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 A Nice Life - Deathconsciousness
"What point is there in pushing on when all you push against is a brick wall?"
Have a Nice Life - Who Would Leave Their Son Out in the Sun? 中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더 이상 당신의 곁에 있지 못한다는 걸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하실 거 같으신가요? 눈물을 쏟아 내고, 우울증이 올지도, 신체적으로 아파올지도, 말로 설명 못할 감정들에 파묻힐지도 모릅니다. 상상할 수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수준의 고통이 몰려오겠죠. 이는 당연한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모든 것이 경험과 추억으로 변한다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일 테니깐요. 당연한 얘기지만 저희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정말 높게 평가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중요시하며, 기록하고, 두려워합니다. 저는 이에 대하여 당연하다고 느낌과 동시에 이질감이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왜 죽음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할까요? 알던 사람과 더 이상 얘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님 그냥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저는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저도 누군가의 죽음에 쉽게 우울해지고 단순히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슬퍼하니깐요. 제가 질문하고 대답할 수 없었던 건 '왜?'였습니다. 어쩌면 죽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요. 전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 의문을 안고 살아갔습니다.
제가 Have A Nice Life를 처음 접한 건 한 커뮤니티에서였습니다. 당시 앨범의 가사 해석에 맛이 들린 저는 가사를 해석할 앨범을 추천받고 있었고 그때 밴드와 같은 닉네임을 가진 유저의 Have A Nice Life - The Unnatural World라는 앨범을 해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저는 들어보고 맘에 들면 해석을 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공항에서 시간이 남아돌던 저였기 때문에 앨범을 끝내는 건 금방이었고 저는 꽤나 만족스러운 경험에 앨범의 가사 해석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앨범을 번역하며 그 앨범이 죽음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저는 '죽은 자'로서 '죽음'을 풀어나가는 해당 앨범을 재밌게 생각했고 Have A Nice Life라는 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아마 이 앨범이 대표작이자 최고작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알듯이 이 예상은 한 매거진으로부터 시작하여 산산조각 났습니다. Deathconsciousness, 죽음을 의식하며 죽음에 관한 질문을 하는 앨범. 해당 모 매거진은 이 앨범을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앨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Have A Nice Life에게 좋은 인식이 있던 제 관심을 잡아내기 완벽한 훅이었죠. 매거진은 Deathconsciousness의 전반적인 이야기, Have A Nice Life가 전하려는 메시지, 그리고 그들의 북클릿 속 안티오쿠스의 철학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제 마음속, 제 깊은 어딘가에 조용히 묻어뒀던 질문, 그 철학을 다시 부활시키는 기분이었습니다. 읽고 난 뒤 얼어버린 있던 제가 Deathconsciousness를 틀기까지는 한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앨범이 제가 예전에 묻고 답하지 못했던 하나의 질문을, 그 뒤로 제 철학을 억압하던 하나의 족쇄를 풀어줄 수 있을 거라 믿었죠. 그 결과는 '제 예상이 이번엔 빗나가지 않았다'였습니다.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은 13 트랙, 84분, 더블 앨범 구성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자주 Deathconsciousness에 관한 글을 보면 단순 '허무주의 앨범'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Deathconsciousness는 절대로 단순 허무주의 앨범은 아닙니다. Deathconsciousness는 허무주의, 유물론, 정부 비판 등 정말 여러 철학과 사회의 부분들을 '죽음'이라는 키워드 하나에 연결해 묶습니다. 그 안에서의 스토리와 설계는 정말 탄탄하죠. 앨범은 시작부터 8분이라는 긴 곡으로 시작합니다. 길지만 절대로 아깝지는 않은 시작이죠. 8분 내내 반복되는 단순한 기타에 점점 쌓여가는 사운드들은 단순하지만 어둡고 우울하며 불안한 곡입니다. 