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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Grips - The Powers That B

title: Madvillainy예리2024.08.07 19:11조회 수 549추천수 14댓글 25

(본 리뷰는 블랙뮤직 매거진 w/HOM #12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https://hiphople.com/fboard/28603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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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Grips - The Powers That B


<Vespertine>은 의심할 수 없는 비요크(Björk) 최고의 순간들 중 하나다. 백조가 영위한 둥지는 일몰의 시간에도 자그마한 백야 한 폭을 그려냈고, 이는 악상과 선율로 빚어낸 창세기의 지휘자를 연상케 했다. <Debut>으로부터 점차 짙게 물들어가며 극의에 달한 깊이의 한계에 다다른 순간이다. 차마 다음 걸음을 내딛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즈음, <Medúlla>가 탄생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부숴버리고 음성의 파편들을 모아 동물들의 울부짖음으로 완성한 광시곡의 연속. <Vespertine>의 Björk가 꿈결에 잠긴 채 무한히 도는 팽이를 지켜보게 만들었다면, <Medúlla>의 비요크는 한발로 딛어 우뚝 선 팽이가 천천히 떠오르는 모습을 전시해냈다.


경외스러운 기악곡 편성력은 의심할 수 없이 Björk의 심장이다. 이에 반하는 <Medúlla>는 그녀가 수많은 성대의 울림만을 재료로 고집하며 뒤섞어낸 새로운 레시피다. 다시 말해 그간의 집약과 집약의 완성으로 조여진 결속력이 폭발하기 직전, 비요크가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바다 위 푸르른 물살로 몸을 던진 결과물이다. 거리감은 창공의 시작부터 심해의 끝까지. 에베레스트 산부터 마리아나 해구까지 약 20km에 달하는 자유낙하를 가정하게 된다. 결점 없던 비요크의 디스코그래피에 날아든 그 이탈과 재구성의 농도는 감히 <Pet Sounds>의 영향력, <Yeezus>의 가시성, <Kid A>의 전위성, <Blonde>의 변신과 비견해도 모자라지 않다.


비단 비요크만큼 위대한 아티스트가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자유낙하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 낙하란 이카로스의 추락이 아닌 닻을 내리고 뛰어드는 번지점프를 일컫는다. 목적이 제각기일뿐, 저마다의 함성을 지르며 낙하의 스릴을 즐기는 순간. 리스너란 명칭을 달고 처음 태동하던 순간부터 삶의 단짝으로 음악을 끼얹은 감동의 찰나들이 모이기까지. 비요크의 과도기로 화두를 던지는 데스 그립스(Death Grips)의 음반 리뷰에 닿은 당신은 공기저항으로 인해 가속의 정체구간에 놓인 어느 표류인임이 분명하다.


흐려진 논점을 다잡기 위해 요점을 정리하자면, 세 문단 길이의 중력과 낙폭 묘사는 이 리뷰를 관통하는 관점의 슬로건이자 자의적으로 제시하는 앨범의 감상법이다. 디스크 1 <Niggas On The Moon>과 디스크 2 <Jenny Death>의 연결로 완성되는 본작 <The Powers That B>. 더블 앨범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낙차의 대비감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초반 비요크의 일대기로 포문을 연 문단들은 그녀의 기여로 데스 그립스의 가장 컨셉츄얼한 앨범인 <Niggas On The Moon>을 탄생시켰기 때문임도 있겠지만, Death Grips의 음악과는 장르 및 음악적 특성의 괴리감이 서로 등을 맞댈지언정 그 본능적 감각을 일깨우는 점화력의 힘이 서로 와닿아 닮아있기 때문이다. 동떨어진 비유 대신 당장 "Beware"과 "It’s Oh So Quiet"을 탄생시킨 목소리의 주인들을 살펴보자. 숭배하기에 마땅한 짐승을 자처하며 아우라를 고조시키는 라이드(Ride)와 익살스러운 포효로 청중을 휘어잡는 비요크. 영적인 예술의 존재가 창조해낸 피조물과 같은 둘의 자태를 감상하며, 본격적으로 포장을 뜯어 삼켜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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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 1. Niggas On The Moon (2014.06.08)


3인조 그룹 데스 그립스를 관통해온 팀의 상징, 그 아이콘을 MC 라이드로 보는 견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세부 의견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의 독보적인 랩 퍼포먼스가 팀의 중추 역할을 하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매니아들을 양산하기에 최적화된 라이드의 캐릭터만이 곧 데스 그립스의 정체성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들과 확연한 대척점에 서 있는 밴드 Kero Kero Bonito의 "I've Seen Footage" 커버 영상을 시청해보자. 늘 헐벗은 채로 과격한 무대를 선보이는 라이드가 아닌 얌전한 Sarah Bonito가 마이크를 잡고 휘적거리지만, 보컬의 차이로 팝펑크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와중에 명백히 잭 힐(Zach Hill)의 향을 풍기는 멜로디와 함께 열광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은 여전히 라이드를 대하는 듯 열정적이다.


