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안에서 이해하려
https://www.youtube.com/watch?v=RBtlPT23PTM&list=RDRBtlPT23PTM&start_radio=1
모두 비치 하우스(Beach House)를 21세기 드림팝의 대표로 알고 있다. 알렉스 스캘리의 몽롱한 기타 멜로디가 우리를 꿈으로 인도하고, 빅토리아 르그랑의 천상적인 오르간이 장막처럼 펼쳐진 그곳에서, 매혹적인 목소리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낱말들이 흐릿한 의식 주위를 맴돈다. 우리는 그것이 그들의 이미지라고 믿고 있다.
쓰라린 감정을 타임캡슐처럼 담아낸 'Space Song'을 두고 누구는 오디세이와 연결 지으며 진짜 우주로 보내버리고, 누구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아름다운 감성을 '웃프다'로 희화화해 SNS에 퍼뜨렸다. 때로는 학교 생활이라는 일상에 이방인처럼 스며든 음침한 소녀의 신비로움을 대변하기도, 때로는 어린 세대가 슈게이즈로 빗겨 향하도록 매개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 일련의 역주행 신화 역시 몽환에 매료된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도 비치 하우스의 음악이 선사하는 어떤 감동이든 꿈으로 규정하며, 정립된 미학과 장르의 문법으로써 그 꿈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오롯이 삶과 현실에 대해 노래할 때도, 실제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경험과 감정을 고백할 때도, 가상의 요정이 아닌 실재하는 인간으로서 무대 앞에서 직접 우리들을 반길 때도, 오로지 꿈 안에서만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 왔다.
나도 그랬고, 실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들을 이야기하는 어떤 글을 쓰더라도 꿈이라는 단어를 단 한 글자도 쓰지 않는 것은 여러모로 어러운 일이더라. '드림팝의 대표 밴드'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도 이 악물고 부정할 셈도 아니다. 어쨌든 청중이 그들의 음악을 통해 꿈과 관련된 뭔가를 계속 상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다만, 그렇게 철저히 드림팝의 역사와 특정 관점에만 입각한 채 그들에게 심층적으로 접근할수록, 논리적으로 마땅히 설명하기에 난감한 지점들이 차츰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문득 나는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렸다.
내가 너무 그들을 꿈 안에서만 이해하려 했나?
꿈이란 계보를 따르다가
요컨대 내 고민은 비치 하우스를 반드시 드림팝이라는 카테고리에 엮어서 감상해야 하는가에서 비롯됐다. 그들의 선물을 '꿈결'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라도, 정립된 틀 안에 개념적으로만 이를 해석하면서 훨씬 무궁무진한 본래의 가치를 가두려고만 한 것은 아닌지 되묻는 것이다. 만약 드림팝이 중립적이고 순수하게 음악에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용어로서 온전히 기능한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충분히 몽환적이라고 느끼더라도 그것에 어떠한 논리 법칙이나 전제 조건이 있는 양 굴지 않고, 꿈이 지닌 어떠한 가능성이든 얼마든지 용인할 수만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문제로 삼는 '정립된 틀'이란 계보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비치 하우스가 활동하던 초기에 평단은 그들을 갤럭시 500과 매지 스타처럼 90년대 장르의 태동과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거장들과 어떻게든 연결 지으려 했다. 그래야 그들을 드림팝으로 분류할 당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당시의 리뷰들을 탐독하며 나 역시 타당성에 관한 의심 따윈 일절 하지 않은 채, 이 듀오가 선배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중에서도 앞서 예시로 든 두 그룹이 곧 장르의 기준으로서 비치 하우스의 음악적 맥락에 적용된다고 믿었기에 그들의 행적을 우선적으로 추적했다. 단지 비치 하우스의 뿌리를 충실하게 익히고 싶다는 맹목적인 이유에서였다.
- 갤럭시 500과 매지 스타로 세워진 기준
일단 그 둘의 첫 번째 공통점은 각자의 태생에 있을 것이라 보았다. 그것은 벨벳 언더그라운드, 특히 그들의 3집에 영향을 받은 '사이키델릭하되, 더 소프트하고 서정적인 팝 지향 사운드'와 관련돼 있었다. 갤럭시 500은 공격적인 노이즈나 비정형적인 편곡 대신 미니멀하고 잔잔한 어쿠스틱 연주에 몽글몽글한 리버브를 덧씌워,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나른하고 감성적인 노스탤지어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데이비드 로백이 이끌던 레인 퍼레이드는 미국 서부 버전의 사이키델리아라 할 수 있는 페슬리 팝(paisley pop)의 주축으로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사운드에 로큰롤이나 쟁글팝의 정겨움을 더해 더욱 낭만적으로 재해석했다.
