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Eminem - The Death Of Slim Shady(Coup de Grâce)
Release : 2024.07.11
Genre : Rap/Hip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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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지 않은 랩 신(Rap Scene)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신은 돈다. 이 신Scene의 이단아였던 에미넴이 올해 여름 신에 복귀하였다. [The Death Of Slim Shady(Coup de Grâce)]는 어느덧 통산 12집이다. 전작인 [Music To Be Murdered By] 이후 4년 만인 걸 생각하면 신의 세계는 과연 속절없다. 허나 그러한 자연적 흐름에 있어, 역사의 판도를 바꾼 MC의 라임 컨트롤은 전혀 퇴화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그런데 거기에도 모종의 사유는 있다. 이번 앨범은 에미넴 스스로 어떤 전환점을 만들려는 결단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걸 한마디로 압축하면 또 하나의 자아(Alter Ego)였던 슬림 셰이디(Slim Shady)에 대한 자가(自家) 재판이다. 물론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 형량은 최고형인 사형 선고다. 그래서인지 19개의 트랙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트랙들의 만듦새 가령 에미넴이 슬림 셰이디로서 즐겨 다루었던 복합 운율과 익살맞은 플로우에서 영예로웠던 과거 작품들과의 유사성을 느낄 수 있다. 그 대표작인 [The Marshall Mathers LP](2000), [The Eminem Show](2002)와 크게 대비되지 않는 맥락에서 광적인 재치와 진중한 진솔성이 공존하는 까닭이다. 여기에는 ‘Godzilla’(2020)로 보여준 파격의 갱신이 없다. 그 자리를 빈틈없이 메우는 건 금발 머리 셰이디가 핏대를 세워 인간과 세상의 치부를 발가벗기던 시기와 직통하는 어휘들이다. ‘Without Me’(2002)와 ‘Just Lose It’(2004)의 톤을 섞어놓은 ‘Brand New Dance’, 스티브 밀러 밴드(Steve Miller Band)의 ‘Abracadabra’를 샘플링하여 화제가 된 ‘Houdini’, 반시대적 캐릭터로서 언어의 날을 휘두르는 ‘Antichrist’, 명곡의 후속 확장판인 ‘Guilty Conscience 2’ 등이 앨범의 그 같은 질적 측면을 지탱한다. JID, 빅 션(Big Sean), 에즈 밀(Ez Mil)이 벌스를 얹은 피쳐링 라인도 작품이 랩적 긴장을 잃지 않는 데 있어 출중한 역할을 한다. 슬림의 시체 가방을 메고 에미넴은 차트 성적으로 본작을 15개국 이상의 도표에 1위로 올려놓았다. 앨범을 상위에 안착시킨 요인은 오차 없는 라임의 연속성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거기 값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냐 물어보면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라 하고 싶다. 전작들과 견주었을 경우의 상대적 차원을 떠나 작품 자체로 놓고 보았을 때 그렇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그 원인이라 하면 슬림 셰이디의 마지막 몸짓을 대변하는 음악적인 면모가 다소 빈약하다는 점이다. 커리어를 통틀었을 때 슬림 셰이디가 랩을 잘하지 못한 적이 있었던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기운을 여과 없이 투입한 벌스와 플로우를 사운드적으로 강화시키는 지점은 이따금 완벽히 완성적이지 못할 때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슬림 셰이디의 사망 신고서인 본작 역시 그렇다. 그렇게 보면 ‘슬림 셰이디가 죽었다’는 선언은 아이러니하게도 문자 그대로 참인 명제가 되어 버린다. 비트는 둘째치고서라도 음악이 랩의 무결점을 부러 외면하였다고 할까? 랩핑들이 이 앨범의 체계적 기반이 되고 슬림 셰이디는 그걸 어떻게든 지키려 분투하였지만, 에미넴은 끝내 음악 앞에서 슬림이 제 명을 다할 수 있게 프로덕션의 무게를 가볍게 놔버렸다.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지만 얼터 에고의 종말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게 퍽 흥미롭다. 결국 인간 마셜 매더스만이 실존하여 자신의 지독했던 삶을 구제한 이들을 헤아리며(‘Somebody Save Me’) 슬림 셰이디의 관은 닫힌다. 음악이 내버려 둔 영역을 랩이 접수한 앨범이기에 에미넴다운 작품이다.
