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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우울함을 노래하는 가수였을까? - Elliot Smith <Either/Or> 리뷰

title: Long SeasonHayabusa1시간 전조회 수 98추천수 6댓글 3

KakaoTalk_20260114_164341237_01.jpg : 그는 정말 우울함을 노래하는 가수였을까? - Elliot Smith <Either/Or>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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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CD가 도착했습니다. CD 인증할 겸, 오늘은 엘리엇 스미스의 Either/Or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Well, sometimes people cry because they need to just release pressure. If it's like that, then that's fine. I don't want to bum anybody out in a really dark way. But, I mean, to me, my songs don't feel like that. I want to be real, and if that's alternately depressing or comical…"

 

- 1998년 여름, What! A Magazine에서

 

  아마도 음악종합게시판에서 활동 중인 엘이러 중에 엘리엇 스미스를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솔직한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가수이고, 그의 모든 앨범은 명반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많은 리스너가 그를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처럼 예상치 못한 성공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연약한 가수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음악이 우울한 정서를 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위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음악은 결코 슬픔이라는 하나의 감정만으로 분석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Either/Or는 솔직한 그의 모습을 가장 정갈한 형태로 표현한 앨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그는 Miss Misery로 오스카 후보에 오르고, 드림웍스를 통해 메이저에 데뷔하게 되거든요. 그의 다음 앨범인 XO가 솔직하지 못한 앨범이란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XO의 풍성한 사운드는 확실히 이질적인 부분이 있죠. 어쩌면 같은 앨범을 다시 만들고 싶지 않는 고집도 엘리엇 스미스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겠네요. 어쨌든 Either/Or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엘리엇 스미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포크 음악의 정수가 담긴 앨범입니다.

 

  1번 트랙인 Speed Trials를 들으면 악기 구성이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꽤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화음이 지속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인데, 두 성부의 하모니가 너무 아름다워서 마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 고독을 씹는 남주인공이 된 듯 한 감상을 줍니다. 이는 다음 트랙인 Alameda 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저는 음악을 분석할 때, 가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편입니다만, 솔직히 Speed Trials의 가사는 직관적이지 않아 이해하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개인의 감상과 경험에 따라 좌지우지되겠지만, 저는 자신의 음악을 정의내리는 걸 혐오했던 그의 성향을 고려하여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기류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You're all pretension, I never pay attention. Nobody broke your heart. You broke your own 'cause you can't finish what you start."

 

  2번 트랙인 Alameda는 제가 처음으로 접한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이자, 가장 좋아하는 트랙입니다. 언뜻 보면 이 트랙의 가사들이 우울한 정서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화자가 상대를 애정어린 말투로 위로하는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실패할 때 스스로를 지나치게 옭아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위로는 오히려 실패를 직시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내곤 하죠. 이럴 때는 위 가사처럼 조금 직설적이지만, 부정적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솔직한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사에서 비유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이어지는 Ballad of Big Nothing과 Between the Bars는 엘리엇 스미스의 대표곡들로, 역시 상대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가사가 눈에 띕니다. 엘리엇 스미스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술은 먹어본 적 없지만,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엘리엇 스미스는 동네 술집에서 노래를 만드는 것을 즐겼다고 하네요. 이전 트랙들과 다르게 락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5번 트랙 Pictures of Me는 유명세를 즐기지 않았던 엘리엇 스미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트랙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사실은 TV 속 폭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엘리엇 스미스는 10명이 듣든, 1000만명이 듣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와 별개로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기는 했다네요.

 

  5번 트랙에서 고조된 분위기는 No Name No. 5에서 급격히 가라앉고, 이는 Angeles까지 이어집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서 자세히 다루진 않겠지만, Rose Parade는 많은 리스너가 최고의 트랙으로 뽑곤 하는 명곡이니 꼭 찾아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9번 트랙 Cupid's Trick에서는 2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환되면서 처음으로 마약 중독(Sugarlight)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합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그가 전작 Needle in the Hay에서 음악 씬에 지독하게 스며든 헤로인 중독을 고발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3인칭을 사용한 게 아닌가 싶네요. 이후 5집을 낸 후에 그 역시도 헤로인 중독에 시달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Tired of living in a cloud. If you're gonna say shit now, you'll do it out loud. (중략) Been pushed away and I'll never go back."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전개되다가 악기들이 추가되며 점점 고조되는 10번 트랙 2:45 AM에서는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양부에게 어렸을 때부터 신체적, 성적 학대를 당했고, 평생 이에 시달리며 살아갔다고 전해지지만, 이 곡에서 그는 그 시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죠. 거기에 드럼과 베이스가 뒤에서 추가되는 곡의 구조는 곡 후반의 메시지를 강하게 나타낸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체 곡 중 가장 이질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트랙 Say Yes는 직관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눈에 띄는 곡입니다. 여기서도 그는 이별의 상처로 넘어지지 않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데 이런 가사를 볼 때마다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세기의 명반이라고 평가받는 앨범이지만, 사실 가사나 사운드 등을 고려했을 때 트랙 배치가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5번까지 감정이 고조되다가 급격히 가라앉고, Punch and Judy에서는 확실히 불연속적인 느낌이 있거든요. 물론 이는 취향 차이일 수 있겠네요. 이 앨범의 컴팩트한 사운드가 맘에 드신다면 엘리엇 스미스의 초기작과 더불어 그의 밴드 Heatmiser의 Mic City Sons라는 앨범도 듣는 걸 추천드립니다.

 

"Entertainment Weekly wouldn't know what's going on if it crawled up their leg. No, I'm not afraid of it, because even if they thought I was the cool thing, it would be very, very temporary. I'm really not worried about stuff like that."

 

- 1998년, 유명세에 대한 두려움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앨리엇 스미스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우울한 앨범을 내고, 이후 메이저에서는 조금 대중적인 방향으로 노선을 선회합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가 가장 밝은 음악을 했을 때가 가장 우울한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는 4집 XO를 낸 후, 알코올 중독과 헤로인 중독에 시달리며 정서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2003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또한 Miss Misery 등 그의 우울한 정서를 담은 곡들은 비극적인 운명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되었죠. 하지만 Either/Or에서 나타나는 그의 모습은 결코 우울하고 연약한 한 명의 포크 가수가 아닙니다. 슬픈 가사 속에서도 이겨낼 거라는 확신과 포부가 담겨 있죠. 단출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목소리만으로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그를 더 이상 볼 순 없지만, 이렇게 음악은 여전히 그의 솔직함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제 음악적 깊이가 얕아서 심도 있는 글을 쓰진 못했는데, 앞으로도 음악 공부 열심히 해서 조금씩 앨범 리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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