이후 갤럭시는 『On Fire』에서 강세에 이따금 변칙을 가했다. 마치 노을을 마주하고 감정의 기복 속에 사색에 잠기듯, 그들은 몽환의 세계를 개인의 내밀한 격정을 쏟아낼 장(場)으로 삼아 파고들었다. 한편 로백은 오팔(Opal)을 새롭게 결성했다. 그는 기존의 사이키델릭 팝에 한쪽 다리만 걸친 채 날카롭고 어두운 포스트 펑크의 미학을 응시하며, 꿈의 양면성을 병렬적으로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이와 더불어 본연의 서정성을 보존할 팔레트 삼아, 어쿠스틱 발라드 프로젝트인 'Rainy Day'를 병행하기도 했다. 여기서 켄드라 스미스를 영입해 여성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매혹과 연약함의 경계에서 우리를 꿈으로 안내할 시그니처 보이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4m5jQy5A2U
켄드라 대신 호프 산도발을 새로운 보컬로 발탁한 뒤, 매지 스타에 이르러 몽환경에 대한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그것은 혼탁하고 희미한 일련의 환상, 리버브와 로파이, 나른함과 멜랑콜리, 달콤 쌉싸름한 여운, 위태로움을 머금은 순결, 감정과 감성 사이의 모호한 경계, 서글프면서도 감미롭게 속삭이는(혹은 퍼져나가는) 목소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다면적인 혼란이었다. 이러한 직관은 어느 순간 고딕한 콕토 트윈즈의 초월이나, 범장르적인 요 라 텡고의 칠흑, 슈게이즈와도 맞닿아 있는 슬로우다이브의 반사광에도 조금씩 적용되는 논리처럼 사용됐다. 그렇게 매지 스타의 청사진은 곧 드림팝의 전형이 됐다. 특히 'Fade Into You'가 대중에게 워낙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평단뿐만 아니라 막 입문한 팬들도 음악에서 표현되는 꿈을 그 이미지에 의존해 기대하게 됐다.
- 그들의 초창기를 기준과 대조하며
그 뒤로 장르의 경계에 걸쳐 있는 몇몇 그룹─헌톨로지에 더 연관된 브로드캐스트, 슬로코어에 더 연관된 로우, 인디 록 전반을 아우른 요 라 텡고─외에, 드림팝은 한동안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새천년의 도래라는 낭만에 발맞춰 사람들의 이상향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혹은 이때부터 이미 드림팝이 독립된 장르보다는 스타일의 한 요소로서 분산된 형태로 작용하게 된 것일까(이를테면 사실상 명맥은 끊겼지만, 이후 PBR&B나 포스트 덥스텝 등의 연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트립합처럼)
https://youtu.be/k-EQv-cjK0A?si=SPDFDucxqu7J9XCY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피치포크가 'Apple Orchard'를 조명한 이래로 비치 하우스는 드림팝 리바이벌을 촉발시킬 희망으로 부쩍 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흐릿함(gauziness)과 느긋함(laziness)이라는 속성은 그들의 서정성을 몽환으로 여기게 할 주요 단서였다. 간혹 이들이 슈게이즈와 혼동되었다는 사실은, 이 듀오가 나타나기 전까지 드림팝과 슈게이즈 간의 구분이 얼마나 자주 오인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네오-사이키델리아나 슈게이즈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노선을 취하고 있는 그룹으로 인식하고 있다. 앞서 상기한 두 속성 때문이다.
갤럭시 500이나 매지 스타를 그들의 기준(원형)으로 삼는 입장이라면, 이러한 기본 속성이 그들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을 부정하는 입장이라면, 두 가지가 조합된 속성의 기능에 있어 비치 하우스는 그들과 결과적으로 다르며, 즉 정서의 방향을 새롭게 이끌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대조군에 해당하는 그룹들은 적당한 어둠과 뒤틀림을 내포하고 있었을 뿐, 이토록 무겁게 침잠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Apple Orchard'가 수록된 그들의 데뷔 앨범 전체를 보자. 가령 호프 산도발이 매혹적인 요정으로서 귀를 간지럽힌다면, 빅토리아 르그랑은 고독한 유령으로서 폐허 안을 배회한다. 데이비드 로백의 기타가 손님을 유혹하기 위한 주문으로 작용한다면, 알렉스 스캘리의 기타는 서글픈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다. 오르간은 습윤한 늪지대를 형성하고, 드럼 머신의 빈티지한 질감은 뿌연 먼지를 일으킨다.