II. Post Malone - F-1 Trillion
Release : 2024.08.16
Genre :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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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댈 수 있는 건 다 만져보는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이 1년 만에 새 작품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정규 6집인 [F-1 Trillion]은 완전 컨트리를 표방한다. 정상에 선 채로도 필드의 동향에 늘 민감한 록스타의 필연적인 장르 선택인걸까? 그럴 수도 있다. 허나 그렇게만 넘겨듣기에는 말론의 컨트리가 형편없지 않다. 그러면 이 신보는 얼터너티브 컨트리인가, 컨템포러리 컨트리인가, 네오-트래디셔널 컨트리인가? 요소마다의 비율 차이가 있겠지만, 언급한 세부 장르들의 특성들을 곳곳에 반영하고 있다. 물론 밴드 포맷으로 축조되어 있는 덕에 컨트리 록이라 할 수도 있다. 본작이 보란 듯이 그 장르를 그냥 컨트리라고만 명시한 건 세세하게 구별된 컨트리의 조각들을 듣기 좋게 집약시켰기 때문이다. 단일한 차원으로 느끼나 종합적 차원으로 느끼나 영락없는 컨트리 앨범이다. 전자로써 들으면 해부된 컨트리의 양식을 골라서 음미할 수 있는 개별성을 체감할 수 있고, 후자로써 듣는다면 이것은 어떤 식이든지 간에 컨트리라는 일반성을 감지할 수 있다. 나른한 코드 속에 당김음이 소묘하듯 스치는 ‘Never Love You Again’와, ‘California Sober’, 비트와 리듬이 함께 빠른 보폭으로 솟구치는 카우보이 컨트리의 전형 ‘M-E-X-I-C-O' 등 18개의 퍼즐이 만든 컨트리라는 자장 속에 골고루 리드미컬하다. 모건 월렌(Morgan Cole Wallen, 1993.05.13 ~ )부터 블레이크 셸턴(Blake Tollison Shelton, 1976.06.18 ~ ), 돌리 파튼(Dolly Rebecca Parton, 1946.01.19 ~ ), 브래드 페이즐리(Brad Douglas Paisley, 1972.10.28 ~ ), 레이니 윌슨(Lainey Denay Wilson, 1992.05.19 ~ ), 크리스 스테이플턴Christopher Alvin Stapleton, 1978.04.15 ~ )에 이르는 피쳐링이 포함된 메뉴를 펼치면 가히 컨트리의 집결체다. 현재 본작은 2025 그래미 베스트 컨트리 앨범 부문에 올라 있다. [F-1 Trillion]은 사실 음악에 너무도 굶주린 나머지 말론이 있는 재료들로써 직접 다시금 차려낸 컨트리 성찬 한상이다.
III. Tyler, The Creator - CHROMAKOPIA
Release : 2024.10.28
Genre : Hiphop, Rap, Neo-Soul, 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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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시점에서 아티스트는 자기 안의 실세가 된다. 그렇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그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 발휘할 수 있는 창작력에 있어서만큼은 권능을 갖게 된다. 그도 물론 창작자의 감각이 일정하게 탁월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전제가 따른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데뷔 15주년을 앞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는 이제 확실히 상술한 영역에 속할 수 있는 힙합퍼가 된 것 같다. [Goblin](2011)으로 신의 루키가 된 이래 2년 주기로 너른 완성도를 보장하는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어 온 타일러다. 올 가을 발매된 8집 [CHROMAKOPIA]는 제작에 3년이 소요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앨범은 타일러 자신의 청소년기가 작품의 골격을 이루는 주요 테마가 되고, 이러한 맥락에서 장르를 혼종시키는 과정과 L.A의 소년 시절을 구체적으로 재조명하는 중업(重業)을 밀도 있게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후자의 면에서 해당 작업은 수필화(隨筆化)된 음악을 만드는 일에 다름없어서 더욱 간단하지 않았을 테다. 이것이 어쩌면 앞서 말한 아티스트의 권능을 타일러가 숨김없이 발휘한 힘들이 아닐까? 앨범은 트랙의 미적 풍요도와 스토리 라인의 구조에 두루 신경을 기울인 듯 풍성한 작업 참여진을 초빙하였다. 