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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리스트에 관한 소고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4.05.23 17:32조회 수 848추천수 11댓글 11

내가 처음에 내적인 영감과 외적인 허세를 충족할 음악적 매개체를 찾고자 했을 때, 여러 웹진(피치포크, 롤링스톤)에서 명반 리스트를 탐색하고자 했던 시절이 있었다. 치기 어리며, 취미에 대한 허영심이 가득한 상태였으니, 지금에 와서는 부끄럽지만 그랬다. 물론 당시로는 힙합에 입문하고자 했을 때, 나름의 지침서가 되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 당시로는 몇 저명한 웹진의 리스트를 마주하고서는 이미 알고 있던 몇 힙합 음악을 비롯해 새로이 접하게 된 음악을 끄집어 내거나, 이름 정도를 들어본 가수의 알앤비 앨범을 본격적으로 들어보는 정도가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내 흑인음악에 지대한 사랑의 지양분이 되어준 것도 사실이지만, 명반에 대한 이상한 기준을 세우고, 편협하게 줄긋기를 했던 시절 역시 그때였다. 지금에야 기준들에 대해서 제 시선을 달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생각하면 철없기 짝이 없는 오만한 태도로 음악에 대한 이상한 기준을 둔 것도 사실이니 역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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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때의 제 심정마저도 이해가 간다. 공신력을 지닌 웹진이나 플랫폼의 순위에 매몰되어 내가 사랑하는 명반들이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음반이나 뒤떨어져 보이는 음반에 1,2위라는 격차를 두고 뒤처져 보이는 현상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테다. 그러나 당시로는 명반이라는 수식 딱지에 목매고는, 있지도 않은 ‘절대성’을 부여하고자 했으니 참으로 우스웠다. 제까짓 게 뭐라고. 절대적인 음반 혹은 음악이 있다면, 그것만 하루 종일 들으면 될 일인데, 적어도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혹여나 과거의 나처럼 리스트의 순위에 매몰되거나 극단적으로 배격하는 이가 있다면,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싶달까.

오히려 당대의 순위는 당대의 흐름과 영향력을 고려한 매체의 특성을 반영한 편집자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지, 우열을 가리고자 함이 아니라고 사료된다. 만약 대중음악 전체를 아우르고 중요시 여기는 매거진이 있다면 대중음악에 큰 변혁을 가져온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이나 <Pet Sounds>가 1위가 될 수 있겠다. 혹, 전문 힙합 매거진이 있다면 <To Pimp A Butterfly>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1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흑인음악 전체를 아우르는 매거진이 있다면 난데없이 <Kind of Blue>나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와 같은 작품이 물망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요는 순위 자체에 너무 목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특정 평론가나 매체에서 순위를 매기는 일은 숱한 명반들을 경주마처럼 줄 세워서 우열을 겨루고자 함이 아니라, 시대를 아우르는 ‘가치’의 종류에 따라 순위가 결정될 뿐이다. 그것이 ‘장르가 지닌 특수성’이 되었든, 시대를 가로지르는 ‘시사성’이 되었든, 몇 요소를 중요시 여기는 매체의 성격이 큰 틀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의 의견은 그들이 제시한 리스트에 반문을 가지더라도, 그들이 정한 기준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작거나 크게 다를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 생기는 문제일 터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번 Apple Music 베스트앨범 100선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로린 힐의 작품 <The Miseducation of Luaryn Hill>를 1위로 선정한 이유도,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 대신 <good kid, m.A.A.d city>가 반열에 들어선 이유도 말이다. 그밖에 애플 뮤직의 성격을 최대한 반영한 리스트라고 생각하면, 흑인음악에 대한 편중도가 높은 내용이나, 시대를 풍미한 팝 음반의 고 순위도 아예 이해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1위 작품에 대한 나름의 추측으로는 로린 힐의 작품을 애플 뮤직 측에서는 시대, 성격, 인종, 종교를 막론하고 충분히 가치 있게 보았으며, 또한 그만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바로 밑의 <Thriller>도, <Abbey Road> 마찬가지다. 대중성을 많이 고려한 애플 뮤직 측의 입장 역시 애플 뮤직을 이용하는 리스너들과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무시할 수 없는 연유이다. 애초에 애플 뮤직 자체가 대중음악들을 주력 산업으로 활용하는 플랫폼의 성격을 자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은 리스트로 하더라도 아쉽지만 일일이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이는 애플 뮤직이 제시한 리스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평론가들은 수많은 장르의 바다 안에 위치한 숱한 명반들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줄자와 가위를 들고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음반이 지닌 영향력과 가치 있게 볼 요소를 고려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판단 기준이 다양한 것은 필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당사의 확고한 주관을 바탕으로 제작된 리스트에 반문이 생기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관 역시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다양한 의문과 논란을 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롤링스톤의 500대 명반의 1위가 <Sgt. Pepper …>에서 <What’s Going On>으로 변한 이유도 시대에 따른 변화에 따라 현재 유행하는 음악의 영향력을 달리 평가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다.