물론 비치 하우스가 정서를 전달하는 방식에 아이러니가 작용한다는 점에서는 이 역시 앞선 그룹들과의 공통점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어떠한 아이러니를 일컫는 것인지, 즉 작용 여부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질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 그들의 아이러니를 'dead elegance(죽은 우아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특히 르그랑의 목소리가 뽐내는 고전미와 교향악적인 오르간의 웅장함을 떠올리면 오히려 절묘하다. 그러나 그 우아함이 매지 스타의 은밀한 퇴폐나 콕토 트윈스의 스산한 초현실주의와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마치 그들이 수순에 따라 대열에 합류한 것처럼, 엄연히 독자적인 발생 과정 및 양상을 띤 그들만의 미학을 기존의 논리로 설명하려니 계속 어폐와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초기 사운드스케이프가 장르적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직접 밝혀 왔다. 가령 빈티지한 질감은 실제로 알렉스가 부모님과 살던 집의 지하실에 있던 저가의 악기들과 4트랙 녹음 장비를 사용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겨난 것이다. 오르간의 사용 역시 특별히 몽환을 연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작업할 때(더 정확히는 알렉스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곳에 놓여 있었고, 마침 어느 정도 건반 악기를 칠 줄 알았던 르그랑 덕분에 자연스럽게 편성에 포함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디서 영감을 얻은 것인지에 대한 출처 및 기준을 따질 것이라면, 이전의 드림팝 계열 뮤지션들이 아니라 차라리 그들을 둘러싼 열악하고 폐쇄적인 환경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 큰 꿈을 꾸더니
고상한 분위기와는 별개로 그들은 화려함과 강렬함을 내세우지 않았고, 퇴폐적 정서는 의도라기보다는 그 폐쇄적 환경에서 비롯됐다. 팬덤의 규모가 계속 커져가는 와중에도 소통은 점잖았다. 내성적인 스타일과 소박한 스케일은 무대에서도 거리감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다정한 성격의 듀오는 팬들을 나름대로 친절하고 살갑게 반겼지만, 정작 음악은 예술가와 청중 간에 묘한 선을 그었다.
그들 스스로 이를 인지하게 된 계기는 『Devotion』 투어였다. 그들은 대형 콘서트에서도 청중들과 최대한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음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곡을 스타디움에 맞게 편곡하여 라이브 세션을 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음악 고유의 매력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렇게 한들 고질적인 내향성을 가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상황을 바꾸고 싶거든 음악의 성질 자체가 변해야만 했다. 그들의 투어가 실패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꽤나 성공적이었고, 그렇기에 관객들에게 더욱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감동을 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 경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토록 커진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포인트는 ‘스케일’이었다. 즉, '그릇'이 더 커야만 했고 이를 위한 대략적인 아이디어는 꽤 간단했다. 말 그대로 음악이 훨씬 라우드해지는 것이다. 이는 장르가 다채로워지거나, 서사가 길어지거나, 테마가 깊어지거나, 악기가 많아지는 것과는 다르다. 멤버는 (드러머를 포함해) 여전히 셋이면 충분하고, 악기도 오케스트라 수준으로 구비할 필요 없이 쓰던 것 그대로 써도 상관없었다. 단지 악기의 품질만 좀 더 업그레이드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소리 자체가 커지는 것, 선명해지는 것, 그리고 밖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대격변을 결심한 이때야말로 그간 창작의 가능성을 옥죄어 왔던 꼬리표를 벗어던질 절호의 기회이자 시의적절한 순간이었다. 설령 장르적 선입견이 그들 내부에 있었다고 해도, 이번에 음악이 달라짐으로써 인식에도 분명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이 예술가로서의 본분과 재능에 가장 충실한 극복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은 침잠과 폐쇄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다. 그래야만 청중도 맹목적인 관점을 유도하는 틀이나, 나아가 현실과 몽환 간에 그어진 선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의 진심에 따라 온전히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꿈에 가두지 않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그들이 당장 수행해야 할 첫 과업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다. 더는 좁은 지하실에서 갇혀, 싸구려 녹음 장비나 음향 기술에만 의존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그저 둘 만의 시각으로 이전처럼 모든 것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더 큰 스튜디오, 더 전문적인 손길, 그리고 자신들을 믿고 더 적극적으로 투자 및 서포트해 줄 레이블이 필요했다. 나는 이러한 거대한 과정을 크게 세 가지 단락으로 나누어 각각의 역할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했다.
