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음악을 들었습니다. 10살 때 처음 접한 비틀즈 이후로 항상 음악을 들어왔죠.
이미 뇌과학으로 증명된 이론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음악적 취향이 결정되고
스포티파이 통계가 증명하듯 30대 중반을 넘으면 새로운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죠.
동의하시나요?
아마 비교적 어린 분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아직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겠죠.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틀린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 들은 음악 중에 여전히 즐겨 듣는 음악들이 남아있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플레이리스트를 차지하는 음악들은 대부분 서른 이후의 것들이고 저는 여전히 새로운 음악을 찾아들어요.
제가 음악을 한창 듣던 저 시절(10후-20초)에는 지금의 리스닝 환경과 매우 달랐습니다.
보통 제 세대를 마지막 아날로그의 세대 혹은 디지털로의 전환을 유년기에 겪은 마지막 세대입니다.
카세트테이프에서 시디플레이어로, 시디플레이어에서 mp3 로, mp3의 용량이 128메가에서 1기가로
점점 변해가며 14900원을 아끼고 아껴서 한 달에 새로운 음반 1장을 겨우 구매하여 듣던 시절이 10대였죠.
지금은 14900원으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죠.
그저 몇번의 검색과 클릭으로 신보를 들을 수 있는 지금과
기다리고 기다려서, 모으고 모아서, 음반 한장을 손에 쥐고 집에 가는 길을 거치는 사람은
당연히 음악에 귀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개념글에 '어떤 음악'을 드는 것이 우월하고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지만,
저때는 달랐습니다.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는 환경'은 '소수의 특권' , 가진 자들의 것이었으니까요.
예전에는 돈이었다면, 지금은 '시간'입니다. 그 두가지를 많이 가진 사람들만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 음반을 들어본 사람, 그 음반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특별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지금은 시간만 있다면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어떤 음악을 듣는 것은 그저 '시간이 많기 ' 때문에 그 이상은 없는 것이죠.
한번에 와닿지 않아도, 다시 듣고 다시 들으면서 끝내 그 음악이 닿을 때까지
한 달을 보내는 사람과 한번에 와닿지 않으면 쉽게 다른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는 시점에서
음악을 마치 장기 연애하는 사람처럼 대하는 10대와 달리,
지금은 그저 잠깐 스쳐가는 행인처럼 듣는 것은 역시 매우 다릅니다.
(물론 그 행인을 오래 동안 만나 연애하듯 듣는 사람들도 많겠죠)
당연히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연히 모든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편리함'에 더 좋다고는 하겠지만,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을 듣는 일이 '점점 한번에 와닿는 외모'가 중요한 시대라면,
제가 음악을 '경험'하던 시기는 그 사람과 오랫동안 만나면서 처음은 알기 어려운 성격과 고유한 특성을 꼭꼭 씹어먹던 세대니까요.
가볍게 짧은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과 한 사람과 길게 연애하듯 듣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좋을까요? 답은 없겠죠.
다만 음악에 여전히 진지하고 , 음악을 여전히 '귀하게' 듣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면
좋은 음악은 계속 될 수 있다고 믿을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지금의 음악 커뮤에서 언급되는 상당 부분의 많은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리고 여러 사람이 전시하는 어떤 '취향'에 대해서는 꼰대스러운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듣는 음악은 자신에게 좋은 음악이 무엇인가 라는 고유한 가치판단에 있기 보다는
예전에는 피치포크 지금은 Rym으로 , 해당 매체에서 만들어낸 가치 판단 혹은 점수가
깊게 반영되어 있고, 그들의 높은 점수가 마치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지' 예전보다 훨씬 깊게 반영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게 어떤 음악이든, 음악을 '좋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들어보기' 밖에 없는데,
지금은 '무엇이 좋은가'라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특정한 매체의 성향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죠.
'취향'이란 말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개인의 고유한 '특성' '가치판단'은 대부분 그 개인이 속해있는 집단과 세대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피어 프레셔 (peer) 가 강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고유한 취향'을 지키기 매우 어렵습니다.
옆에서 노스페이스를 입으면 나도 노스페이스를 입어야 하고, 남들과 다른 모습과 기호를 가지면
'별종'으로 취급받으며 사회와 멀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 사람들 조차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지키려는 자세 없이 그저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그저 그대로 학습하듯 들은 뒤에
심지어 '이건 나의 취향'이라고 모든 것을 '상대주의'로 귀결하는 간편한 논리들이 많습니다.
역시 '좋은 음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거리가 있는 것이겠죠.
'정답지'를 달달 외워 스카이 대학을 가는 것처럼
그들(영미권 힙스터 매체)의 호오를 달달 외워 학습하듯 듣는 지금의 환경에 불만이 있습니다.
