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해외힙합 유저 매거진 w/HOM #10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해외힙합 유저매거진 "w/HAUS OF MATTERS" #10 - 국외 힙합 - 힙합엘이 | HIPHOPLE.com
Roc Marciano - Marciology
90년대의 끝물에 다다른 뉴욕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로 치환된다. 자본주의는 아주 친절하고도 신사적으로 지저분한 갱의 패거리들을 내쫓았고, 시대정신에 따라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타임스퀘어는 곧 넥타이를 둘러맨 샌님들의 차지가 되었다. 이전까지 브롱스, 퀸스, 브루클린은 거리를 대표하는 기라성과 같은 MC들을 키워냈다. 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덩치에 걸맞은 후사를 빚어내기란 다른 국면의 문제점이었다. 당시 뉴욕의 피를 물려받은 DMX, 50 Cent, Ja Rule, Cam’ron의 The Diplomats 등이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렸으나, 이들은 분명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서쪽 혹은 남쪽의 아우라를 풍겼다. 때문에 그들이 뉴욕의 자손일지언정 ‘뉴욕 힙합’의 직계 자손으로서는 틀림없이 결격이었다.
대신 뉴욕 힙합의 자손들은 본토를 뒤로한 채 뉴욕을 에워싼 잔당들에게서 스멀스멀 자라나는 낌새를 보였다. 뉴욕의 경계선을 바라본 헴프스테드 역시 뉴욕 힙합이 낳은 성지들 중 하나였고, 그 도시가 낳은 Roc Marciano는 뉴욕 힙합의 유전자를 물려받을 양자로 그 누구보다도 적격이었다. 그의 아이덴티티는 <Only Built 4 Cuban Linx...>, <Do Or Die>, <Reasonable Doubt>를 잇는 마피오소 랩의 후계자로서 Neoclassicism(신고전주의)의 형태로 정립되었다. 그 결실은 2010년 <Marcberg>으로 언더그라운드의 초신성이 되어 전무후무하고도 견고한 뉴욕 혈통의 새로운 뿌리가 되었고, 그 후의 전설은 아는 이들이 알고 모로는 이들이 모르는 이야기가 되었다. 퀘퀘한 새벽의 먼지 투성이 골목을 지배하던 그와는 달리, 틀림 없는 슈퍼스타로서 20년대 초를 상징하는 위치까지 올라선 집단 Griselda가 등장하기 전까지.
오늘날 시대의 흐름이 뒤바뀌었다. 세간이 Nirvana의 수영장 속 얼터너티브를 들여다본 뒤로 Sonic Youth의 음악이 스멀스멀 뭍으로 건져 올려졌듯, Griselda의 폭풍 같은 번성이 흩뿌린 물살은 Roc Marciano에게 이르러 일광욕을 즐기는 그의 신발을 적셨다. 아이러니하다. 파도가 휩쓸어도, 비 폭풍이 몰아쳐도, Marciano는 언제나 멀찌감치 떨어진 파라솔 아래 썬배드에 걸터앉아 차분하게 시가 연기를 피워댔으니까. 무자비하게 몰아치는 추임새와 탄력 넘치는 랩 스킬로 중무장한 Griselda에 매료되었다면 Marciano의 앞까지 도달한 청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우리라 예상된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발성과 랩 디자인, 여유 넘치고도 기품 있는 톤, 질감과 공간감에 몰두한 공허한 텍스처라이징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프로덕션. 이들은 Griselda에게 기대하는 카타르시스와 다른 종류의 자극이기 때문이다.
<Marciology>에 휘갈긴 글씨체 역시 그를 묘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지알로 필름 중 찰나의 자태를 연상케하는 앨범 커버. 그 위 몸소 ‘Marcianotic’의 교본을 정립하는 제목을 명명한 <Marciology>. 어느덧 15년에 이르는 세월의 관록으로 겹겹이 쌓인 Marciano의 규조토와도 같은 작법은 더 이상 범접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저 익을대로 익어 성숙한 열매의 빛깔을 뽐낼 뿐이다.
