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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로이드와 DIY이야기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6.06.24 12:51조회 수 383추천수 10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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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음악을 만들려면 여러 인원이 필요하거나 장비들이 필요한 일이었다. 간단하게 작곡가, 작사가, 보컬이 필요하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보컬로이드(VOCALOID)의 등장으로 개인 창작자는 곡을 쓰고, 가사를 쓰고, 보컬을 입력하는 일을 모두 혼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태초에 보컬로이드는 DIY를 위한 음악 소프트웨어였다. 물론 이런 식으로 글을 끝낸다면, 굳이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겠다. 다만, 문화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의 이야기는 사뭇 달라지게 된다.

잠시 보컬로이드의 역사를 짚고 넘어가자면, 초기에 보컬로이드(LOLA와 LEON)는 지금의 이미지와 다르게 음성 합성 엔진 혹은 그를 칭하는 프로그램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유의미한 성과는 내지 못했으며, 그다음 크립톤의 모델인 메이코(MEIKO)에서 그나마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메이코가 초기 모델과 차이점을 둔 점은 캐릭터성을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도 소수의 마니아에게 관심을 받은 정도였지, 크나큰 성공이라 보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더 발전된 기술력과 귀여운 이미지를 강조한 캐릭터를 도입한 하츠네 미쿠(Hatsune Miku)가 들어오며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의 명성과는 달리 하츠네 미쿠의 등장부터 각광받은 것은 아니다. 당시 주류 DTM(DeskTop Music) 이용자들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장은 '니코니코 동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몇몇 작곡가들이 보컬로이드 곡을 업로드하자 이를 본 이용자들은 단순한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만화, 일러스트, PV 제작 등 다양한 2차 창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보컬로이드의 의미는 음성 합성 엔진을 넘어 캐릭터까지 포괄하는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이제는 보컬로이드가 주는 용어 자체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음악 창작을 위한 프로그램, 이를 이용한 음악 장르 그리고 캐릭터까지로 말이다.

이제 DIY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초창기에 보컬로이드는 DIY 음악 제작 도구였고, 니코니코 동화가 DIY 생태계였다. (현재는 유튜브로 주 무대를 옮겨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컬로이드 음악 제작은 작곡가, 일러스트레이터, 영상 제작자, 팬이 함께 참여하는 협업 구조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들자면, 어째서 보컬로이드 팬들은 보컬로이드 음악을 넘어 캐릭터까지를 소비하냐는 것이다. 이는 기존 음악 시장의 소비 형식과 공유하는 맥락이 있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는 당시 크립톤의 보컬로이드 판매 양식과 팬의 소비 방식이 겹쳐지면서 일어난 현상을 보아야 한다.

왜 수많은 DTM 도구 중 보컬로이드만 이런 문화가 생겼는가를 따져보자면, 보컬로이드는 음악 소프트웨어이면서도 캐릭터 IP를 동시에 제공했다. 다시 말해 음악 제작 도구와 창작 소재가 하나의 패키지로 결합된 셈이다. 그렇게 보컬로이드 문화에서 음악 제작이라 함은 단순하게 음악 자체를 투고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일반 유저들이 사이트에 음악, 일러스트, 동영상을 모두 함께 업로드하는 방식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오리지널 곡은 일러스트레이션과 동영상을 동반한 형태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를 소비자들이 받아들인다고 보는 것이 용이하다. (이 안에서도 다양한 변주가 있겠으나 자세히 논하지는 않겠다.) 쉽게 말하자면, 음악 자체와 캐릭터 구성 요소로의 보컬로이드가 함께 공존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요는 점차 넓어지는 보컬로이드 문화가 DIY적 맥락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보컬로이드 팬덤 자체가 2차 창작 중심으로 굴러가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당장의 하츠네 미쿠는 단순하게 캐릭터 가수라 칭할 수 없기에 창작에서도 자유롭다는 이점을 가진다. 이는 분명하게도 현 버추얼 아이돌과 같은 개념에서 멀어지는 지점이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설정이 없기에 팬들이 성격, 세계관, 관계성을 모두 창조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소비되는 캐릭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창작의 매개체에 가깝다. 더 나아가, 팬들은 기업이 관여하지 않는 경우의 캐릭터와 음악까지도 만들게 되는 경우까지 왔다(ex: 카사네 테토) 예로, wowaka의 미쿠는 불안과 절규를 노래하고, DECO*27의 미쿠는 사랑과 욕망을 노래한다. 두 존재는 사실상 전혀 다른 캐릭터에 가깝지만, 팬들은 이를 모두 '하츠네 미쿠'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하츠네 미쿠는 하나의 캐릭터라기보다, 창작자가 내용을 채워 넣는 인터페이스에 가깝지 않을까. 게다가 더 나아가서 팬들은 이를 하나의 하츠네 미쿠로 인식한다는 점 역시 큰 쟁점이 되겠다.

결국 보컬로이드가 더욱 특별해지는 지점은 단순한 가상 가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 제작의 개인화와 인터넷 DIY 문화가 만난 결과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보컬로이드가 인디펜던트 정신과 연결되고 (ex: n-buna 현 요루시카 / hachi 현 요네즈 켄시 / DECO*27 등)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창작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보컬로이드 문화의 역사는 기술의 발전 역사가 아니라 아마추어 창작자들의 주도한 DIY 문화의 역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자유로운 캐릭터 영역은 곧 팬들의 원하는 캐릭터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며, 더 나아간다면 상품화까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팬들은 이를 소비하고 재창작에 영역에 들어선다. 팬은 곡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곡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들고, 다시 새로운 곡의 소재를 제공한다. 결국 보컬로이드 문화는 소비자를 생산자로 전환시키는 구조였다. 이것이 팬들이 소비자를 넘은 프로슈머가 되는 과정에 기여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보는 보컬로이드의 전망은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보다도 '누구나 자신만의 가수 혹은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가 주요하다. 여기서 '누구나'는 창작자가 되는 것이며, 보컬로이드는 이제 아이돌 다음에 그릇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음의 과제도 남아있다. 현재 보컬로이드 문화는 유튜브 알고리즘, 쇼츠, AI 생성 기술, 상업화의 흐름과 서브컬처에서 대중문화로 이동하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듯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보컬로이드라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형성된 DIY 창작 생태계일 것이다. 보컬로이드가 앞으로도 특별한 문화로 남을 수 있을지는, 대중화 이후에도 이 DIY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제 첫 보카로 입문은 wowaka의 롤린 걸이었네요...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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