썬더캣(Thundercat/Stephen Lee Bruner, 1984.10.19 ~ )의 베이스와 스티브 레이시(Steve Thomas Lacy-Moya, 1998.05.23 ~ )의 기타, 스트링, 피아노, 호른 등의 리얼 세션, 솔란지(Solange Piaget Knowles, 1986.06.24 ~ ), 윌로우(Willow Smith, 2000.10.31 ~ ), 산티골드(Santigold/Santi White, 1976.09.25 ~ ),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Donald McKinley Glover, 1983.09.25 ~ ) 등이 백보컬의 입장으로 후위에서 이야기의 감도를 지켜주는 지점들이 타일러의 진정성에 음악적 입체성을 배가한다. 또한 무엇보다 슈퍼바이저인 타일러가 각종 장르적 소스가 맞물린 채 흐르는 결들을 넘나들며 스토리텔링을 맛깔나게 구성한다. 그런 그에게서 작가적인 MC의 유능함을 갖춘 전천후 아티스트의 초상을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내러티브를 낀 채 왕왕 등장하는 주술적 기운은 앨범 안팎으로 흡인력을 퍼뜨리기도 한다. 잠비아 록(Zamrock)의 대표였던 은고지 가족(Ngozi Family)의 1977년 곡인 ‘Nizakupanga Ngozi’을 가져와 예술가의 편집증세를 드러낸 ‘NOID’가 그렇고, 소울의 대명사 제임스 브라운(James Joseph Brown, 1933.05.03 ~ 2006.12.25)과 랩 베테랑 영 벅(Young Buck/David Darnell Brown, 1981.03.15 ~ )의 트랙 둘을 샘플 거리들로 들여와 청자를 곡 안으로 동참시키는 ‘Sticky’ 역시 그러하다. 큐팁(Q-Tip/Kamaal Ibn John Fareed, 1970.04.10 ~ )의 세기말 싱글이었던 ‘Vivrant Thing’을 샘플링하여 삶의 관계를 살핀 ‘Darling, I’도 일품이다. 그렇게 곡마다 분절감 없이 짜인 샘플과 보컬, 랩의 조화 덕에 자연스레 트랙들은 작품 속에서 자체 구조화된다. 이 앨범의 트랙이 저마다의 핵심을 갖고 있기에 트랙 모두가 작품의 빛깔에 기여한 결절점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타일러의 편곡과 총괄 프로듀싱, 엔지니어링이 앨범을 완벽하게 갈무리한 건 이상하지 않다. 내년 2월부터 9월까지 계획된 ‘크로마코피아 월드 투어’의 추이를 흐뭇하게 상상하도록 돕는 ‘부가 가치’까지 탑재하고 있다. 다큐, 에세이와 같이 우리가 진심을 동반한 양식으로 떠올릴 법한 장르를 다원적인 사운드로써 공들여 출력한 작품이 [CHROMAKOPIA]다. 2024년 하반기에 산출된 블랙 뮤직 명작이다.
IV. Lil Uzi Vert - Eternal Atake 2
Release : 2024.11.01
Genre : Trap, Rap/Hip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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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년대의 트랩을 신트랩주의(Neo Trappism)라 해보자. 이 사조의 대표 주자로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가 꼽히는 건 당연하다. 그는 셀 수 없는 릴(Lil)들을 뚫고 타고난 트래퍼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지의 4집인 [Eternal Atake 2]는 스타 트래퍼로서 우지의 가치를 만든 2020년작 [Eternal Atake]의 두 번째 시리즈다. 이번 작품에서 돋보이는 건 15년 차 알앤비 팝 그룹 빅 타임 러시(Big Time Rush)의 소략한 피쳐링 말고는 모두 우지의 퍼포먼스로 채워진 사실이다. 랩퍼로서 자기 매력의 권역이 어디인지를 능히 아는 이의 자존감이 발현돼 있다. ‘Meteor Man’, ‘The Rush’ 등의 초반부에서는 비트를 잡고 늘어지며 자신의 플로우를 밀거나 당긴다. 그런 까닭에 앨범이 쳐지는 감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동일어구와 여흥구를 활용해 코러스를 점유하는 태세가 본질적이라 앨범의 균형은 흔들리지 않는다. 앨범 전반적으로 배치된 오토튠은 범용적이라 기본 간을 맞추듯 잘 배어 있다. 찰리 푸스(Charlie Otto Puth Jr., 1991.12.02 ~ )가 히든 카메오로서 작곡에 관여한 ‘PerkySex’는 정형화되었지만 일말의 달콤함을 지나치지 않게 한다. 웜 톤의 트랩-팝인 ‘Conceited’가 비슷한 흐름을 이어 받고, 마무리는 우지 본연의 테크닉이 실린 ‘Space High’가 짓는다. 엔지니어 마이크 딘(Mike Dean/Michael George Dean, 1965.03.01 ~ )의 마스터링과 베테랑 프로듀서 캐시미어 캣(Cashmere Cat/Magnus August Høiberg, 1987.11.29 ~ )의 총괄 제작이 선명성과 제련미(製鍊味)를 갖춘 트랩 신보의 정체성을 더했다. 우지가 보유한 4장의 정규작 중 유일하게 빌보드 200 1위에 이르지 못한 작품이며 상업적으로도 저조한 셀링 포인트를 기록하였지만 [Eternal Atake 2]는 결코 그런 결과에 움츠러들 앨범이 아니다.
좋네요 특히 우지 리뷰 잘봤습니다
EA2 다시 들어봉께요
오
솔직히 저 중에서 타일러 빼고는... 그리 본인의 강점을 못살린것 같습니다
TDOSS 에미넴다운 앨범이라는 거 인정합니다
비록 프로덕션이 아쉽긴 하지만 간만에 신보 떠서 좋았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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