결국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 고유함을 가진다는 것은
'누군가'의 인정에서 멀어지는, 외로운 길이라는 것을 30년 음악을 들으면서 깨달은 소회입니다.
참 꼰대스러운 결론이죠?
음악을 듣는 일, 혹은 자신의 취향을 가지는 일은 '이 나라, 이 세대'에서 무척 외로운 일입니다.
그건 우월해지는 것도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외로운 일이예요.
외롭기 때문에 음악이 와닿는 것입니다. 60년 전의 뮤지션이, 50년 전의 고인이 나의 귓가로 들어와
정서적으로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경험은 근본적으로 서로의 외로움의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나의 외로움을 알아주고 그 외로움을 달래주는 음악이 있다면 그게 좋은 음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생각에 '취향'을 가지는 일은 rym 의 차트 1위를 듣는 것도 아니고
피치포크의 베스트 뉴 뮤직을 듣는 일도 아니라, 그런 심오한 음악을 느끼고 이해하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정확히 어떤 울림을 주는지, 그 고유한 마음의 반동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무엇이 몇 점이고 무엇이 1위이고 무엇이 최고인지' 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박수치는 무대 위의 뮤지션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무엇이 참 좋은지를
묻는 외로운 디깅의 길을 걷는 것. 그게 우리보다 앞서 음악의 여정을 걸어간 뮤지션들이 가르쳐준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음악을 판단하는 유일하고 고유하고 정확한 기준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건 '세월'이예요.
사람들이 열광하는 신보들은 매 시대, 매년마다 있었습니다.
카티의 아임뮤직 부터 칸예의 불리까지 그런 음악들이 매년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음악들은 침몰하듯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집니다.
어떤 유행에 탑승한 음악들은 그저 한 시대의 유행으로 남아 '올드'한 것이 되어버리죠.
하지만 그런 세월을 이겨낸 음악들이 있습니다. 세대가 지나고 또 다른 세대가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들이 있어요. 60,70년대 그러니까 부모님이 태어나던 시기에
태어난 음악들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울림을 준다는 것이 저는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실감합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누군가 좋은 음악을 물어본다면, '세월' 의 엄격한 심사를 받은 음악을 들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은 가치를 가진 음악 말이죠.
그건 제가 위에서 말한 '매우 외로운 음악'입니다. 쓸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가진 음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유행과는 관계없이 자기 고유의 소리를 찾아, 자기 진심을 담은 음악들은 세월을 이겨냅니다.
그게 새로운 신보를 찾아 듣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블랙 미디보다 프랭크 자파를, 새로운 밴드보다 우선 비틀즈를 듣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듣지 못한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브람스' 부터 '마일즈 데이비스, 존 콘트레인, 빌 에반스'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을 이겨낸 음악만이 결국 남으니까요.
이게 제가 30년 음악을 들으며 내린 결론입니다.
Nas 를 들으면, 붑뱁과 90년대의 미국 동부 뮤직의 특성과 래핑의 특성을 듣는 것보다, Nas 가 그 시대 그 시절 흑인으로 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를 들으며 60년대 사이키델릭을 듣기 보다는 멤버들이 약에 취해 헤롱거리며 그 시절의 혼돈과 어지러움을 느껴보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바흐를 들으며 고전주의 클래식을 이해하기 보다는 텅 빈 성당의 오르간 앞에 앉아 그가 왜 신을 생각했는지 고민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듣는 일이 학습이 아니라 정서와 경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멋져요
자파랑 비틀즈 입문해봐야겟군요 ㄱㅅ
입문은 뉴진스로 해도 상관 없습니다. 음악듣기는 교과과정이 아니니까요. 다만 '세월'을 이겨내서 지금도 기억되는 음악들은 대부분 좋은 음악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도 요즘에 소닉 유스 같은 옛 밴드들 들어보는데 요즘 음악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오는 감동이 있는 듯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비틀즈 진짜 들어봐야됨 그냥
자파 아직까지 입문 안 하고 뭐했음
본인등판 ㅋㅋㅋㅋㅋ
Nas 를 들으면, 붑뱁과 90년대의 미국 동부 뮤직의 특성과 래핑의 특성을 듣는 것보다, Nas 가 그 시대 그 시절 흑인으로 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를 들으며 60년대 사이키델릭을 듣기 보다는 멤버들이 약에 취해 헤롱거리며 그 시절의 혼돈과 어지러움을 느껴보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바흐를 들으며 고전주의 클래식을 이해하기 보다는 텅 빈 성당의 오르간 앞에 앉아 그가 왜 신을 생각했는지 고민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듣는 일이 학습이 아니라 정서와 경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라이트하게 듣고자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칸예 카티 타일러만 주구장창 듣다가 성인 되고 바빠지면 음악 끊겠죠. 새 음악 찾아들으려는 욕구 자체가 재능입니다.