- Dreamland
녹음은 우드스탁 근처 뉴욕 **헐리(Hurley)**의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드림랜드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교회를 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곳을 르그랑은 교회보다는 헛간에 가까웠다고 회상했다. 아마도 대부분 목재로 이루어진 내부 인테리어에, 교회와 관련된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개조한 음악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말일 테다. 신성함보다는 따뜻함과 인간적인 편안함을 느꼈을 테지만, 그럼에도 그 공간의 규모만큼은 스튜디오보다는 강당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장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옛 교회 시설로서 남긴 유일한 유산이자 가장 큰 이점이었을 것이다.
이토록 탁 트인 공간에서는 고립감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중앙에는 넓은 거실이 위치해 있고 시설도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지 않으니 합주를 할 때도 훨씬 자유롭고, 소리도 개방적으로 뻗어나갔을 것이다. 게다가 그곳은 단지 규모만이 장점이 아니었다. 합리적인 예산으로 검증된 장비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는데, 특히 마이크로폰과 믹싱 보드의 품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오르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임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대형 파이프 오르간보다는 아무래도 밴드 음악에 주로 쓰이는 작은 악기들이 좀 더 어울렸을 것이다. 인테리어의 질감으로부터 목가적인 정서가 솔솔 풍기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약간의 신비로움을 더하면서도, 그렇다고 과하게 승천하지 않도록, 또 무의식의 깊은 어둠으로 함몰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 주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오르간은 신께 복음을 고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지만, 천사의 날개만큼 부드럽고, 곱고, 눈부신 순결을 담기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 Chris Coady
프로듀싱은 처음으로 전문가의 손을 빌렸다. 이후로도 수차례 듀오의 음반을 프로듀싱하며 가장 신뢰할 만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거듭난 크리스 코디(Chris Coady)와 서로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는 이미 초기 비치 하우스의 팬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작업 방식과 태도에는 유사점이 많았으리라. 이를테면, 코디도 스캘리처럼 디테일에 매우 집중하는 기술자다. 심벌즈에도 피치가 있다고 여기는 그는 악기 하나하나에 튜닝─그것도 하루에 두 번 이상 전문 튜너를 부르면서까지─과 테스트를 거듭한다. 만약 새롭게 방문한 스튜디오에 백 개의 컴프레서가 있다면 그것들을 전부 체크해 본다. 그는 창작자의 요구와 자신의 판단을 조율하기 위해 매 구간마다 두 가지 이상의 대안을 함께 준비해 놓을 정도로, 모든 미세한 차이점과 경우의 수에 신중한 타입이다.
그러나 작업 레퍼토리가 고정되거나 자신의 철학이 자칫 관습이 되어 버리는 것만큼은 피한다. 모든 가능성에 신중하다고 말했듯이, 그는 결코 독단주의나 특정 비전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요컨대 그는 작품 본연의 매력을 정립된 틀에 가두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안다. 그는 매 작업물을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곡마다 각기 다른 방향과 관점으로 접근한다. 때로는 시행착오나 우연한 발견도 기꺼이 수용하는 그는 이렇게도 주장한다.
직관적이고 때로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영감과 아이디어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결과물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는 르그랑의 자유분방함과도 결이 맞았다. 듀오가 그에게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제시했는데, 그들의 초기를 익히 알고 있던 그의 입장에서도 분명 자신이 예상하고 있던 비치 하우스의 스타일과는 상이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듀오의 새로운 비전에 어렵지 않게 응할 수 있었다. 이 또한 그가 관용적인 사고를 지녔기 때문이리라. 르그랑은 그가 지나치게 이성주의적이지 않아서 맘에 든다고 했다. 고지식한(straight-minded) 누구와도 작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던 그들임을 고려한다면 더욱 믿음이 간다.
그렇기에 그는 정갈하게 사운드를 마감하면서도 꾸밈없고 인간적인 정서를 자연스럽게 조화시킬 수 있다. 디지털의 정확함과 아날로그의 온기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능통하다는 평가는 여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팝과 인디 음악의 특성 중 한쪽에 기울지 않고 완벽하게 고루 통제할 수 있다. 그들이 드림팝에서 훨씬 더 넓은 인디 팝의 영역으로 도약하기 위한 지표로서 그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 Sub Pop
세 번째 변혁은 그들이 카파크(Carpark)에서 서브 팝으로 레이블을 옮긴 것이다. 90년대 그런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브 팝은 00년대 중반에 이르러 힙합과 포크, 뉴욕과 영국 등 장르와 지역 스펙트럼을 적극적으로 넓힘으로써, 이미지를 쇄신하고 인디 록 전반에 걸쳐 대표 레이블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 서브 팝 역시 틀에 갇혀 있길 더 이상 바라지 않던 참이었다. 설립자 포네만은 사이키델리아를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삼았고, 마침 더 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팝을 갈망하던 비치 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서브 팝은 새로운 간판 밴드로 즉시 그들을 점찍었다.