라이드의 랩은 폭발 대비 상태의 불붙은 심지의 스파크와도 같고, 그런 라이드가 날뛸 수 있는 판국을 위해 풍부한 기악적 소스를 제공해온 잭 힐과 앤디 모린(Andy Morin)의 조력이 수많은 레코드들 각각의 차별성과 다채로움을 갖추게 하며, 데스 그립스의 디스코그래피는 이렇게 정립되어왔다. 그런 그들의 음악적 성향은 흔히 익스페리멘탈·인더스트리얼 계열로 요약되곤 하지만 그 세부 갈래를 파고든다면 또 다시 모래시계를 뒤집어야 한다. 당장 데스 그립스의 앨범들을 비교하려 해도 다소 모호한 표현들이 뭉뚱그려질 뿐이다. 비교적 깔끔하고 선명하게 닦아낸 <The Money Store>와 <Bottomless Pit>, 글리치적 요소를 다수 수용한 <Government Plates>, 다양한 뱅어 트랙들을 다수 포진시킨 <Exmilitary>. 구체적 장르의 표현이 아닌 이상 이들을 함부로 규정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 둘레에서 <Niggas On The Moon>을 살펴본다면, 앨범 트랙들 모두를 가두는 액자가 존재한다. 이미 지겨울 만큼 등장한 그 이름 비요크다. "Big Dipper"의 후반부 등을 제외하면 비요크의 음성들은 <Niggas On The Moon>의 앨범 전반적으로 갈갈이 조각이 나 반복되거나 왜곡된다. 본작의 홍보 포스트를 올리며 그녀가 자신을 '발견된 도구'라 묘사하며 한껏 격하시킬만큼, 기민한 감각을 요구한 파편들은 음악계에서 가히 독자적인 아이슬란드 억양마저 드러나지 않게 정체를 숨기고 위장시킨다. 데스 그립스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알지 못해도, 이 본능적인 문법을 구사하는 비요크 음성의 전권을 얻어낸 그들로서는 최선의 방법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저휘도에 노이즈가 덧씌워진 공통점을 공유하지만 명백히 어그러진 보색 관계처럼, 어색한 맞물림이 발생하지 않게 철저히 데스 그립스의 스타일대로 주조해낸 결과다.


비요크의 음성은 도구의 위치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Up My Sleeves", "Billy Not Really", "Have a Sad Cum BB", "Fuck Me Out" 등은 제각기 다른 예시이다. 곡의 하이라이트에서 불안정한 부조화 조성을 의도하기도, 캐치한 멜로디 루프의 감초 역할을 맡기도, 우울한 울부짖음으로 강렬히 산화하기도, 혹은 퍼커션에 가깝게 압축되기도 한다. 매끈하지 않은 목소리가 의도적인 거슬림을 유발하며 묘사하는 뒤틀림의 연속, 악곡 요소들의 심한 부조화를 방지하고자 라이드가 목소리를 죽이는 순간들이 존재함을 생각하면 심히 독특한 방식이다.


어떠한 강렬함의 지표로서는 차선책들이 존재하지만, <Niggas On The Moon>은 분명 <Year Of The Snitch>에 못지 않게 얽히고 설킨 구성으로 조직된 앨범이다. 약 30분 가량을 거쳐 "Big Dipper"의 후반부에 이르고, 비요크의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낸 1분 간의 아방가르드 하모니를 감상한 뒤라면, 정신을 일깨우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이윽고 그들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2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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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 2. Jenny Death (2015.03.19)


소규모 단위의 소포모어는 좀 더 모호한 개념의 정의를 요구한다. 앞선 <Niggas On The Moon>의 경우는 중추를 맡은 비요크의 기여는 물론, Gil-Scott Heron의 "Whitey On The Moon"에 가지는 앨범 제목의 대립성 등 다소 뚜렷한 논쟁거리를 내포한다. 하지만 <Jenny Death>는 아니다. 대체 'Jenny'는 누구인가. 여러 추측들에 따르면 <Niggas On The Moon>의 앨범 커버 촬영지로 추정되는 장소 주변에 위치한 Baby Jenny의 무덤 등이 언급되기도 하고, <Jenny Death>의 커버를 장식한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대로 클럽의 Marilyn Monroe 유리 벽화와 함께 그녀의 미들네임 Jeane으로부터 짐작하기도 한다. 이 중 정답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하게도 <Niggas On The Moon>에서는 명백히 드러난 뮤즈 비요크가 존재했다면 <Jenny Death>는 다소 우회적이다. 임의적인 신원미상의 여성을 표현하는 어휘 Jane Doe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니, 의도한 바일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아주 먼 초두에 언급한 자유낙하를 다시 끌어온다면, 이러한 불명확스러움에 힘입은 <Jenny Death>는 명백히 <Niggas On The Moon>으로부터 낙하한 결과물로 칭할 수 있다. 궤를 달리 하는 두 오프너 트랙 "Up My Sleeves"와 "I Break Mirrors With My Face In The United States"의 성향을 비교하자. "You Might Think He Loves You..."를 연상시키며 그저 곡의 제목을 무자비하게 반복하는 "I Break Mirrors With My Face In The United States"는 Jenny의 정체를 Marylin Monroe 등에 대조하여 들여다본 노력을 잠시나마 무력하게 만든다.


