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마이클 잭슨이 지난 2천 년 인류 역사에서 예수에 가장 근접했던 존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는 예수보다 훨씬 실재적인 인물이라는 점 — 물론 그의 인기는 거의 종교적이었다. — 에서, 그 삶의 족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하기 용이하다. 마이클 본인은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를 지향하긴 했어도, 그는 결국 10살이 되기 전부터 대중의 사람이었으니까. 만인에게 대중음악사의 전설적인 존재로 추앙받음에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작 그가 세상을 떠난지는 고작 17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나조차도, 대략 5년 동안은 마이클과 한 지구에서 같은 공기를 마신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우리의 체감보다도 우리와 훨씬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 안타까운 죽음을 상기할 때마다, 문득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지 공상해보게 된다. 후배 흑인 아티스트들은 그에게 [Off The Wall] 같은 역작을 어떻게 만들었냐며 조언을 구하지 않을까. 칸예 웨스트의 'Saint Pablo' 중 마지막 구절인 "Modern-day MJ with a Off The Wall flow"가 갑작스레 떠오른다. 또한 어셔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외에도 우리는 더 많은 팝 총아들이 그와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2001년 썸머 잼의 제이지 외에 또 어떤 래퍼가 그를 무대 위로 모실 수 있었을까?
나는 요즘 외국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댓글에서 이런 류의 의견을 자주 접하곤 한다. "마이클 잭슨이 살아있었다면 케이팝 아이돌들을 좋아했을 것이다."와 "케이팝은 그저 마이클 잭슨을 베낀 모조품일 뿐이다." 여기에서 '케이팝'이란 단어가 종종 'BTS'로 치환되곤 하는데, 그건 방탄소년단이 한국이 낳은 명명백백한 최고의 스타이기에 두 표현 간에 실질적으로 큰 차이를 두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대목은, 과연 저 막연한 가정들이 설득력이 있냐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 답을 알 길은 묘연하다. 마이클이 생전 한국을 유독 애정하긴 했으나, 그가 당시 한국 가요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는 정보는 전무하다. 그가 케이팝 산업의 명암에 대해 알았다면 그의 유년기와도 견주어보지 않았을까 상상할 뿐이다. 그저 그가 후배 음악가들에게는 정말 한없이 관대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며, 마이클이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타국의 젊은이들을 자랑스럽고 귀엽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가장 낙관적인 결론일 것이다. 폴 메카트니가 옛날의 마이클 잭슨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방탄소년단을 보며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마이클이었다면 그것보다도 더 살가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시나리오를 믿고 싶다. 마이클의 완벽주의는 비할 이를 모색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격하기로 유명했으나, 그것은 오직 그 스스로에 한해서만 적용되었으니까.
아, 난 마이클이 진정 유연함이야말로 강인함이라는 명제를 삶으로써 방증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려 깊은 자세를 유지하며 품격을 지킬 줄 아는 이였다. 나는 그가 동료 음악가를 향해 독설한 사례를 전혀 모른다. 심지어 에미넴이 'Just Lose It' 뮤직 비디오에서 그를 공공연하게 조롱했을 때에도, 그는 에미넴을 비방하기보다 그저 그의 심정을 차분히 설명하며 점잖게 대응했을 뿐이다. 그 과거의 일을 끌고 와서 아직까지도 또 다른 입지전적 거장을 평가절하하는 — 물론 참으로 막 나가던 슬림 셰이디 시절의 업보이긴 하다. — 여론이 내겐 썩 달갑지 않음에도, 난 이 사건을 돌아보며 마이클의 인격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되새겨본다. 물론 마이클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향후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다시 케이팝이 마이클 잭슨을 모방했다는 주장에 대해 논해보고 싶다. 특히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 마이클 잭슨에게서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정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케이팝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팝 음악을 넘어 대중음악 전체에 일어난 가장 파격적인 사건이었고, 마이클 이후의 모든 팝 아티스트들은 철저히 그의 영향 하에 존재한다. 그러니 흑인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데다가, 장르 자체가 마이클 잭슨의 등장 이후에 생겨난 케이팝에서 마이클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난 케이팝이 그저 한국 버전의 흑인 음악이라는 무식한 표현을 매우 싫어한다. 그것은 마치 힙합이 디스코의 일종이라는 발언을 21세기에 당당히 하는 것과 같다. 최근 들어 특히, 케이팝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존중을 상실한 경우가 가끔 있긴 하다. 그러나 세상에, 문화 전유란 개념도 모른단 말인가?