이전부터 몸소 무대의 너비 규격과 스포트라이트의 광각마저 조율한 그의 프로덕션 실력은 가히 의심할 바가 없었고, Marciano의 주특기로 여겨지는 독창적인 루프의 활용으로 간결하고도 밀도 높게 앨범 전체를 견인하는 능력은 구체적인 기법의 경탄스러움을 활자로 담아내기 어려울 지경이다. 거대한 물뱀이 들짐승의 목을 천천히 휘감아 질식을 유도하듯, 서서히 숨통을 조이는 루프들이 풍긴 스산한 아우라는 피부를 꿰뚫어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그 위에 Marciano는 그저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유려한 플로우로 느와르틱 가사들을 산개시키며 유희 섞인 말장난을 대부의 지령에 이르기까지 극대화시킨다.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능히 다루며 청자들을 무아지경으로 휘감는 방법을 터득한지 오래다. 짧은 보이스 샘플 구절로 엮어낸 “True Love”, 몇 종류의 음계들을 중추로 빚어낸 “Gold Crossbow”와 “LeFlair”, 나른한 스트링사운드를 뻔뻔히 배치하는 “Went Diamond” 등 그 방식 또한 다양하다.
셜록 홈즈를 맞이한 거대 마피아 카르텔 배후의 등장 음악 “Marciology”, 질주하는 증기기관차 위의 스릴러를 연상케 하는 “Floxxx”, 악행과 선행을 일삼으며 혼란을 끼친 자경단원의 처형식에 울려퍼지는 “Higher Self”. 자체적인 해석의 비공식성을 차치하더라도 몇 구절의 가사들을 끼얹으면 모두 Marciano의 마피오소 감각으로 탈바꿈한다. 그가 단순히 문장의 마디를 얹은 래퍼가 아닌 프로듀서의 역할 역시 겸임하기 때문이겠다. 기술적인 면모에서 Marciano의 비법서를 그저 훔쳐보기란 개인 저서에 집필한 방대한 쪽수를 따라가기엔 터무니 없이 약소한 노력이다. 때문에 간간히 웹 서핑에서 그가 자취를 남긴 흔적의 해답을 얻는 순간들도 전만큼 그리 폭발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꾸준히 표준화된 예술적 참신함의 연속이다.
2024년에 이른 현재 Marciano의 행보를 살피면 도통 흠잡을 구석이 없다. 본작에서 그랬듯 자신의 작품에 많은 후배 아티스트들을 기용하거나 혹은 그들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 프로듀싱 능력으로는 Stove God Cooks, Flee Lord와 Jay Worthy 등에게 양질의 비트를 제공하는 등 후배들의 양성과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그런 Marciano에게 <Marciology>는 굴곡 없는 커리어의 연속이다. 본작으로 그는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언더그라운드 대부의 품격을 드높인다. 혹자는 전작들과 비교할 때 앨범의 특수성이 부족함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아티스트가 자가복제 혹은 과거작의 무성의한 답습으로 비판받을 때 Marciano는 다수의 웹진과 유저 커뮤니티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의 답습과 신고전주의는 필요한 변화점과 견고한 내실이 더해진, 그저 긴 세월동안 자신의 보석을 갈고 닦으며 조각을 깎아내듯 꿋꿋하게 다져온 결실이다. 그간 밟아온 디스코그래피의 파편들은 Marciano의 명성을 이루는 살점이 되고, <Marciology> 역시 그가 남긴 목걸이의 수많은 보석들 중 하나가 되어 오랜 시간 반짝일 것이다.
메거진에선 붉은바탕이라 눈아팠는데 엘이에 다시 올려주시니 좋네요...
헛...
이번건 디자인이 좀 아쉽더라구요 가독성도 떨어지고
그래도 양질의 힙합 리뷰글들을 만날 수 있는게 어딘가 생각들면서도..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개추
근데 개인적으론 전작들보다는 별론 듯
작품이 워낙 많아서 다 들어보진 않았지만 전 알케미스트와의 합작이랑 같이 베스트로 뽑고 싶네요
괜찮은 앨범이지만 마르시아노 디스코그래피 내에서는 하위권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Reloaded나 Behold a Dark Horse같은 걸출한 작품들이 수두룩한 사람이니 무얼 뽑아도 딱히 이상하지가 않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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