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 영어를 아신다면 많이 충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이의 죽음 앞에, 나는 나약해져갔다 - bl4ck m4rket c4rt의 정규 1집 [Today I Laid Down] (2023) 리뷰
최근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가 사망한 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사망한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아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죽음'이라는 특별한 일이 온 적이 없다. 행운이다. 그런 나에게, 장례식장조차도 가보지 않은 나에게, 뉴스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빠르게 타고 오는 사망 소식들은 큰 충격을 주곤 했다. 괜한 이야기지만 개중 절반 이상은 자살이 원인이기도 했고. 그 충격이라고는, 뭐랄까 그 죽음 순간에 대해 잔인하게 상상을 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살아있었을 가장 마지막의 순간을 상상하는 데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자신의 죽음을 애처롭게 대비했을까?하는 그런, 어찌 보면 몇백 리터의 피보다도 더 잔인한 그런 주제들에서 말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주제가 말이 많아지게끔 하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곧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진부한 멘트지만, 우주의 역사에서 우리가 가치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을 다 합쳐도 티끌의 티끌도 채 안 될 텐데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한 번뿐임을 잘 안다. 종교적으로 환생이나 윤회 등의 개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이 나와의 상호작용이 없으니, 일단 '나'로서의 인생은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겠는가?
그저 반짝 잠깐 살아있다는 아주 특별한 상태로 있다가 다시 '죽은 상태'라는 아주 지극히 보통의 존재로 돌아가는 그 과정을 우리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도, 사람들이 일상생활 도중 쓰고 있는 모든 말도 결국 그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고, 인간이 부여하는 것이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살고 유유히 떠나는 인간이 부여하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나는 항상 나약해져갔다.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죽음에서도 나의 감수성이 드럽게 오그라들 정도로 풍부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왔다. 그 한 번뿐인 죽음이 과연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을까?라는 말은 내가 항상 해왔던 고민이었다. 과연 의도된 그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예술은, 아니 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렇게 '길게 남는 예술'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으로써 장식될 수 있다는 말인가? 죽음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숭고한 것이 있을까? 죽음으로써 자신은 알 수도 없는 가치를 가져다주는 것이, 과연 가치와 같은 모든 상대적인 말들을 받아서 알아먹을 수 없는 시체들에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가 그랬었고,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의 [12]는, 거스를 수 없는 그 죽음이라는 사건을 예술로 승화했다. 맥 밀러(Mac Miller)의 [Swimming]은, 그 나른한 분위기와 맥 밀러 특유의 읊조리는 듯한 창법이 이미 완성형의 앨범을 만들었지만, 며칠 뒤 있었던 맥 밀러의 급작스러운, 의도되지 않은 죽음이 이 앨범에서 맥 밀러가 고백하고 있는 심경들과 감정선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의도되었지만, 대중은 이럴 때를 예술이 정말 죽음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죽음은 언젠가 오는 것이고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섭리라는 점에서 대중은 이를 예술이라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bl4ck m4rket c4rt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06년생 미국 캘리포니아인이었고, 2023년 10월 말 자살을 했다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정보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과연 그는 이 죽음을 자신의 정규 앨범을 위해 의도했을까? 이 정규 앨범이 자기 죽음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여서? 이 앨범은 8월에 발매되었다. 심지어 8월 발매 이후 마니아층들 사이에서 이 앨범은 어느 정도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정도였다. Brad Taste in Music과 같은 채널들 또한 호응을 했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딱 그 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극단적으로 마감했다. 10월 27일 인스타그램에는 자신의 앨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흙바닥에 물을 주는 동영상을 배경으로 한 피드를 올렸다. 총소리가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과 합성되어 있었다. 그의 앨범이 내포하던 대로, 그의 인스타그램이 내포하던 대로, 정말 'Today I Laid Down'이라는 제목과 딱 들어맞게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많은 예술가가 자살을 택했다. 여태까지 그래왔다. 반 고흐도 그랬고, 커트 코베인도 그랬다. 그러나 이 앨범이 없었다면, bl4ck m4rket c4rt는 그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살을 한 10대 소년(소녀? 그의 성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성소수자라는 말도 있고, 남성이라는 말도 있다.)로 남았을 뿐이었다.