애당초 마이클 잭슨 본인이 문화적으로 너무나 거대한 존재였다. 그는 팝 앨범의 음악적 완성도를 극한까지 추구하는 모범안을 몇 번이나 몸소 증명해보였고, 뮤직 비디오를 단편영화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의 쇼맨쉽과 안무에 대해서는 백 말보다 한 번의 스텝을 직접 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마이클은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의 사이에서 화려하게 빛나며 그 누구도 닿을 수 없을 정상에 도달했다. 심지어 모타운 출신의 가수가 흑인 아티스트 대상으로 쳐놓은 MTV의 바리케이드를 뚫어보이며 행한 일이었다. 그의 업적을 단순히 음악적인 단위로, 혹은 상업적인 단위나 사회적인 영향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가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고선 머지 않아 어김없이 성공한 순간마다, 그 모든 층위가 동시에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의 커리어는 어째서 팝이 '통합적인 음악'인지 단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런 만큼이나, 드레이크가 자신의 기록을 과시하는 가사를 쓰고 마이클의 장갑을 낀 채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스스로를 마이클 잭슨 레벨이라고 언급할 때마다 그보다 더 가소로워보일 수 없는 짓이 없다. 어느 정도 재평가 수순을 밟긴 했으나, 나는 지금까지도 자넷 잭슨이 믿을 수 없으리만치 과소평가된 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 위대한 음악가다. 어떤 면에서는 오빠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평가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녀의 음악은 오빠의 음악적 변신에 영향을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면 [Control]이나 [The Velvet Rope], 혹은 그녀가 후대 여성 팝스타들에게 끼친 영향보다는 어쩔 수 없이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이라는 칭호가 무의식적으로 먼저 떠오르게 된다. 마이클은 진정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명성과 위상 탓에 그의 진정한 재능은 다소 간과된다. 특히 흔히 '천마'라고도 불리우는 무대 위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이미 관중들이 완벽하게 매료된 탓에, 그가 아티스트로서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마이클의 가장 저평가된 재능은 가창력이다. 물론 본디 마이클이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일찍이 주목받을 수 있던 주 요인이야말로 바로 그 천재적인 가창력이었지만, 이후 그가 세계적인 팝스타로 발돋움하게 되며 부각된 다른 재능들에 의해 다소 조명되지 않는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히 주장하건데, 마이클 잭슨은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미 유년기 시절부터 완성형이었고, 다수의 성인 가수들을 능가하는 감정적 호소력마저 지니고 있었다. 나는 마이클이 겨우 그 나이에 그가 부르는 가사의 정서를 실제로 경험하거나, 온전히 체득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재능은 당연히 천부적이다. 특유의 미성과 표현력은 어렸을 때부터 스모키 로빈슨에 비견되었을 정도이지만, 그가 성인이 된 후에 비로소 그의 독보적인 보컬이 완성되었다. 단순히 야누스적인 미성의 힘이라고 치부하기엔, 나는 아직도 마이클이 어떻게 저런 목소리로 성대를 견고히 접지하며 그렇게 높은 음역대를 역동적으로 넘나드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가히 스티비 이후 가장 경이롭다. 심지어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청아한 팔세토였다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고음역에서 갑자기 야성적으로 긁히고, 'Workin' Day and Night' 같은 흥겨운 디스코, 'Dirty Diana' 같은 하드 락 타입의 팝, 'You Are Not Alone' 같은 감성적인 알앤비 발라드까지 모두 완벽하게 소화했다.