드림 랜드, 그리고 크리스 코디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서브 팝의 투자 덕분일 테다. 권위를 갖춘 레이블은 당연히 베드룸 뮤지션들 입장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혜택을 제공할 만큼 인프라가 탄탄하다. 설령 내부 상황으로 인해 한창 급변과 재정비를 겪고 있는 중일지라도. 그들은 지하실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었던 광활하고 고해상도의 시야를 제공할 수 있다. 밴드가 자신들이 원하는 큰 그릇을 갖추기 위해선 소리의 스케일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볼 줄 아는 통찰력과 안정된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전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꿈을 펼쳐내며
환경을 전면 리모델링하고 나서, 자신들을 가두고 있던 어떠한 제약에서도 벗어나 만개한 코스모스처럼 완전한 우주로 확장하는 순간이다. 이제 더는 구경꾼들이 만들어낸 비좁은 사육장이나 어둠만이 감도는 고독한 폐허에 체념하지도, 잠식되지도 않는다. 사바나의 얼룩말처럼 상상하는 대로 어디든 뛰어다니며, 햇살이 아른거리는 광활한 초원을 향해 자유롭게 뻗어나간다.
마침내 꿈에 잠기는 것이 아닌 꿈을 펼치는, 『Teen Dream』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 Norway
https://www.youtube.com/watch?v=-b3OmCeASMc
선공개 싱글 'Norway'에서 이들의 사운드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당시 팬들도 금세 알아챘을 것이다. 드럼은 분명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지만, 과거 싸구려 머신에 의존했을 때의 기계적인 냉소가 아니라 축제의 북에 가까운 인간적인 고동으로 변모했다. 도입부를 채우는 팔세토 코러스는 그녀가 타락이 아닌 순백의 천사가 됐음을 고한다. 'Norway'를 반복하는 후렴구는 더욱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절절한 만큼 더 친밀하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인상은 처절함이 아니다. 바로 찬란함이다.
가장 반전을 이루는 요소는 단연 르그랑의 목소리다. 유통사 중 하나인 벨라 유니온(Bella Union)은 그녀가 마리안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처럼 변했다고 평했는데, 그전까지는 줄곧 니코(Nico)와 비교됐던 것을 고려하면 그 차이가 얼마나 극명한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고전적인 샹송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한층 중성적이고 허스키해졌다. 일례로 본작으로 비치 하우스를 처음 알게 된 나는 보컬이 르그랑이 아니라 스캘리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그가 상당한 미성의 소유자라고 착각했다(물론 그 역시 여린 팔세토로 백킹 코러스를 채우고 있기에 아예 틀린 생각도 아니지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거친 톤을 머금은 목소리는 훨씬 앞으로 곧게 뻗어 나가면서, 더 강력하고 선명한 전달력을 발휘한다. 이는 천상의 오르간과 대비를 이루면서 생기와 인간미로 가득한 벅찬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또한 본래 무의식을 거닐던 그녀의 추상적인 언어는 풍성한 사운드와 만나, 새하얗고 넓은 캔버스에 고르게 퍼지는 수채화 물감이 되었다.
즉각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만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며 탄생한 사운드스케이프는, 실제 노르웨이의 풍경이라는 테마와 만나 곧 랜드스케이프를 이룬다. 투어를 위해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횡단하는 열차에서 작곡하며, 그 나라만의 풍경을 영감으로 삼았다. 비록 당시에는 전작들의 색채와 비슷하게 어쿠스틱하게 녹음했지만, 투어를 돌며 훨씬 거대하고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각 지역의 관객들과 함께 여정을 펼치면서 얻은 깨달음이 분명 주된 모티브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생각의 전환을 바탕으로 멜로디는 유지하되 코드 진행을 바꾸고 전자 오르간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 Used to Be
https://www.youtube.com/watch?v=j0aDmQnHMKk
'Norway'는 당시의 버전이 아직 공개된 바 없지만, 'Used to Be'를 통해 변혁을 이루기 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2008년 싱글 버전에는 'Apple Orchard'의 Virgin 4 트랙 버전이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이는 3집 앨범의 초기 구상이 전작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근거다. 도입부에 동심 어린 호기심을 자극하는 실로폰의 음색은 청량하지만, 믹싱 질감은 여전히 로파이하다. 보컬은 초기에 그랬듯이 상대적으로 정갈하고 여성스러운 반면, 오히려 스캘리의 기타는 디스토션으로 인해 거칠다. 사운드의 풍성함과 선명함은 덜하지만 그 대신에 더 신비롭고 몽롱하다.
