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의 날개가 공기를 가르자 금속 비린내가 먼저 튄다. 멀리 응시하는 실루엣은 도피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탈출을 명령으로 격상시키며, <Tomorrow We Escape>는 그 명령을 첫 박자부터 집행한다. 드론은 저역을 긁어내리고, 왜곡은 피부를 발라내듯 파고든다. Ho99o9는 서정의 문턱을 불태우고 바로 투입한다. 이 앨범은 설득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SKIN> 이후 이 듀오는 <Turf Talk, Vol. II>로 힙합의 스텝을 시험했고, 이번에는 LA와 파리를 오가며 초창기 스케치를 다시 깨물어 살을 붙였다. Dave Sitek의 손길이 질감의 간극을 조여 주고, MoRuf, Nova Twins, Pink Siifu, Yung Skrrt, Greg Puciato, Chelsea Wolfe가 각자 다른 화약을 들고 들어온다. 스킵 없는 레코드라는 목표를 내세웠다면, 여기서는 체력과 장비를 곧장 전장으로 이송한다. 사운드는 요란함으로 면피하지 않고, 구조와 질감을 동시다발로 전개한다. 라이브의 근육과 스튜디오의 공학이 한 축으로 맞물린다.
“I Miss Home”은 스포큰 워드과 네오소울 톤을 교차시키며 정체성의 좌표를 찍고, 다음 순간 “Escape”가 펑크 드럼과 기타로 문짝을 뜯어낸다. Yeti Bones는 ‘I can’t feel my face anymore / Leave my heart spilled on the fucking floor’라고 쏟아내고, 곡은 초반에 공장소음처럼 몰아치다가 후렴에서 한꺼번에 터뜨린다. “Target Practice”는 금속성 리프와 공격적인 랩, 사이버펑크 영화 같은 차가운 신스 패턴을 맞물려 공장 바닥 한가운데 모쉬 핏을 일으킨다. “OK, I’m Reloaded”는 과포화돼 찢어지는 기타 톤과 연타 드럼으로 힙합과 펑크의 경계를 용접하고, 스파크가 튀는 틈마다 리듬이 더 무겁게 눌러붙는다. 초반 4연타는 맥박을 끌어올리고 의심을 잘라낸다.
“Psychic Jumper”는 헛디디듯 끊어치는 스네어와 살짝 어긋난 코러스로 몸과 머리가 분리되는 듯한 어질함을 드러내고, 그 느슨함을 “Incline”이 곧장 파열시킨다. Nova Twins, Pink Siifu, Yung Skrrt가 탑승한 이 곡은 방패가 충돌하는 레이브 텐션을 쏟아내고, 오토튠 훅은 혼란을 쐐기로 전환한다. “Upside Down”에서 Yung Skrrt의 프로덕션은 저역을 비틀어 하강 나선을 만들고, “Tapeworm”에서 Greg Puciato는 스크림과 낮게 길게 눌러 부르는 보컬을 단칼처럼 교차시켜 곡을 과열 지점으로 밀어붙인다. 이어지는 “Immortal”은 Chelsea Wolfe의 망령 같은 발성과 미니멀 편성이 공기의 밀도를 잠시 낮추고, “LA Riots”가 다시 시위를 당긴다. 권위주의의 문장을 깨뜨리고, 시위의 운율을 비트로 번역한다.
후반부 몇 곡은 방향 전환이 잦아 전체 흐름이 약간 요동하지만, 개별 트랙은 제 무게로 선다. 종지 “Godflesh”는 연타로 몰아치는 킥 드럼을 가속하며 잔여 공포를 체외로 밀어내고, 스피커를 구마의 도구로 전환한다. 여기서 Ho99o9는 분노를 연료로 태우고, 해방을 목표로 겨눈다. 정체성을 슬로건에서 무기로 격상시킨다. 이 앨범은 너비로 과시하지 않고 압력으로 관통한다. 폭발의 잔해가 식기 전에 다음 발화점을 찾게 만든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