What would I do without you?
너 없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Where would I be?
내가 어디 있겠어?You're just looking out for me
넌 날 지켜주고 있어- 1번째 트랙 'Good Morning Texts' 中
1번째 트랙에서의 화자는 자신의 '반복되는 하루'에 대해서 질책을 한다. 불만을 드러낸다. 그러며 해를 향해 '너 없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너 없이) 어디 있겠어? 넌 날 지켜주고 있어?'라고 말한다. 해를 보고 밤새 잠 못 이루게 한다는 것은 마치 빈지노의 '태양이 밤 하늘의 달빛을 가려도 always awake!'를 연상하게 하지만, 희망찬 가사인 빈지노의 'Always Alwake'와는 달리 해를 의지할 만큼 주위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편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화자는 해를 사용한다. 2번째 트랙에서 외줄타기(Walking a tightrope)와 모여 있는 사람들(crowds)를 통해 자신을 향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그러고는 '그리곤 난 떠나. 우린 내보내. 그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를 통해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한다. '오늘 밤 누구로 분장할 건데? 그게 왜 항상 나야?'를 통해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드러내며 그는 이 앨범의 1/3을 마무리한다.
Together I die and I've never felt so alone
함께 죽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 3번 트랙 'No Food' 中
Skin's too thick
내 피부가 너무 두꺼워서I give up
포기했어Never told anyone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Alive always
언제나 살아있길- 4번 트랙 'Alive, Always' 中
3번째 트랙과 4번째 트랙은 정말 우울함에서 끝나지 않고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다. 3번째 트랙 'No Food'는 선공개가 될 정도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건데(그가 메인스트림 음악을 하지는 않으니까), 가사 전반에 있어 누군가를 향한 혐오와 자기 파괴로 뒤섞여 있다. 음악은 여전히 슬래커 록이고, 얼터너티브 록을 기반으로 한 인디 록이다. '함께 죽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라는 말을 하면서까지, 음악은 쓸데없이, 지겨울 정도로 평화롭다. 4번째 트랙에서의 거친 기타 사운드는 그의 자살 암시를 더욱 부각시킨다. 4번 트랙 'Alive, Always'의 4분 즈음에 그는 절규하듯 노래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가사를 읊조린다. 가사는 바닥에 쏟아진 구토와 구토 속에 있는 칼, 그리고 3번째 트랙에서 언급한 보드카, 자기 혐오와 혼란스러운 상황, '내 피부가 너무 두꺼워서 포기했어'라는 말에서 암시한 자해 행위의 싫증과, 자신의 비통함 속에서도 자신은 항상 살아남아왔다는 것의 표현(Only forward, Born again), 그리고 이중적 표현의 'Alive always'가 내용을 이룬다. 첫 'Alive always'는 마치 자신이 죽음 이후에도 언제나 살아있기를 말하는 것과 같았지만, 두번째 'Alive always'는 이 줄은 자신의 버린 그 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화자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불분명하다(주어를 생략하고 두 마디 'Alive always'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내 의견이다). 화자는 이전 트랙에서부터 암시되어 왔던 학교폭력의 마침표를 찍으며 이제 자신이 상상해 왔던 그 선택을 실제로 옮길 준비를 한다.
I thought you would disappear when it was over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엄마가 사라질 줄 알았어요Enough time will never pass
충분한 시간이라는 건 영원히 오지 않을 거예요- 5번 트랙 'Short Sleeves' 中
They're all waiting for you
그들은 모두 널 기다리고 있어I will always follow you
난 항상 널 따를 거고You will always follow me
넌 항상 날 따를 거야- 6번 트랙 'Today I Laid Down' 中
5번째 트랙은 정말 잔인하다.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이다. '말 안 해도 괜찮으니까 엄마, 그냥 놔주세요'라고 말을 한다. '충분한 시간이라는 건 영원히 오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통해 참척으로 인한 고통을 씻겨내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을 말한다. 이 얼마나 잔인한가? 그리고 1분 30초 가량의 반주는, 기타 솔로가 격정적으로 변하며 이 트랙의 시작 부분의 드림 팝과 다르게 흘러가다 나중에는 드림 팝스러움과 기타 리프가 섞이며 조화를 이룬다. 6번째 트랙은 자신이 떠난 이후의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자신의 음악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임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다. '난 항상 널 따를 거고, 넌 항상 날 따를 거야.'
