŸ-Z로 널리 알려진 Shawn Carter의 경우에도 당연히 그러했다.

 

힙합 역사상 가장 도시적으로 세공된 마피오소 랩 앨범으로 평가받는 [Reasonable Doubt]은 대외적으로 당연히 <대부(The Godfather, 1972)>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자수성사에 대한 환상이 있는 남성들이라면, 허구일지라도 Vito Corleone을 분명 존경했을 것이다. JAŸ-Z와 여러모로 깊은 연관이 있는 Big L 역시 자신을 L Corleone이라 자칭했으나, “Politics As Usual”에서 사용된 ‘My portfolio reads: leads to Don Corleone’이라는 구절은 역시나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쓴 JAŸ-Z에게 보다 잘 어울린다. 심지어 그는 ‘I got the Godfather flow’라고 선언하기까지 한다. 다만 영화사 최고의 마피아 필름이 가진 위상을 빌어 일종의 권위를 구축하려는 시도와는 달리 — 본작의 내용물은 <대부> 특유의 고풍스럽고 조직화된 범죄라기보다는, Brian De Palma나 Martin Scorsese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범죄 시네마 특유의 거칠고 절박한 불법적 성공 서사에 가깝다. 실제로 “Can't Knock The Hustle”과 “Brooklyn's Finest”의 도입부는 각각 <스카페이스(Scarface, 1983)>와 <칼리토(Carlito's way, 1993)>을 패러디하고 있는데, JAŸ-Z는 Al Pacino 특유의 폭발적인 불안 정서를 고스란히 흡수하기보다는 그의 갱스터 캐릭터들이 보였던 태세를 랩 버전으로 재구성한다. 그가 데뷔 앨범에서 Nas보다도 훨씬 영화적이고 허황된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던 이유이며, 그의 마피오소가 후대에 이르러 더욱 고평가받으며 향후 양식화된 이유이다.

 

https://youtu.be/hCKXOgHmWhQ?si=Ac6K3enGY52xph_Y

그리고 우리는 [Reasonable Doubt]를 듣기 전에 이미 그 양식과 미학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오직 곡 하나만으로 상기할 수 있다. 골든 에라 이스트코스트 힙합을 상징하는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인 “Dead Presidents”는 사실상 본편의 축소판으로, JAŸ-Z의 예술성이 이미 정식 데뷔 당시 완성된 상태였음을 증명한다. 앨범의 음악적 주축 중 한 명인 Ski가 이 곡의 비트를 제작했는데 — ‘Ski는 어떻게 “Dead Presidents”의 비트를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은 곧 ‘Ski는 어떻게 힙합 역사상 최고의 비트를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치환될 수 있다. 힙합 역사를 통틀어 피아노 샘플을 사용한 최고의 사례를 꼽으라면 대개 Nas의 “The World Is Yours” — JAŸ-Z는 Nas의 실제 피처링을 구하려 했으나 실패해 샘플링을 사용했고, 이는 향후 두 MC 간 갈등의 초석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 를 떠올리겠으나, 적어도 그 아무도 Ski가 Lonnie Liston Smith를 다듬은 방식이 Pete Rock이 Ahmad Jamal을 대상으로 행한 것보다 덜 상징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재즈 피아노 샘플과 A Tribe Called Quest의 드럼, “Dead Presidents”의 인스트루멘탈에는 가장 훌륭한 재즈 힙합의 DNA가 함유되어 있다. 하지만 “Dead Presidents”만이 제공하는 뉴욕 겨울의 냉랭한 공기와 처연한 마피아적 테마를 접한 이들이라면, 이 곡을 그 계보의 일부로 여기진 않을 것이다.

