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노을 -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4.5 / 5)
굴뚝 속 피어나는 연기를 먹는 하늘의 떼 묻은 아름다운 모습.
당신들은 여름의 거리를 쏘다녔던 일명, 방구차를 아는가? 아마 어른들의 추억팔이 정도로만 들어봤을 것이다. 허나 내가 사는 곳은 지방 한구석인지라, 지금도 여름이 되면 한번쯤은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방구차에 대해 추억팔이를 할 때, 꼭 그 방구차를 쫓고는 했다고 말할 것이다. 눈이 맵고, 목이 맵고. 그러면서도 하얀색 연기로 둘러싼 광경. 그런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다고. 그리고 나 또한 어릴 때 그 방구차를 쫓았고, 고통스럽다가도 하얀 단 하나의 색깔로 나의 감각을 덧칠해놓은 그것이 참 좋았다. 물론 나는 자라나면서 더 이상, 쫓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연기가 날 감쌀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 덧칠한 하얀 연기가 현실을 덮지 못한다는 점이 제일 컸다. 방구차를 쫓아도, 내 현실은 너무나 선명했다. 이제는 커버렸음에도, 나는 현실을 똑바로 볼 눈도, 의지도 없었고, 또다시 연기를 쫓았다. 굴뚝연기를 말이다. 그렇기에 이 매캐한 연기가 좋은 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매캐한 연기가 따갑고, 숨조차 쉬지 못하지만, 현실의 모든 것을 날려보낸 나른함에 떠다닌다. 그것이 내가 욕망하는 세상, 현실 없는 온존이다. 거기에 회포를 놓듯 하나 하나 흘리는 생각들은 하얀 연기 속 머나먼 곳으로 날린다. 잘 보이지도 않을만큼. 흐릿해질 만큼. 그리고 하얀 연기는 더욱 자욱해진다. 현실을 빼내고 연기를 취한다. 아, 모든 게 괜찮을 것 같다. 아, 언젠가 해결될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정착한 굴뚝, 그 곳이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다.
음악은 간혹 모순적이다. 폭력적이지만 슬퍼보일 수도 있고, 시끄럽지만 명상적일 수도 있다. 이 앨범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슬픈 감정을 전할 때는 포크나 발라드 같은, 어쿠스틱하고 감성적인 장르를 택할 것이다. 허나 이 앨범 같은 경우, 정 반대로 간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기타, 강하게 때리는 드럼 같은 것은 대개 쎈 곡의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요소가 어떻게 연기가 되는가?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보컬에 그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컬은 한편으로는 되게 물먹은 튀김마냥 눅눅한 느낌이지만, 그 눅눅하고 침잠해있는 보컬이 그 쎈 요소들을 휘어잡는다. 그렇게 쎈 요소들이 내면의 감정의 맺힘을 푸는 힘이 된다. 우리의 마음을 고조시키고, 흐트러뜨린다. 이 앨범의 연주는 각각 악기만의 아름다움이 강조되지 않는다. 그나마 되는 것이라면 기타라 할 수 있겠다만, 파란노을이 연출하는 종합적 사운드스케이프에는 그런 것따위 없이, 그저 떡진 머리 같이 뭉쳐진다. 악기만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시끄러움이라는 인상만이 감각에 남는다. 그 시끄러움이라는 원초적 느낌이 우리의 사고를 해체하고, 진통제를 맞은 듯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순차적으로 사운드가 커지며, 맞이하는 절정은 해체된 사고 속에서 온전히 마음만이 남아 그에 호응해 목 나가며 소리치는 파란노을에 미쳐가는 것이다.
또한, 이 앨범의 가사적 측면은 그야말로 파편과 같다. 파란노을이 살아온 인생이 담겨있긴 하지만, 담겨있지 않다. 그냥 파란노을의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우울한 감정 찌끄레기가 뿌려져있을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의의가 있다면, 흐릿한 인상과 잘 맞아 떨어지는 직관적인 가사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파란노을이 이 앨범에서 ‘서사’ 라는 걸 전개했다면, 이렇게 감정적일 수 있었을지. 물론 내가 이렇게 말을 했지만서도, 그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제목부터가 ‘꿈의 다음 부분을 보는 것’인 만큼, 꿈에 대한 희망또한 묘하게 양면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물꼬만 틔워둔 희망은 하얀연기에 갇힌 이들을 이끌어내려는 조그마한 구멍 같기도 하다.
