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드레이크와 켄드릭 라마의 선택
얼마 전, 현시대 힙합의 젊은 두 거장이 나란히 새 앨범을 발표했다. 하나는 드레이크(Drake)의 [More Life]이고, 또 다른 하나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DAMN.]이다. 둘은 모두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힙합과 랩에 대한 고전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전작에서처럼 자기에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를 자신들의 작품에 담아냈다. 그렇다고 마냥 전작들과 비교해 별다른 변별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커다란 서사와 이에 걸맞은 유기성보다는 트랙 하나하나에 힘을 줄 수 있는 전략과 문법을 활용했다. 우연이라면 우연인 이 현상은 늘 시대를 앞서가거나 현재 자신들을 둘러싼 상황에서 작품이 최대한의 의미와 완성도를 가질 수 있게끔 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두 아티스트에 의해 벌어졌기에 꽤나 큰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앞으로의 음악 시장이 굴러가게 될 방향을 선도하여 제시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랙 하나하나에 힘을 준다는 공통적인 특징 이외에 나머지 사항이 가진 맥락은 드레이크와 켄드릭 라마 둘에게 서로 다르게 작용한다. 우선, 드레이크는 자신의 음악적 취향과 성향, 그리고 새로운 장르에 대한 탐구를 자연스럽게 아우르기 위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라벨링을 붙였다. 그가 [More Life]를 호명할 때 사용한 말은 ‘플레이리스트’였다. 플레이리스트는 대중들에게 개인의 취향을 적극 드러내는 도구로서 친밀감 있으면서도 작품의 형태를 규정하는 데에 사용되기에는 다소 생소한 용어다. 드레이크는 [More Life] 속 수록곡들의 균일한 음악적 퀄리티를 통해 생소함이라는 단점을 최소화하고, 익숙함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한다. 누군가는 트로피칼, 캐러비안이라는 수식어로 대변되는 “Passionfruit”에 매혹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직접 랩을 하진 않아도 스켑타(Skepta)를 기용해 그라임을 시도한 “Skepta Interlude”에서 드레이크의 다음 스텝을 계산할 것이다. 아니면 “Too Much”에서 샘파(Sampha)와 함께 호흡하듯 긱스(Giggs), 졸자 스미스(Jorja Smith)와 같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 트랙들에서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플레이리스트인 만큼 자신이 현재 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만을 제시하지 않고 과거의 발자취를 되짚기도 한다. [More Life]에는 [So Far Gone]을 시작으로 그간 그가 발표한 굵직한 정규 앨범들, 그리고 믹스테입 [If You're Reading This It's Too Late]까지, 드레이크의 커리어가 일목요연하게 요약되어 있다. 당장에 첫 트랙 "Free Smoke"만 해도 곡의 분위기와 내용으로 "Energy" 같은 류의 타이트한 넘버들을 연상케 하고, "Lose You"에는 초창기 드레이크가 선보였던 사운드 구성과 랩 디자인이 은근히 묻어난다. 마지막 곡 "Do Not Disturb"의 경우에는 그를 더 큰 슈퍼스타로 성장하게 한 [Take Care] 속 몽환적인 무드와 겹치는 지점이 다소 있다. 그렇기에 그사이에 앨범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서사가 없다거나 작품의 결론이 무엇이냐는 등의 다소 원론적인 감상이 설 자리는 비좁은 편이다. 기존의 앨범 구성 방식은 계속해서 유효하겠지만, 어차피 곡 개개로 따로 팔려 앨범을 차트 상단에 올려놓는 판에 이 랩스타는 단 하나의 단어로 자신의 작품을 확실하고 획기적으로 포장했다. 언제나 영악했던 그가 더욱 영악해진 순간이다.
영악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드레이크에 비해 켄드릭 라마는 여전히 우직하다. [Section.80]부터 [Good Kid, M.A.A.D City], [To Pimp a Butterfly]까지 오며 꾸준히 표출해왔던 자신의 정체성인 아프로-아메리칸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만, 이번에는 각 곡의 제목을 특정한 키워드로 짓고,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빈민가에서 자라온 어린 시절의 과거부터 랩스타가 된 현재까지 이어져 온 사고와 감정을 풀어놓는다. 어떻게 보면 지난해 깜짝 발매했던 부틀렉 [untitled unmastered.]를 좀 더 확실하고 정교한 틀로 묶어내 정형화한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각 곡이 단편적으로 흩어진 파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이를 오랜 시간 걸쳐 겪어온 경험에서부터 출발하는 자의식으로 손쉽게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낸다. 그 경험의 예로는 방송사 팍스(Fox)가 자신의 노래 “Alright”이 폭력을 조장한다며 가했던 비판과 마지막 트랙 “DUCKWORTH.” 속 현재 속해 있는 레이블 TDE의 대표인 탑 독(Top Dawg)과 자신의 아버지 더키(Ducky)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들 수 있다.
이는 확실히 명작으로 연달아 칭송받았던 [Good Kid, M.A.A.D City]와 [To Pimp a Butterfly]와는 다른 문법이다. [Good Kid, M.A.A.D City]에서는 자신을 가상의 스토리에 대입하고, 그 스토리를 불우함과 악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가 되는 식으로 전형성 있게 구축했었다. 그런가 하면, [To Pimp a Butterfly]에서는 첫 곡 “Wesley’s Theory”부터 웨슬리 스나입스(Wesley Snipes)가 어떤 맥락으로 등장하는지를 모르면 트랙이 가지는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듯 앨범을 이해할 수 있는 타겟의 범주를 적게 잡았음에도 다루는 의제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깊이, 더불어 흑인 음악이라는 카테고리 내의 다앙한 장르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도를 보여줬었다. 그에 비해 [DAMN.]은 메시지를 전달할 때 훨씬 직설적이다(추구하는 장르나 스타일도 복합적이기보다 비교적 단일적이고 선명하다). 그래서 [DAMN.] 하나만 들으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내러티브가 없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대신 그간 훌륭한 작품을 쌓아오며 커리어를 올려놓은 켄드릭 라마라는 아티스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이 역시 그가 구사할 줄 아는 또 다른 무기로 충분히 여겨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DAMN.]까지도 대중과 평단에게 호평받는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More Life]와 [DAMN.]의 구심점이 되는, 중점적인 곡을 꼽으라면, 전반적인 경향은 있을지라도 아마 압도적으로 꼽히는 트랙은 없을 것이다. 앨범 안에서 각 곡의 컨셉, 컬러는 개별적으로 가져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앨범을 듣고 남는 건 명백한 히트 싱글이 아닌 앞서 언급했던 전반적으로 균일한 음악적 퀄리티다. 인터루드라고 명명한 트랙이 아닌 이상 그 어떤 트랙도 다음 트랙으로 바톤을 넘겨주기 위해, 혹은 인트로, 히트 싱글, 아웃트로답기 위해 존재하지 않은 덕이다. 그로써 앨범은 준수하거나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르게 킬링 트랙이 정해지며 종합적인 순위는 올라간다. 다시 돌아와서, 서두에서 드레이크와 켄드릭 라마를 무엇이라 칭했는지 기억하는가? 우린 분명 음악적으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산업적인 측면에서까지 영리하고 현명한 젊은 거장들의 시대를 살고 있음이 틀림없다.
글ㅣMelo
이미지ㅣayn
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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