그의 음악을 다 듣고 나면 정말 충격 뿐 나머지 감정들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의 피해자의 유서를 보는 듯하다. 정말 뛰어나다. 짧은 20분의 러닝타임을 끝마치고 나서 다시 첫번째 트랙이 재생될 때, 그가 가사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의 인생이 이 음악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음(Alive, Always)을 느낀다. 내가 여기서 이 앨범이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는 다른 자살을 택한 예술가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작품을 자살을 미화하기 위한, 변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지 않았다. 자신의 자살을 묘사하듯 그려냈다. 자살과 앨범의 서사 사이의 갑을관계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죽음을 소명하기 위해 앨범을 사용하지 않고, 죽음을 위해 앨범을 사용했다. 그게 참 묘했다. 자신의 죽음의 수단을 연상하기도 하고(확실하진 않지만 보드카가 강조되는 것을 보아서는 보드카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죽음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지만(3~4트랙에서 설명을 하는 학교폭력과 자신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그 일례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완벽한 예술로 끄적여내려갔다. 죽음 위에 예술이 있을 수 있을까 골몰하던 나에게 이 앨범은,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더 내 고찰을 불쾌하게 만들면서도, 내가 이런 주제에 대해서 고찰한다는 것 자체는 불쾌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고 굉장히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점이 답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남은 궁금증은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만약 그가 이렇게 자살 암시를 대놓고 했다면, 대체 왜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한 이후인 2달이나 뒤에야 세상을 떠났을까? 대체 인스타그램의 그 피드에서 물을 주는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앨범 전반에는 드림 팝과 얼터너티브 락이 섞여 있는 색채를 묻혀놨다. 특히 5번 트랙의 변칙적인 기타 리프는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는 1집 시절의 블랙 컨트리, 뉴 로드(Black Country, New Road)가 떠올라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3번째 트랙과 4번째 트랙을 들은 후에는 이가 자살을 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충격을 배로 가할 뿐이다. 가상 악기로 추정된 사운드들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어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떠오른다. 파란노을은 '미완성된 진실보다는 정교한 거짓을 들려주고 싶다'는 의도에서 가상악기를 썼다고 하였다. 그러나 각 트랙의 초반부에는 슬래커 록의 특성답게 일부러 날 것 느낌을 드러내며 통기타를 거칠게 믹싱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져갔다. 굉장히 날 것 그대로의 사운드인 기타를 바탕으로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와 다른 악기들이 깔려 대비를 이루는 작법은 인디 록에 있어 많이 있어 왔지만, 이 앨범이 그의 '디지털 유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덤덤한 게 아닐까 싶어 소름이 돋는다.
More stuff on the way. bl4ck m4rket c4rt의 음원 사이트 소개글이다. 그가 이 말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자기 파괴적인 분노에서 나온 말인지 아니면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기 전에 작성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P.S: 정말 좋고 정교한 앨범인데 언급이 다른 장르임을 감안해도 너무 없어서 작성해 봅니다. 힙합엘이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근에 RYM 차트를 시작으로 꽤 많이 보이던 앨범이여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고 자살한 10대라는 점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짧은 앨범이지만 굉장히 심오하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앨범이네요.
이런 잔잔한 이모 앨범에서 버줌 음악보다도 더 심오한 감정을 느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앨범을, 그/그녀의 음악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어린 아티스트가 앨범을 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접했었는데, 이렇게 리뷰를 보니 다시 마음이 아픕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rym 차트에서 보고 관심가고있었는데 이 글 보니까 오늘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RIP
작성해주신 리뷰 보고 다시 들어봤는데 진짜 들을때마다 훨씬 좋아지네요.. 가사를 찾아보진 않아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앨범은 슬프게도 너무나도 황홀하고 아름답네요..왜이리 평화로운지
동감입니다. 가사를 모르고 보면 그 무엇보다도 평화로운 앨범이죠. 지겨울 정도로 평화롭다고. 잔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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