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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1.

LucindatomasBBreaux2024.01.28 13:47조회 수 1466추천수 13댓글 6

1994 #1.

Craig Mack - <Project: funk d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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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지껏 크레이그 맥(Craig Mack)만큼 만사 될 대로 되란 듯 시니컬하게 랩하는 가수를 본 적이 없다. 아마 그런 태도 또한 그가 내세운 반항아적 에고의 한 요소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뱉을 수 있는 최대치의 자아도취성 언사들을 덤덤히 흘려뱉고는 재빠르게 훅과 벌스의 변방으로 움직인다. 간단명료하지만 극적으로 리듬감 넘치고, 그 무엇보다 무례하지만 기묘한 매력이 묻어나오는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맥 특유의 이러한— 펑크 정신이 도발적으로 꽃 핀 10대의 MC EZ 시절 가사들을 듣자면 나는 만면에 우스운 기분부터 든다. '내 쩌는 랩으로 너희들을 무릎꿇리지' 같은 가사에 담긴 소년스런 허세와 미숙함이 민망스럽고, 있는 힘껏 '멋스러운' 어휘를 구사하려는 그의 태도가 지극히 소년스러운 까닭이다. 헌데 1994년에 발표된 맥의 데뷔앨범 <Project: funk da world>에서 다시 그를 조우하게 된다면 앨범을 듣는 그 누구라도 그의 스타일이 확연히 정돈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Bad Boy Records의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는 맥의 랩은, 이 앨범에서, 그 무엇보다도 정제된 시니컬함으로 청자를 기묘한 매력의 수렁에 빠뜨린다.

 

 크레이그 맥은 젊은 시절의 마크 월버그를 닮았다. 특유의 외모부터가 우스우리만치 비슷하지만, 그 혼 내부에 침잠된 일대 반항아적 특질이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들은 시대의 주류를 기피하며 얻어낸 언더독적 광휘를 소수의 작품에 맹렬히 뱉어내곤, 절정의 뒤안길로 급강하했다. 월버그는 <디파티드>와 <부기 나이트>를 촬영한 후 철저한 상업주의 노선을 타다가 희미해졌고, 맥은 <Project: funk da world> 이후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며 기독교 사업을 하다 사망했다. 커리어의 상당 기간을 암울하게 보낸 이들의, 요컨대 반항아적 도그마가 가리키는 한 가지의 의제라면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그들이 그 어떤 호연과 훌륭한 벌스를 직조해냈다 한들, 그들의 반항적 이데아는 필연적으로 이들의 실패를 야기해왔던 것이다. 반항아는 천재들이 넘쳐나는 예술의 경합장에서 결코 분야의 제왕이 될 수 없었고, 맥 또한 본인의 행보를 통해 그를 증명한 또 하나의 별이 되었다. 결국 크레이그 맥 본인은 채 쉰 살이 되기도 전에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앨범은 단 한 장만이 대중의 곁에 남아 미약하게 그를 추억하고 있다. 마치 한 마디의 혈기 넘치는 작별인사처럼. 

 