뭐 결국 처음에 제가 적은 '뇌과학'의 승리겠죠.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시간이 많은 시절에 가장 유명한 것을 열심히 듣다가 점점 음악과 멀어지는 게 일반적인 경우니까요. 다만 음악 커뮤에 들어와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그래도 여전히 좋은 음악을 찾아 듣겠죠?
재능이라기보단 그정도까지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거겠죠?
레이지 트랩 등등 자극적인 힙합만 듣다가 마음이 힘들 때 비틀즈 에비로드를 들었는데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제가 자기 전 낡은 cd플레이어로 틀어주셨던 음악을 다시 들으니 너무 황홀하더군요.. 부족한 시간에 음악을 듣다보니 음악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항상 '다음에는 뭐 듣지? 이게 명반이라고 했는데?' 만 생각한 저에게 음악은 그게 무슨 앨범을 들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듣고 '어떤 감정을 느꼈나?' 가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을 보니 저의 경험도 나눠보고 싶어 써봤습니다 ㅎㅎ
그런 음악적 경험 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요? 장르의 이름, 그래미 수상, 올해의 앨범을 떠나 그냥 음악을 듣고 감동을 느끼고 더 깊게 음악을 경험하는 일이 그냥 리스너의 목적이니까요.
안그래도 요즘에서야 고전 음반을 들어야할 필요성을 조금씩 느끼는터라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도움되는 글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디깅할 때마다 드는 고민이었는데 감사합니다!
명문이네요 두고두고 보게 스크랩하겠습니다
전 에이치오티 핑클세대인데요,,,
팝송은 브리트니랑 백스트리트보이즈 밖에 모르는 제가
딱 힙합을 접하고 부터 알앤비, 재즈 같이 흑인 까지가 딱 마지노선인줄
알았는데 근 몇년간은 백인음악을 더 많이 들었어여.
특히 하드락이나 메탈은 귀에 감기지 않았는데
요즘은 이게 술술 잘 박히더라구요.
모든건 힙합에서 출발했다는겁니다.
힙합을 안들었으면 저는 멜론 탑100만 들었을거에여
도움되는 글 너무 감사합니다.
개추..rym 랭킹은 정답지가 아닌데도 그거와같아야만 힙스터,높은수준에 올랐다고 착각하는 어린친구들이 많아요
적어도 10년 전까지는 rym 도 그렇게 극단적인 성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특정 장르(익세페리멘탈 힙합)이라던가 나 특정한 성향의 뮤지션들이 지나치게 하잎되는 것을 보면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피폭같은 특정 매체야 편집진의 특정 성향이 반영된다고 할지라도 rym 은 다양한 유저들의 다양한 취향이 반영된 결과일텐데 지금은 전혀 아니거든요. 예전처럼 음반 1장을 사기 위해 확실한 '인정'을 받은 앨범을 듣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어떤 음악이든 들을 수 있는데 항상 한쪽으로 치우치는 성향이 과해지는 건 저도 항상 의아하게 바라봐요.
마음을 울리는 글이네요.. 저랑 가치관이 거의 비슷하셔서 놀랐습니다. 저는 RYM의 헤비유저에 속하긴 하지만 차트랑 점수는 무시하고 제 마음이 가는대로 정말 솔직하게 점수를 주는 편이에요. RYM은 방대한 정보량과 꽤나 자세한 장르구분으로 디깅에 용이할 정도로만 사용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줄세우기와 점수에 너무 연연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네요
‘그저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그저 그대로 학습하듯 들은 뒤에
심지어 '이건 나의 취향'이라고 모든 것을 '상대주의'로 귀결하는 간편한 논리들이 많습니다.‘
주옥같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한동안 꼭 들어야하는 음반 리스트를 만들어가며 꾸역꾸역 음악을 들었었는데, 요즘은 그냥 마음이 끌리는대로, 제가 듣고싶은 대로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음악을 대하는 유일한 기준인, '세월'에 관한 생각 정말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는 낡은 귀를 업데이트할 열정이 없어져서 아쉽네요
스크랩 기능 정말 오랜만에 써봤습니다
예전에는 일부 평론 매체의 권위가 리스너들을 좌지우지했다면
요즘은 소위 리스너라고 칭하는 집단이 그 짓을 똑같이 하고 있는 듯함
좀 씁쓸함
저와 생각이 비슷한분이 계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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