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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ye West - <The Life of Pablo>
당신은 한 조별과제의 팀장이다.
제출 기한이 점점 다가오는데, PPT 제작을 맡기로 한 팀원이 ‘조금만 수정하면 돼요’ 라는 멘트만 칠 뿐 성과를 보여주지를 않는다.
결국 제출 기한을 맞추지 못한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하나 더 다른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쌀쌀해지는 가을 날씨에 맞춰서 산뜻한 가을 옷을 하나 쇼핑몰에서 주문했다.
쇼핑몰 측에서는 배송이 거의 다 준비됐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곧 제품이 배송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옷은 배송되지 않는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옷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취소를 하기는 싫다는 점.
결국 옷이 오기는 왔지만 이미 겨울이 찾아와 이 옷을 입기 힘든 날씨가 되어버렸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Kanye West의 본격적인 앨범 발매 날짜로 대중들을 기만하는 것이 이 앨범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Kanye는 굉장히 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음을 SNS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알렸다.
자신의 정규 7집인 <So Help Me God>, 그리고 게임과 관련되어 보이는 <turbo grafx 16>, 힙합 장르로 팝스타의 경지에 이른 Drake와의 합작 앨범까지.
6집 이후 음악적인 행보에서는 잠잠하던 Kanye였기에 대중들은 갑자기 터지는 앨범 발매 소식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트랙리스트와 발매 일을 공개하면서, 곧 있으면 Kanye의 앨범을 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안 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들려오는 소식은 자신의 앨범 이름을 <So Help Me God>에서 <SWISH>로 바꾸었다는 것 뿐. Drake와의 합작 앨범, <turbo grafx 16>의 소식은 함흥차사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진짜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Kanye는 머천다이즈까지 공개했던 <SWISH>에서 <Waves>로 앨범 이름을 바꾸었다고 발표한다.
마지막으로 <The Life of Pablo>라는 공식적인 앨범 타이틀과 발매 일을 발표한 후, 그 시간만을 기다리던 팬들에게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날려버린다.
팬들이 왜 앨범 발매가 계속 늦어지는 거냐고 항의하자, 앨범의 1번 트랙에 참여한 Chance The Rapper가 본인의 Verse를 급히 수정했으면 좋겠다는 핑계를 이유로 댔다.
3년 만에 일곱 번째 정규 앨범으로 돌아온 Kanye의 파급력은 어마 무시했다.
당시 Kanye의 레이블 사장이었던 Jay Z는 ‘Tidal'이라는 본인만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멜론, 지니 같은)을 구축 중이었고, 본인의 레이블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Tidal에서 독점 공개하도록 했다.
그래서 한 동안 Jay Z나 Beyonce의 앨범들을 다른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으로는 못 듣는 상황도 일어났었다.
<The Life of Pablo>도 마찬가지로 Tidal에서만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었고, 이는 Tidal을 앱 스토어 차트에서 1위를 기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Ultralight Beam', 'No More Parties In LA', ‘I Feel Like Pablo' 등 앨범과 관련되어 있는 구절을 패션과 접목시켜 머천다이즈를 제작했고, 이 또한 흥하면서 그의 문화 산업에서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Kanye는 인터뷰에서 <The Life of Pablo>가 “가스펠 사운드를 녹여내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앨범을 만들었다.” 등 완벽함을 고집하던 완고함을 약간 덜어낸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도 앨범의 유기성을 고려했다기보다 작업한 여러 곡들 중에서 괜찮은 트랙들을 수록한 플레이리스트 혹은 믹스테이프 느낌이 난다.
<The Life of Pablo>에서 언급하고 싶은 점은, 음악적인 부분과 비음악적인 부분이 각각 두 가지씩 있다.
후자부터 먼저 말해보자면, 이번 앨범의 커버는 굉장히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앨범 이름이 수차례 변경되었는데, 그 과정에 있어서 커버도 많이 수정되었다. Kanye는 원래 gif 파일처럼 움직이는 앨범 커버를 구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실패하였고 ’The Life of Pablo‘와 ’Which One'이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적혀있는 지금의 커버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움직이는 앨범 커버에서는 그의 섹스 중독을 잘 나타내는 나체의 여성들이(이 중에서는 Kanye의 부인인 Kim Kardashian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구현하려고 했는데, 성공했더라도 5집처럼 검열을 당했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업데이트 되는 앨범’을 구상하였고 실천하였다.