흔히 현 세대 마이클 잭슨에 가장 가까운 아티스트로 브루노 마스나 위켄드가 꼽히곤 한다. 그러나 그들조차 마이클의 천재적인 장르 소화력과 표현력에 미치지 못한다. 일단 음색 외에는 마이클 보컬의 절반에도 도달하지 못한 위켄드는 물론이고, 그 브루노 마스마저도 마이클과 같은 선상에서 견주어지진 못한다. 오해하진 말길, 브루노 마스는 분명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이며 보컬의 완성도나 그 천부적인 리듬감을 고려할 때 마이클을 잇는 계보에 충분히 놓여질 만하다. 다만 그 누구도 마이클의 음색과 감성, 그리고 육체성을 모방할 수 없을 뿐이다. 가장 높은 경지의 보컬은 결국 몸 전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나는 댄스 가수로서 마이클의 역량이 되려 목소리를 갈고 닦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사견이지만, 마이클의 몸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 같다. 목에서 어깨, 그리고 팔까지 다부지면서도 깔끔하게 이어진 라인 하며, 유난히 길고 가늘어 흑인 신체의 강점을 극대화한 것처럼 보이는 슬렌더한 사지가 그의 안무 소화력에 끼친 영향력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고조의 테크닉이 최고조의 춤선을 만나면 마이클 잭슨이 되지 않을까? 견고한 코어를 중심으로 한 그의 육체에는 엄청난 힘이 깃든 것처럼 보이는데, 그는 그 에너지를 결코 과용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육체 밖으로 배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동작은 철저히 절제되어있지만, 그 동작 각각이 무척이나 위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동작을 늦추고 멈추는 시점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춤은 화려한 묘기보다는, 철저히 연출된 극의 안무처럼 보인다.

물론 그도 처음부터 'Billie Jean'의 마이클 잭슨이나 'Dangerous'의 마이클 잭슨은 아니었다. 그는 댄서로서 우아한 백조와 같아서, 발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마저 동일하다. 춤의 전체적인 인상은 몸통과 팔의 움직임이 결정하지만, 최고의 춤꾼들은 언제나 스텝을 잘 밟을 줄 알았다. 난 그런 면에서 제임스 브라운이 마이클 잭슨에게 끼친 영향이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브라운의 발은 가히 번개처럼 움직였다. 1983년에 마이클이 제임스 브라운의 앞에서 재롱을 떠는 모습을 보면 제법 그럴 듯하게 제임스 브라운을 따라하고 있다. 하지만 1974년 'The Payback'을 비롯해, 제임스 브라운의 소싯적 라이브를 한번이라도 보고 온다면 결국 마이클 잭슨조차 한때 일개 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마이클이 독보적인 댄서로 평가받을 수 있던 배경에는 당연히 다른 요인도 존재한다. 그의 하체가 제임스 브라운처럼 움직였다면, 그의 상체는 존 포시처럼 움직였다. 특유의 절제되고 유연한 웨이브와 동작을 보고 있자면 마이클이 그의 춤을 평소 얼마나 따라했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특히 연극배우 출신 특유의 팔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작이 마이클의 춤에도 녹아있는데, 그래서 마이클의 춤에는 소울과 펑크에 브로드웨이의 DNA가 녹아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퍼포머로서도 그만큼 훌륭하지만, 그 모든 안무와 무대 연출마저 총괄했다는 사실이 그를 예술가로서 진정 위대하게 만든다.
연출 능력에 대해 논하자면, 당연히 작편곡자로서의 마이클을 제외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그는 현대 팝 제작 방식의 효시와도 같다. 아티스트가 아이디어와 비전을 제시하면, 전문 프로듀서가 그것을 음악으로 실현하는 방식. 퀸시 존스 같은 만능형 음악가를 마이클과의 협업만으로 설명하고 싶진 않지만, 퀸시 존스는 분명 마이클과 함께 할 때 최고였다. 그것은 빅 밴드를 지휘하던 퀸시 존스의 기존 재능이 새로운 영역인 디스코 기반 팝에서 발휘된 시너지 효과도 분명 있겠으나, 마이클이라는 뛰어난 비전가가 존재했음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마이클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설명할 줄 알았다. 특유의 입 작곡은 구태여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마이클이 뛰어난 점은 프로세션 중 작품의 완성도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기 위한 열의에 가득 차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화음을 얼마나 정교하게 배치했는지, 혹은 그가 적절한 드럼 사운드를 찾을 때까지 프로듀서들에게 수없는 재도전을 요구한 일화를 들어본다면 — 그가 가장 세세한 디테일에마저 얼마나 강박적으로 신경썼는지 확인할 수 있다. [Thriller]의 사운드가 어째서 4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현대적으로 들리겠는가? 정확한 멜로디, 정확한 질감, 정확한 믹싱. 본인이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 마이클은 정확한 조건들과 실험적인 사운드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다른 이들이 작곡한 트랙을 기꺼이 받아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개조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음악 트렌드에도 민감해 하드 록과 뉴 잭 스윙을 수용하는 시도까지 서슴치 않았으니, 그가 어찌 위대한 팝 작곡가가 아니겠는가?

