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10/17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함과 '시카고' 셀 블록 탱고의 박력을 뒤섞은 듯한 '바빌론'의 파티 시퀀스를 기억하는가? 이 매혹적인 장면은 '댄스'가 가진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댄스 안에서 힘찬 군무의 일원이 됐을 때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독특한 희열과 소속감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댄스 밖에서 그 군무를 하나의 장면으로 인식하게 되면 그때부터 촌극과 풍자로서의 면모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양면성은 대중음악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만들 때는 똑같은 음악이지만 공개되고 나면 댄스음악은 좀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사정 때문에 카일리 미노그, 아무로 나미에, 아젤리아 뱅크스, 그리고 몇몇 케이팝 음악들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근 몇 년만 하더라도 켈렐라의 <Raven>, 리브의 <Girl in the Half Pearl>, 로셸 조던의 <Through the Wall> 같은 작품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사실 이런 유형의 기믹, 즉 보이지 않는 사회적 예속으로부터 신체와 정신을 해방시키자는 프로파간다와 빠른 BPM을 결합한 음악은 자넷 잭슨의 <Rhythm Nation 1814> 이래 다양한 형태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수단 아카이브로 알려진 LA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브리트니 팍스 역시 이런 유형의 뮤지션이다. 독특한 희열을 주면서도 풍자처럼 여겨지는 댄스음악을 하고 자꾸 무언가를 해방시키자고 하는 제3 제4의 자넷 잭슨. 정확히는, 그런 뮤지션이었다. 그녀가 모든 것을 믹서기에 넣어버리기 전까지는.
브리트니의 부모님이 일리노이와 미시간 출신이기에 그녀는 하우스와 테크노의 발상지인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에서 새 앨범 <THE BPM>을 녹음했다. 투박한 트랩 비트와 시원스러운 하우스 리듬이 그녀의 숙련된 바이올린 연주 및 야릇한 보컬과 함께 한 폭의 정경을 이룬다. 절정을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가다가 바이올린 섹션과 브레이크 비트로 변주를 주는 오프너 Dead가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A Bug's Life-The Nature of Power-My Type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들으면 이 앨범이 클럽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A Bug's Life에서 전자 피아노와 잘게 나뉜 보컬 샘플을 활용하는 테크닉은 똑같이 클럽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마커스 브라운(NBT)의 음악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마커스의 보컬이 선배 알앤비 뮤지션들과 큰 차이가 없었던 반면, 브리트니의 보컬에서는 도발적인 사이버펑크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르카와 율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그 기운이. A Computer Love는 사운드와 서사 면에서 당장 율의 앨범에 수록된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곡으로서, 떠들썩한 브레이크 비트가 튜닝된 브리트니의 래핑과 대비되는 방식이 이 앨범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듯하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THE BPM>의 문제는 러닝타임이 길다거나, 밸런스가 미묘하기 맞지 않는다거나, 어떤 곡이 꼭 과속방지턱처럼 느껴진다거나 따위의 것이 아니다. 이 앨범에는 '댄스음악'과 '사이버펑크'라는 두 가지 층위가 존재하는데 바로 여기서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둘을 조화시키는 것은 상상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그래봤자 아르카와 율의 아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THE BPM>이 아류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별개의 두 앨범을 별다른 의도 없이 하나로 합친 듯한 인상을 준다. 밀도가 높고 축축한 자정의 클럽을 활보하는 장면이 있고 미래 도시의 레플리칸트를 관찰하는 장면이 있는데, 두 신 사이에 전혀 접점이 없는 느낌이랄까. 여기에는 앰비언트도 없고 그 흔한 인터루드도 없다. 켈렐라의 <Raven>이 특유의 구성미를 통해 스스로 비전을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THE BPM>은 지나치게 유쾌하거나 과장된 탓에 청자를 조금 기진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리감과 오버액션이야말로 이 앨범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걸출한 댄스음악과 그에 못지않은 사이버펑크를 만들었는데, 두 개념을 접목시키는 것이 보기보다 까다롭다면 그것이 조화롭든 그렇지 않든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물론 오버액션은 양날의 검이다. 그런데 그 양날의 검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토마스 방갈테르는 말한다. 세상 모두가 열광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면, 소수의 마니아들이 수백 번씩 재생하는 음악을 먼저 만들라고.
<THE BPM>은 청각화된 사이버네틱 아트이다. 클럽음악의 의미심장한 서브텍스트 중 하나는 '전자'가 물리 공간을 가로지름으로써, 즉 프로그래밍된 입력값이 우리의 움츠러든 본능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브리트니는 이제 황폐화된 디트로이트의 다운타운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 테크노의 비트 엔지니어링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댄스음악의 오래된 신념이 <THE BPM>의 심부에도 자리하고 있다. 전자음과 펄스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이 초월에 가까운 경험을 가능케 한다. 유튜브 미니 다큐멘터리에서 브리트니는 디지털 시대에 관한 흥미로운 관점 하나를 제시한다. 이미 우리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디지털 기술을 통해 스스로를ㅡ비록 그것이 인스타그램 자아일지라도ㅡ증강하고 있으며, 현실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믿든 간에 스마트폰을 쥐고 나면 각종 코어(-core)와 디스토피아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내성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브리트니가 하드코어 비트 광 가제트 걸로 거듭난 것처럼. 그녀는 댄스, 사이버펑크, 가제트 걸 같은 소재들이 하드 드라이브에서 긴 시간 겨울잠을 자던 아이디어였다고 말한다. 브리트니가 The Bpm에서 "The Bpm is the power."라고 반복해서 노래할 때, 이는 마치 자기실현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승인해 주는 시스템에 내리는 단호한 명령처럼 느껴진다.
브리트니는 바이올린 중심의 알앤비 앨범을 하나 더 제작하여 현재의 팬덤을 적당히 달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협력자, 그리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영역으로의 모험을 선택했다. 이것은 위대한 예술가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들은 어렵사리 쟁취한 성공으로 얻은 칩을 검증되지 않은 비전에 건다. 바이올린 연주자, 프로듀서, 가수로서 브리트니의 기술은 항상 향상해 왔다. <THE BPM>은 그녀가 개념적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실행력을 겸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THE BPM>이 한 뮤지션의 한 앨범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의 일부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EUSEXUA>, <Through the Wall>, <I Love My Computer> 같은 작품들이 연이어 예증하는 바, 이제 댄스는 진지함을 넘어서 최고의 장르 중 하나가 됐다. FKA twigs, 로셸 조던, 니나지라치, 그리고 수단 아카이브 등 이 재간둥이들이 케케묵은 장르에 자신의 비전을 아낌없이 투사해 준 덕분일 것이다. 이것이 흐름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의의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 춤은 여전히 중요하다. 중요하다고 브리트니는 말한다. 그 중요성이 아니라, 그 말이,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이의 말이 내게 위안을 준다.
---
갑자기 겨울이 왔네요.
감기 조심하시길!




너무 즐거운 앨범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