단순한 몽환적인 멜로디와 악기 사용이지만 그로부터 나오는 사운드는 청자를 품 속에 안아주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해 주죠 하지만 그 품은 절대로 따뜻하지 않으며 포근하지도 않습니다, 차갑고, 소름 돋으며, 앞이 두려워지죠. 하지만 첫 트랙은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제대로 된 곡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고 실제로 전하는 메시지 또한 크지 않습니다. 인트로 트랙은 그저 앞으로 Deathconsciousness를 마주할 청자를 향한 배려이자 준비할 시간을 주는 동시에 청자를 향한 하나의 '예열 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8분의 행군을 끝낸 청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유명한 Bloodhail입니다. Bloodhail은 'Hunter', 사냥꾼이라는 화자의 시점에서 그의 허무주의를 얘기하며 시작합니다. 사냥꾼은 죽음과 파멸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이 절대적인 운명으로 인해 허무주의에게 잡아먹히는 것만 같은 가사를 뱉습니다. 죽음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허망감을 나타내는 듯하게 들리죠, 하지만 곡이 포스트 코러스로 넘어가며 이야기는 180도 뒤집어집니다. 방금까지 모든 걸 포기한 것만 같던 사냥꾼은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며 인간의 반란을 준비합니다. 그는 인간의 팔과 다리, 그들의 신체로 계단을 만들어 하늘 위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하죠. 잔혹하며 당황스러운 이 이야기 뒤에서 사냥꾼은 그의 화살촉으로 천국에 있는 모두를 살해합니다, 그곳의 영혼들, 천사들, 심지어는 그들을 창조한 신마저도 사냥꾼은 살해해 버립니다. Deathconsciousness는 종교적인 내용과 트랙들 특히 기독교의 신앙을 토대로 만든 곡들이 많지만 조금만 봐도 그 내용은 꽤나 성스럽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필자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이 전개가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이는 Deathconsciousness라는 앨범과 철학의 시작을 알리기엔 완벽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얘기해 보도록 하죠.
Bloodhail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앨범의 4번 트랙인 Hunter를 뜯어봐야 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역시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죠. 정확히는 사냥꾼을 마주한 신의 이야기입니다. 사냥꾼에게 공격을 당한 후의 신의 이야기죠. 천국에서 떨어진 신은 화살이 꽂힌 채 숲 속에서 고독히 죽어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신은 인간의 잔혹성과 탐욕이 그를 죽이고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파괴하고 있다고 하죠. 그럼에도 신은 마지막까지 인간을 챙기고 사냥꾼에게 자신의 몸을 희생해 가며 베풀어줍니다. 그의 피부로 갑옷을 만들고 그의 살과 뼈을 섭취하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가라고 하죠. 북클릿에서의 이야기까지 연결하면 자신이 창조한 삶 아래에서 같이 태어난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개념에 자기 자신마저 잡아먹히고 말아 버립니다. 그런 신의 시신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고 이 모든 일의 주동자인 사냥꾼은 폭력과 살상을 전파하며 새로운 신의 위치로 군림하고 숭배받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창조해 준 '신'을 살해한 사냥꾼을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죠. 단 두 트랙과 한 가지의 이야기로 Have A Nice Life는 청자에게 많은 양의 철학을 주입시킵니다.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잔인함과 폭력성, 그 뒤에 마저도 배은망덕하며 오만하게 남는 인간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모든 존재 위에 있다고 치부되던 신마저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개념. 이런 죽음을 Have A Nice Life는 그저 삶의 일부이자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렇게 중요시할 필요 없다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죽음을 두려워하고 부정하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죠. 실제로 Deathconsciousness의 5번째 트랙 Telephony에서의 화자는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을 앗아간 '시간'이라는 개념을 저주하고 증오하며 조종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들어냅니다. 동시에 그런 화자도 그런 시간을 두려워하죠.