[Off The Wall], [Thriller], [Bad]. 마이클이 고작 20대의 나이에 연달아 발표한 세 장의 앨범은 한 아티스트의 커리어에서도 한 번 있기 힘든 걸작들의 향연이다. 심지어 그 프린스마저도 저때의 카리스마에는 근접하지 못했다. 난 당연하게도 프린스가 마이클보다 음악적으로 최소 한 수는 우위라고 생각한다. 마이클이 훌륭한 프로듀서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퀸시 존스나 테디 라일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마이클 잭슨은 확실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린스는 지금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그러하듯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었다. 더 레볼루션을 백밴드로 둔 이유도 간단하다. 그저 프린스의 팔이 두 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프린스는 미친 듯이 앨범을 양산했고, 그 자신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70년대의 스티비 원더가 그러했듯이 그 이후의 40년 흑인 음악의 절반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프린스에게 결정적으로 없던 것은 바로 대작주의였다. [Controversy]나 [Purple Rain], [Sign "☮︎" the Times]가 아무리 음악적으로 탁월했다고 한들, 프린스는 결코 '음악' 이상의 것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마이클은 달랐다. 마이클은 그의 앨범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해서 퀸시 존스를 동원했고, 'Thriller'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으며, 무대 위에서 철저하게 주인공으로 군림했다. 심지어 가끔 노래에서 여성 팬들의 지나친 관심에 불만을 표하고 한탄할 때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인간적인 공감이 아닌 세상의 중심에서 자전성을 신화화하는 제왕으로서의 카리스마였다.
어쩌면 그렇기에, 우리는 마이클을 인간으로도 소비하기 위해 그의 사생활과 행보에 그토록 관심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제 모두 알다시피, 그 정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앞서도 언급했듯, 마이클은 한 인간으로서 오롯이 여물기도 전부터 이미 철저히 대중의 사람이었다. 난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 성장했음에도 마이클이 그토록이나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신체/정서적 폭력과 불안정한 가정환경, 이른 나이에 무대로 던져져 한 명의 친구도 사귀지 못했던 유년기 — 너무 빠른 성공에 따른 불안요소가 넘쳐났음에도 미성년기를 이겨낸 마이클의 20대는 정말 기적적인 전성기였다. 심지어 저 모든 트라우마를, 마이클은 아주 건전한 방식으로 승화했다.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연예계 친구들을 만들고, 온갖 동물들을 기르며, 온 세상의 아이들을 따스하게 보듬으며 말이다. 본격적인 비극의 시작인 펩시 광고 촬영 중 사고로 인해 입원했을 때도, 그는 보상금을 병원 측에 그대로 기부하기까지 했다. 이후 한 사람에게 쏟아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비난과 가십에 쉼없이 시달렸음에도, 그들에게 뒤쳐질 세라 선행을 실천한 마이클의 행보를 돌아본다면 — 나는 그가 사실 성인 수준으로 선량하다기보다, 그저 정신력 자체가 초월적으로 강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숭고한 성정에도 불구하고, 난 마이클을 천사처럼 여기는 것이 한때 미디어가 그를 별종이나 악마로 묘사했던 것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일면만을 극대화하는 행위는 우상숭배적이고, 더 나아가 그를 한 명의 인격체로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행위이다. 바로 그것이 마이클의 영혼을 불우하게 만들었다. 