 그러나 힙합사가 남긴 그의 기구한 운명과 다르게 <Project: funk da world>는 심도 높게 도발적이고 다각도로 쾌활한 앨범이다. 앨범을 전개하면서, 맥은 특유의 여유 넘치고 무념무상한 어투로 자신이 얼마나 '쩌는' 랩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일대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물론 그 여정엔 Bad Boy Records의 수장 Diddy와 프로듀서 Easy Mo Bee 역시 함께 했다. 이들이 제조한 소위— 휘황찬란하고 쫀득한 펑키 리듬은 앨범의 등대로써 줄곧 맥의 래핑을 착실히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맥이 랩을 한다.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골든에라의 탕아가 출사표를 던진다. 우리의 자질구레한 세포 마디마디마다 너른 리듬의 래핑이 날아와 파열된다. 거기엔 아우성치는 청년기의 반항 정신이 있었고, 주류 세계에서 분화하려는 펑크적 탈립성이 있었다. 그리고 크레이그 맥 그 자신이 존재했다. 자의식과 반항으로 가득 찬 앨범의 프로덕션 사이에서, 맥은 현란하거나 기술적인 플로우보다는 한껏 소년미를 뿜는 래핑을 선보였다. '내가 이렇게 랩하면 어쩔건데?'라는 기운을 단전에 띄운 채로— 밑도 끝도없이 레이 백과 라이밍을 흘려보내는 그의 태도는 문자 그대로 시니컬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변칙성과 반항적 이디엄을 모두 갖춘, 크레이그만의 오만방자한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Get Down'이나 전대미문의 붐뱁 히트를 이끌어낸 'Flava In Ya Ear' 등으로 진입하면서 청자가 느낄 수 있는 공통된 사실은 이 앨범의 오만방자한 랩이 작품의 전반적 톤앤매너와 퍽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한껏 어깨를 추켜올린 모습으로, 건들리거리듯 랩을 뱉는 맥의 플로우에서는 드높은 자존감과 강자다운 여유가 선연히 드러난다. 결코 질이 좋다고 할 수는 없는, 그의 자아도취적 가사들이 쉬이 납득가는 이유도 그러한 앨범의 전반적 방향성에 있을 것이다. 맥은 시적이며 의식에 가득 찬 컨셔스나 폴리티컬 랩은 신경도 안 쓴다는듯이, 거만하고 폭력적인 자기자랑을 늘어놓으며 앨범을 꾸미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러한 얼개들이 총체적으로 침윤한 결과값으로써, 그 누구보다 야만적이며 여성편력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멋이 나는 랩스타의 언사가 한갓진 문장 구조들 사이에서 탄생하게 된다. 헌데 MC EZ 때만큼 경망스러울지언정 서툴진 않고, 도덕적으로 어긋나있을지언정 어설프지는 않은 짜임이다. 청소년 시절의 맥이 청자에게 선사했던, 아슬아슬한 민망스러움이 <Project: funk da world>의 세계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에 있어 묘한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그리고 아마 그러한 쾌감이야말로 그의 건방진 성장기를 운위하는 데에 핵심적인 저변이 될 것이다. 맥의 스타일은 더욱 거칠고 양아치스러워졌지만 그를 표구하는 방식은 깔끔해졌고, 그의 래핑은 이전처럼 변칙적이며 제멋대로이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막무가내로 내뱉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청자가 가지게 될 의문은 단 하나만이 남게 된다. 이 앨범은 대체 왜 빛을 보지 못했는가. 그 명료하고 되뇌기 쉬운 질문이야말로 마치 숙명적인 적수처럼, 크레이그 맥이라는 인간사의 변경에서부터 평생 그를 옥죄어왔던 단 하나의 의제였을 것이다.

 

 넓게 보면 1994년이라는 일대 대황금기에 앨범을 발표한 무수한 래퍼들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흉은 같은 레이블 식구였던 The Notorious B.I.G였다. 그리고 Puff Daddy. 그저 시대의 자양분을 지나치게, 아니 거의 전설적인 수준으로 탐닉할 줄 알았던 뚱보 소년의 재능과 <Ready To Die>라는, 그 이름만으로 힙합사에 제언을 던질만 한 앨범을 일주일 앞두고 맥의 앨범을 발표시킨 Diddy의 경악스러운 마케팅이 <Project: funk da world>를 흑암의 길로 인도했다. 그리고 다시는 빛을 볼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맥은 그저 전대미문의 선공개 싱글이었던 'Flava In Ya Ear'의 흥행에 힘 입어 몇 TV 쇼에 얼굴을 비췄고, 앨범이 나온 이후에는 그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고 쓸쓸히 사망했다. 등장하자마자 다신 없을 돌풍을 일으키며 맥의 흥행기록을 손쉽게 갈아치우고는, 단 한 점의 좌절도 실패도 없이 그야말로 절정에서 드라마틱하게 사망한 B.I.G의 죽음과는 크게 대비되는 결말이다. B.I.G은 총격에 당해 죽기 직전에 'The Hypnotize'의 성공에 힘 입어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가는 길이었고, 맥은 심부전으로 죽기 직전에 자신의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스트코스트와 Bad Boy Records의 황금기를 알렸던 두 인물의 결말이 —그들이 힙합사에서 가지는 명망의 크기가 일정치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토록 다른 것을 본다는 건 다분히 슬픈 일이다. 2018년에 사망한 래퍼들을 논하고 되돌아보는 다수의 칼럼과 기사가 있었지만, 거기엔 XXXTENTACION과 Mac Miller의 이름밖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맥은 —참을 수 없이 불행하게도— 사망 소식마저 유명 래퍼들의 클라웃에 밀리고 만 셈이다. 