Deathconsciousness는 삶을 "그저 사지와 오장육부의 산더미 안에서 묻혀 있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그 산 안에서 풀어달라, 살려 달라, 숨 쉬게 해 달라, 서 있게 해 달라라고 간절히 빌며 울어도 아무 대답이 오지 않는 것이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어차피 밀지 못하는 벽을 미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냐라고 되묻기도 하죠. 이가 이해되는 것이 Deathconsciousness에서의 우울과 절망은 단순한 이별 혹은 실패가 아닌 인간의 고립과 궁지에 몰린 그 심정으로부터 얘기합니다. 사랑을 해도 외롭고 인생에 도저히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이런 점에서 Deathconsciousness는 다른 emo 앨범들과 차별점을 둡니다. Deathconsciousness는 훨씬 더 철학적이고 복잡하며 외로운 삶의 고독을 풀어내죠. 11번 트랙 Deep, Deep과 12번 트랙 I Don't Love에서 청자는 화자가 신께 올리는 기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11번 트랙에선 예수님께 사랑이 어째서 이렇게 외로운 것이며 어째서 이렇게 비어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지 자신의 고통을 울어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삶이란 답이 오지 않는 법. 그런 밑바닥까지 보이는 기도에도 아무 대답도 아무 계시도 그 무엇도 내려오지 않습니다. 완전한 고독에 생기는 고립이죠. 그다음 트랙 I Don't Love에서 화자는 신께 이런 삶을 살기 싫으며 더 이상 살기 싫다고 고백합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으며 사랑과 의지로 차 있어야 할 곳에 오직 공허함만이 차있다고 고백하죠. 화자는 이런 현실이 너무 지치고 역시나 이런 현실의 '의미'를 묻는 자기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죠. 더 이상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화자는 이렇게 비어있는 자신을 너무나도 죽이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런 잔인한 감옥은 마지막 트랙 Earthmover에서 극대화됩니다. Earthmover에서 Have A Nice Life는 골렘이라는 개체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포칼립스를 불러오며 걸어 다니는 재앙이 되고 쉬지 않고 삶과 자연을 파괴하며 그 외엔 그 어떤 목적도, 용도도 없는 골렘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며 영원히 고통받는 골렘을 보며 화자는 그런 골렘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죽음을 빌었을 거라 말하며 앨범은 Instrumental로 넘어가고 이야기의 끝을 맺습니다.
Deathconsciousness에서의 죽음은 잔인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삶이 그러했듯 Have A Nice Life는 죽음 또한 절대로 낙원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죠. Have A Nice Life는 죽음을 삶의 고통과 무의미를 끝내는 탈출구이자 도주로라고 정의합니다. 그 도주로를 타는 순간 더 이상의 고통에 잠기는 일은 없죠, 하지만 동시에 더 나아지는 일 또한 없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먹지도, 좋아하는 옷을 입지도, 이를 닦지도 못합니다. 아무 활동도, 아무 재미도, 아무 의미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Deathconsciousness는 그런 청자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건넵니다. 허무하고 의미가 없어 보이는 삶에서 도망친 죽음에서는 어떠한 의미가 보이는가? 그 동안 제가 본 Deathconsciousness의 해석들은 대부분 죽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주제를 중심으로 그것만 다루는 걸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Deathconsciousness는 그보다 훨씬 방대하고, 그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Deathconsciousness는 죽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앨범이 아닙니다. 애초에 Have A Nice Life는 본인들 조차 이 주제에 대하여 박을 수 있는 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청자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그들의 의미에 대하여 질문하는 앨범처럼 보였죠. 이 질문에 있어 대답을 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저도, 이 질문을 던진 Have A Nice Life도, 그 어떤 유명한 철학자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각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죠. 당신은 이 작고 사소하며 금방 잊힐 운명의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Favorite Track(s): Earthmover, Bloodhail, I Don't Love, Hunter
Least Favorite track(s): Waiting For Black Metal Records to Come in the Mail, Holy Fucking Shit: 40,000, The Future
Final Score: 10/10 (🦋)
아무래도 첫 리뷰인지라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글을 잘쓰는 편도 아니라서 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많이 부끄럽네요
좋은 하루 되십쇼 :) 다음엔 데컨 바이닐 인증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아 반응 개무서우니깐 올려놓고 도망 가야겠다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ㅋㅋ
뭐지 이 미친 고퀄의 리뷰글은 이런건 쓰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고퀄의 리뷰는 아니지만 이 리뷰는 쓰는데 이틀 정도 걸렸습니다!
죽는거 너무 무서워요
저도... ㅠㅠ 궁금 반 두려움 반
쑥쑥 잘 읽혔습니다! 다음에 들어볼때는 가사에 더 집중해서 들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확실히 데컨은 사운드도 황홀하지만 가사와 북클릿과 함께 읽었을때 정말 진가를 발휘하는거 같아요 ㅎㅎ
정말 압도 그자체인 앨범..
데컨만큼 이런 주제를 깊고 울리게 표현하는 앨범은 정말 없는거 같습니다.. 없어야 해요..
정말 좋아하는 앨범이라 리뷰가 술술 읽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
저는 가사를 유심히 안보는지라 이렇게 가사랑 부클릿 정보 위주로 하는 리뷰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충성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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