정신의학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발달한 지금에서조차 그를 신이나 정신이상자 중 하나로 여긴다면 — 아마 우리는 언젠가 나올, 혹은 이미 나왔을지도 모르는 제 2의 마이클 잭슨마저 똑같이 떠나보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좀 별난 짓을 하곤 한다. 마이클의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보는 것은 무척이나 재밌다. 마이클이 슬랭이나 N 워드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프레디 깁스가 어째서 마이클이 개리 출신임을 강조하며 마약상 버전 'I Want You Back'을 불렀는지 알 것 같다. 철부지 아이 같이 총총 뛰어다니며 주변인들에게 장난을 걸거나 농담을 하는 마이클을 보는 것도 즐겁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이클의 영상 중 하나는, 여성 팬의 가슴을 가리키며 찌찌(Titties) 봤냐고 말하는 모습이다. 난 당시 어째서 많은 이들이 마이클을 게이로 의심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리 소셜 미디어가 없었다고 한들, 그의 가사만 봐도 너무 명백하지 않은가? [Off The Wall]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도발적인 성인식이었다. 커리어 중기부터 사회 문제와 세계평화를 노래하는 곡들을 많이 제작해서 그렇지, 그의 가장 유명한 곡들을 듣다보면 상당히 노골적인 섹스 코드가 삽입되어었다.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가 힙합을 좋아했다는 일화는 이제 너무 유명해졌다. "This beat is cold"를 연창하며 50센트의 'In Da Club'이나 릭 로스의 'Hustlin''을 흥얼거리는 마이클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특히 마이클은 비기를 생전에 한 번, 사후에 한 번 그의 앨범에 피쳐링시킬 만큼 좋아했다. 비기의 위압적인 목소리나 압도적인 랩 플로우, 그리고 도저히 20대 초중반이라곤 보이지 않는 얼굴 탓에 우리는 그가 죽기 전까지도 그저 내 나이 또래의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하지만 마이클과 자넷에게 시상하며 뒤에서 긴장한 듯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마이클이 인사를 청하자 손을 약간 떨며 그를 따라 비밀 악수를 하는 비기의 모습을 보면, 그도 마이클 앞에선 한 명의 젊은 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기는 당연히 마이클을 대단히 존경했을 것이다. 난 그 반대가 궁금하다. 마이클 잭슨이 [Ready to Die]에 담긴 랩을 들으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프리모가 프로듀싱한 'Unbelievable'이 향후 [Invincible] 앨범에 수록된 'Unbreakable'의 원형이 되었다는 사실은 꽤 유명하다. 마이클과 비기의 사이가 꽤 좋았던 것과는 반대로, 마이클과 투팍은 의외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투팍의 인터뷰 중 재산이 넘쳐나는데도 충분히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 아티스트의 예시로 마이클 잭슨을 언급하기도 하고, 투팍이 퀸시 존스의 딸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마이클이 투팍을 제대로 때려눕혔다는 루머까지 있다. 물론 그 진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난 마이클의 출신지와 육체 능력을 고려해볼 때 신빙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까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가장 유명한 프린스 건부터 시작해, 마이클이 의외로 불화를 일으켰던 관계도 많다. 그것이 모두 마이클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마이클은 사랑꾼과 싸움꾼 중 한쪽만을 선택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물론 사랑꾼에 훨씬 가까웠지만, 적어도 때로 싸움꾼이기는 했다는 것이다.
