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Orange의 모든 앨범에는 그 나름의 풍토가 스며 있다. <Cupid Deluxe>는 흐릿한 1980년대식 R&B와 뉴웨이브를 통해 뉴욕, Dev Hynes가 스스로의 집이라 불렀던 공간에서 사랑과 선택된 가족을 기념했다. <Freetown Sound>는 흑인 아틀란틱¹의 역사와 음악을 가볍게 넘나들며, 개인적인 기록을 새겼다. <Negro Swan>은 첫 트럼프 행정부 시절, 흑인이자 퀴어로 산다는 사실이 남긴 균열을 고통스러운 R&B로 채웠다. 영화와 타인의 음악을 다루는 작업은 끊이지 않지만, 가장 깊은 울림은 언제나 Blood Orange라는 이름 아래 남겨졌다. 2019년 믹스테이프 <Angel’s Pulse> 이후 처음 발표하는 정규작 <Essex Honey>에서 그는 고향 Essex로 돌아가, 상실과 기억을 더듬는다.
런던 동쪽, 전원과 교외가 엇갈리는 Essex는 영국 안에서도 흔히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Blood Orange의 노래 속에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Negro Swan>의 "Orlando"에서만 언뜻 스쳐간다. '첫 키스는 바닥이었지'라는 구절은 유년의 괴롭힘을 불러낸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다시 Essex를 상흔과 겹쳐 놓는다. 2023년 어머니의 죽음을 맞닥뜨리며, 그 고통을 더 날카롭고 치열하게 파고든다. 피아노와 브레이크비트, 일렉트릭 기타가 흐릿하게 얽힌 편곡 위에서 Hynes는 옛 자아와 현재의 자아를 오가며, 익숙한 골짜기 속에서 새로운 길을 더듬는다.
비극을 품으면서도 편곡은 살아 있다. 박자는 여름 폭풍처럼 몰아치다 사라지고, 현장 소리와 목관, 하모니카, 현악은 예고 없이 스며든다. 게스트 보컬은 끊임없이 들리지만, 주인공으로 나서지 않는다. 그는 목소리를 합창처럼 다뤄 멜로디를 채색하고 질감을 겹친다. 크레디트를 보기 전에는 그 목소리가 Lorde나 Zadie Smith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 섬세한 배치는 오래 언급해온 그의 고독과 포개진다.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면서도, 애도는 여전히 개인의 몸속에서만 머문다.
앨범은 반복되는 꿈처럼 흘러간다. "Look at You"의 흐릿한 코드와 숨결 같은 팔세토, 묵직한 킥은 "Somewhere in Between"에서 다시 나타난다. "Thinking Clean"의 거친 첼로 코다는 "Vivid Light"로 번져가고,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라는 절망의 문장은 평온한 "Westerberg" 한가운데 불쑥 들어온다. 슬픔은 특정한 시각에 묶이지 않고, 존재 자체의 점멸로 드러난다. "Somewhere in Between"에서 '말했던 것과는 달라, 어딘가 그 사이에 있어'라고 그는 밝게 노래한다. 이상하게도, 애도는 달콤할 때가 있다.
그 반복 위로는 어린 시절의 음악이 겹쳐진다. Lorde는 "Mind Loaded"에서 Elliott Smith의 "Everything Means Nothing to Me"를 불러내고, 작곡가 Tariq Al-Sabir와 오랜 동료 Caroline Polacheck은 "The Field"에서 The Durutti Column의 "Sing to Me"를 비튼다. 콜라주의 장인이었던 그는 이번에는 단순한 향수를 넘어선다. "Westerberg"에서 '네가 알던 시절로 되돌아가/잊었던 노래를 다시 틀어/기억을 바꾸고, 화면비를 4:3으로 바꿔'라며 농담처럼 흘린다. 유년기의 기억을 만지작거리지만, 거리를 두고 변형한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의 유령이 되어 어린 시절을 떠도는 듯하다.
때로 그는 어머니에게 직접 노래하는 듯하다. "The Last of England"에서 '네가 잠든 방의 저녁에 앉아/시간이 우릴 대화할 수 있게 했는데/그들은 널 데려갔지'라며 읊조린다. 또 다른 순간에는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Life"에서 '인생은 네가 찾는 곳에 있어, 구멍 속에 숨어서'라는 구절은 조상에게 전하는 비밀스런 충고처럼 들린다. "Vivid Light"에서는 글이 나오지 않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방을 예약하고/영감이 오길 바라지만/여전히 메말라 있네'라고, 오히려 경쾌하게 노래한다.
그의 매끈한 고음역은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붙잡는다. serpentwithfeet, Sampha, FKA twigs처럼 감정의 떨림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Hynes의 음성은 애상을 꿈결로 흘려 보낸다. "Countryside"에서 '또 다른 아침이 널 잃은 채 시작돼/우리의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생각해'라며 부를 때, 리버브는 그리움을 몽환으로 바꿔놓는다. "The Train (King’s Cross)"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멀리 보이지 않아'라고 고백할 때조차, 절망보다는 선명함이 남는다. 불빛은 꺼지지 않고 반짝인다.
이 모호한 빛깔이 바로 Blood Orange의 본령이다. 기록과 발굴, 두 갈래의 충동이 그의 서명을 이루었고, 맥락을 이해하고 다시 쓰려는 집요함이 그 바탕을 지탱해왔다. 그러나 <Essex Honey>에서 현재는 과거 못지않게 낯설고 경이로운 뮤즈로 등장한다. 어떤 순간, 고향은 낯선 땅처럼 다가온다.
¹ 흑인 아틀란틱(Black Atlantic):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을 기점으로 형성된 흑인 디아스포라 문화권을 뜻한다. 아프리카, 카리브해, 아메리카 대륙, 유럽을 가로지르는 흑인 공동체의 음악·문학·사상·종교 등이 교차하는 초국적 개념으로, 영국 문화학자 Paul Gilroy의 저서 <The Black Atlantic>에서 정립된 용어다.
8.1인데 베스트뉴뮤직 딱지가 없네
요새 8.3~8.7 작품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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