오프너 트랙이 그랬듯 <Jenny Death>는 하드코어 랩 락에 이어 포스트 메탈적인 성향을 다분히 내포한다. 어찌 보면 데스 그립스에게 쉽게 기대하고 또한 다수가 원하는 스테레오타입과도 같다. 하지만 그 뻔하고 직관적인 맛을, 아주 짙은 고밀도의 농축으로 빚어낸 트랙들의 연속으로 배치한다면 오히려 신선한 경지에 도달하는 결과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클리셰와 클래식의 한 끗 차이인 것이다. <Jenny Death>는 앨범의 후반부로 달리기까지 "Inanimate Sensation", "Turned Off", "The Powers That B", "Centuries of Damn" 등의 트랙들을 점철하며 마음껏 머리를 흔들거나 폭력성을 일깨우는 그 폭발력을 아낌없이 뿜어낸다. 그렇게 끝없는 에너지의 질주로 발밑조차 보이지 않는 마라톤을 달리다 보면 심상치 않은 도입부의 메탈게이즈 아우라를 뽐내는 "On GP"에 도달한다. 웅장하고도 어둡게 끓어오르는 빌드업에 의해 불현듯 찾아오는 센티멘탈에 잠긴 뒤, 염세와 허무 그리고 자기파괴적 성향의 메시지를 적나라하게 녹여낸 가사에 젖어들어 온몸이 피범벅으로 물들기까지.


"On GP"를 해부하면 비로소 Marilyn Monroe의 카데바를 관람하는 기의에 휩싸인다. 그녀가 이룬 영예와 업적, 휘말린 사건사고, 안타까운 최후에 이르기까지 몇 편의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 없는 일대기. 라이드의 가사는 앨범 커버 속 어느덧 기록이 된 Marylin Monroe의 메시지와 맞물려 상처의 쓰라림과 굴복의 아픔을 내재한다. 짧지 않은 길이의 곡에 압도당한 뒤엔 해체와 작별을 암시하는 듯한 마지막 곡 "Death Grips 2.0"이 시작되고, 잭 힐의 기교만이 남은 그 자리에 라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81분 가량의 길이에 달하는 낙하를 마무리하는 순간이다.


모든 낙하는 필연적인 고저 차이를 요구하지만 결코 그 높낮이가 우월과 열등을 판가름하진 않는다. 오히려 진리란 사회에 통용되는 메시지와 역방향일지도 모른다. 높은 건물, 높은 지위, 높은 콧대. 견고하지 않은 부유란 꺾이고 부서지기 마련이며, 들떠 있는 감정은 언제나 이면에 불안정을 머금고 수명을 다하면 다시 내려오기 마련이다. 데스 그립스를 향한 이 자유낙하의 비유는 첫 문단에서 읊은 비요크와 이어진다. <Vespertine>은 <Jenny Death>와, <Medúlla>는 <Niggas On The Moon>과. 방향은 서로 반대지만 각자의 스토리 라인이 완성되고, 때문에 두 앨범을 합친 결과물이 'The Powers That B'로 요약되는 이유 역시 같은 흐름이지 않을까.


격동의 시기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하기란 흔해 빠진 템플릿의 일종이지만, 제 아무리 길어야 수 분 가량에 달하는 놀이동산의 질주를 한 세기만큼 늘여 은유로 펼쳐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줄곧 간과하는 사실이다. 데스 그립스가 몸소 요약한 그들의 과도기와 혼란 그리고 예술적 기법과 굉음으로 덧씌운 예술적 이면의 부조화들. 으레 그렇듯 예술은 언제나 껍질을 벗겨야 이해의 영역으로 파고들 수 있고, 이 앨범 전체를 단순한 도파민의 충전재로 취급하기란 곧 무책임하고 게으른 수동적 청취자의 증명서를 발급 받는 꼴이 되겠다.


그간 단순한 청각적 쾌감 혹은 스릴 넘치는 다이빙의 경험을 위해 즐겨온 데스 그립스 청취일지를 감안할 때, 복잡한 자의적 해석이 곁들여진 지금 본작만큼 다양한 청취자들의 해석이 궁금할 수가 없다. 그를 청취해온 청자들이 데스 그립스의 음악을 향해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갑작스런 내적 갈등은 실험과 전위를 모토로 내건 추상화의 목적을 파헤치기로 나선 자들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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