변화된 비전을 담아야 했던 새 앨범과는 기존 곡의 성격이 전혀 맞지 않았다. 피아노 파트는 원곡의 멜로디를 차용했지만, 피상적이고 단조로운 인상을 지양하는 앨범 방향성에 맞게 더 장대하고 다채롭게 재편곡했다.
'상심 속에 머무는 노스탤지어'라는 테마는 여전하지만, 그것이 미련과 망각이라는 정서로 함몰되지 않도록 접근 태도 역시 약간 더 긍정적으로 선회했다.
그렇게 완성된 앨범 버전은 더 명징한 음을 내는 피아노와 메이저 코드를 활용하며, 스캘리의 화음 또한 움츠러들지 않는다. 분위기를 고조하는 구간을 뚜렷하게 연출한 덕분에 편곡이 풍성할 뿐만 아니라, 서사적으로도 상당히 극적이다. Arcade Fire의 『Funeral』이 연상될 만큼 역동적이고, Porter Robinson의 'Divinity' 후반부가 떠오를 만큼 성스럽다. 무엇보다도 이 일련의 흐름이 사랑과 이별을 다룬 '청춘찬가'처럼 들린다. 상처 속에서도 추억을 회상하고 열정을 발견하며 상대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씁쓸함은 남을 수 있지만 방황 대신 나아감을 다짐하며 공허한 결말로 끝내지 않는다.
- Zebra
https://www.youtube.com/watch?v=N-wfb25WmV4
『Teen Dream』의 인트로 'Zebra'는 그들의 새로운 비전과 변화를 함축하는 대표곡이다. 처음 들리는 둘의 코러스는 어둠이 아닌 빛을 품고 있다.
따스하고 부드럽게 살랑거리는 기타로부터 어김없이 갤럭시 500의 나른함을 연상했다면, 이윽고 등장하는 반복적인 킥은 이들이 단지 꿈속에 취해 이내 잠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려는 것임을 드러낸다. 이로써 기존의 관념을 거부한다. 이는 피를 흘리며 위태롭게 비틀대는 것이 아니라, 기세등등한 자세로 힘차게 발굽을 내딛는 것이다. 권태로운 나른함이 아니라 삶을 향한 찬란함을 밝히며.
다만 그 찬란함에 가닿는 과정은 강박적으로 의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간이 정한 기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자신들이 깃발을 향해 가는 길에 대해서도 섣불리 원칙과 정론을 세우지 않는다. 결국 이는 자신들을 옥죄는 또 하나의 관습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지성이 아닌 직감으로 떠오르는 순수한 영감에만 의지한다. 스캘리가 시험 삼아 스케치해 본 멜로디에 르그랑이 문득 ‘줄무늬’라는 엉뚱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그 자리에서 본격적인 붓질을 시작할 뿐이다.
그것이 그들이 꿈을 '펼쳐나가는' 방식이다. 유일한 원칙이라면 상상력을 억제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오롯이 자신들의 표현에 당당할 때 주변은 희뿌연 안개로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섬광으로 빛나게 된다. 드림팝이라는 틀에서 쉽게 접해 볼 수 없었던 에너지를 경험한다. 무엇보다도 꿈에서만 아른거리는 '연인이라는 기억'이나 신비한 요정이 아닌, 청중과 동등한 존재로서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연약하지만 아픔을 무릅쓰고 현실을 살아가며 새로운 꿈을 꾸는 한 사람을 말이다.
그 꿈에 나를 펼쳐내며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한다는 것, 신이나 요정이 아닌 사람으로서 마주한다는 것은 정직함의 영역이자 나를 드러낸다는 의미다. 꿈 안에 더 이상 가두지 않고자 하는 대상에는 예술적 가능성뿐만 아니라 내 존재와 정체성도 포함된다. 은밀함과 내밀함은 다르다. 콕토 트윈즈나 매지 스타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보통 은밀함이 되었다. 주술에 걸려 이것이 깊게 가라앉는 감정인지 초월하는 계시인지 아리송한 느낌이든, 요정이 내 귓가에 매혹적으로 속삭이는 느낌이든 말이다. 갤럭시 500의 『On Fire』라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내밀함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노을에 비쳐 잠시 울컥하고 스쳐 지나가는 상념에 가까우며, 울렁거리는 기타 멜로디와 함께할 때 상념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상념에 젖어드는 분위기'라는 몽상이 된다.