이 앨범은 엘이에 빠들이 많아서 그렇지,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다. 10곡 내내 비슷한 연주로 일관되게 이끌어가고, 사운드 질감또한 물먹은 듯 흐물흐물 하며, 보컬에 강하게 드러나는 아마추어틱함, 가사의 징징댐. 대충 불호인 사람들의 의견은 이것들로 뭉쳐질 것이다. 솔직히 난 이런 의견들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점은 단점이 될 수 있고,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듯, 오히려 불호쪽이 말한 단점이 위에서 말했던 장점으로 승화된 거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방식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에 실질적인 작품성이 있는가? 하면 그렇다 볼 수 없다. 이야기는 지들끼리 알아서 끌어가며, 독자를 방치시킨다. 더불어 결말에서의 급유턴은 그야말로, 말이 안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걸 차치하고서 에반게리온은 무엇을 얻었는가? 이야기 전체보다, 인간관계와 연출을 통해 그 정서를 확실히 취득했다. 이러한 것 처럼, 이 앨범또한 기술적으로나, 앨범의 작품성으로나, 진심 명반이라고 할 수준은 못된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이 하얀연기로서 사람들을 휘감을 때, 작품성은 그리 중요치 않게 된다.
물론 나는 이 앨범의 레퍼런스 그런 거 딱히 모른다. 어디선가 그런걸 본 적 있기는 하나, 인상만 남아있다. 그럼에도, 파란노을의 무언가는 느껴진다. 파란노을의 심리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나또한 알 수 있다. 이 앨범은 시끄럽지만, 명상적이다. 아티스트 개인적인 이야기가 드러나는 부분은 극히 적다. 그렇기에 중점적인 것은 청자와 이 앨범이 상호작용을 하여 어떤 것이 나오는가다. 그리고 이 감상평은 그런 상호작용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 상호작용에 대해 동의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당신의 상호작용을 펼쳐보아라. 이 앨범이 이상하게도 언급은 많은데 리뷰가 뒤지게 없다.
새벽에 좀 징징댔는데, 저 자신을 뛰어넘고자 썼습니다.
아침부터 끝까지 이 앨범만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는데 하루가 좀 찌뿌둥하네요
좋아하는 앨범이라 더 열심히 읽어보았네요
전 이 앨범에 명확한 서사가 있다고 생각해요 좌절과 패배만을 느껴온 (아마도 재수생시절) 파란노을은 이 앨범에서 끊임없이 세상을 비관해요 자기를 혐오하고요 그러면서도 추억에 잠기기도 하죠 추억 속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테니까요 이런 우울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기도 합니다 격변의 시대와 청춘반란이 그 예구요 근데 이 작은 희망조차도 우울에 잡아먹혀요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엑스트라 일대기에서 느낄 수 있죠 그러다가 치킨에서 죽음을 암시하고 ( 무언가의 마지막은~) 마지막 곡에서 결국 용기를 내 자살하게되고 비로소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진짜 너무나도 현실적이에요 너무 사실적이구요 이 서사에서 전 너무나도 큰 위로를 받아요
또 작품성은 중요하지않다라는 부분은 공감갑니다 이 앨범 전반에 아마추어리즘이 깔려있지만 파란노을의 감성이 아마추어리즘이 만들어낸 구멍 사이 사이로 들어가 보안해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공감이 가네요
별개로 전 이 앨범의 사운드 또한 훌륭하다 생각해요 슈게이즈는 원래 이리 강렬하지 않아요 파란노을처럼 심하게 감정적이지도 않고요 게다가 기타를 치지 피아노를 잘 사용하지 않아요 이런점에서 파란노을의 슈게이즈는 충분히 차별점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슈게이즈를 기반으로 하드코어한 드럼을 추가하고 피아노 멜로디를 통해 j rock적인 요소를 넣었거든요 사운드만 놓고봐도 충분히 뛰어나다거 생각합니다