2026년에, "사실 마이클 잭슨은 도날드 트럼프와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라는 말을 하면 대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심지어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트럼프는 마이클이 아동성추문 의혹에 시달릴 때 정말 몇 안되게 마이클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던 인물이었을 정도로 그와 가까웠고, 마이클의 사업적 감각을 칭찬하기도 했다. 실제로 마이클은 비틀즈 곡의 저작권을 비롯해 많은 매입과 인수 건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으니, 사업가로서는 성공적이었던 트럼프와 친분을 가질 만하다. 분명히 밝히지만, 난 마이클이 이윤을 추구했다고 비판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의 다면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그가 마냥 순수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재능과 탁월한 두뇌를 동시에 가졌던 사람이라고 입증하는 것이다. 게다가 마이클은 언제나 일관적으로 더 큰 수익과 기록을 추구해온 인물이었다. 단순하게도, 그것들을 추구하면서도 물질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에게 자본이란 철저한 수단이었다. 그는 사업을 확장해 아마 그의 음악, 혹은 인류와 공동체에 도움이 될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애당초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한 팝스타로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가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순수성을 감히 의심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 의심이 맞아떨어진다고 한들, 애당초 그게 무슨 잘못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당연하게도 한 주 전 개봉한 영화 <마이클>이다. 정식 개봉 전부터 영화적 완성도나 그 취지에 대해 말이 많았던 작품이니만큼, 기대는 어느 정도 접어두고 관람에 대비했다. 정확히 예상대로, 이 영화는 <레이>보다는 <보헤미안 랩소디>에 가까웠다. 심지어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유일하게 정말 훌륭하다고 평가할 만한 시퀀스인 라이브 에이드 공연 수준의 클라이맥스도 부재하다. 그저 너무나 유명해 이미 마이클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히 알 개인사나,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선별해 영상화할 뿐이다. 심지어 편의나 서사성 부각을 위해 일부 역사적 사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편집하기도 한다. 정말 우스운 대목은, 그런 간교한 술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정작 서사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셉 잭슨과의 갈등 구도를 부각하거나 <피터 팬> 메타포를 통해 마이클의 소년미와 훗날 그가 세울 네버랜드를 암시하긴 하지만, 철골을 세운다고 해서 건물이 완성되진 않는다. 이 영화는 속된 표현으로 '마이클 잭슨 매드 무비'에 가깝다. 인물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조명하는 섬세함은 부재하고, 그저 그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들만을 빠른 템포로 휙휙 넘기기만 하니 — 잔존하는 것은 체험일 뿐이지, 비극과 찬란함보다는 단발적인 안타까움과 공허한 화려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난 이 영화를 즐기고, 행복해했으며, 끝내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 갔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영화가 가진 힘이 아닌, 몇십 년이 지나던 간에 여전히 최고인 그의 음악이 가진 힘이다. 줄리아노 발디와 자파 잭슨은 그 힘을 재현하고 체화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극장이란 공간은 마이클의 위대한 팝 음악을 몸소 피부로 느끼게 하며 나를 모타운 25주년 공연이나 빅토리 투어로 데려갔다. 'I'll Be There',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Beat It' 같은 주옥 같은 명곡들이 지나가는데도 극장에서 근엄한 얼굴로 영화를 평가하는 꼴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하나도 쿨하지 않다. 난 최선을 다해 리듬을 타고, 입으로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웃었다. 특히 빅토리 투어에서 자파 잭슨이 'Human Nature'를 부를 때, 그리고 [Bad] 투어에서 'Bad'를 공연할 때 나는 자파 잭슨의 육체로 투영되기 시작하는 마이클 잭슨의 잔상을 목도하고 그가 무대 위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존재였는지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Human Nature',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이다. 나는 그가 무대 위에서만 온전히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무대를 접하고 나면, 그 표현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날 듯하다. 영화로 보는데도 이 정도로 감격하는데, 실제로 그의 총명하면서도 열망으로 가득 찬 눈빛을 무대 앞에서 느낀 이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시 그의 뮤직 비디오와 공연 영상을 돌려보며 막연히 상상만 해볼 뿐이다.
마이클 잭슨의 20대는 그의 명백한 최고 전성기이다. 당시의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에게서 벗어나 음악적 주권을 되찾으려 했고, 자기증명과 자아 표출에 무척이나 목마른 젊은이었다. 쉽사리 예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난 이미 수 차례 강조했던 그의 완벽주의를 유년기의 엄격한 교육과 학대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 이론을 조금만 변용하면, 모든 인간은 관성으로 움직인다.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경험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이 강박적인 완벽주의로 굳어졌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조 잭슨의 상습적인 외모 비하가 마이클의 성형 결정에도 영향을 끼쳤을 테지만, 골절 사고가 아니었다면 마이클에게 자신의 외모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볼 시간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성형 이전에도 정말 아름다웠다. 마이클이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퍼포먼스에 주력을 두는 아티스트로 진화한 관계로, 음악에서나 뮤직 비디오에서나 일전의 예술적 야망을 찾기 어렵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은 퀸시 존스와의 충분한 협업으로 기존 음악적 자원을 충분히 소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동시에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3개를 통해 충분히 자기증명을 이루어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변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유사한 시기부터 마이클의 백반증이 극심해지고 타블로이드를 비롯한 언론들의 공격이 적극적으로 시작된 까닭도 있다. 그때의 마이클은 음악에만 전념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떠안고 있었다.