이 앨범은 실물(LP, CD 등)이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만 공개가 되었는데, 온라인의 접근성을 활용하여 앨범을 업데이트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여주었다.
처음 공개됐던 버전의 트랙에서 코러스가 추가되거나, 기존의 곡의 특정 부분을 따로 한 트랙으로 만들거나, 디럭스 버전처럼 보너스 트랙을 추가하는 등 그 동안의 음원 시스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하고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Saint Pablo" 트랙 추가 이후, 더 이상의 업데이트는 보여주지는 않아서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실천이 조금 못 미치지 않았나 싶다.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우선, 6집에서 들려주었던 전자음악과 미니멀리즘이 활용된 신선한 앨범 스타일에서 앨범에서도 말하듯 ‘Old Kanye' 스타일로 회귀하였다.
Kanye의 프로듀싱에서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올드 소울 샘플링을 물씬 느낄 수 있다.
5집과 6집에서는 소울 음악뿐만 아니라 록,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샘플을 따왔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보다 정석에 가까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다른 많은 힙합 트랙에서도 사용되었던 Sister Nancy의 "Bam Bam", "New God Flow"에서도 사용되었던 Ghostface Killah의 트랙 등 유명한 샘플을 활용했음에도 다른 아티스트들과는 차별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전혀 연관이 없는 여러 샘플들을 적절히 조합시키는 번뜩이는 프로듀싱 감각도 여전했다.
두 번째는 알앤비 싱어들과의 조합이 상당히 괜찮았다.
The Dream, Ty Dolla $ign, The Weeknd, Chris Brown, Post Malone, Sampha, Rihanna 등 다양하고도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이 중 The Dream이나 Chris Brown은 전성기에 비해 폼이 예전 같지 않은 아티스트임에도, 이상하게 Kanye의 곡에서는 훨훨 날아다녔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다른 아티스트들 또한 Kanye의 마이다스 터치를 받아 킬링 파트를 가져가면서 윈-윈 효과를 거두었다.
알앤비 아티스트들뿐만 아니라 여러 래퍼들도 참여하면서, 6집에서 홀로 앨범을 이끌어가는 것과는 달리 다양한 사람들의 색깔을 잘 조합하는 Kanye를 잘 느낄 수 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로 전곡이 좋아서, 오늘 들으면서 가장 꽂혔던 곡들 위주로 이야기하려 한다.
첫 번째는 "FML". 앨범에서 제일 기승전결이 좋은 트랙이라고 생각하고, 3분 안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잔잔하게 Kanye의 단순한 마디의 래핑이 나온다.
Verse가 끝나고 곡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The Weeknd의 보컬에 1차로 소름이 돋는다.
2절이 시작되고 치고 들어오는 드럼과 함께 한 톤 높여 격정적으로 랩을 뱉는 Kanye.
아웃트로에서 샘플과 합쳐지는 갈라지는 Kanye의 보컬이 곡에서 주는 쓸쓸한 분위기를 한 층 살려주었다.
다음은 "Waves". 이 곡은 "I Love Kanye" 라는 45초의 짧고도 귀여운 트랙 이후 나오는데, 그 트랙이 끝나고 갑자기 ‘Turn It Up!' 이라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하게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곡은 Chris Brown이 근 5년 동안 보여준 퍼포먼스 중에서 가장 좋은 보컬 때문에 살지 않았나 싶다.
아웃트로에서 나오는 Kid Cudi의 허밍과 어우러지는 Chris Brown의 팔세토 창법에 고막이 녹을 뻔 했다.
마지막으로 "No More Parties In LA". 원래 필자는 앨범을 통으로 돌리는 스타일인데, 이 곡을 예외로 많이 들었다.
특히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내려서 학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 이 곡을 선택했는데, 이 곡이 6분이 넘어서 노래가 끝나고 나면 버스에서 내려서 학교 정문 앞의 횡단보도에 도착하는 타이밍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또, Kanye가 그 동안의 자신의 정규 앨범에서 보여준 래핑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 법한 타이트한 Verse도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피처링한 래퍼가 2010년대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래퍼 중 하나인 Kendrick Lamar이었기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40대에 가까운 나이에도 이런 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또한, 이번 앨범의 가사 때문에 Taylor Swift와의 끝난 줄 알았던 악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Famous"에서의 'I feel like me and Taylor might still have sex, Why? I made that bitch famous' (난 테일러와 내가 여전히 섹스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야 왜? 그 년을 유명하게 만들었거든) 라인 때문이었는데, 겉으로만 보면 Kanye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Taylor 건드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Kanye는 억울하다는 듯이 자신은 Taylor에게 합의하고 쓴 가사라고 주장했고, 실제로 Kim Kardashian이 Kanye와 Taylor가 이 내용에 대해 통화한 것을 녹음한 영상을 공개하였다.
