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이 무덥습니다. 본의 아니게, 김민기 선생님을 조명하는 글부터 쓰게 되었네요.
(2)
한국 '포크'라는 단어를 사실 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포크라는 단어만 보면, 다들 미국 포크 (밥 딜런 등등)을 생각하는데, 한국 포크/통기타씬의 음악은 사실 밥 딜런보다 훨씬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그냥 당시 어쿠스틱 기타 비스무리한 걸 쓰던 모든 음악을 '포크'라고 불렀다 보시면 됩니다. (반대로 일렉기타로 좌좡하는 건, 하드락이든 뭐든 사이키였고요.)
그러다보니 클래식 기타로 치는 음악도, 칸초네와 샹송도, 미국 컨트리도, 미국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 심지어 기타가 들어간 재즈도 모두 '포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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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용적인 것에서는 미국 포크와 흡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포크(folk), 즉 미국 포크는 사실 미국 민중/대중들이 부르는 노래라서 포크입니다. 이걸 다듬고 다듬고 계승한 것이 지금 미국의 포크 음악이죠. 한국으로 대입하자면, 민요가 신민요를 거치고 지금까지 민요로 차트 인하고 그러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포크를 하던 사람들도, 자연스레 한국 민중/대중이 부르는 노래로서의 포크/통기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을 겁니다. 또한 민중/대중의 음악인만큼, 당시 하층민과 군사 정부에 신음하고 있던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자 노력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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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선생님은 사실 이 모든 한국 포크의 경향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클래식 어쿠스틱기타를 통해서, 아메리칸 포크와는 다른 한국 포크의 음악성을 형성한 초창기 인물입니다. (실제로 인터뷰나 자료를 찾아보면, 김민기 선생님은 첫 음악적 관심사는 피아노와 클래식 기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동요와 같은, 어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맑은 슬픔이 보이기도 하지요.
https://youtu.be/ZoH6loW2hvg?si=4lsG7adaqJjRGGo3
https://youtu.be/3zoxAMr_cJo?si=En3Y9V1wZG2D386m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로는 김의철의 유일한 앨범인 1집, 후에는 조동진과 하나 음악, 산울림의 포크 곡들 그리고 '개똥벌레'로 유명한 신형원님까지 이어질겁니다. 이정선의 해바리기와 온갖 고운 노래들도 빼먹을 수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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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는 한국인의 포크, 즉 한국 전통 음악을 계승하고자 하는 시도를 계속했다는 점입니다.
https://youtu.be/GDihuJXGzQA?si=adBSA3nF3t5AZOMc
75년 경, 김민기 선생님이 군대에서 제대했을 때는 자신의 앨범과 자신이 프로듀싱한 양희은 앨범은 모두 금지된 시점이었습니다. 그 뒤로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여러 지하 노동 운동에 참여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 나왔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게 문제는, 당시 "불법 음반"이라서 음질도 조악하고, 원본 녹음본이 정확히 무엇인지 지금도 알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물론 나중에 김민기 선생님이 직접 총괄하신 음반이 있긴한데, 당시 음원이 아닌 김민기 선생님 지휘 아래의 재녹음본입니다.)
이런 시도는 이제 모두 돌아가신 양병집, 오세은 선생님. 그리고 아직 살아계신 서유석, 정태춘 선생님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70년대 후반 한국적 사이키델릭 포크의 송창식, 김두수, 김태곤과 70년대 후반 유한그루, 전인권, 송골매 등의 포크/락적 계승도 빼먹어서는 안 될 것이고요.
https://youtu.be/5sOS5LTT6yQ?si=FDL5Rn7Kw_5AgN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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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중 가요의 선구자로서 김민기 선생님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70년대 대학생들의 음악 감상 모임이었던 맷돌, 해바라기, 참새를 태운 잠수함 등은 이정선 같은 (상대적으로) 얼터네이티브한 성향의 가수들도 있었지만, 이미 그때부터 꽤 전투적이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80년대를 거치고, 광주를 겪으면서 이런 대학생 노래패들은 모두 공격적이고 급진화되었습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나, 안치환, 동물원, 김광석 등은 모두 그 그룹들을 거쳐서 메이저씬에 남은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분열은 아마 80년대는 75년 대마초 파동 등으로 사라졌던 포크/락 '장르' 음악인들은 공중파로 돌아올 수 있었던 반면, 여전히 반 체제 적이었던 사람들은 돌아올 수 없었던 사정에 기인할 겁니다.)
다만 이 시기 김민기 선생님은 주로 학전 등의 소극장 운동에 주력함으로서, 대중 가요와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때 기록들은 대중 음악 연구자들에게는 잘 언급되지 않는데, 이 부분이 참 아쉽습니다.
보면 70년대 후반 팝계열 아티스트들의 뮤지컬로의 도피, 재즈 게열 아티스트들의 영화 음악으로의 도피, 국악인들의 영화/극 음악을 통한 대중으로의 접근 모두 이 소극장 운동들과 연관되어 있어 보이거든요.
그 중 80년대 국악-극에 사용된 음악을 몇 가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위에 있는 김민기 선생님의 노래굿 말고도
https://youtu.be/zM-y9fxN2Lo?si=zez9b4_qSdQXdCD9
오영진 선생님이 쓰고, 김영동(국악하시는 분)님이 곡을 쓰신 노래입니다. 70년대 비둘기 시스터즈로 신민요를 부르던 김성녀님이 초대 배우로서 노래도 불렀습니다.
https://youtu.be/85FgSpu2_eQ?si=rtFuJdkbHYAIQboE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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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은 사람으로서, 열심히 기록하고 기억하고 연구하겠습니다.
최고십니다
캬,,
항상 질좋은 한국 옛 음악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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