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트 펑크(Daft Punk)와 [Discovery], 이들, 훌륭함의 기저에는 무엇이 깔려있나. 수많은 리스너들이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이 음반으로 회귀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길래? 전자음악이라는 틀 속에 국한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지 않나는 의문, 로봇 헬멧을 뒤집어쓴 청년 두 명이 뒤바꾼 아이코닉한 혁신, 반면에 곡 하나하나마다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포인트까지…가슴에 요동치지 아니한 장면이 없다는 것 나름의 결론이다. 한 장면조차 놓치면 안 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처음의 감상이고, 장면 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되풀이하여 음악을 듣곤 한 것이 두세 번째의 감상이다. 이제서야 그냥 즐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언젠가 다시 꺼내어 들어도 [Discovery]만의 독자적인 감성은 여전하다. 마치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도 미세한 감정을 건드는 모습이다. 어릴 적 영화 [월-E]나 [E.T.]를 본 뒤의 느꼈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나는 [Discovery]에서도 느끼곤 했으니.
물론 당초에 느꼈던 감성도 시간이 경과에 따라 일어나는 변색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변색되었을지언정 마모되지는 않았다. 크기는 정초보다 덜하나 “Digital Love”에서 빼어난 감흥을 느끼는 것도, ”Something About Us”의 묘한 애수에 빠지는 것도 아직까지는 유효함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간결한 가사의 활용이 탁월했던지, 곡 내의 감정 전달력이 뛰어났든지 간에, 결국 흠집 난 마음을 왜곡된 보코더가 메꾸는 것은 어찌 기막힌 일이지 않는가. 보코더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로봇의 무미건조함을 재생하는 일뿐만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따뜻함도 재생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다프트 펑크의 보코더 활용은 그런 식이다. 심지어 “Harder, Better, Fast, Stronger”에서조차 단순히 16개의 단어를 반복하는 보코더는 샘플러에 동조하고는, 예상할 수 있는 단조로움보다는 쾌감을 선사하는 격렬함에 가까워졌다.
이것이 장르적 쾌감이라 할 수 있을까. 다프트 펑크가 유랑하는 바다는 기본적으로 프렌치-하우스에 근간을 두었지만, 선로를 결정하는 방향성은 디스코이다. 팝적인 면모를 통합-분해하고, 사용된 수많은 샘플들은 일렉트로닉 하우스의 바다를 조성한다. 게다가 바다의 소금은 샘플링이 보조하는 형식이다. [Discovery]의 미학은 다양한 장치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컨셉 앨범이자, 이전보다 대중친화적인 작품으로 나아갔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두 천재가 만든 테크노-하우스 수작업 [Homework]는 훗날 디스코를 만나 정제되는 과정에 놓였으며, 유랑 끝에 발견한 디스코는 [Discovery]의 숫돌 정도가 되어주었다. 혹은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만.
작품 각 곡이 아우르는 수위 역시 고른 편이다. 로만소니(Romanthony)의 오토튠 보컬이 “One More Time”으로 변화한 방향성의 포문을 열고, “Too Long”에서 마무리하는 과정은 가히 깔끔하다고 할 수 있겠다. 환상적인 오프닝부터 여운을 남기는 엔딩까지의 14곡은 리스너에게 어떤 부족감을 호소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일례로 “One More Time”이 지나고 나면, ”Aerodynamic(공기역학)”이라는 제목처럼 종소리를 기두로 신디사이저와 일렉트로닉 기타가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경기를 보여준다. 청명한 키보드 리프 사이로 함구호가 인상적인 곡 “Crescendolls”와 리스너에게 쉬어갈 틈을 주는 “Night Vision”이 대비되기도 한다. 혹은 그 자체로 절정과 해소를 자랑하는 “Superheroes” 같은 곡 존재하기도 한다. 작중의 긴장감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리스너를 숨 막히거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 아닌, 언제나 찾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인 사이의 거리감을 재는 ”Something About Us”가 다소 환락적일 수 있는 이전 트랙을 환기함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까닭은 두 로봇의 간과할 수 없는 천재성이 감정 끈을 유연하게 풀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앨범 여러 곳에 배치된 신디사이저 혹은 피아노 건반 음의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은 곡 사이의 물 흐르는 듯한 연결 지점을 만들어주며, 그에 준하는 감상을 남기게끔 한다.