덕분에 Taylor는 비판을 받는 입장이 되었고, 그녀의 SNS에는 뱀 이모티콘이 도배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였다면 합의를 했든 안했든 간에 이런 가사를 썼다는 것 자체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6집과 더불어 이런 성적인 가사들은 앨범 군데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라인들 몇 개만 소개하려고 한다.
"Father Stretch My Hands Pt.1"에서는 'Now if I fuck this model, And she just bleached her asshole, And I get bleach on my T-shirt' (이제 만약 내가 이 모델을 따먹는다면, 그리고 그녀가 항문을 미백했다면, 그리고 내 티셔츠가 탈색됐다면) 같은 엉뚱한 발상의 수위 높은 가사를,
"Highlights"에서는 'Sometimes I'm wishing that my dick had GoPro, So I could play that shit back in slo-mo, Just shot a shot an amateur video I think I should, go pro' (가끔씩 내 물건에 GoPro가 달려있음 한다니까, 그래서 그 짓거리를 슬로-모션으로 다시 재생할 수 있게 말야. 방금 아마추어를 비디오를 찍었어, 내 생각엔 '프로로 Go'해야 할 것 같아) 등의 본인은 쓰면서 센스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지 민망하다.
성적으로 개방된 미국과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우리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썩 유쾌한 가사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Kanye라고 이런 수위 높은 가사들만 쓰는 것은 아니다. 이번 앨범의 몇몇 트랙에서도 진득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Real Friends". Ty Dolla $ign과 주고받는 구성이 인상적인 이 트랙에서 Kanye는 사람들이 계산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황들에 우울해하고, 진짜 친구는 어디 간 것이냐며 우울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의 예로 아웃트로에서는 한 사촌이 자신의 섹스 비디오가 담긴 노트북을 훔쳐가서 그것을 돌려받기 위해 3억을 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사촌은 "No More Parties In LA"에서도 언급하면서, 가족에게도 배신을 당하는 스타의 비참한 삶을 잘 보여주었다.
업데이트 된 트랙 "Saint Pablo"에서도 스타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하는 Kanye를 볼 수 있다.
이 곡에서는 'The media said he's way out of control, I just feel like I'm the only one not pretendin', I'm not out of control, I'm just not in they control' (미디어는 그가 통제불능이라며. 나는 그저 내가 숨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통제 불능은 아냐, 저놈들의 통제를 안 받을 뿐)이라는 미디어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멋진 라인이 나온다.
또한,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를 시작하게 해준 Jay Z를 언급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과 우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러모로 이야기 할 요소들이 많았던 앨범이었다.
Taylor Swift를 포함한 여러 스타들의 알몸을 마네킹으로 구현했던 "Famous" 뮤직비디오, Tidal 독점 공개로 인한 50만 건 이상의 불법 다운로드, 팬이 만든 여러 샘플링 확장 버전 등의 앨범, <The Life of Pablo>에서 파블로는 대체 누구일까? 등 리뷰에 못 담은 이야기들이 수두룩하지만 분량 상 어쩔 수 없었다.
‘Go Pro' 라인으로 위에서 잠깐 언급했었던 "Highlights"에는 'Uh, 21 Grammys superstar family, We the new Jackson's and momma 'bout that action' (어, 그래미 21개 슈퍼스타 가족, 우리가 새로운 잭슨가고 애 엄마도 행동 준비 중이잖아)라는 가사가 나온다.
2025 칸예의 그래미..
<Yeezus>에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이번 앨범도 Chance The Rapper의 <Coloring Book>과 함께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랩 앨범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이미 5집 활동에서부터 그래미에게 빈정이 상해버린 Kanye는 수상을 거부해버린다. (이 와중에 Drake는 <Views>로 올해의 앨범에 노미네이트된다.)
신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사운드로 표현했던 Kanye. 과연 다음 앨범은 어떨까? 2018년, 와이오밍의 농장에서 펼쳐지는 그의 프로듀싱의 향연을 다음 리뷰에서 만나보자.
사랑해요
개인적으로 7집은 칸예 커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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