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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ings (reprise)"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4.01.25 02:16조회 수 261추천수 5댓글 4

"Blessing(축복)"이라는 단어는 본래 피로 진행한 신성화 의식으로 시작해, 장차 나아가 신의 은총으로 영적인 안녕을 주는 것으로 변모했다. 게다가 "blessing in disguise(전화위복)"의 유래 역시 나쁜 것을 좋게 만드는 의식에서 시작했음을 생각해 본다면, "Blessing"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악운마저도 축복으로 지워버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만이 아닌, 행운마저 기리는 본 작업은 혹자에게는 덧없는 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 이상의 숭고한 작업이거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단순한 행복을 빌어주는 즐거운 일로 보였다.

https://youtu.be/ix0veVJdmFk

 

Chance The Rapper(이하, 챈랩)"Blessings(reprise)"는 [Coloring Book]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랙으로, 내가 앨범 내에서도 가장 애정 하는 트랙이다. 단순히 힙합과 가스펠의 결합이 탁월하다는 데에서 느낀 감상에서 비롯된 애정이 아닌, 챈랩과 피쳐링진들이 일궈낸 트랙이 듣는 이조차 행복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첫 시작의 실로폰 소리가 사라지고 나면 베이스와 드럼, 피아노 건반 소리는 부재하고, 자그마하게 반복되는 흥얼거리는 소리와 Chance The Rapper의 단조롭지만 결의에 찬 랩이 시작된다. 다른 장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복음과도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전하는 랩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나의 랩은 파도의 전조만큼이나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큰일의 전조 역시 미약한 발걸음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챈랩의 랩은 성경에 존재하는 약속의 땅을 읊으며 시작하고, 새로운 앨범의 복음을 위해 애플 본사를 직접 걸어가 찾아가는 순간까지도 마치 성경의 구도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도 챈랩의 이상향을 담은 [Coloring Book]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트랙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가스펠스럽지 않은가. 게다가, 그 이상향의 출처가 자유로운 본인의 삶이니 애틋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으로서의 모습, 어렸을 적부터 배운 삶의 교훈들, 본인의 종교적 가치관과 연계된 음악에 대한 애정은 챈랩 본인이 지닌 역사와도 같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여전히 챈랩을 현상하기에 음악으로써 드러날 뿐이다. 어쩌면 개인의 일상적 이야기로 시작된 이상향의 복음은 담담히 전하는 랩만큼이나 현실적인 그의 성공이 그에게 주어진 축복처럼 느껴진다. 그가 추구한 이상향과 지나온 현실의 융합이 묘하 개인의 자유로움을 자극한다면, 음악 역시도 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지 않을까. 결국에 삶이 신이 내린 선물이며, 삶은 거룩하니 신 역시도 거룩할 것이라는 하나의 명제는 챈랩의 랩과 [Coloring Book]을 함축시켜 놓았으며, 앨범의 마무리 곡 "Blessings(reprise)"이 그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축복은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닌, 복음이라는 형태로 전파되는 것이며, 챈랩 역시도 그 축복을 혼자만이 간직하는 것이 아닌 널리 퍼뜨리려 하는게 아닐까.

성경과도 같았던 챈랩의 랩이 끝나고 나면 그가 부르는 성공과 복음의 코러스와 함께 박수 소리가 들어차기 시작한다. 감정의 전조가 어느덧 극으로 치닫기 위해 발걸음을 뗀 순간이다. 스캣과도 같은 허밍이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고, 같은 음악업계 동료로 이뤄진 합창단의 'Are you ready for your blessings', 'Are you ready for your miracle'을 나지막이 반복할 뿐인 아웃트로 후렴구는 그야말로 기막히지 않은가. 단순히 Fred Hammond & Radical for Christ 의 "Let the Praise Begin"의 곡에서 따온 구절을 반복할 뿐인데도, 그 벅찬 감동으로 향하는 길은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축복도 아니며, 남의 축복도 아닌, 당신의 축복과 기적을 빌어줄 뿐인 후렴구는 앨범의 마지막을 전적으로 청자에게 맡길 뿐이다. 행복하게 부르는 합창단의 후렴구가 우리에게 닿기까지의 감정은 그야말로 영적이다. 혹은, 합창단의 자축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행복한 영역이 우리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과정은 실로 단순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성스럽게 느껴지는 마지막 곡은 어쩌면 힙합이라는 영역보다 가스펠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이다. 그럼에도 영적인 하나의 구가가 찬란하게 색채를 자랑하며 앨범의 마지막 부를 장식하니 그야말로 화려하고도 감격스러운 마무리가 아닐까. "Blessings"의 활력은 그만큼이나 폭발적인 것이니.

서서히 쌓아가는 화음과 악기들, 반복되는 후렴구, 곡의 절정을 담당하는 앤더슨 팩의 애드립을 지나면, HaHa Davis의 한 마디로 곡이 다소 허무하게 끝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쉬움이 크다라는 느낌보다는 축복의 구가가 나에게 닿으면서부터 묘한 사고가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내가 가스펠 음악을 이토록 좋아했었나'라는 의뭉스러운 생각 말이다. 분명 나는 한 명의 불가지론자임에도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듣는 이를 영적인 공간으로 안내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Blessings"뿐만이 아닌, [Coloring Book] 앨범 전체가 세속적 세계와 영적 세계를 절묘히 비틀어 조합한 작품이라 여긴다고 해도, "Blessings"을 들을 때의 감정은 묘종의 애틋함마저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저 챈랩 본인이 행복하게 만든 트랙이며, 듣는 이와 함께 행복을 나누고자 함이 컸으니 말이다. 단지 수단이 축복의 형태를 띄었을 뿐이며, 청자 역시도 그 축복을 구도받는 것이니 결국 좋은게 좋은 거다. 만약 내게 하나의 악운조차 행운으로 뒤집을 순간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이 음악을 우선적으로 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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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1.25 08:56

    잘 읽었습니다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1 1.25 17:24
    @midicountry

    감사합니다!

  • 1.25 12:45

    참 순수한 축복과 행복이 느껴지는 앨범이고, 특히 Blessings가 그런 것 같네요.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1 1.25 17:24
    @Pushedash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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