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UrFSMOn0pfo
하우스만큼이나 넓디 넓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있을까? 초창기 소수자들이 향유하던 블랙 뮤직으로써의 정체성이 강한 개러지-시카고-디트로이트 하우스, 2000년대 세계를 강타했던 다프트 펑크의 프렌치 하우스, 2010년대 초중반 인싸들이 가지고 놀았던 페스티벌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와 일렉트로 하우스(그리고 그들이 뺏어간 덥스텝), 그리고 현재 테크노를 집어삼킨 테크 하우스와 차트 치트키인 아프로비츠 쪽 음악까지. 양지에서 활약했던 하우스 목록만 훑어봐도 범람하는 장르의 가짓수가 예사롭지 않다. 아마 지금 좀 올라오는 드럼 앤 베이스가 날고 기어도 하우스 씬의 아성을 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메인스트림 진출에 성공한 하위 장르들의 뒤편에서는 여전히 자기만의 길을 걷는 아티스트들과 그들이 지켜온 음악들이 있었다. 아웃사이더 하우스(Outsider House)는 하우스 씬 어딘가에서 생산되던 나노 장르의 하나다. 요약하자면 딥 하우스를 기반으로 로우-파이한 프로덕션을 내세우는 음악으로, 하우스 버전 슬래커 록으로 봐도 무방하지 싶다. 이런 장르들이 으레 그렇듯 갖가지 기존 장르들을 가져다가 재해석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그 밑에 로파이-하우스(Lo-Fi House)라는 나노 장르가 또 있고 이번에 소개할 АЛ-90(이하 AL-90)의 КОД-915913(이하 Code-915913)도 이쪽을 겸하지만, 내 깜냥으로는 두 장르의 차이를 납득가게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RYM 장르 설명을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Lo-Fi House - Music genre - Rate Your Music
Outsider House - Music genre - Rate Your Music
러시아 출신의 뮤지션 AL-90의 <Code-915913>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웃사이더 하우스를 듣는 이유'다. 로파이 사운드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우울감을 표현하기가 너무나도 좋다는 것이다. 하우스 음악을 들으며 우울함을 즐긴다는 괴리가 로파이 사운드를 통해 좁혀지는 유니크한 경험은 다른 어떤 앨범을 가져와도 이 앨범이 근소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런 우중충한 무드를 탐닉하는 자들의 영원한 친구, 앰비언트가 스산하게 앨범 전체를 감싼다. 인트로 격의 트랙 <Efimernaya nenavist'>에서 <Zavualirovanniy Signal>으로 넘어가며 뭉개진 킥과 앰비언트 노이즈가 음울하게 전개될 때, 단순한 보이스 샘플이 메아리처럼 반복될 때 보편적인 클럽 음악으로써의 하우스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의 포문이 열린다. 춤을 추기 위한 리듬과 그루브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아티스트가 표현하고자 하는 미학에 편승하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개인적인 전반부의 하이라이트 <Melancholia staroy pornozvezdy>에서는 무드가 더욱 심화되어 킥이 보다 강력해지고(여전히 뭉툭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쿵치타치'의 형태가 갖은 노이즈와 함께 청자를 맞이한다. 기본적으로 탁월한 AL-90의 멜로디 감각은 미약하게나마 격정적인 감성으로 해당 트랙을 이전의 트랙들과 차별화하는데 성공하며 이는 이후의 트랙들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앨범의 분위기처럼 각 트랙의 제목은 한층 더 아스트랄한 감성을 제공한다. 상술한 <Zavualirovanniy Signal> 과 <Melancholia staroy pornozvezdy>의 원문은 각각 <베일에 쌓인 종소리>와 <늙은 포르노 배우의 우울함>이다. 명확한 가사를 노래하는 보컬이 없는 순수한 전자음악은 청자와의 거리가 대체로 멀게 느껴지지만 곡 감상에 있어 이러한 제목들로 힌트를 주기도 한다. 6번째 트랙 <과격한 춤>은 하우스의 본질이 댄스 뮤직임을 의식한 것일까? 9번 트랙에서 남의 노래를 완전히 파괴하면서? 해당 트랙뿐 아니라 그 이후의 트랙 모두 우울하고, 침울하고, 고독하다. Code-915913은 외로운 앨범이다. <Pandora 9.0>의 물먹은 퓨처 개러지의 편린도, <913>의 스트링 사운드 소스도, <Ona hochet eshe>의 통샘플링도 놀랍도록 일관적이다. 벨라루스 밴드 Molchat Doma의 곡 <Тоска>의 제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러시아 특유의 감성인 Тоска가 하우스에 녹아든 것일까? <Arevuar>로 끝을 맺으며 나와 이 앨범을 들은 다른 누군가, 혹은 듣게 될 누군가가 느낀 그 감정은 아웃사이더 하우스를 듣는 이유이자 이 앨범이 위대한 이유다.
리뷰첨씀
거짓말하지마요 이게 어케 첨쓰는거임
리뷰도 잘 쓰시네 그럴 것 같긴 했다만
장르 설명이 조금 어렵지만 후에 앰비언트 관련 비유가 맘에 드네요
정말 우연히도(?) 오늘 이 앨범을 처음 접했는데 뭔가 로파이한 하우스라는걸 처음 들어봐서 그런지 굉장히 신선했어요. 하우스의 그것을 답습하면서도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 엠비언트함도 느껴지는 듯 하고.. 아무튼 한 번 더 들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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