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조리극, 예술영화 등등의 작품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저보다 명확하게 압축한 문장은 없다.
나는 때때로 그 난해함을 대중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 의견들을 본다. 그 말들은 대중을 제대로 정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정확하고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기를 바라며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틀렸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영화평론가도 대중이고 일년에 영화 한 편 보는 사람들도 대중이다. 이 수많은 대중들의 취향과 통찰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
그리고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대로 작품을 쓴다는 것은 희망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컨데 예술은 대화다.
우리는 좋은 청자가 되는 법을 배우려기 보다는 화자를 비판할 때가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의 내용에 맞는 형식은 다르다. 같은 고백 장면들이라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해리의 대사와 문라이트의 샤이론의 대사가 얼마나 다른가. 두 영화의 간극만큼이나 그 두 장면은 배치된다.
하지만 둘 다 그들의 방식으로 진실되다.
그러니까 꼭 이렇게 말해야만 전달할 수 있는 진실이 있다.
그러니까 나쁜 청자는 아마 미리 속단하고 네가 하는 얘기 무슨 말인지 다 알아 라는 식의 대응을 하는 사람이다.
이거야말로 폭력이 아닐까.
내가 하고픈 말은 결국 하나로 압축된다.
어떤 예술가들은 부끄러워하거나 달변이거나 거의 침묵이거나 난해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진실된 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지우고 다른 나가 되어야하며 무엇보다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글 너무 좋은데요
잘 읽었음
이런 글 메인에 좀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어떤 방송에서 대중들이 몇몇 작품들에 대해 어렵다고 반응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본인 포함해서 주변 작가들만 보더라도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보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 말을 꽤 오랫동안 믿어왔지만 간혹가다 보면 정말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기를 바라며 작품을 발표하는 분들도 사실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어렵냐, 쉽냐는 예술에 대한 진정한 논의가 아님.
그저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이 있을 뿐.
어렵지만 나쁜 예술도 있고, 쉽지만 좋은 예술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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