혹자는 아티스트의 도덕성 문제를 논하며 예술을 예술가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한때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도덕성을 운운하기 위한 주장만이 아니긴 하지만, 내 생각에 예술은 예술가의 개인사를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마치 1960~70년대 사이키델릭 락 밴드들의 음악을 논할 때 LSD의 존재를 결코 제할 수 없고, 1990년대 래퍼들의 랩에서 게토의 참혹한 현실을 결코 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고흐의 그림에는 삶의 굴곡과 고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있고, 칸예 웨스트의 중기 음악에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양극성 장애의 영향이 녹아있다. 경이로운 완성도를 지닌 마이클 잭슨의 팝 음악에도 그 삶의 흔적이 총체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서 하나 확실히 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마이클 잭슨은 조셉 잭슨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시간 역행이 불가한 물리 세계의 가장 안타까운 아이러니이며,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물론 마이클은 진정한 천재이기에 어떻게든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마이클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를 비극적인 천재로만 이해하는 시선도 약간은 무리가 있다. 그의 개인사에는 분명 수많은 비극이 뒤따랐으나, 적어도 그는 일생 동안 철저히 자신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갔다. 그의 재능은 형제들을 들러리 겸 엑스트라로 만들었고, 모든 조명과 카메라 플래시는 그에게만 쏟아졌다. 그리고 그도 분명 그것을 좋아했다. 그것이야말로 마이클 잭슨이 이미 서거한 시점, 아마 우리가 평생 동안 그 자체로 간직해야 할 삶의 모순일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말 그대로 문워커(Moonwalker)였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올 줄 알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매료시키는 방법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인류 역사의 가장 강력한 법칙마저 이겨내진 못했다. 사람들은 우상을 세우고, 그 우상을 처형한 후, 다시 그 우상을 그리워하길 즐긴다. 물론 사실 수많은 의견들의 총체인 대중 여론을 단일 현상으로 환원할 생각은 추호도 없을 뿐더러, 마이클 잭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대중에게만 묻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의 비극와 죽음에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이 연루되어 있다. 하지만, 분명 강한 개체를 신뢰하는 인간의 원초적 생존본능이 극대화되어 우상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그 우상과 리더가 세워지고 나면 이내 다시 끌어내리고 싶어하는 모순적인 인간 심리를 관찰하다보면,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결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아, 마이클 잭슨은 정말 진정한 의미로 예수에 근접했던 존재였다. 우리에겐 그를 가질 자격이 없었음에도 어째서 그는 끝까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마이클의 삶은 이런 관점에서 소비될 때 우리에게 명백한 교훈 하나를 전달한다. 정말, 그에게 했던 만행을 다시 누군가에게 반복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언제까지 소중함을 상실한 후에야 그것을 그리워할 것인가.
마이클은 [Thriller]를 만들 때 역대 최고의 팝스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그 소원을 끝내 이루었다. 그의 천재성 이면에는 영웅 서사로 위장된 타인의 탐욕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천재성을 부정하거나 그가 무대 위에서 그 누구보다도 환상적인 존재였음을 부정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위업을 손수 세운 전설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인간 이상의 존재로 소비될 때 그 인간은 버티지 못하고 서서히 붕괴된다. 나는 그의 외모 변화를 상징적으로 여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안타까울 정도로 망가져가는 말년의 그를 볼 때마다 그가 진정 자신의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워가며 업에 헌신했고, 이내 재로 바스러지지 않도록 그 자신을 어떻게든 지탱하려 했다는 감상 역시 도저히 지울 수 없다. 그저 무력하게, 그가 가장 빛났던 시기를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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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읽었습니다
사실 마이클이 살아있을때는 전 이 세상에 없었어서
평소 마이클의 인기를 글이나 사람들의 말로 체감했는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마이클 잭슨이 얼마나 위대하고 엄창난 천재였는지를 알게된거같아요
사실 이번 영화는 마이클 잭슨의 천재성을 대변하기에 너무나도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충 넘어간 면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이클이란 인물, 혹은 아티스트 자체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역시 그의 음악이나 뮤직 비디오, 공연 영상을 직접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전 마이클의 가창은 나얼의 의견과 비슷하게 성인 시절보다는 잭슨즈, 넓게 쳐도 잭슨 파이브~Off The Wall까지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쿠세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빈도가 조금씩 늘더라고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마이클의 보컬은 가면 갈수록 특유의 딸국질과 더불어 쿠세가 강해지죠. 하지만 역량 자체는 어릴 때보다 성인이 되고 나서 더 성장했다고 생각하긴 해요. 뭐, 어릴 때의 마이클이나 성인 시절의 마이클이나 불세출의 천재인 건 똑같지만...