 

While others spit that Wonderama shit, me and my conglomerate
Shall remain anonymous, caught up in the finest shit

-JAŸ-Z, “Dead Presidents” 中

 

또한 JAŸ-Z의 고도화된 랩은 대체음악적 진영보다는 당시 라임의 귀재들이 등장하던 치열한 경쟁 구도에 훨씬 잘 어울린다. 힙합 역사상 가장 세련된 다음절 라임으로 운을 떼는 JAŸ-Z의 벌스는 이미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과 비교해도, 심지어 30년 이후의 자신과 비교해도 더 훌륭하게 들린다. 후문에 따르면 그 Biggie조차 ‘Peep facts, in the game so deep fiends could catch a freeze off my kneecap, can y'all believe that?’이라는 구절을 듣고 JAŸ-Z가 자신보다 훌륭하다며 감복할 정도였는데, 그런 그조차 고작 몇 초 뒤 ‘All rhymers forget it like Alzheimer's’라는 명구절을 또 듣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물론 Biggie와 Jay 모두 Big Daddy Kane의 정신적 후계자이긴 하지만, JAŸ-Z는 당대 최고였던 친우에게서 받은 영향을 몇 번이고 시인할 것이다. 그들의 랩에서 느껴지는 남성미의 결은 분명 다르긴 해도, 다음절 라임을 능숙히 운용하되 유난히 발음의 유사성이 돋보이는 단어를 이용해 언어적 유희를 극대화하는 JAŸ-Z 특유의 방법론은 분명 Biggie에게서 영향 받은 것이다. 다만 데뷔 당시 야망으로 가득 찬 JAŸ-Z는 Biggie보다 라임 음절을 평균적으로 더 넓게 설정할 수 있었을 뿐더러, 그와는 다른 부류의 냉철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작사적 특징,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 묘사, 간간히 등장하는 대화체 랩과 엘리트주의, 극적으로 포장된 현실과 일종의 체념까지 — “Dead Presidents”는 정말 [Reasonable Doubt]의 모든 것을 효과적으로 함축한다.

 

그렇다면 JAŸ-Z는 [Reasonable Doubt] 발매 전부터 어떻게 완성형의 래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그의 천재성은 Nas나 The Notorious B.I.G.와 같은 범주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착실한 노력에 의한 결과물이다. 프리스타일 배틀 래퍼로서의 경력과 고등학교 때 Busta Rhymes를 일찍이 꺾은 일화, Jaz-O에게 의탁한 시절은 별개로 언급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 1994년 이전 그가 참여한 작업물들에서 JAŸ-Z의 라이밍은 Big Daddy Kane보다 못한 원시적인 차퍼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랩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다듬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싱글 “In My Lifetime”으로 평가된다. 이 당시의 JAŸ-Z의 랩에서는 촘촘히 라임을 배치하면서도 가끔 플로우를 가속하며 많은 음절의 문장을 소화하는 특유의 스타일이 돋보이는데, 이는 [Illmatic]의 Nas와 Big L 등 동세대 특출난 경쟁자들의 영향을 받고 재정립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랩 스타일에 명백한 레퍼런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래퍼로서 JAŸ-Z의 역량을 오랫동안 의심받게 했지만, [Reasonable Doubt]은 [Illmatic]도, [Ready to Die]도, [Only Built 4 Cuban Linx…]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이유는 분명 Shawn Carter의 마약상 경력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불법 사업이 브루클린의 Pablo Escobar로 비유될 규모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는 분명 마약 거래로 상당한 규모의 자산을 축적했다. 지역에서 흔치 않게 벌써 렉서스를 몰고 다녔고, 정식 데뷔 전 이미 추정 몇백만 달러 가량을 벌 정도이니 말이다. 그의 사업가적 기질은 어느 정도 천부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게 레코드 계약이라는 운이 허락되었다면 JAŸ-Z의 비즈니스맨 페르소나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거리에서의 경험과 늦은 데뷔가 되려 그의 주체성을 강화시켜 Roc-A-Fella Records라는 제국의 기틀을 세우는 꼴이 된 것이다. 때문에 그는 거의 최초의 인디펜던트 랩 아티스트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자금을 모으는 방법을 알았을 뿐더러 그것을 음악 투자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법 역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체를 랩 캐릭터로 승화할 수 있었다. “Can't Knock The Hustle”은 혹시라도 “Dead Presidents”를 청취하지 못했을 리스너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앨범의 세계관을 압축하는 훌륭한 오프너이자, JAŸ-Z의 허황된 사업가적 캐릭터를 완벽하게 반영한다. Marcus Miller를 샘플링한 세련된 비트, 신인의 앨범에 덜컥 참여한 Mary J. Blige, ‘I got extensive hoes with expensive clothes’로 대표되는 독특한 펀치라인, Hype Williams가 감독한 네오 느와르적 뮤직 비디오까지 — JAŸ-Z는 이미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다.

