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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문화적 배경은 상당히 다층적이다. 20여개에 달하는 원주민들은 폴리네시아인들의 근원으로 추정되며, 이후 몇세기에 걸쳐 중원의 지속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다. 대항해시대에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서양의 개척자들이 처음 지배한 동아시아의 땅도 대만이었으며, 근대에는 일본의 식민 지배까지 겪어야 했다. 이후 국공내전의 패배로 대만으로 도망쳐 온 장제스는 중화 문명의 정수를 고스란히 가져와 고궁박물원에 전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40여년에 달하는 계엄령을 시행하여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기도 했다. 이 계엄시대의 반동으로 이후 정권들은 무제한에 가까운 표현의 자유를 허락했으며, 여기에 상술된 문화적 층위, 심지어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지원까지 더해지며 대만의 대중문화는 놀라울 정도의 깊이와 저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른바 '만도팝(Mandopop)'이라고도 불리는 중화권 대중음악에 있어서도 대만은 항상 중심부에 있다. 등려군과 주걸륜을 위시한 슈퍼스타들의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금곡장이라는 권위와 대중성을 겸비한 자체적인 시상식 또한 굳건하다. 오늘 리뷰의 주인공인 ØZI 또한 금곡장에서의 맹위로 스타덤에 올랐다. LA에서 저명한 사진 작가와 만도팝 디바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예술적 재능은 그 부모를 닮아 다방면에 걸쳐있었다. 대중음악 트렌드의 첨단을 영민하게 흡수해 멜로딕한 랩부터 감미로운 보컬까지 아우르는 것은 물론, 자체적인 프로듀싱과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이를 구체화하는데도 능숙했다. 신인 답지 않은 노련함은 그가 첫 정규를 내자마자 금곡장 6개 부문 노미네이트를 휩쓸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고대의 대왕 '오지만디아스(Ozymandias)'에서 따온 그 예명처럼, ØZI는 그 재능만큼이나 야심도 충만한 아티스트이다. 버클리 음대와 JYP 엔터테인먼트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한 채 독립적인 레이블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Maniac'이라는 자체적인 패션 브랜드도 지휘하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앨범 [SWIRL]은 말 그대로 그 야심의 집약체다. 대만 장르 씬의 내외는 물론, 해외 주류 시장까지 한데 묶어 거대하게 휘몰아친다.
ØZI의 국제적이고 다채로운 관심사는 [SWIRL]에서 '편집장'이라는 페르소나로 분출된다. 아트워크부터 피지컬 앨범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잡지'라는 컨셉은 이내 [SWIRL]이 지닌 드넓은 확장성으로도 이어진다. 편집장이 데려온 필진들과 모델들의 면면은 지면을 압도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일 박재범과 그루비룸은 여전히 그들다운 대중적 감각의 팝 알앤비에 브라가도시오를 감미롭게 녹여낸다. '애쓰지 않아도'("EFFORTLESS") 자연스레 드러나는 멋은 국경조차 무색하게 한다. 잡지에서 제일 화려하고 요란한 기사일 "PRE55URE"에는 일본 장르 씬의 현주소가 날카롭게 집약되어 있다. 저지 클럽과 베일리 펑크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맹렬한 드럼라인 위로 중독적인 보컬 찹이 반복되는 프로덕션은 일순간 네온사인으로 즐비한 도쿄 어느 뒷골목의 파티가 된다. JP THE WAVY, Awich, MFS와 같은 기라성들이 뽐내는 멋과 개성에 ØZI도 준수한 일본어 퍼포먼스와 프로듀싱 감각으로 스며든다. 국제적인 조류로 채워내는 파괴력은 ØZI의 카리스마를 거쳐 [SWIRL]의 당당한 커버 스토리로 자리매김한다.
해외에서 끌어온 절정의 이면에는 대만을 위시한 중화권의 음악 씬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시도들로 채워진다. "SEX TAPE"을 예로 들어보자. 공간감있는 얼터너티브 R&B 프로덕션 사이로 파고드는 Sunset Rollercoaster(落日飛車)의 연주는 섹슈얼한 함의 위로 재지한 낭만을 채워낸다. 세계적인 남성용 향수의 이름이기도 한 "BLEU"의 음울한 톤을 9m88의 실키한 톤이 보사노바의 짙은 향기로 감싸안는 부분, 또한 Karencici의 끈적함에 힘입어 앨범에서 가장 에로틱한 에너지가 넘치는 슬로우 잼 "RE-UP"은 ØZI가 대만 알앤비 씬의 현재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EEEASY"의 로맨틱한 래칫 알앤비 프로덕션을 휘젓는 쓰촨 출신 Asen(艾志恆)의 멜로딕한 그루브까지 더해지니, [SWIRL]이라는 소용돌이는 아시아 전체의 흑인 음악 조류가 ØZI의 세련된 솜씨로 조율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까지 느껴진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ØZI가 단 아홉 트랙의 작은 볼륨으로 이뤄낸 커다란 통섭의 이면에는 끝없는 수정과 반복을 통한 노력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차분한 네오 소울 아웃트로 "FINAL FINAL FINAL"은 이 치열함을 공유하는 대만의 젊은 동료들이 함께하는 편집장 코멘터리와도 같다. 있는 그대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드러나는 마감 기한이 주는 압박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작업 과정은 국적과 직업을 넘어서는 보편성마저 띈다. 이 보편성의 이면에는 "BAD SIGN"과 같은 고독과 취약함도 물론 존재한다. 잡지를 화려하게 채우는 화보와 광고, 기사의 뒷면에 집필진들과 디자이너, 이들을 조율하고 지휘하는 편집장의 고민이 배어있듯이. 아티스트의 이름을 따온 소네트에서 영광 직후에 허무를 그려냈듯이. 그러나, ØZI의 꾸준함과 재주는 이 허무마저도 끊어낼 용오름을 기어이 만들어냈고, 앞으로도 만들어낼 것만 같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나니, ØZI와 [SWIRL]은 그들을 배출한 대만 못지않게 다층적인 아티스트이자 앨범이다. 서울과 도쿄, 청두에서 비롯된 개성과 낭만, 야심이 타이베이에 모여 하나가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LA와 타이베이를 오가며 성장한 젊고 야심 만만한 준재가 하나로 곱게 엮어냈다. 대망과 고독이 어우러지고, 그 사에에서 에로티시즘과 노스탤지어가 꽃핀다. 아시아적 다양성이 대만이 지닌 서정성과 낭만, 다채로움으로 분출되는 순간, 대만이 지닌 국제성이라는 무기가 블랙 뮤직에 있어서도 가장 날카로운 창날이 된 셈이다. "SWIRL: Editor’s Notes"에서 선언했던 "나는 취향을 만들고 유행을 선도한다"는 외침은 이 지점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확보한다. 동아시아 전체의 거물과 신성, 대만 내의 젊은 움직임들까지 자신의 색으로 조율해낼 수 있는 프로듀싱 역량에 힘입어, 만도팝의 현재와 확장성을 유행의 최첨단으로 편집해낸 것이다. 동아시아의 블랙 뮤직의 현주소를 이야기함에 있어 [SWIRL]이 한 꼭지를 차지하기 마땅한 이유다.
Best Track: EFFORTLESS [Prod. by GroovyRoom] (feat. Jay Park), SEX TAPE (feat. Sunset Rollercoaster), PRE55URE (feat. JP THE WAVY, Awich, MFS)




본 리뷰는 w/HOM#34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w-hom/#34
들어볼깨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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