더 할말이 많지만 마지막 문단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저도 저의 감상문에서 좀더 자세히 말해보겠습니다 너무나도 애정하는 앨범이라 오래 아껴둔 거 같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파란노을은 지금 세대의 소중한 소망, 표상의 온기 같은 느낌 입니다 고견 와닿았고 앞으로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정진하겠습니다
좋아하는 앨범이라 더 열심히 읽어보았네요
전 이 앨범에 명확한 서사가 있다고 생각해요 좌절과 패배만을 느껴온 (아마도 재수생시절) 파란노을은 이 앨범에서 끊임없이 세상을 비관해요 자기를 혐오하고요 그러면서도 추억에 잠기기도 하죠 추억 속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테니까요 이런 우울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기도 합니다 격변의 시대와 청춘반란이 그 예구요 근데 이 작은 희망조차도 우울에 잡아먹혀요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엑스트라 일대기에서 느낄 수 있죠 그러다가 치킨에서 죽음을 암시하고 ( 무언가의 마지막은~) 마지막 곡에서 결국 용기를 내 자살하게되고 비로소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진짜 너무나도 현실적이에요 너무 사실적이구요 이 서사에서 전 너무나도 큰 위로를 받아요
또 작품성은 중요하지않다라는 부분은 공감갑니다 이 앨범 전반에 아마추어리즘이 깔려있지만 파란노을의 감성이 아마추어리즘이 만들어낸 구멍 사이 사이로 들어가 보안해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공감이 가네요
별개로 전 이 앨범의 사운드 또한 훌륭하다 생각해요 슈게이즈는 원래 이리 강렬하지 않아요 파란노을처럼 심하게 감정적이지도 않고요 게다가 기타를 치지 피아노를 잘 사용하지 않아요 이런점에서 파란노을의 슈게이즈는 충분히 차별점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슈게이즈를 기반으로 하드코어한 드럼을 추가하고 피아노 멜로디를 통해 j rock적인 요소를 넣었거든요 사운드만 놓고봐도 충분히 뛰어나다거 생각합니다
더 할말이 많지만 마지막 문단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저도 저의 감상문에서 좀더 자세히 말해보겠습니다 너무나도 애정하는 앨범이라 오래 아껴둔 거 같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가사를 주의깊게 보지는 않은지라 그런 해석은 생각 못했네요
글고 사운드적인 부분은 일단 제가 아는 게 적은 지라 새롭게 배우고 갑니다
감상문 기다릴게요
좋은 리뷰에 좋은 댓글
오랜만에 리뷰 보고 감탄한 적은 처음이네요
파노 내용 자체보다도 서론의 방구차 얘기의 표현력에 진짜 감탄했어요. 서사의 유무는 관점 별로 그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저도오히려 우울의 찌끄레기와 함께 꿈의 모호성을 담아냈단게 인상 깊었습니다.
솔직히 방구차 이야기를 그대로 끌고가 그저 들었던 느낌으로 전체를 채우고 싶었는데,
저는 이 앨범에서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곤 서론의 저게 다더라구요
그래서 하루내내 앨범을 돌려들으면서 최대한 생각들을 뽑아내 나열했습니다
ㅋㅋㅋ그래서인지 저도 서론에서 확 몰입이 되더라구요
뒷내용도 좋았지만.. 좋은글 감사해용
앨범커버의 하얀 연기를 본인만의 관점으로 해석하신 게 흥미롭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히히 개추
히히 감사
엘이 메인 배너 ㅊㅊ
오 진짜네
내가 저기 오르는 날이 오다니
와 첫문단 너무 좋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요즘 감상평을 남겨볼까 고민중인데 음향적이거나 기술적인것보다도 생각보다 개인적인 순수한 감상이 더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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