 

Ain't no stoppin' the champagne from poppin'
The drawers from droppin', the law from watchin', I hate 'em

-JAŸ-Z, “Politics As Usual” 中

 

이후의 곡들이 마피오소 랩을 통틀어 가장 장르적으로 일관적이고 — 다분히 상업적인 Jaz-O의 “Ain't No Nigga”를 제외한다면 —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익히 알려져있다. [Reasonable Doubt]은 당대, 그리고 후대의 어떤 마피아 테마의 힙합 앨범보다도 고급스러운 고위 범죄자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천부적인 랩 톤과 전달력으로 대표되는 JAŸ-Z의 도시적 남성미에 있겠지만, 역시나 프로듀서들과의 호흡이 유독 좋았던 까닭도 제할 수 없을 것이다. JAŸ-Z는 언제나 그가 추구하는 미학을 재현하기 위한 최선의 인재를 배치하는 감각이 탁월한 아티스트였다. 본작의 프로덕션을 일컬어 쟁쟁한 골든 에라의 음악적 정점이라고 평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겠으나, 적어도 그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앨범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JAŸ-Z와 Ski의 합은 이미 “Dead Presidents”로 증명된 만큼이나 훌륭하다. Ski의 비트는 재즈와 소울의 영향을 짙게 받아 선율적인 서정미가 돋보이고, 이는 JAŸ-Z가 마약 범죄로 축적한 부를 보다 럭셔리하게 과장해 과시하는 데에 특화되었다. Camp Lo의 앨범에 수록되어도 손색이 없을 듯한 “Politics As Usual”에서 JAŸ-Z는 The Stylistics 음악 위 완벽히 군림하며 성공 서사를 정당화해내고, “Dead Presidents II”에서는 전편보다도 복잡한 라이밍을 문제 없이 구사해낸다.

 

특히 “Feelin' It”은 재즈 샘플을 운용하는 Ski의 감각이 정점에 달한 트랙이다. Ahmad Jamal의 “Pastures”를 샘플링한 뒤 특유의 건조한 드럼과 Mecca의 나른한 코러스를 더한 사운드는, 분명 앨범 내에서 가장 커머셜한 축에 속함에도 결코 이후 JAŸ-Z의 숱한 클럽튠 싱글들처럼 경박하지 않다. 모달 재즈 특유의 우아함을 JAŸ-Z가 묘사하는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과 절묘하게 결합해낸 Ski의 역량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재즈에 대한 Ski의 조예는 A Tribe Called Quest를 참조한 후속 트랙 “22 Two's”의 그루브에서도 돋보인다. 프리스타일 래퍼로서의 연륜을 발휘해, JAŸ-Z는 이 곡의 첫 벌스에서 음절 ‘Tu-’를 정확히 22번 사용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 아웃트로에서 Maria Davis의 목소리를 빌려 흑인의 경제적 자립을 설법하기도 한다. 이처럼 Ski와의 협업에서 JAŸ-Z가 다분히 과시적이라면, Clark Kent와의 협업에서는 불법적 생존 경쟁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 그의 비트는 Ski의 것보다는 덜 화려하지만, 오랜 DJ 경력으로 다져진 안정성이 부각된다. 특히 JAŸ-Z가 음악계에 진출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지원한 Clark Kent인 만큼, 그가 담당한 곡에서는 루키로서의 야망을 가진 페르소나가 돋보인다. Roc-A-Fella의 서문과도 같은 “Coming Of Age”에서 JAŸ-Z는 Memphis Bleek과 함께 <스카페이스>의 Tony와 Manny인 것마냥 능청스레 연기하며, “Cashmere Thoughts”에서는 물질주의와 남성우월주의로 화려하게 무장한 포주적 마피오소를 선보인다.