 

 한 가지 더 안타까운 점은 <Project: funk da world>의 프로덕션에 맥 본인의 손길 또한 항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Easy Mo Bee가 꼼꼼히 조여놓은 전반적 틀 안에서, 'That Y'all', 'Real Raw', 'Welcome to 1994' 등의 랩송들이 맥의 주도적 프로덕션 하에 탄생했다. 이 곡들은 유달리 기술적인 풍취를 자아내지는 않지만, 퀸즈 유니스피어처럼 거대한 에고를 부둥켜안은 맥의 이상향을 잘 드러내는 사운드 소스들로 이루어져있다. 신경을 긁는 스크래치 사운드와 폭력적으로 고막을 강타하는 드럼 라인 속에서 녹진한 크레이그의 보이스가 흐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얼마만큼 그가 스스로 '멋져보이고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혼 일부를 새겨넣은 비트들과 Easy Mo Bee가 쌓은 붐뱁 서사의 둔중한 총열 위에서, 맥은 트랙이 재생될 때마다 우주의 변경을 반항스럽게 항해하고 있다. 두 번 다신 주어지지 못할 황홀경의 무대를, 자신의 몸을 불사르도록 만끽하면서.

 

2024. 01. 28. Sun. Seoul / Lucinda Tomas B. Brea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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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09. 20.

49:04

Bad Boy Records

Easy Mo Bee, Craig Mack, Puff Daddy 

 

크레이그 맥의 데뷔 앨범이자 마지막 메이저 앨범입니다. 크레이그는 <Project: funk da world> 이후 두 번의 정규를 추가로 공개했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앨범은 그의 전성기를 논할 때 자주 이야기되는 작품입니다. 비록 <Ready To Die>의 아성에 밀려 빛을 볼 수는 없었지만, 선공개 싱글 'Flava In Ya Ear'의 기록적인 흥행 덕택에 앨범 내 주옥같은 곡들이 조금이나마 대중의 인장을 받게되었습니다. 크레이그는 그의 헌정 앨범격으로 만들어진 3집 <The Mack Wolrd Session>을 발표한 이듬해 2018년에 사망했고, 골든에라 시절 활동했던 소수의 래퍼들에게 추모 받았습니다. 엘이 여러분들도 오늘만큼은 자주 듣지 못했던 맥의 랩을 들으며 가슴 한구석을 반항심으로 뜨겁게 물들이는 건 어떨까요? 맥의 애수 띤 인생을 마음 속으로 고요히 기리면서요.

마침. 


199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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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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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1.28 14:59

    선생님 필력 ㅈ되시는데 글좀 많이 써주십쇼

  • 1.28 18:31
    @hgwe8071

    노력해보겠습니다ㅋㅋㅋ

  • 1.28 15:40

    글을 너무 잘 쓰시네요. 처음 보는 아티스트의 앨범인데 아티스트와 앨범에 엮인 스토리가 인상깊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1 1.28 18:32
    @Pushedash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꼭 읽어봐주십쇼ㅋㅋㅋ

  • 1.29 09:57

    Craig Mack 저도 좋아하는 앨범인데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1994년도라는 어마어마한 시기에 나온 것 때문에 주목을 좀 덜 받은 게 안타까운 1장인 듯 합니다!

  • 1 1.29 11:46
    @DJSam

    그러게요ㅋㅋ 바로 일주일 뒤에 나온 같은 회사 뚱보 친구 앨범이 너무 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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