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화면, 끊긴 자막, 지나간 밈—조각난 단서들만이 남는다. WHATMORE의 <FLIPS>와 <FLIPS 2>는 바로 그 파편 위에 세워진다. 트랙들은 노래라기보다는 짧은 몽타주다. 30초에서 1분 남짓의 러닝타임은 원곡의 핵심을 끌어다 놓고, 다시 망가뜨리고, 재배치한다. 결핍의 리듬 속에서, 원래 존재했던 곡의 형태는 상상 속에서만 이어진다. 그 공백이 오히려 음악의 구조가 된다.
제목은 Clairo, SZA, Phoebe Bridgers 같은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인터넷 밈과 비슷한 언어다. 밈은 원본이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만이 웃음을 얻을 수 있듯, 여기서도 원곡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야 의도가 드러난다. 그러나 WHATMORE는 그 친숙한 기억을 즉각적으로 왜곡한다. "miley"에서는 팝의 상징을 VHS처럼 늘어뜨려놓고, "phoebe bridgers"는 원곡의 애수를 디스토션 속에 집어넣어 아이러니하게 밝은 기운을 띄운다. 소비자의 반응 속도를 겨냥한 이 전략은 TikTok과 Instagram 같은 플랫폼을 배경으로 삼는다.
하지만 <FLIPS>가 밈과 장난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팀의 구성에 있다. Cisco Swank, Yoshi T, Jackson August, $eb (Cebu), 그리고 프로듀서 Elijah Judah로 이루어진 이 콜렉티브는 각자의 배경을 분산된 방식으로 녹여낸다. 재즈의 화성, 힙합의 드럼 루프, 인디팝의 질감이 짧은 트랙 안에서 서로 부딪히고 흩어진다. <FLIPS>가 실험의 초석처럼 보였다면, <FLIPS 2>에서는 이 조합이 한층 더 정제된다. "role model" 같은 트랙은 원곡자가 직접 반응할 정도로 신선한 리워크를 보여주며, 짧은 호흡 안에서도 완성도 높은 아이디어를 증명한다.
이 두 장을 관통하는 중요한 지점은 바로 집단적 실험의 태도다. Elijah Judah의 프로듀싱은 파편을 이어붙여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나머지 멤버들은 그 조각에 질감과 목소리를 불어넣는다. 결과적으로 여기서의 ‘곡’은 완전한 창작물이 아니라, 원본과 재편집 사이에 생겨나는 공간을 가리킨다. <FLIPS>라는 이름 자체가 뒤집기와 뒤틀기를 의미하듯, 이 프로젝트는 파편적 기억이 어떻게 다른 언어로 살아날 수 있는지 탐구한다.
그러나 파편의 미학은 한계도 분명하다. 몇몇 트랙은 너무 빠르게 끝나 여운을 남기기보다 미완의 스케치처럼 흘러간다. 원곡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제목과 내용이 단절된 암호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밈으로서의 속도와 실험으로서의 불완전함 사이에서, 균형은 여전히 흔들린다.
그럼에도 <FLIPS>와 <FLIPS 2>는 지금의 시간을 반영하는 독특한 기록이다. 모든 것이 짧아지고, 파편으로 남으며, 밈처럼 흘러가 버리는 시대. WHATMORE는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흡수한다. 그래서 앨범은 완결된 노래가 아니라, 조각난 순간들이 기묘하게 이어지는 연속체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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