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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엘이 매거진 이벤트] 우리들이 지켜가는 무언의 약속들ㅡpromises

HaveㅣAㅣnICEㅣLife2025.05.04 15:19조회 수 706추천수 9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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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Points, Pharoah Sanders &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 Promises

 

나는 숨을 이어가고

음식을 먹어간다.

 

물을 마셔가고

몸뚱아리를 옮겨간다.

 

시간을 이어가고

약속을 지켜간다.

 


   숨을 하나 둘. 하나 둘. 그리고 그 숨을 위한 심장의 박동 하나 둘. 하나 둘. 몸에 삶이 흘러들어오고, 삶에 한발짝. 한발짝. 숨을 계속 이어가고, 박동을 이어가며, 흐름을 이어가는 거대한 약속의 배. 그 배를 타고서 삶을 살아간다. 멈춰설 수 없다. 그 약속을 계속 지키는 한 숨을 쉴 것이요. 계속 심장을 박동시킬 것이요. 근육을 늘이고 줄일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에 끝따윈 없으며, 삶이라는 미지에 여전히 떠다닐 뿐이다. 보라,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삶이 살아가는 모습을. 박동하며, 새로이 뛰어드는 모습을. 지치더라도 삶을 공급받아 여전히 시작되는 모습을. 섞이고 떨어지며 숨을 떨어대고 박동을 떨어대며 삶이 계속해서 약속을 지키고 우리를 이끄는 모습을. 난 삶을 산다. 그렇기에 언제나 뻗어나가고, 위를 잡아뗀다. 박동이 날 이끈다. 자잘자잘한 삶의 연속을 밟아 역설적이게도 높이 떠오른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악장이 끊긴 것 같아 마치 끝이라도 난 것 같을 때, 여전히 소리는 들려온다. 숨이 들어갔다가, 나오며 쉬이 내고, 박동은 여전히 침착하게 삶을 수유해주고 있다. 이 끝나지 않은 영속함은, 삶이다. 약속은 저멀리에 아직도 끈끈히 우리를 잡는다. 우리는 계속해서 노를 저어 나아갈 수 밖에. 삶은 아직도 힘차고, 뛸 수 있다. 박동은 그 삶을 위한 선물이며, 고귀한 삶은 그 굴곡 같은 시간의 바다에서 늘 그렇듯 부유한다. 그렇게 46분의 끝에, 81년의 끝에 도달한다. 거기서 숨의 쉬이 소리도, 심장의 박동 소리도 끝나지만 여전히 색소폰이 불어올 것이다. 약속은 시간 속에 있으며, 그 약속에 흐르는 것이 색소폰이다. 계속해서 불어올 것이며, 계속해서 지나갈 것이다. 시간은 영원으로 흐른다.

 

   정말로 그렇다. 이 앨범은 약속들에 관한 앨범이다. 태어날 때 부터 시작되었던 숨과 같은 전자음의 멜로디는 한 순간의 자연에 기대지 않기에 오히려 삶을 깊이 그려낸 추상화다. 그 계속되는 삶의 리듬이 뽑아내는 생생함은 반복되더라도 그때마다 달라지는 삶의 전경을 느끼게 해주는 듯 하다. 역설적이지만, 삶은 그런 법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몸부림 치는 색소폰은 인간의 꿈틀거림이다.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발을 떼는 삶의 약동이다. 달라지는 시간의 차이이며, 반복 속에 태연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잘나갔고, 움츠렸던 기억들이 떨리는 색소폰에 느껴진다. 이것이 삶이란 말인가. 그 꿈틀거림에서 파동같이 일어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우리들이 땀을 잡으며 볼 내 삶의 파도이자 외부의 것이다. 외부와 삶은 동시에 흘러가며, 흘러갈수록 짊어지는 게 많아지는 삶이라는 놈은 그 바깥의 파도에 크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외부의 현실과 맞부딪혀서 발생하는 조화가 진정 우리가 겪는 삶이며, 그것은 리듬도, 꿈틀거림도 아닌, 열심히 헤쳐나가는 시간의 항해다. 그렇게 이 앨범은 영적인 삶의 연속을 약속했다. 전자음과도 약속을 맺었으며, 색소폰과도 약속을 맺었고, 오케스트라와도 약속을 맺었다. 그 근본적 영혼을 인간들 다수의 영의 교집합에서 뽑아낸 단면이 그들이 말하는 약속들, promises다. 물론 이는 세계, 우주적 근본에 있는 진정한 무언가를 진정으로 꺼내었다고 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은 아무리 살아도 알 수 없으며, 세상 속에 살아가는 자로선 닿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허나 적어도 이 셋의 교집합적 삶의 약속들이라는 형태는 우리 삶에 꾸준히 연주된다. 우주 운명의 거대한 무언가가 아닌 81년 쯤 살다 죽을 우리들에게 이것은 이미 매우 가치있는 것 아니겠나.

 

   아마 이 글을 보고 이게 그 정도의 음반인가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미니멀리즘의 빈틈은 내가 연주했으며, 내 인생의 순간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셋의 조화와 내가 외부와 내부로서 섞여 나로서는 이 앨범을 마냥 외부로 치부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 이 앨범에 명반이라는 딱지를 뗄 생각은 없다. 오히려 새로 붙이기만 할 것이지 떼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나로선 이 앨범에 인생까지 붙일 생각은 없다. 인생과 같을 지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며 살고 싶기에, 그 소망을 담아 4.5를 주었다. 아직까지 20년 채 살지 못한 나기에 이런 판단을 내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아직 약속을 기대하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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