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을 역사에 남길 생각 해." 테이크원은 역사를 믿었다. 그러나 아무도 팔아주지 않는 독창성. 내가 굶어 죽고 난 뒤의 역사라면, 의미란 과연 무엇일까?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 나의 카피캣. 시뮬라크르의 홍수. 그들의 복제가 독창적인 예술이라면 그건 아마 하이퍼 리얼리즘 쯤 되는 건가. 그놈의 '독창적인 예술'을 위해 나는 참고서나 되어 뒈져주셔야 하는 그런 건가. 복제들의 세상 속 오리지널리티는 소외된다. 팔리는 음악에 열광하는 대중들을 먼발치에서 관조한다. 아니, 여전히 팔리는 건 경쟁이지 음악이 아니다. 그래, 여전히 팔리는 건 <쇼미더머니>지 힙합이 아니다. 진심, 냉소, 짜증, 폭로, 일갈, Re-Interior,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의 존재 의미가 그저 적당히 굴러가는 데 있다면, 굴러갈 뿐 진실에 침묵하는 시스템과, 시스템에 침묵하는 랩퍼. 그 속에서 유통될 수 없는 진실을 입에 담는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무슨 의미일까 자문하는 것 조차도 돈이 드는데 이건 정말 무슨 의미일까. 힙합씬엔 랩은 없고 랩레슨 받은 랩퍼에게 랩레슨 받은 랩퍼 지망생 뿐인데, 이건 도대체 정말로 무슨 의미일까. TV 속 "내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재력"의 '파지티비티'와, 또 한 번 그 '파지티비티의 복제'로 굴러가는 시스템. 다시 한 번 대답. "Fuck this 랩은 긍정인 놈들 것 난 배후에 주역." 하지만 돈은 시스템이 쥐고, 나는 장남인데, 내 손엔 먼지만 쌓일 때, 돈은 손아귀에 가족을 인질로 쥐는데, 이 때 느끼는 나의 재능, 만개하는데, 곡 하나 히트치면 평생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화무'십년'홍이었네, 유통기한 10년 랩퍼네. 이거 나이 30 찍고 은퇴하면 변호사나 해야겠는데. MC메타. "정말로 음악에 난 모든 것을 던졌지 거짓말. 그 반의 반의 반만 걸고 딴데 걸었지." 대답. "You ain't got a problem 착각들 하지 마라. 음악은 삶의 일부지 삶이 아냐. 애초에 한국에 사는 대로 적는 놈 몇이나 있겠냐 마는 미친 가사들이 구라 빨. I might be the fakes rapper till I die." 증명? 무의미. 경쟁? 무의미. 사랑? 무의미. 가족? 의미. 삶? 의미. 독창성? 그래도 여전히 의미. 그렇다면 돈? 글쎄. 아무튼, 너넨 "돈이 만든 위치가 만든 돈이 벌어주는 거" 그런 거 하고 잘 살아가니까. 아무튼, 내게 이딴 랩은 이제 지겨운 '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까. 아무튼, 사랑이든 음악이든 뒤에 가격표를 다는 게 썩 어색한 일은 아니니까. "Anyways, welcome to [Moonshine]." |
아는 사람들은 다들 잘 알겠지만, 김심야는 팀 'XXX'의 멤버로 FRNK와 함께 유럽씬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실력자다. 이들의 작업은 고마울 정도로 과감하다. 위협적인 사운드와 불규칙한 리듬의 일렉트로닉 장르를 기반으로 한 FRNK의 프로듀싱 스타일은 이미 대단히 난폭한 편이다. 심지어 거기에 날카로운 보컬톤으로 이 비트를 뚫고 나오는 김심야의 더욱 난폭한 랩과 폭력적 가사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그런데 최근 김심야의 가사에서 어떤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저 'Bitch'의 반복 뿐이라며 비판받던 그의 가사가 힙합씬에 대한 전방위적인 일갈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아마 'Manual', 이어 'Interior', 'Runner's High'와 'Career High', 그리고 이번 [Moonshine] 믹스테입까지. 이러한 변화가 어색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한층 신랄해진 가사는 날카로운 랩 톤과 합쳐지며 그의 새로운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꼭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자문하던 김심야가 점점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서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힙합 노래를 쭉 들어보면 옛날엔 자신의 고통을 얘기한다든지, 삶을 노래하는 것만이 ‘힙합’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딱히 그 부분이 와 닿지 않았다. (...) 내 얘기를 하는 게 되게 위험한 일 같다. 취향으로 치면 ‘나는 이게 좋고 이게 싫어’라고 얘기하면, 사실 취향이라는 게 바뀔 수도 있고 유행이 지날 수도 있잖아. 그걸 유지할 자신이 없으면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번복하기엔 말의 무게가 되게 무겁다." (김심야)
- 2016.08.04, ELLE, XXX <교미> 인터뷰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TV 안 그들의 집들이에 거의 접을뻔한 앨범과
내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재력
- 김심야와 손대현, <Money Flows>
[Moonshine]의 지배적인 정서는 역시 극도로 날이 선 냉소와 허무다. 그리고 그 근원은 또한 역시 돈과 시스템의 부조리함이다. 이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전혀 새롭지 않다. 오히려 인상적인 포인트는 김심야는 여전히 모든 랩퍼들을 다 이기고, "The bar so lifted, My diction gifted, 갈겨써도 못 따라와"라든가, "아직도 나에게 인정받을 앨범 그건 한국엔 없으니 (...) 내 앨범을 이기는 건 새로운 내 앨범 뿐이였으니"라든가 하는 가사를 잘만 쓰고 있으면서도 패배자를 자처한다는 점이다.
