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본 글은 내가 지난 몇 달 간 들었던 EMO 앨범들의 리뷰를 한 데 엮은 것이다.
본 글은 EMO에 관해서 좁고 얕은 지식을 제공한다.
본 글의 정보들은 믿을 만한 출처가 존재하지 않는다.
본 글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앨범들에 대해서만 다룬다.
본 글을 읽으면서 발생하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에 필자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사진은 본문과 큰 상관이 없다.
1. Embrace-Embrace (1987)
genre: emo, melodic hardcore
강렬하고 어두운 리프와 우울한 보컬이 인상적인 앨범.
EMO의 시작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밴드 중 하나가 바로 embrace다.
보컬인 이안 맥케이는 하드코어 밴드 fugazi의 멤버로 더 유명할 지도 모른다.
사실 초창기의 emo는 하드코어 펑크의 하위 장르에 가까우며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둘의 명확한 차이를 찾기 어렵다.
embrace 역시 하드코어 펑크의 격렬함을 그대로 가져오지만
그 에너지가 바깥이 아닌 자기 내면을 향할 뿐이다.
즉, 이들이 나타내는 우울함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축 처지고 무기력한 느낌이 아니라
소리치고, 몸을 흔드는 생동감 넘치는 감정이다.
아마 그것이 내가 emo를 좋아하게 된 첫 번째 이유일지도 모른다.
2. Jawbreaker-dear you (1995)
Genre: emo, punk rock, alternative rock
'Dreamed I was a fireman.
I just smoked and watched you burn.'
Jawbreaker는 어떤 밴드인가?
밴드의 음악적인 근간은 펑크 록이지만
기타 리프에는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면모가 보이고,
동시에 가사는 언제나 emo스러웠다.
유튜브 댓글창을 보면 팬들끼리도 이모코어다, 아니 팝펑크다 하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허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곧 그들의 장점이며
the get up kids, jimmy eat world 등의 후배 EMO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준 건 부정할 수 없기에 본 글에서 소개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dear you는 펑크 주제에 새벽에 틀어놓고 vibing 할 수 있는 그런 앨범이다.
여담이지만 Is this band emo? 라는 사이트에 jawbreaker를 검색해 보면
'The amount of times someone has told me they were emo has outnumbered the times I told myself they weren't emo.'
라는 흥미로운 문구가 나온다.
참고로 오아시스를 검색하면 갤러거 형제한테 한 대 맞고 싶냐는 문구가 나온다.
3. Mineral-The power of failing (1997)
genre: midwest emo, post-hardcore
흐느끼다-매우 서러워 흑흑 느끼며 울다.
기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90년대의 emo는 점차 하드코어 펑크의 그늘에서 벗어나
더 서정적이고, 부드럽고, 멜로디컬하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이 시기에 장르를 대표하는 주옥같은 이름들이 여럿 등장했지만
그 중에서도 mineral 만큼이나 짙은 감수성을 보여주는 밴드는 얼마 없다.
잔잔하게 시작해서 서서히 고조되는 감정의 크레센도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감동적이다.
어디서 주워 들은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현기증은 두려움이 아니라 추락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The power of failing에서의 아련한 보컬, 그리고 그 기타의 흐느낌을 듣다 보면
나 역시도 그 옆에 주저 앉아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지는 현기증을 느낀다.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어차피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한다면 emo를 들을 수 없다.
4. the promise ring-Nothing feels good (1997)
Genre: midwest emo, emo-pop
미드웨스트 이모란 인디, 매스 록의 영향을 받아 부드럽고 아르페지오 기타와 복잡한 리듬을 사용하여
섬세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2세대 emo로 정의된다.
다만 같은 미드웨스트 이모로 분류되는 Nothing feels good과 위의 power of failing을 비교해 보더라도
위의 정의만으로는 둘의 분명한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나와 같은 음알못에게는 이런 식의 설명이 잘 이해하기 어렵다.
나로서는 추상적인 키워드로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식이 훨씬 편하다.
그리고 Nothing feels good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바로 그리움,
emo에서 연민, 허무주의, 소외감 등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이다.
눈을 감고 Is thing on?을 듣다 보면 친구들과 함께하던 1997년의 뜨거운 여름이 생각난다.
참고로 필자는 친구도 없고 1997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노스탤지어란 이와 같이 그저 막연한 감정인 샘이다.
어쨌든 경쾌한 리듬, 재기발랄한 리프, 캐치한 멜로디, 그러면서도 묘하게 마음이 동하는 느낌.
밀워키 출신의 이 멋진 밴드는 EMO가 단지 어둡고 무거운 음악이라는 편견을 깨줌과 동시에
당신의 기억에도 없는 특별한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5. Cursive-Domestica (2000)
Genre: post-hardcore, emo, indie rock
보컬의 이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콘셉트 앨범이다.
70~90년대 할리우드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앨범 커버부터 그 안에 들어 있는 음악 역시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밴드의 변태적인 연출력으로
좀처럼 곡의 진행을 쉽게 예측할 수 없고, 앨범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휘둘리기만 하게 된다.