- 리버브 대신 볼륨
https://www.youtube.com/watch?v=y8odHyZp5IQ&list=RDy8odHyZp5IQ&start_radio=1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주술, 매혹, 몽상 따위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첫째로 음향적 요소에 기인한다. 리버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리버브를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했으며, 덕분에 이는 드림팝의 핵심 특성 중 하나로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기타가 넘실거리는 방식이든, 목소리가 흐릿하게 퍼지는 방식이든 말이다. 비치 하우스 역시 초기에는 이를 적잖이 활용했다고 밝혔다. 르그랑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일종의 레이스 커튼이었다. 나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기 위한 임시방편인 셈이다. 이로 인해 감정은 실루엣만 보이는 형태가 되었고, 감정 자체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그것이 풍기는 외적인 아우라에 감화되는 것에 가까웠다.
알렉스는 『Teen Dream』에서 리버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리버브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토록 풍성한 사운드 구현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슈게이즈 밴드처럼 강렬한 디스토션으로 그 빈자리를 상쇄하려 하지도 않았다. 앞서 이들이 본작을 녹음하며 가장 중시한 요소는 '라우드함'이었다고 한다. 즉, 볼륨으로 그 공백을 충분히 메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별다른 악기나 효과 없이도 챔버 팝만큼 장대한 느낌을 자아내도록 설계된 코드와 멜로디가 볼륨과 절묘한 시너지를 일으킨 점도 주효했을 것이다. 즉,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덧씌워 꾸며 내는 것이 아니라, 악기 본연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고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함으로써 찬란함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작에서 희미함이 아닌 선명함을 느낄 수 있었던 요인이다. 또한, 이따금 슬라이드 기타를 활용해 몽롱함의 정도를 적절히 조절하기도 했다.
이제 커튼은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일 뿐이다. 듀오는 그것을 기꺼이 벗어던졌다. 이로 인해 그들은 전적으로 정직한 호소력에 의지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단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추억이나 추상 따위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 어떤 곡을 듣더라도 마치 우주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원했다고 밝혔다. 애초부터 그들은 꿈보다는 우주를 원했던 셈이다. 완전히 독창적인 영역을 추구해 왔던 것이다. 모든 트랙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내려진 결정이었을 테다. 그곳에서는 존재가 뚜렷이 드러나며, 신비주의로 은밀하게 가릴 필요도 없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상호적이고 적극적인 대화가 가능해진다.
- 무드 대신 감정
https://www.youtube.com/watch?v=f7Zr2RCOl-E
르그랑은 이러한 찬란함 속에도 여전히 병폐와 타락, 그리고 슬픔 등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녀가 보기에 이러한 감정은 잠재의식적인 것이다. 즉, 감정을 피상적이고 단색적으로만 다루는 것은 불충분하다. 그럴 경우 단지 연출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여질 여지가 크다. 그녀의 언어는 추상적인 만큼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전작에서는 감정이 마치 안개에 파묻힌 채 제각기 분산된 것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감정을 꿈의 언어로 번역하면서 발생한 착오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감정의 본질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였다.
그녀는 감정이 단지 무드로만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반면 전형적인 드림팝은 그런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특정 이미지에 한정되는 순간 개별적인 감정은 단색적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란 곧 '몽환'이었다. 이 틀을 깨기 위해서는 작품 곳곳에 더 다양한 감정을 녹여 내야 했다. 우주와 인간의 내면은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감정들에 관해 청자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강한 호소력이 필요했다. 자신의 음색을 완전히 다르게 바꾸면서까지 말이다. 날것의 휴머니즘을 그대로 드러내며 계속 앞으로, 최대한 멀리 뻗어 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 덕분에 본작의 정서적 주제들은 듀오의 전작은 물론, 어쩌면 드림팝 신(scene)에 알려진 웬만한 걸작들보다도 훨씬 입체적이다. 가령 'Walk in the Park'에서 무의미해진 관계를 끝내고 난 뒤 정처 없이 떠도는 모습을 구체화한 가사에서는 상처와 성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상심이 이 장르에서 드문 테마는 아니지만, 그것을 환희의 일종처럼 다루며 보란 듯이 살아갈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이전의 드림팝 리릭시즘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유형이었다. 권태로운 꿈속의 여인은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는 있어도, 그 아픔을 딛고 현실을 향해 나아가자는 깨달음까지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Lover of Mine'에서는 요정의 손길에 의존하지 않고도 평온에 이르는 법을 모색하기도 하고, 'Real Love'에서는 만남이 필연적으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긴장의 연속임을 인정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트랙에서 그들은 상심과 불안 속에서도 시련을 감수하며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는 환상으로의 도피나 노스탤지어로의 퇴행과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태도다. 한껏 닳아 버린 목소리에서 오히려 힘이 느껴지는 이유일 테다. 그 힘은 단순히 기운으로서 은은하게 번지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중심이 되도록 감정을 단단히 붙잡아 둔다. 이것이 바로 '10 Mile Stereo'의 전례 없는 극적 고조가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Funeral』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다.
