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파커의 솔로 프로젝트인 테임 임팔라는 고전 사이키델리아와 비지스 풍의 디스코의 세계를 제멋대로 넘나드는 가장 모험적인 탐험가로 그려져왔다. 그동안 파커는 피치포크의 눈여겨봐야 할 신인 뮤지션에서 코첼라 페스티벌의 헤드 라이너로, 레이디 가가와 트래비스 스콧의 레코딩 파트너로, 말 그대로 뮤지션들의 뮤지션이 됐다. 코첼라의 대미를 장식하고 Saturday Night Live의 뮤지컬 게스트로 등장했던 1년 전 봄이 앨범 발매의 적기였지 않느냐는 유프록스의 질문에 파커는 "칸예 웨스트 방식ㅡ완성도를 위해 발매를 연기하는ㅡ의 접근법이 필요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1년 사이 하이프가 너무 비대해져버린 탓일까. 테임 임팔라의 새 앨범 <The Slow Rush>를 향한 팬들과 평단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같은 반응의 주된 이유는 일각의 논지대로 이 앨범이 <Currents>에 비해 뒤떨어져서라기보다는, 도리어 <Currents>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된 <Currents>를 답습하면 안전한 선택이 되고, 그렇다고 남다른 시도를 하면 <Currents>를 그리워할 것이다. 케빈 파커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앨범명(Slow)에서부터 인트로와 아웃트로(Year, Hour), 각종 수록곡들(Instant, Posthumous, Tomorrow, Yesterday, Time)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역설의 모티브는 테임 임팔라의 화두와 마찬가지였다. 파커의 표현대로 시간은 위안과 치유가 될 수 있지만 저주와 억압이 될 수도 있다. 믿음과 원망, 불안감과 안정감 같은 상충하는 감정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는가. 선공개된 싱글인 Posthumous Forgiveness는 따듯한 질감의 패드 신스와 필 콜린스 타입의 드럼이 빚어낸 환각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으로서, 음악을 통해 하나의 감정을 확산시키는 파커의 장기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어. 내 모든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가슴 깊이 원망하던 아버지를 용서하겠다는 한 아들의 절절한 외침은 늘 이 세상의 아들딸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이야기하듯이, 요는 시간이다. Posthumous Forgiveness(사후의 용서)만큼 시간과 역설의 모티브를 잘 함축하는 표제가 또 있을까. 이것은 시간의 무자비함이 무심하게 내던지는 삶에 관한 교훈이다. 용서에는 타이밍이 있고 그것은 귀결이 아니라 동기가 되어야 한다. "It Might Be Time." 말 그대로 때가 됐다.
리듬과 질감은 테임 임팔라 음악의 심벌 그 자체였다. <The Slow Rush>의 수록곡들 중 몇몇은 곡의 진행과 분리되어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 흘러가는 '1분'을 지니고 있다. 이 구간은 대부분 봉고 같은 리듬 퍼커션이나 혼잡한 궤적을 그리는 신시사이저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외 없이 몽환적이다. 이 같은 형식은 돌연 비트가 전환되는 힙합이나 오프닝과 클로징을 연주곡으로 안배하는 고전 재즈 싱어의 앨범에서 기원했을 테고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스틸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흐릿한 펑크 사운드로 출발했던 Posthumous Forgiveness는 4분이 경과한 뒤 명랑하고 산뜻한 멜로디로 방향을 틀어 초반부와 대조를 이루며 파커의 고백에 아련한 뒷맛을 드리운다. 세련된 누-디스코 트랙인 Breathe Deeper는 고전으로 회귀하는 듯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후반부의 질주하는 신스 베이스는 다프트 펑크의 Contact를 연상시키며 한껏 미래지향적인 쾌감을 전달한다.
