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2024.09.06
Progressive House, Melodic House
런던 출신의 DJ 프레드 어게인(Fred again..)의 행적과 그가 이뤄낸 업적들은 실로 놀랍다. 그는 FKA twigs, Charli XCX, Skrillex, Eminem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음반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며, 그래미 시상식에서 당당히 2개의 트로피를 쟁취해 내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심지어는 지난 8월 개최된 Reading & Leeds 페스티벌의 메인 헤드라이너 자리에까지 오르며 대중들과 리스너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각인시켰다. 이는 그의 영리한 전략과 운이 따라주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결국 가장 큰 원인이 되어주었던 것은 그의 재능이었다. 프레드는 대중들의 시선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또 사운드스케이프 속으로 행복하게 빠져들 수 있는 댄스 팝 트랙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저에게는 엄청난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하지만 제 새 앨범의 노래들에서 저는 정말 별거 아니지만, 또 소중한 그런 순간들을 다루었습니다. 몇몇 트랙들은 제 인생 최고로 즐겁고 짜릿했던 날들을 다루었고요, 또 다른 몇 개의 트랙들에선 그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어요."
앨범 공개 이후, 인스타그램에서. (출처: @fredagainagainagainagainagain)
프레드의 4번째 스튜디오 앨범, <ten days>에서 그는 또 한 번 자신의 강점을 살린 채 돌아왔다.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준 <After Life> 시리즈의 3부작이 그러하였듯이 <ten days> 역시 감정적이고 성찰적인 색채를 양껏 띄는 아름다운 트랙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본작이 가지는 차별점은 바로 프레드 특유의 감정 표현이 더욱 내밀해졌다는 것에 있다. <Actual Life> 시리즈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상황들과 감정들을 다루며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으나, 그 중심에는 외부적인 요인들과 그로 인한 감정의 요동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는가. 반면 <ten days>에서 프레드는 열흘 동안 겪은 개인적인 순간들을 구체적이고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그가 지난 1년간 겪은 눈부신 성공과는 대비되게, 그는 자신이 겪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감정들을 꼬깃꼬깃 담아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한 층 더 부각시킨 것이다.
앨범 발매 이후 그가 인스타그램에 남긴 메시지처럼 <ten days>는 총 2가지의 파트로 나누어진 채 전개된다. 그중 첫 번째 파트는 그가 느낀 기쁨을 생생하고도 따스하게 전달하며 시작되는데, 이의 대표적인 예시는 단연 앨범의 첫 선공개 싱글 "adore u"일 것이다. Obongjayar의 애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보컬을 샘플링한 본 트랙은 프레드의 능숙한 비트 메이킹과 감성적인 터치와 어우러져 하여금 청자에게까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전달시킨다. 또한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 SOAK이 참여한 "Just Stand There" 역시 눈에 띄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힘 있고도 세세하게 묘사하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랑의 취기를 연상시킨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그 반대로 관계의 붕괴가 묘사된다. 1995년 Emmylou Harris의 곡을 리믹스하여 원곡 특유의 서정성과 프레드의 미니멀한 신스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where will i be", 이별을 이별 그대로 받아들이자며 덤덤하지만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전하는 Joy Anonymous와의 "peace u need", The Japanese House와의 혼란스럽고도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backseat"까지 모두 여러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내어 큰 울림과 감동을 남긴다. 프레드의 감각적인 표현력은 단순 슬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붕괴와 상실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담아내었다. 이러한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각 트랙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며, 단순한 이별 이야기를 넘어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깨닫는 여정을 그려낸 것이다.
<ten days>의 노래는 앞서 수차례 언급했듯이 굉장히 개인적이며,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 움직임을 느끼게 만든다. 우왕좌왕 요동치는 신스와 선명히 때려 박히는 타악기 등, 프레드는 본작에서 댄스 음악을 광활한 스펙트럼으로 담아냄과 동시에 함부로 도달할 수 없는 뇌의 일부분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ten days>는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 댄스 음악 씬의 혁신가로 자리 잡은 그의 기본 역량은 이미 다른 아티스트들보다 몇 수 위에 있다. 그러나, 본작의 몇몇 트랙들은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어색하게 치장되어 있다는 감상을 준다. "fear less"와 "places to be"와 같은 트랙들이 바로 이의 예시이다. 본 트랙들은 분명 듣기엔 아름답고, 또 매력적이지만 눈에 띄는 킬링 파트 — 혹은 자연스러움 — 없이 그저 무념무상하게 흘러가다가 사라져버린다. 프레드가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은은하고 자연스러웠던 감정들이 부족해진 것처럼만 느껴진다.
프레드는 지난 1년간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매진시키며 음악계의 최전선에 있었지만, 새로운 작품 <ten days>에서는 이와 반대로 가장 조그맣지만 또 소중한 순간들을 담아냈다. 프레드 특유의 독특한 프로덕션은 그 장소나 상황에 전혀 상관없이 팔을 올려 가슴을 고양시키는 순간들을 만들어내었다. 늦은 밤의 드라이브, 광란의 파티와 페스티벌, 혹은 조용한 집 방구석. 어느 곳이던 <ten days>는 각기 다른 이유로 춤을 추게 만든다. 물론 그는 본작에서 우리가 그에게 가지는 기대치의 정점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개성과 재능, 또 <ten days> 속의 소소한 이야기들과 순간들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만 같다.
본 리뷰는 해외힙합매거진 w/HOM #15호에서도 멋진 디자인과 함께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보러가기: https://drive.google.com/file/d/1qMxx-ZXLTJHwIJ72J2LRCb18wWay6tcT/view
무난하게 듣기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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