펼친 꿈 너머의 세계를 바라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u2_H3PCTgJk
우리는 그녀에게 내재된 슬픔으로부터 '취약성(vulnerability)'을 발견한다. 이는 깨지기 쉬운 마음을 뜻하지만, 타락이나 퇴폐와는 다르다. 요컨대 허무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온기와 광채로부터 위안과 낙관을 느낄 때, 그것이 사탕발림에 불과한 속삭임이 아니라 자기 고백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이는 곧 '친밀함(intimacy)'이 된다. 나는 진정성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팝 음악을 마주할 때 이 두 가지 성질을 가장 먼저 포착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Teen Dream』에서 본 것들이다. 나른함, 은밀함, 몽롱함, 기묘함 따위로는 이 성질들을 온전히 설명해 낼 수 없다. 이것이 서문에서 내가 그들에게 깊이 접근할수록 곤란함을 느꼈던 궁극적인 이유다.
팝이라는 더 넓은 관점에서 접근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도 그러한 넓은 세계를 지향했다. 아마도 그것이 수많은 레이블 중, 인디 음악 전반으로 관심사를 확장하던 '서브 팝'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크리스 코디가 첫 만남에서 본질적으로 포착해 낸 것 또한 바로 그 갈망이었을 테다. 그들은 깊은 무의식을 현실로 끌어온 뒤, 라우드함과 찬란함을 빌려 벅찬 환희로 번역하고 전달하려 했다. 유감스럽게도 꿈이라는 한정된 영역 안에서 그 환희를 만개시키기는 어려웠다. 생생한 감정과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상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던 것이다.
르그랑은 대부분의 트랙을 일종의 러브송으로 채웠다. 하지만 일련의 사랑을 결코 이상적으로만 그려 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Take Care'에서 비로소 조건 없는 헌신을 약속할 때, 이를 성모의 말씀인 양 우러러보지는 않더라도 아이러니로 치부하지도 않게 된다. 적어도 그 안에 진심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아이러니를 조성하는 틀에 더 이상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약속이 거듭 메아리칠 때 그것이 정말 영원토록 유효하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쉽사리 사그라들며 잊히고 말 허울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누어 왔으니까.
훗날 그들이 설화를, 우주를, 실연을, 환상을 노래할 때에도 우리의 대화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그 약속은 헛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어둠 속에만 머물렀다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그들이 더 큰 세계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제시한 것이라면, 2010년대 이후 드림팝 후배들이 그들로부터 보고 배운 점이 있다면, 나아가 그 깨달음이 드림팝을 넘어 인디와 메이저를 막론하고 널리 활동 중인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전해졌다면, 그것이야말로 『Teen Dream』의 가장 큰 성취이자 비치 하우스의 진정한 도약이며, 그들이 21세기 대중음악 시장에 반드시 등장해야만 했던 이유일 것이다.
비치 하우스의 등장 이래로 갇히는 시대가 아닌, 펼치는 시대에 들어서며 비로소 음악에서 꿈을 이해하는 법을 깨닫고야 만다.
드디어 저도 엘이에 가입을 성공해서(모종의 이유들로 계속 실패하다가) 리뷰를 쓰게 되네요
원래 필명은 '감상주의'인데 닉네임 잘못 쓴 채로 등록해버렸더니 수정하려면 30000정도 포인트가 필요하다길래 안 바꿔도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감살주의로 살기로 했습니다
둘 중 더 마음에 드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ㅎㅎ
비치 하우스의 [Teen Dream] 리뷰를 그냥 아카이브 느낌으로 쓰려고 했더니 뻔하고 별로 재미 없길래
"과연 드림팝 계열에 따라 밴드를 해석하는 것이 맞느냐"라는 약간의 도발적(?) 담론을 섞어 봤습니다
원문은 제 브런치스토리 글입니다만... 단락 몇 개만 끄적이고 '나머지는 링크 들어가서 보시면서 조회수 채워주세요' 스탠스로 가는 것보다 무식하게 다 떄려박는 게 테토다워 보일 것 같아서 비록 에겐이지만 전문 통째로 옮기는 모험을 해봤습니다
근데 제 글이 으레 그렇듯 분량이 방대해서 반응을 보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지...?" 마음이 들면 그때 일부 + 링크 포맷으로 바꾸겠습니다
아무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제 욕심으로는 진득한 토론을 즐겨보고 싶습니다(물론 글빨이 안 받아서 어디까지나 욕심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너드 덕후분들 사랑해요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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