솔직히 나도 작품의 서사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영화와 달리 음악은 꼭 해석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이 앨범의 진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Domestica에서는 인디 록, 포스트 펑크 등 다양한 음악 장르가 혼재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emo적인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피치포크는 본 앨범의 리뷰에서 'the worst great voice'라는 평을 남겼는데
이만큼 emo 보컬에게 필요한 자질이 또 뭐가 있겠는가?
6. taking back sunday-Tell all your friends (2002)
Genre: emo-pop, pop punk
팝 펑크가 가미된 emo-혹은 emo가 가미된 팝 펑크?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따지자면 taking back sunday는 전자에 속한다.
악을 쓰면서 부르는 보컬과 날카로운 기타,
그 중에서도 'Cute Without the "E" (Cut From the Team)'나 'You're so Last summer'는
EMO가 장르 특유의, 그 날 것의 매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메인스트림에서 먹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성공적인 사례이다.
그 외에도 fall out boy, my chemical romance를 비롯해서 많은 밴드들이 emo와 팝펑크의 결합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래디컬 emo 팬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팝펑크는 애새끼나 듣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솔직히 'Tell all your friend'에서도 그런 팝펑크 특유의 유치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집에 돌아가는 길에 You're so last summer를 트는 것을 보면
나도 아직은 영락없이 애새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7. Citizen-Youth (2013)
Genre: emo, post-hardcore
상대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잔잔한 감성의 포스트 하드코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이런 부류의 음악을 때로는 soft grunge라고도 부르는데, 그리 자주 쓰이는 듯한 용어는 아니며
그리 부드러운 nirvana, 부드러운 alice in chains라니. 이 역시 아이러니한 명칭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허나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역시 이 공허하고, 차갑고, 외로운 앨범의 제목이 youth라는 것이다.
곡이 끝날 때마다 깔리는 노이즈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가벼운 앨범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멜로디 자체는 캐치하고 대중적인 것들 많으니 부담 없이 시도해 보길 바란다.
사실 앨범의 후반부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본작을 다루지 않기에는 'figure you out', 'the summer', 'the night I drive alone' 등의 멋진 곡들이 마음에 걸리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8. Title fight-Floral green (2012)
genre: emo, post-hardcore, shoegaze
emo의 전성기는 1990년대일지 모르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0년대에도 여전히 emo revival이라는 이름으로 멋진 밴드들이 많이 나왔다.
이때 title fight 역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밴드로,
특히 floral green에서는 30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밴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 냈다.
역동적인 리프가 돋보이는 포스트 하드코어 성향의 곡들 사이에 잔잔한 슈게이징 성향의 곡들이 섞여 있지만
그 어느 쪽이건 다분히 emo스럽다.
어쩌면 쏟아 낸다기 보다는 토해 낸다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거의 모든 곡들이 속이 꽉 찬 직구이며
취향에만 맞는다면 머리를 한 대 세게 맞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필자가 한동안 열심히 홍보하고 다녔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던 앨범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는 이게 외톨이 더 록이고 걸즈 밴드 크라이다.
물론 밴드에 여자는 한 명도 없다.
9. 왑띠-우리의 친구 머피처럼 (2024)
genre: midwest emo, indie rock
사대주의자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급하게 국내 아티스트를 찾다가 접한 앨범.
사실 국내 emo 아티스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파란노을이겠지만 그 쪽은 슈게이즈로서 정체성이 더 강하기도 하고...
포스트락 갤러리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걸로 아는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 쪽 유저들이 좋아할 음악이다.
예를 들어 집중력을 빼앗겨버린 나에게는 7분이 넘어가는 연주곡이 두 개나 있는 구성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이 앨범에 대한 호불호를 말하자면 난 망설임 없이 호인데
american footbal, cap n' jazz 뺨치는 아름다운 기타 선율에 한국어로 된 가사를 들을 수 있다니.
이건 같은 자국민으로서 당연히 응원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긴 연주곡 역시 만듦새는 훌륭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고,
9분이 넘어가는 대곡인 '나는 아직 갇혀 있다'는 단연 앨범의 하이라이트이다.
왑띠 그는 감히 한국 미드웨스트 이모 씬의 전설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며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유익한, 최소한 재미있는 글이었기를 바란다.
아직 다루지 못한, 또는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멋진 emo 앨범들도 수도 없이 많다.
따라서 언젠가 2편으로 돌아올 생각이 있지만
vultures 2 꼴이 안 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선생님 소개도 재밌고 입담이 찰지셔서 개웃겨요ㅋㅋㅋㅋ
초면이 많은데 찍먹해보겠습니다 한 번
Tbla도 안들어본 이모 초짠데 이참에 이모도 좀 들어봐야 되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작 저도 tbla는 취향 아니에요...
정성추. 글 좋네요
아메리칸 풋볼 찬양글 적으러 들어왔는데 왑띠 말고는 다 모르는 앨범이네ㅇㅅㅇ;; nothing feels good 앨범커버 마음에 드는데 저거부터 들어봐야징
이모는 개추요 스크리모도 많이 들어주세요
그리고 팝펑크 애새끼 장르라고 하는 이모"키드" 들이 웃긴게 이모도 충분히 애새끼 장르임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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