 

무엇보다도 Clark Kent가 [Reasonable Doubt]에서 JAŸ-Z와 The Notorious B.I.G.의 협업을 성사시킨 공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둘은 분명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음에도, Biggie는 그때의 Shawn Carter가 JAŸ-Z라는 이름의 래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때문에 본래 JAŸ-Z의 단독 곡으로 기획되었던 이 비트를 Clark Kent의 작업실에 방문한 Biggie가 탐내 우연히 협업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며, 이는 앨범 내에서 JAŸ-Z가 가장 경쟁적인 태세로 임하는 순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Clark Kent에 의하면, “Brooklyn's Finest”는 JAŸ-Z의 실력에 심드렁했던 Biggie가 가사를 쓰지 않고 녹음하는 JAŸ-Z 특유의 스타일에 감명받고 그를 모방한 계기로 알려져있는데 — 이는 Clark Kent 혼자만의 후문일 뿐, 교차검증이 되지 않은 주장이다. 이 명곡에서 유일한 사실은, 유사한 시기에 가사를 종이에 쓰지 않기 시작한 희대의 두 랩 천재가 서로의 역량을 시험하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분명 다른 시간대에 따로 녹음되었음에도, 오랜 단짝처럼 랩하는 둘의 호흡은 브루클린의 위상을 가장 환상적으로 치켜세우며 The Commission의 환영을 드리우고 있다. “Hit 'Em Up”에 응수하는 Biggie의 펀치라인과 위압적인 발성을 듣고 있자면 역시 그만한 MC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벌스가 다 끝나기도 전에 ‘Time to separate the pros from the cons’라고 받아치는 JAŸ-Z 탓에 곡의 진정한 승자를 가리기 무척이나 어려워지니 말이다.

 

Nine-to-five is how you survive, I ain't tryna survive
I'm tryna live it to the limit and love it a lot

-JAŸ-Z, “D'evils” 中

 

Ski와 Clark Kent 외에도 앨범에 공헌한 중요한 이름들이 남아있다. 게다가 이들은 JAŸ-Z의 작가주의가 만개한 트랙들을 담당하고 있다. 1990년대의 어떤 랩 앨범을 방문한다고 한들, 언제나 그 중 최고의 명곡을 담당한 DJ Premier의 장인정신은 [Reasonable Doubt]의 장르성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있다. 특유의 대화체로 경쟁 갱단과의 대치에서 지배권을 주장하는 “Friend Or Foe”, 느와르 영화적인(‘Mannerisms of a young Bobby DeNiro’) 마피오소 랩 트랙 “Bring It On” 모두 훌륭하지만, 백미는 역시나 “D'evils”다. Preemo가 “Dead Presidents”의 비트에 필적하기 위해 작정하고 주조했다고 알려져 있는 이 비트는 그의 수많은 히트 중에서도 단연 최고급의 작업물이며, 각각 “I Shot Ya (Remix)”와 “Murder Was The Case”에서 따온 Prodigy와 Snoop Dogg의 구절이 불경함을 더한다. 가까웠던 친구와 그의 가족마저도 냉혹하게 살인해야 하는 거리의 잔혹함을 직시하며 범죄자의 타락한 도덕성을 시적으로 다뤄내는 JAŸ-Z의 작사력은 동시기의 Nas에 정면으로 비견되어도 손색이 없으며, 여호와가 목격한다 한들 증언하지 못하도록 미리 죽여 놓겠다는 신성모독적인 가사로 마피오소 랩 특유의 느와르적 장르성에 방점을 찍는다.