앨범 전체로 산개한 샘플링 기법도 무시할 수 없다. 다프트 펑크가 조성한 샘플링 기법은 어디까지나 앨범 전체의 지루함을 환기시키는 동력 장치로 이용된다. 일례로 “High Life”의 차핑된 샘플링으로 고양감을 형성한다면, “Face To Face”는 보컬의 존재 및 더욱 다양한 샘플링으로 전자와는 색다른 감상을 남긴다. 다시 말해서, [Discovery]내의 다양한 악기들과 샘플들은 서로 어울리며, 오로지 리스너의 청각적 감정 골을 메우는 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감정 부흥에도 앞장서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들에게 샘플링은 음악적 장치에 골몰되지 아니하고, 장치를 통해 전환되는 감정선에 부응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수많은 변수들을 조율하고 타개하는 과정에서 샘플링은 하나의 장치이자 신묘한 지름길이 되어주었을 테다.
하지만 [Discovery]의 가장 탁월한 점은 인간 본유의 미묘한 감정 포인트를 건든다는 것이다. 샘플링, 프렌치 하우스와 디스코, 보코더 등의 장치들은 오직 청각적 쾌감으로 치환되는 마법을 자랑할 뿐이다. 내가 [Discovery]를 산개한 일렉트로닉 플레이리스트가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는 지점도 그즈음에 있다.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하며 이 정도의 활력을 자랑하는 일렉트로닉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많은 단어들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감정을 건드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했다. 1시간 여정의 음악들은 서로의 여운을 이어 받으며 애수와 희열을 오가는 독특함을 제공하니, '감동적이다', '아름답다'라는 말로 함축하기에도 어딘가 아쉽다. 물론 정답을 찾고자 본작을 감상하지는 않는다만, 다시금 되돌아오게 되는 까닭 역시 아리송한 것은 매한가지다. 덕분에라도 본작을 감상하는 종종, 1시간의 디스코 세상 탐구 여정은 각자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다. 결국에 정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그 대답들이 모이면 나름의 결론이 도출되지 않을까.
[Homework]의 탁월함이 진화하여 [Discovery]가 되고, 어느덧 직접 로봇이 되기로 결심한 [Human After All]을 지나, 머나먼 기억 장치로 돌아온 [Random Access Memories] 중에서도, 내게는 디스코의 발견이 가장 각별했을 뿐인 이야기다. 이 글을 쓰는 까닭 역시도 그렇다. 결국에 이 두 로봇, 다프트 펑크의 [Discovery]는 일면에서도 일렉트로닉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지만, [Discovery]가 그보다도 훌륭한 이유를 찾고자 하면, 그들은 감정적 연결 장치를 조타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다. 음악적 훌륭함에 비례한 수많은 찬사들보다도, 전자음악이라는 장르 자체에서 내게 다른 음악이나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적 연결 고리를 만든 것은 이들이 처음이기에 더욱 각별해진다. 혹자에게 빛이 되어준 일렉트로닉 뮤지션은 Kraftwerk, Aphex Twin, Burial 같은 인물들이 물망에 오를지도 모르겠으나, 내게는 다프트 펑크라는 로봇 듀오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Discovery]에 매료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최우선은 감정적 과잉 혹은 결핍 등의 각자가 상반되는 감정적 시기에도 본작을 찾게 할 원동력이 분명 존재했다. 아니면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서도, 단순하게 일상생활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일렉트로닉 작품은 [Discovery]만한 것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펑 음악을 들을 때 마다 느끼는건데 스쳐가듯이 틀어놓고 들을 때랑 정말 적은 소리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을 때랑 감상이 천차만별이 되는게 제가 느끼는 즐거운 요소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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