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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이 케이팝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요인에는 팀워크만큼이나 멤버들 각각의 개인플레이의 힘도 컸다. 이 중 그룹의 시작점이었던 지드래곤과 태양의 활약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상징적이었다. 지드래곤의 솔로 활동이 송라이팅에 기반한 창의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보다 앞섰던 태양의 활동은 훨씬 퍼포먼스의 측면이 부각되었다. 동 세대 아이돌들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의 댄스 실력과 흑인음악에 이해가 두터운 준수한 보컬은 그룹의 이름값이 선사한 기반을 제하고 보아도 상당히 빼어난 것이었고, 이는 태양의 솔로 활동이 대중적 흥행을 넘어 평단의 지지까지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그의 첫 번째 정규인 <SOLAR>는 한창 무르익었던 태양의 역량은 물론, 알앤비와 일렉트로니카, 내지는 힙합과의 통섭이 이미 완성 단계에 다다랐던 당대의 유행을 누구보다 적극 수용한 YG의 프로듀싱까지 두루 맞물리며 케이팝은 물론 알앤비의 관점에서도 뛰어난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한창 그 역량이 무르익었던 시점의 YG 인하우스 프로듀서들 - 테디, 쿠시, 초이스37 - 의 실력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SOLAR>가 지닌 또 하나의 미덕이다. "Break Down", "Where U At", "MOVE" 등의 트랙에서 요란한 신시사이저, 장엄한 브라스와 808베이스에 힘입어 능숙하게 남부 힙합의 요소를 가져오는 모습은 태양 특유의 남성적인 퍼포먼스에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었다. 이것을 조금 더 올드스쿨한 방향으로 튼다면 "Superstar"의 장쾌함으로 이어지고, 투 스텝 리듬을 곁들여 서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앨범의 또 다른 리드 싱글인 "Wedding Dress"로 발전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빅뱅에서 이미 자주 시도된 바 있었던 하우스적인 접근도 "Just A Feeling", "니가 잠든 후에"에서 보다 폭발적인 형태로 구현되었다. 이러한 파괴력 있는 넘버들에서도 미처 숨기기 어려웠던 태양의 유려한 보컬은 전군의 단정한 건반 운용에 힘입어 달콤한 부분까지 아울러 노린다. 전자음과 피아노 솔로가 교차하며 마이애미 베이스의 영역에서 소탈한 면모를 내세운 "I Need A Girl"을 앨범의 타이틀로서 내세운 것은 전작 <Hot>에서의 터프한 면모 이외에도 섬세함까지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으리라. "You're My"에서 로즈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온전하게 따스함을 발산해 내는 부분은 보컬리스트로서의 태양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슬로우잼 넘버인 "Take It Slow"에 다다르면 섹슈얼한 가사부터 레이 백 된 리듬에 이르기까지 태양이 지닌 알앤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짐작할 수 있다. 뛰어난 퍼포머를 완성시키는 프로듀싱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최소한으로 편성된 래퍼 게스트들은 태양의 매끄러운 보컬을 원활히 받아줄, 그루브 있는 랩에 특화된 이들로 엄선되었다. 제일 이색적인 이름이 있다면 당시만 해도 오버클래스의 돌격대장 포지션이었던 스윙스일 것 같다. 플레이보이를 연상시키는 "니가 잠든 후에"의 파격적인 가사에 있어 스윙스 특유의 거만하고 능글맞은 랩은 곡의 전자적이고 청량감 있는 프로덕션 위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YG 내에서 차출된 두 래퍼들도 같은 결을 공유한다. 앨범의 메인 프로듀서이기도 한 테디가 타격감 있는 벌스로 뚜렷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가 하면, 태양의 오랜 동료이자 지음인 지드래곤이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부드러운 벌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객원 래퍼 편성이 효율적으로 편성된 만큼,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도 태양의 탁월한 기량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미려한 음색과 절묘한 그루브는 강인함과 섬세함을 고루 넘나들며, 당시에도 이미 트렌드의 첨단이었던 오토튠의 활용도 깔끔하게 맞아떨어진다. 상술된 보컬에서의 표현력은 물론, 이를 극대화하는 탄력 있는 무대 퍼포먼스는 태양을 동 세대 한국 최고의 무대 퍼포머의 위치로 격상시킨다.
<SOLAR>에서 정점에 다다른 태양의 역량은 이후 안정적으로 확장을 거듭했다. <RISE>, <WHITE NIGHT>에서 더욱 본격화된 전자적인 시도에서도 그 소화력이 남달랐고, 제일 최근 작인 <Down to Earth>에 다다라서는 조금 더 아날로그적인 부분에서의 강점이 부각되었다. 흑인 음악의 카테고리 내에서의 이러한 확장의 단초는 결국 <SOLAR>의 다채로움이었을 것이다. 하우스, 서던 힙합, 슬로우 잼, 팝 등 다양한 영역을 알앤비의 영역 안에서 버무려 당대 한국 메인 스트림 유행의 최전선으로 만든 것은 YG 사단의 힘도 물론 간과할 수는 없겠으나, 그 다채로움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퍼포밍한 태양의 힘이 무엇보다 컸으리라. 여기에, 언제나 인간적인 면모까지 아울러 드러낼 줄 알았던 빅뱅의 경향은 여기에서도 이상형을 꿈꾸는 소탈함, 혹은 바람둥이의 노골적인 욕망과 같은 과감함까지 이어지며 여타의 이상화된 아이돌을 넘어서는 아티스틱함까지 아울러 확보하게 되었다. 플레이어의 기량, 그리고 그 역량이 물이 올랐던 기획사의 프로듀싱, 그리고 과감한 소프트웨어가 맞물려진 케이팝 솔로 프로젝트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Best Track: Superstar, 니가 잠든 후에 (Feat. Swings), Take It 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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