 

[Reasonable Doubt]에서 상업적으로 변모하기 이전의 JAŸ-Z를 확인할 수 있듯, 상업적으로 변모하기 이전의 Irv Gotti 역시 확인할 수 있다. Murder Inc.로 대표되는 그의 상업적인 후기 사운드와는 달리, Irv는 소울 샘플을 그럴 듯하게 다루며 앨범에서 가장 내면적인 순간 중 하나를 선사한다. “Can I Live”는 고급 범죄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실존적 위기를 그려내는 곡으로, Isaac Hayes의 묵직한 그루브를 JAŸ-Z의 변속적인 플로우로 재해석하고 있다. “D'evils”가 앨범의 테마 중 가장 비극적인 일부분을 강조한다면, “Can I Live”는 앨범의 테마 자체를 함축해내 재서술한다. 크리스탈과 모엣을 담아낸 술잔과 주사위가 오가는 도박판, 롤렉스를 차고 렉서스를 운전해 휴양지 스위트룸으로 도착하는 삶 — 그리고 그런 삶에 도달하기 위해 치뤄야 했던 대가, 대가를 알고 있기에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데에 기인한 스트레스, 정신적 안정 대신 더 큰 성공으로 불안감을 덮어버려 탄생한 비대한 자아. [Reasonable Doubt]은 불법적인 성공의 명암을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그 모든 곳을 지나쳐 도달한 엔딩인 “Regrets”의 ‘​In order to survive, got to learn to live with regrets’이라는 교훈은 클리셰를 초월할 만큼 먹먹한 서정성을 제공한다.

 

https://youtu.be/AeoNoT2DAIE?si=-2XAVBba_O0HH7lE

‘JAŸ-Z와의 저녁인가, 50만 달러인가?’ 이 유명한 인터넷 밈에 JAŸ-Z는 뜻밖에도 전자를 택할 여지를 언제나 부정한다. 이미 자신의 앨범에 전해줄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으므로, 50만 달러를 받고 자신의 앨범을 구매하라는 논리이다. 이는 다분히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가적 태도이기도 하지만, 그의 가사에 집중하며 음악을 들은 청자라면 그의 발언이 거짓이 아님을 알 것이다. 특히 [Reasonable Doubt]은 정말 그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음반이다. 그의 성공, 그의 철학, 그의 생존기가 모든 골든 에라 힙합 음반을 통틀어 가장 영화적으로, 그리고 스타일리시하게 집대성되어 있다. Raekwon의 마피오소만큼이나 JAŸ-Z의 마피오소가 후대에 중대히 여겨지는 이유는, JAŸ-Z라는 거대한 아이콘의 시작점임과 동시에 이 당시 JAŸ-Z가 점한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그는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자신보다 어린 이들보다 늦게 데뷔했고, 동시에 래퍼로서의 성공 이전에 이미 한 차례의 경제적 성공을 이룬 인간이었다. 그는 심지어 [Reasonable Doubt]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음악을 중단하고 다시 마약상으로 돌아갈 마음가짐을 가졌을 만큼 충분한 부를 축적했다. 때문에 그의 가사에서는 단순한 범죄 미화 이상의 계급 의식, 물질에 대한 집착, 그리고 성공에 대한 철학을 찾아볼 수 있다. 극적이면서도 지성미를 갖춘 고급스러운 보스, JAŸ-Z는 정말 본인이 원하던 대로 힙합의 Vito Corleone이 되어가고 있었다.

 

JAŸ-Z는 27살의 나이에 데뷔해 힙합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와 정확히 같은 운명을 타고난 이는 힙합 역사를 통틀어 단 두 명뿐이다. 30년 동안 그는 극소수의 아티스트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커리어를 축적했으나, 그 누구보다도 기록에 관심을 보이던 그가 본인의 최고작으로 택한 앨범은 싱글 차트 50위 내에 겨우 한 곡만을 올린 저조한 성과를 기록한 [Reasonable Doubt]이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닌 많은 팬들이 아직까지도 이 앨범을 기억하고, 최고로 평가하며, 심지어는 숭배하기까지 한다. ‘뉴욕의 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커머셜 랩 아이콘의 데뷔작이 어떻게 가장 고상한 취향을 지닌 장르 매니아들의 성서가 될 수 있었을까? 골든 에라 말기에 대한 향수, 혹은 잘 포장된 성공기 때문일까. 혹은 JAŸ-Z가 이 앨범에서 절묘하게 구축한 고풍스러운 마피아 이미지에 대한 경외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견으로, [Reasonable Doubt]이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소비될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랩 앨범으로서의 순도 때문이다. 상업적인 전략 없이 오래 연마한 역량을 표출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젊은 JAŸ-Z의 야망이 있으며, 그가 고안해낸 가장 복잡하고 곡예적인 플로우가 이 앨범에 담겨있다. 이후 JAŸ-Z 본인은 물론이고, 그 어떤 이도 다시는 [Reasonable Doubt]처럼 랩하지 못했다.