<Currents>는 고전 사이키델릭 록과 흑인 음악 사이의 조화로운 가교였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지금 파커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한정되어 있다. 나는 <The Slow Rush>를 "다채로운 스타일과 섬세한 공감대를 가진 매혹적인 사이키델릭 팝 앨범"으로 정의하고 싶다. 그러나 '연출력이 저하된 <Currents>', '악틱 몽키즈의 최근 행보를 보는듯한', '선명함, 전염성, 음악성이 부족한' 등 평단의 여론과는 괴리가 있는 듯하다. 만약 <The Slow Rush>가 5년 전에 발표됐고 <Currents>가 저번 주말에 발매됐다면 과연 지금과 평가가 일치했을까. 이 앨범은 음악 자체만큼이나 시간과 역설의 모티브에 구속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Slow Rush>는 생산 공정을 들여다보고 싶은 몇 안 되는 앨범 중 하나다. 말리부의 홈 스튜디오에서 직조한 신시사이저 레이어, 퍼커션과 하이 햇의 경쾌한 질감 등 인트로인 One More Year는 Let It Happen에 버금가는 출중한 댄스튠이고, 앨범의 후반부에 잇달아 울려 퍼지는 Lost in Yesterday와 Is It True는 근래 보기 힘든 탁월한 디스코 넘버로서, 파커가 비지스에게 전하는 경의의 표시와 마찬가지다.
<The Slow Rush>. 케빈 파커가 이 앨범에 이보다 더 걸맞은 타이틀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이 앨범은 파커의 결연한 의지에 대한 반영뿐만이 아니라, 단지 한두 번의 감상으로 명확한 결론에 이르는 현대 비평 풍조에 많은 바를 시사할는지 모른다. 물론 일말의 아쉬움도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파커가 <Currents>에서 일렉 기타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가를 생각해봤을 때, 앨범에서 자취를 감춘 기타 이펙터 수집가의 자리가 더욱 공허하게 느껴진다. 파커는 인트로를 통해 1년을 더 달라고 요구하지만 아웃트로에서는 오직 1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체 어떤 경험이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의 시간에 대한 관념을 소박하게 변화시키는가. "내가 무엇을 했든 간에 사랑을 위해서 그랬고 재미를 위해서 그런 거야."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심호흡을 하고 눈앞의 불확실함을 향해 페달을 밟는 건 델마와 루이스뿐만이 아니다. 마침내 케빈 파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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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 임팔라 짱짱!
이틀 전에 테임 임팔라 앨범이 발매됐는데
5일 뒤에 그라임스와 킹 크룰 앨범이 발매된다니...
여러분,
이것이 2020년입니다.
:p
tmi) 아 21일에 BTS 앨범도 발ㅁ...
커렌트가 ㄹㅇ 띵반이긴 한데 이것도 막 나쁘거나 그렇진 않았음요 좀 달달한 느낌
+킹크룰이랑 그라임즈 앨범도 엄청 기대됩니다 ㄷㄷ 2월이 인디음악 팬들에게 있어선 축제죠 ㅋㅋ
커렌트가 너무 띵반이라 문제지 이 앨범도 존나 좋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잘 읽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21일에 The 1975도 나왔어야 했는데 4월로 미뤄져서 ㅠㅠ 킹 크룰 앨범 유출돼서 못 참고 들어봤는데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킹크룰 앨범 유출됐나요? 어디서 들을수 있나요 ㅠㅠ
앨범 듣고 난 후에도 그냥 커렌트에 손이가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번 앨범도 currents만큼 좋게 들었네요
제가 피치포크라면 톰보이님을 스카웃하겠어요
저는 좋게 들었네요. 다채로운 맛이 있어서 좋네요.ㅋ
글 잘 읽었습니다! Borderline으로 원체 기대가 높았던 작품이었는데 저는 나름 괜찮았습니다.
Current를 답습한 부분에서 평이 까일라면 까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네요.
방금 아마존으로 직배 받았는데 엘피로도 들어봐야겠네요. 이번 앨범도 너무 좋아요 커렌트가 너무 띵반이라 비교되는 부분은 어쩔수 없는거 같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사랑해요 템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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