잘 읽었습니다. 특히, 마이클이 음악을 음악 이상으로 문화로 승화시킨 대작주의를 가졌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마이클 영화는 참 아쉬운 점이 많지만 사실 고증이나 스토리는 어떻게 해서든 부족할거라고 생각해서 기대를 딱히 하지않고 그냥 고화질로 자파르가 열심히 준비한 무대 연출만 즐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봤습니다. 무대 자체는 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영화 자체가 훑고 넘어가며 몰입하지 않는 무대가 많아 아쉬웠네요. 잘 만들 수 없다곤 생각했지만 잘 만들어낸 것 조차 살리지 못한 것 같아요. 솔직히 프린스의 팬이라서 일부 마이클 잭슨 팬들이 과도한 신격화+프린스 내려치기 할때마다 속상하고 괜히 마이클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때도 있는데, 마이클이라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볼 때마다 그런 부정적으로 생각한 제가 부끄러워지고 존경하게 되는 진짜 멋있는 아티스트입니다. 긴 글은 보통 대충 넘겨읽는데 최근 마이클을 보고와서 그런지 쭉 정독하게 됐네요. 정말 글 잘 쓰시네요. 저도 제 생각이나 관점을 논리정연하게 펼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도 프린스 문외한들인 마이클 팬들이 프린스를 내려칠 때마다 화가 나곤 합니다. 프린스가 얼마나 거장인데요. 둘 다 굉장히 매력적인 아티스트들인만큼 세상 사람들이 이들의 진가에 대해 더 잘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알고 싶은 부분만 수용하지 말고...
글 정말 잘 읽었어요! 마이클과 같은 세상에 살아보지 못 한 저는 그 위상이 어느정도였는지 제대로 체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를 접할 때마다 그 카리스마에 놀라요.
그리고 에미넴... 엠형 왜 그랬어ㅠ
'마이클 잭슨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팬들도 존재한다'는 표현이 딱인 것 같아요 ㅋㅋㅋ 앞으로 어떤 팝스타가 등장해 얼마나 유명해지던 간에 마이클을 따라잡진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에미넴이야... 그때는 그냥 모두까기 인형이었기에... 오히려 에미넴이 마이클을 디스한 사실 자체가 당시 사회 풍조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슬림 셰이디란 기믹 자체가 사람들이 생각하고는 있는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은밀하고 위험한 생각을 세상에 당당히 내놓는 확성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즉, 에미넴이 마이클을 공격해도 괜찮겠다 생각한 것이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마이클을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였다는 방증인 것이죠. 그때 에미넴이야 이미 엘비스부터 대차게 깐 팝스타 혐오 기믹으로 유명하기도 했고요. 좀 더 성숙해진 에미넴이 그 일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힌 것을 보면, 애당초 진지한 접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기에 더 그릇된 행동이긴 했죠.
영화 존나 기대하고 봤는데
내가 원래 극장 오줌 존나 잘참는데
그냥 가도 아쉬움이 전혀 없을정도로 별로였음
여러모로 영화가 참 아쉬움. mj의 음악을 영화관 사운드로 듣는 것과 자파 잭슨이 제법 열심히 노력했구나 말고는 기억에 남는게 없는..그나저나 어린 시절 mj 보컬 들으면 진짜 가수할려고 태어났구나라는 생각밖에 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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