 

JAŸ-Z는 이 시대에 흔치 않게 아직까지도 랩의 미학을 설파하는 거인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그가 최근 Roots Picnic에서 프리스타일로 적들을 대거 디스하거나 양키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기획할 때마다, 우리는 그가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공백기를 초월해 이 시대에 아직까지 랩이 들려줄 수 있는 일종의 경이를 증명해주기를 바란다. 그가 진정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할 지는 의문이나, 하나만은 확실하다. JAŸ-Z는 제 2의 [Reasonable Doubt]을 만들 수 없다. 단순히 유행이 지났다거나 그의 의욕이 사그러들었다는 이유가 아니다. [Reasonable Doubt] 이후의 JAŸ-Z는 특정한 위치의 누군가로서 임해왔다. 오직 [Reasonable Doubt]의 JAŸ-Z만이 무언가가 되기 이전 그 위치에 오르기를 갈망했다. 그러니 이미 신화가 된 그에게서 음악적 신화화를 두 번 다시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대부로 등극하기 이전부터 대부를 자칭하며 성공을 동경하던 그의 모습을 다시 동경할 뿐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와 동일한 야망을 가져볼 뿐이다.

 

This is the number one rule for your set
In order to survive, got to learn to live with regrets

-JAŸ-Z, “Regrets” 中

 


 

블로그: https://blog.naver.com/oras8384/224326830998

 

제가 만약 래퍼로 데뷔한다면, 데뷔 앨범으로 Reasonable Doubt 같은 작품을 내고 싶을 것 같아요.

그만큼이나 좋아하고, 인생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앨범을 꼽으라면 서슴치 않고 택할 명반 중 하나입니다.

이 시기 제이지의 랩은 정말 세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툭하면 앨범 수록곡들을 따라부르는데, 랩 구조부터 전달하는 방식까지 너무 섹시한 것 같아요.

언제는 제이지 랩이 세련되지 않은 시기가 있었냐만은...

또한 마피아 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서, Reasonable Doubt 같은 앨범은 아주 제대로 취향을 저격하죠.

전 이 앨범에서 나오는 레퍼런스를 거의 다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요.

마피오소 랩이나 코크 랩은 힙합 서브장르를 통틀어서도 가장 멋진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 Reasonable Doubt은 분명 최정점이죠.

 

+

오늘이 6.25 76주년이기도 하네요. 맞춰서 인생 첫 예비군이 딱 끝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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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2 6.25 20:08

    그러니까 제이지는 당장 새 앨범을 내라.

  • title: BRAT온암글쓴이
    1 6.25 23:03
    @공ZA

    올해 떡밥을 이렇게 굴려놓고도 신보를 발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약 거래 이상(?)의 중범죄.

  • 1 6.25 23:59

    저는 쿠반링스를 조끔더 좋아하는거 같습니다 물론 합리적의심도 너무 좋아하지만요

  • title: BRAT온암글쓴이
    1 6.26 22:14
    @세이굿바이

    사실 취향 차이에 불과할 만큼 너무 훌륭한 랩 앨범들이어서, 좀 더 거칠고 날 것의 취향이시면 Cuban Linx를 선호하시는 게 당연히 이해가 가네요 ㅎㅎ

  • 1 6.26 11:50

    전 그냥 고급진 랩앨범 쯤으로 소비하고 있었는데, 사실 무척 입체적인 앨범이었네요. 이것도 가사 보면서 다시 들어봐야겠어요

  • title: BRAT온암글쓴이
    1 6.26 22:15
    @주인님제발

    제이지가 이 앨범에서 담은 지혜는 꽤 주목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당대의 다른 래퍼들에 비교해서 정말 통찰력이 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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