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난해한 앨범이었다. 파란노을이 의도한 사운드가 무엇이었는지 잘 와닿지 않았던 탓이다.
2집에서 보여준 것처럼, 파란노을의 노이즈에 대한 철학이 여타 슈게이즈 밴드들이 지금껏 추구해온 그것과 크게 괴리되는 것 같지는 않다. 노이즈가 가져다주는 파괴적인 쾌감과, 달콤하고 몽환적인 멜로디가 가져다주는 서정성이라는 두 상반된 속성이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냈을 때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황홀감, 이것이 내가 생각했을 때 슈게이즈 장르의 본질이고 파란노을이 보여준 음악적 행보도 이와 크게 괴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제멋대로인 견해였다.
2집은 이 철학을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형태로 보여준 앨범이었다. 어떠한 기교도 없이, 단순히 뉴에이지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아름다운 피아노 반주 위에, 약간은 부족하고 서툴지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 한해서는 그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낸 서정적인 보컬과 멜로디, 마지막으로 곡 전반적으로 자욱한 먹구름같이 깔려있는 노이즈 사운드의 조화는 어찌보면 슈게이징의 정수를 정직하게 담아낸 결과물이었고, 덕분에 그의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대중음악사의 한 예외적인 사건, 즉 단순히 '이상치'로 치부해버리고 값을 무시해버리려는 여론이 꽤나 존재했을 정도로 다소 특이하고 기이하다고 여겨지던 사건의 진상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4집에서는,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 조화에 다소 소홀했다는 것이, 계속 끈질긴 그림자처럼 달라붙는 감상이다. 노이즈에 잠식당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동시에 노이즈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한번 시적으로 뽐내어 말해보고 싶었던 것이고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이른바 노이즈와 멜로디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노이즈 뒤에 아주 희끄무레하게, 어렴풋이 여러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노이즈가 잠식해버린 탓에 전혀 들리지 않고, 따라서 오직 방종스러운 노이즈 속에 홀로 남겨진 청취자인 '나'는 이 혼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나의 감상이다. 그렇다고 그가 갑자기 메쯔보우같은 하쉬노이즈 아티스트로 전향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탐탁지 않다. 뭐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여러 아쉬운 점들이 많이 존재하는 앨범이었다. 6번째 트랙 Evoke Me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락에서 볼 수 있는 즉흥적인 전개를 시도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전환이 다소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졌고, 뭐 또 몇 개 더 있을 것 같긴 한데 찾기 귀찮네 역시..
결론적으로는 그가 예술가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기도 했으나, 아직은 그 성장의 갈피를 확실히 잡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멜로디는 역시 파란노을답게 여전히 훌륭하다. 하지만 그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노이즈에 전부 묻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드는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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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지나가듯이 적어봤던 생각인데, 생각보다 이런 여론은 잘 없는 것 같아서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 한반 궁금해서 올려봤습니다.
정리하자면, 파란노을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운드가 너무 많이 뭉개져있다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다른 악기들의 연주까지 전부 잠식시켜버릴 정도로요. 그가 구상했던 사운드를 제대로 들을 수 없어서 답답했던 마음이 컸던 앨범같습니다.
동감
사실 이번 앨범을 막 열심히 제대로 들었던 건 아니라서 그 부분은 뭐라 할 말이 없지만
2집에 대한 말씀 무척 공감 갑니다
사운드가 많이 뭉개져 있다는 것도 공감합니다만 멜로디는 스카이 헌드레드 또한 정말 완벽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문단에서 언급드렸듯, 저도 멜로디가 무척이나 훌륭한 앨범이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2집보다 더욱. 다만 그 멜로디의 장점이 노이즈에 묻혀버린 채 드러나지 않아서 아쉬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앨범도 되게 좋게 들었는데
이 글에도 공감이 가네요
일단 드럼이 너무 요란하고 보컬 녹음 상태도 조금 이상해서 들을 때 많이 거슬리긴 하더라고요
차라리 기타가 요란한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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