결국에 예술에 있어서 ‘절대성’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이는 ‘다양성’을 억누르고 취향에 맞게 재단하는 행위에 불과한 일이다. ‘명반’이라는 타이틀조차 음악을 듣는 수단 중 하나이지, ‘명반’이라는 딱지를 부여하기 위해 음악을 감상하지 아니하니 말이다. 수많은 명반 리스트들도 좋은 참고서이자 시대를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생각하면 다시 보일지도 모른다. 다시 물어보자. 당신의 명반의 기준은 무엇이며, 자신의 리스트는 또 어떤가? 당신은 명반 사냥꾼인가, 명반 사랑꾼인가?


번외이지만 이번 애플 뮤직 리스트는 대중음악에서 음반 단위의 감상을 즐기고자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추천해줄 수 있는 리스트인 것 같습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재밌는 앨범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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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 5.23 17:41

    차트와 줄세우기가 만연한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관점이네요

    잘읽고갑니다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5.24 09:21
    @DannyB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5.23 18:01

    잘 읽었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줄세우기가 의미없는 걸 알지만서도, 줄세우기를 지켜보는건 항상 재미있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데에 도움이 되는 구석도 분명 있고요. 그래서 이번 애플뮤직도 재미있었슴다.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5.24 09:21
    @끄응끄응끄응

    저도 이번 애플뮤직 리스트는 흥미롭게 봤던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5.23 18:48

    자기가 좋다 생각하면 좋은 음악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 구리다 별로다 해도 자기가 좋게 들으면 그게 자신만의 명반이 될 수 있는 거기도 하고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5.24 09:21
    @Ellos

    자신만의 명반은 저마다 자기만의 기준 안에서 빛나고 있지 않을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5.23 19:15

    진짜 멋진 글이네요 내용 또한 많이 공감되고요..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5.24 09:21
    @첫눈

    감사합니다!

  • 5.23 19:28

    전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그 가치를 잃지 않은, 혹은 더욱 더 가치가 높아진 앨범들을 명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대중적으로 '명반'이라고 일컬어지는 앨범들과

    제가 생각하는 명반들의 리스트가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애플뮤직 리스트 보면서, 제 음감 생활도 쭉 돌아볼 수 있었어서 재밌었습니다 ㅎㅎ

    리스트에 90년대 힙합 앨범이 있었을때 가장 반가웠어서,

    아무리 많은 시대, 장르의 앨범들을 들어왔어도

    역시 90년대 힙합을 제일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ㅎㅎ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5.24 09:22
    @BlanQ

    시대가 흘러도 가치가 변치 않거나 더욱 높아진 작품들이 명반이며 고전이 되는 것이겠죠?

    작성자님처럼 저도 제 음악 생활이 어땠나 돌아볼 수 있어서 참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5.2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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