고작 이런 랩게임 따위 작은 전투에서 다 이긴다고 해도 결국 돈이 갑이며, 랩게임의 승자에게 경제적인 보상이 온전히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Show & Prove' 같은 명령에 따라 증명하는 것으론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김심야는 'Manual'에서 이렇게 말한다. "랩레슨 받는 새끼들 딱 이거 하나만 알아둬. 랩레슨 받지 말라고 훈수두는 미친 새끼들이야말로 개병신들이지. 여기는 인맥사는 곳이구나, 하고 눈치까는 새끼들아. 너흰 다 희망이 있어 그냥 피 빨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는 이제 "내 자신과 이제 말로 다툴 일은 없어 내가 뭐래도 money flows"라며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지난 날의 패기는 객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벌린 손에 먼지만 쌓이네 가만보니 우리집에 가장이었잖아"라는 가사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KYOMI> 앨범의 'Liquor'에서 "나를 걱정하지 말아줘 아버지가 말씀하셨듯이 나에겐 가족이 최우선. 근데 엄마 나 이젠 가족들이 많아 돈 걱정은 이제 말고 난 자신 있어 밤마다 잠이 안 오긴 해도"라고 말하는 가사와는 달라진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심지어 대놓고 '은퇴'라든가, '변호사', '취준생' 같은 힙합 가사 치고는 나약한 단어들을 내뱉는다.
그러나 이건 여전히 고발이며 공격이다. '병신들, 구라치네. 랩은 삶이 아니잖아. 사는 대로 적지도 못하는 기믹 랩퍼들 주제에.' 그는 돈과 음악이 빚어내는 양가감정 앞에서 다른 랩퍼들처럼 적당히 거품에 빌붙어 살아가기 보다는 현실의 푸석한 살갗을 그대로 비춰내는 쪽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다. 예컨대 '복제가 원본을 대체하는 하이퍼 리얼리티? 좆까네, 니네가 날 참고서 취급하면서 베끼면 난 그 참고서에 아예 가격표 붙여서 팔아 버리지' 하는 식. 카피캣들의 참고서가 된 자신을 재인식함으로서 김심야는 뒤집어진 랩퍼들의 현실 감각을 다시 한 번 뒤집어 균형감각을 회복한다.
Good for you
넌 나보다 똑똑하군
부럽다 이제 그럼 난 갈테니
너흰 할 일해
난 혼자서 빡쳐봐야
다음에 받침대
날 딛고 올라갈 다음 애들은
더 나은 시장에서 살 길 바래
내가 설 곳이 줄고
징그러운걸 낸다면
그만한 명분을 가지고 올게
- 김심야와 손대현, <Outro>
FRNK와의 합을 맞춘 'XXX의 김심야'가 야성적이고 본능적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나움을 보여줬다면, 손대현(D.Sanders)과의 합을 맞추는 '김심야와 손대현의 김심야'는 허무주의적이기에 본질을 꿰뚫는 '빨간 약'을 보여줬다고 할 것이다. "돈이 만든 위치가 만든 위치가 벌어주는 거"로 벌어 먹고 사는 그들과는 달리 살아갈 수 있는 음악의 단서를, 아마 D.Sanders와의 다음 앨범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때까지 부디 김심야가 자신의 '명분있는 짜증'을 자랑스러워 하길 바라며.
"Anyways, welcome to [Moonshine]."
스웩
좋은 글 덕분에 더 깊은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베르 카뮈가 생각나냐 시발 개좋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wordlife5@naver.com으로 보내주심 안 될까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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